세속성자의 기도

‘세속성자 수요모임’을 한다는 것

본문헤더-1

‘주일날 교회 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수요예배 – 세속성자 수요모임’ 이름 한번 부르기도 힘든 이 모임을 2013년 봄부터 시작해 이제 3년이 지났습니다. 시즌제로 봄과 가을에 예배 모임을 하고, 여름과 겨울에는 책 읽기 모임을 했습니다. ‘주일날 교회 가지 않는’ 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사실 모두에게 열린 모임이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고민하는 그리스도인, 교회 밖에서 신앙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리스도인 등 이 작은 모임을 통해 우리는 많은 세속성자를 만나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습니다.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대해 고민하며 그를 예배에 반영하기 역시 쉽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2016년 ‘세속성자 수요 모임’은 로완 윌리엄스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함께 읽으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청어람이 그동안 진행해 온 수요모임의 고민과 맥락이 닿아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로완 윌리엄스는 그리스도인의 존재 의미를 하나님과 합일하면서도 세상 속에서 세상의 아픔과 연대하는 이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기대하는 세속성자로서의 삶과 겹치는 이해였습니다. 또한 이런 이해를 세례, 성경, 성찬, 기도라는 네 가지 활동을 통해 성찰하고 있는 점은 우리가 세속성자들의 예배를 고민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지난 3년 수요모임을 이어오며 고민한 내용을 짧은 글로 나눕니다.

그리스도인이된다는것

이 모임은 누구를 위한 모임인가?

세속성자 수요모임을 계획하고 진행해오면서 우리는 한국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주목했습니다.

1) 세속성자(Secular Saints)

‘세속성자’라는 말은 일종의 형용모순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오랫동안 ‘세속적(secular)’이란 말은 ‘성스럽지 않다(not sacred)’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최선을 다해 ‘세속적’인 것을 피하고, 거부해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성경은 ‘세상’을 ‘하나님을 거스르는 모든 것의 집약(요일 2:16)이자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요일 5:19)’으로 묘사한다는 것이 그 근거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세상’은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셨고(창 1:1, 31) 여전히 ‘이처럼 사랑하시는(요3:16)’ 대상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세상으로 보냄 받은(요 17:11-18)’ 존재로 묘사했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마 6:10)’ 기도하기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제도 종교가 ‘성스러움’을 독점하며 독단적 권위를 행사할 때,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세속의 언어와 사건을 통해 필요한 깨우침과 변화의 자원을 제공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율법과 전통을 훼손하는 신성모독자로 비난받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는 사건 속에서 우리는 ‘세속성자’의 길이 손쉬운 이분법적 논리를 따르는 것이 아님을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속성’이란 단순한 부정과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신앙이 비판적 긴장을 유지하며 표현되어야 할 삶의 조건으로 이해합니다. 최근 많이 회자되는 하나님 나라, 총체적 복음, 일상 영성 등의 개념도 이런 이해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우리 신앙이 마땅히 세속성과 거룩성의 역설적 결합을 통해 드러나야 할 것을 천명하며, 이런 삶을 서로 격려하며 강화하기 위해 ‘세속성자들의 모임(Gathering for Secular Saints)’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가나안 성도(A Kanaan Saint)

‘가나안 성도’는 한국 개신교 내에 작지 않은 규모로 존재하는 ‘교회에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2010년 어간부터 수면위로 떠오른 ‘가나안 성도’ 논의는 2010년대 한국 교회가 주목해야 할 가장 새롭고도 선명한 현상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 현상은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 교회의 실패 양상을 드러내는 증거가 될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과 필요를 찾아 기꺼이 제도 바깥으로 영적 순례를 떠난 적극적 신앙의 추구 양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나안 성도를 열등한 낙오자, 무책임한 이탈자, 나태한 구성원, 이기적 소비자 등으로 폄하하는 것에 반대하며, 오히려 이들의 항의와 고투를 경청하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들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더 깊은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교회 밖에서도 신앙적 순례를 멈추지 않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를 떠난, 교회로 돌아갈 수 없는 가나안 성도들이 그런 지지와 격려,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가나안 성도로서의 생존은 그간 개인이 받아온 신앙의 훈련, 그리고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계들에 크게 좌우됩니다. 신앙의 연륜이 깊지 않더라도 교회 안에서 생겨난 문제의식을 해소하고, 기존의 예배를 계승할 대안적 공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교회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은 이들이 기쁘게 참여할 수 있는 ‘주일에 교회가지 않는 성도들을 위한 예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완전한 대안은 되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대안적 선택 중 하나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3) 질문하는 그리스도인(A Questioning Christian)

