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람 매거진

‘알라딘’ 읽기 – 너에게 자유를!

김영수의 디즈니 읽기 – <알라딘 Aladdin> 너에게 자유를! (Genie, You’re free!)

'덕후'는 아니라 주장하지만, 사실 '덕스러운' 남자, 김영수가 쓰는 '디즈니' 이야기. 그가 조곤조곤 펼쳐낼 '디즈니 세계'를 기대하시라!

오 자유여
봉기의 창 끝에서 빛나는 별이여
_김남주, <자유를 위하여> 중

1 출처 다음 영화

출처 : DAUM 영화

사건이 모여 삶을 이루고, 삶이 모여 역사가 됩니다. 그 안에 뜻이 있을까요. 헤겔은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사의 최종목적은 정신이 자유를 의식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자유를 완전히 현실화하는 것이다.” (헤겔, <역사철학강의>) 왕 한 사람만 자유롭던 시기를 지나 특정 민족과 계급이 자유로운 시대로, 다시 온 인류가 보편적 자유를 누리는 세상으로. 헤겔은 역사를 자유의 확장으로 이해했습니다. 물론 자유를 향해 달려가는 역사의 표면은 그리 매끈하지 않습니다. 가없는 대립과 투쟁으로 얼룩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역사의 발전 역시 변증법적입니다. 말하자면, 자유는 그 지난한 대립과 투쟁 속에서만 자라납니다. 자유를 향한 싸움, 디즈니의 31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알라딘>(Aladdin, 1992)은 바로 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유롭고 싶어!

<알라딘>은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라는 유명 설화를 각색한 것으로 1992년, 그러니까 <인어공주>(1989), <미녀와 야수>(1991), <라이언 킹>(1994)이 연달아 개봉하던 놀라운 시기에 나왔습니다. (이 시기를 가리켜 흔히 ‘디즈니 르네상스’라 부릅니다) 애니메이션 최초로 북미에서만 2억 달러 넘게 벌어들였고, 전 세계에서 총 5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되었습니다. 주제가 ‘A Whole New World’는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주제가상을 받았고 애니메이션 곡 최초로 빌보드 챠트 1위에도 올랐습니다. 후속작도 다양합니다. 두 편의 가정용 비디오 영화가 나왔고(<돌아온 자파>(1994), <도둑의 왕>(1996)-OVA(Original Video Animation)라 완성도는 낮습니다), 84편짜리 TV 시리즈도 제작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디즈니 영화 중 6번째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1 ‘할리우드에서는 지니의 과거를 다룬 프리퀄을 실사 영화로 제작 중입니다.

-뮤지컬 알라딘-

뮤지컬 <알라딘> 출처 : www.aladdinthemusical.com

알라딘, 쟈스민, 지니는 어딘가 닮았습니다. “쓰레기? 도둑놈? 내가 원해서 된 게 아니야. 더 세심하게 나를 들여봐 줘. 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 하지만 태어나자 마자 고아가 되어 도둑으로 자란 알라딘에게 가능한 삶이란 뻔합니다. 그에게 인생이란 끼니를 때우려 음식을 훔치고, 경비병을 피해 도시를 뛰어다니는 일입니다. “살면서 제 뜻대로 해본 게 하나도 없어요.” 쟈스민은 공주지만 할 수 없는 것 투성이입니다. 마을에 나가본 일도, 친구를 사귀어 본 적도 없고, 결혼 상대자조차 원하는 대로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래 봤자 코딱지만 한 곳에 갇혀 살잖아.” 지니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화의 힘을 지녔지만 좁은 램프에 꼬리가 묶인 노예에 불과하니까요. 갇혀 살거나 삶의 선택권을 빼앗기거나 꿈을 허락받지 못한 저 셋에게 없는 건 하나, 자유입니다.

알라딘: 왕궁은 정말 근사해. 그렇지 않아?
쟈스민: 흥. 정말 멋지지.
알라딘: 저기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인과 시종을 거느리면서 말야.
쟈스민: 퍽도 그렇겠지. 이래라저래라 옷 입는 것까지 간섭 할 테니까.
알라딘: 그래도 여기보다는 낫겠지. 병사들 눈을 피해 음식 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이곳보다는.
쟈스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전혀 없어.
알라딘: 어떤 때는 너무…
쟈스민: 그건 한마디로…
함께: 숨이 막혀.

“너라면 어떤 소원을 빌겠어?” (알라딘) “자유!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 그건 세상의 어떤 마법이나 보물보다 소중한 거야.” (지니) 지니의 말은 영화의 주제를 확정합니다. 부자유에서 자유로. 쟈스민은 ‘공주는 왕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잘못된 법에, 지니는 누군가 자신을 위해 자유를 빌어줄 때까지 램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규약에 묶여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둘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습니다. 각각 왕궁과 램프에 갇혀있으니까요. 알라딘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유는 흔히 ‘간섭과 억압의 부재’와 ‘자기를 실현할 자유’라는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을 따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라 부르는) 두 형태로 분류됩니다. 쟈스민과 지니가 전자의 부재를 나타낸다면, 알라딘은 후자의 결여를 상징합니다. 알라딘 역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는 꿈을 꿀 수 없습니다. 아니, 꿈을 꾸더라도 세상은 그에게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2 출처 다음 영화

출처 : DAUM 영화

개봉 당시에는 지니야말로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꽤 많았습니다. 캐릭터가 워낙 매력적인 데다, (지금은 작고했습니다만) 당시 미국 최고의 스타 로빈 윌리엄스의 목소리 연기도 아주 뛰어났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알라딘입니다. 디즈니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장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분명하게 성장하는 인물은 알라딘입니다. 쟈스민과 지니의 사연을 솜씨 좋게 배치하면서도 이야기는 알라딘이 자유를 얻는 과정을 충실하게 좇아갑니다. 거지에 도둑인 청년이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그는 먼저 마법의 힘을 빌립니다. 지니의 도움을 받아 ‘알리 아바부아’ 왕자로 둔갑하죠. 공주와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도, 왕궁에서 고상한 삶을 살 수도 있게 됩니다. 하지만 저 손