신앙은 맹목적 추종을 뜻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신뢰(faithfulness)’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 신뢰의 폭과 깊이는 그 신뢰의 대상과 묻고, 답하는 인격적 관계를 통해 확보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신앙이 성숙해간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기독교 신앙 전통은 회의와 질문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aith seeking understanding)’이란 오랜 경구가 상기시키는 기독교 전통의 미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다시 심화・확대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회의와 무지의 그늘이 있을 수 있으나, 질문을 가로막는다고 의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다고 해서 신앙이 붕괴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질문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대부분의 예배는 수직적 구조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되며, 말씀은 선포될 뿐 회중이 반응하고 다시 질문할 여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많은 목회자가 성경공부나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응답의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묻고 답하는 과정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형태로 교회 내에 자리 잡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순례를 통해 더 나은 이해와 더 깊은 신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과정을 거쳐 신앙의 성장을 이루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퀘스천

왜 예배인가?

‘누구를 위해 모임을 하는가?’에 충분히 답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남는 질문은 ‘왜 예배인가?’라는 것입니다. 세속성자, 가나안성도, 질문하는 그리스도인 모두 청어람이 기존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부류의 사람들이며 청어람은 다양한 강좌와 세미나를 통해 이들을 격려하고 사역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예배라는 형태의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야 했을까요?

예배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의례(ritual)입니다. 의례로서의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을 한 공동체로 통합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형성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이 세상 속에 구현하는 역할을 합니다. 알렌 크라이더는 <초대교회의 예배와 전도>에서 초대교회에서 예배는 ‘예수를 형상화해내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런 공동체의 예배 자체가 세상을 향한 선교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파마다 강조점은 다를 수 있지만, 예배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례적 기능과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선교적 기능을 부정하는 교파는 없습니다. 즉,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방식입니다. ‘예배와 그리스도인의 삶’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보다 가깝습니다.

예배는 단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종교 행위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 세속성과 거룩성의 역설적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입니다. 예배는 그동안 포착되지 않았던 문제의식을 안고 길을 나선 가나안 성도들의 순례를 격려하고 그 질문의 방향을 온전한 곳으로 이끌 수 있는 가장 편안한 공간입니다. 또한, 예배는 자연스럽게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신앙을 성숙시킬 수 있는 교육과 토론의 장입니다.

우리에게 그동안 많은 예배가 있었고, 그 예배들은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고, 회심, 각성, 헌신 같은 삶의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했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소명을 자각했습니다. 또 때로는 투쟁의 현장에서, 거리에서 예배드리며 사회적 책임에 대한 도전과 실천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회심했고, 각성했고, 변화했을까요? 우리의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그 삶의 터전인 세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을까요? 충분히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며, 충분히 많은 변화를 추동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을 담고 있을까요? 선뜻 “예”라고 대답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이제까지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그 자체로 충분한 역할, 그것이 기능하고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더 많은 예배가 필요합니다. 예배가 타락해서, 오염되어서가 아니라 아직 충분한 예배가 우리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틀 안에서 예배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기능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 다양한 콘텍스트에서, 더 다양한 방식으로 드리는 예배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는 완벽한 예배의 모범보다는 하나의 대안적 예배(Alternative Worshp)를 필요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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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예배하는가?

세속성자 수요모임은 “세속성자를 위한 예배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외에 예배 형태에 대한 그림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찬양과 설교만 갖춘 간단한 모임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모임을 지속하며 예전을 보완했고, 그 결과 여섯 번의 시즌을 마친 현재 어느 정도 정형화된 모임의 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지만, 예배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지 모임의 순서뿐 아니라 예배의 공간과 시간, 분위기까지 고민해야 할 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고민의 과정과 결과가 어디선가 시도되고 있을 많은 대안적 예배들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세속성자 수요모임의 방식을 공유합니다.

1) 주제와 문제의식

예배에 대한 문제의식과 참석할 대상에 대한 기대가 분명해지면 예배 자체가 담아내야 할 주제와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결정됩니다. 세속성자 수요모임은 거룩하고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세속적인 예배를 지향합니다. 또 이성적이면서도 감정적인,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예전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예배를 지향합니다. 이런 역설적인 속성의 쌍들은 우리 신앙의 관념 안에서 항상 존재해왔고, 이 둘을 놓치지 않는 것이 세속성자 수요모임의 지향입니다. 시즌마다 선정되는 성경 본문과, 매 주 선정되는 찬양과 기도제목들은 이런 신앙의 개념-쌍들을 균형있게 담고자 애쓴 결과입니다.

2) 예전과 예배 순서

세속성자 수요모임의 예배 순서는 찬양-말씀-기도로 이어집니다. 고정된 순서로 예배를 드리지만, 전례적 교회에서 말하는 ‘전례’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그 정도의 전례적 지향을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수요모임의 예배순서는 두 가지의 기능에 집중하여 구성되었습니다. 첫째는 불특정 다수가 참석하는 이 모임이 한국 기독교 전통 안에서 나름의 보편성과 연속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기능입니다. 수요모임이 지향하는 세속성과 초월성의 조화를 위한 시도입니다. 수요모임의 예배 형태는 한국 교회의 전통적 예배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누구나 와서 큰 거부감 없이 이 예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익숙한 순서들의 내용을 재해석해 최대한 낯설지 않으면서도 낯선 형태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이 모임이 ‘예배’로서 다른 모임들과 경계와 차별성을 가지게 하는 기능입니다. 순서마다 고정된 찬양을 불러 이 모임이 특별하게 구성된 기독교적 의례임을 강조했습니다. 예배의 시작에 하나님의 임재를 기원하는 찬양과 함께 묵상할 수 있는 시(詩)를 읽어 ‘예배로의 부름’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나, 침묵하며 묵상할 수 있는 순서를 배치해 일반적인 강의와 구분시키는 등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이제까지의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쳐 잠정적으로 정착된 수요모임의 전례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됩니다.

1) 예배로의 부름(5분)
함께 여는 찬양을 부르고 인도자가 간단한 성경구절이나 시를 읽고 예배를 시작합니다. 필요에 따라서 평화의 인사나 참회의 기도, 침묵 등도 이 순서에 포함해 진행합니다.

2) 찬양(10분)
인도자가 미리 선곡한 찬양을 세 곡 정도 부릅니다.


3) 말씀(1시간)
말씀 나눔은 전체 1시간 정도 갖습니다. 말씀은 매 시즌 정해진 성경의 한 책을 순서대 로 살펴보며, 준비된 설교자의 말씀 나눔 외에도 참석자들이 서로 질문하거나 자신의 묵상 을 나누는 시간을 포함합니다.

4) 기도(10분)
‘세속성자의 기도’라는 이름으로 매주 3가지 정도의 기도제목에 맞는 기도문을 미리 준 비해 함께 기도합니다. 미리 준비된 기도제목으로 기도한 후에는 서로의 삶과 기도제목을 나누는 시간도 갖습니다.

5) 폐회(5분)
광고와 서로의 소식을 나누고, 마치는 찬양을 부르고 모임을 마칩니다. 예배를 마치는 기도문(축복기도문)을 사용하기도 하고, 그냥 찬양으로 마치기도 합니다.

3) 공간과 시간wed-prayer

예배가 지향하는 세속성과 초월성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배의 내용과 메시지뿐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공간과 시간도 문제가 됩니다. 모임을 진행해갈수록 예배의 순서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것은 예배의 공간과 시간이었습니다. 수요일이라는 평일 모임, 교회가 아닌 일반 사무실이나 서점, 카페 등에서 드리는 예배는 모두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가 되었고, 예배의 의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배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 아닌 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간단한 상징을 사용해 예배 장소를 구성했습니다. 세속성자 수요모임을 상징하는 WM(Wednesday Meeting)이라는 글자와 초, 십자가는 작은 상징이지만 모임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공간은 나눔과 토론을 지향하는 모임의 성격을 반영해 둥글게 구성했습니다. 보통의 예배가 전면의 제대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데 비해 전면이 없는 둥근 자리 배치는 실제로 더 활발한 나눔이 이루어지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4) 교회력과 사회력

대림절(Advent)과 사순절(Lent)를 두 축으로 진행되는 ‘교회력’은 예배의 메시지나 특별한 예전을 규정하곤 하는데, 그와 더불어 특히 한국 사회의 사회적 시간과 이슈를 모임에 담으려고 애씁니다. 일종의 ‘사회력’을 지키기 위한 시도입니다. 예를 들어 2014년 내내 모든 모임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기도를 드렸다던가, 5월이면 가정, 학교 등을 위해 기도하고 6월에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등의 안배를 통해 예배가 사회와 함께 공감할 수 있게 했습니다.

 

 


박현철
박현철

청어람ARMC 연구원. 전자공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구글에 입사한 것보다 청어람에 입사한 것에 더 만족한다. 커피와 리뷰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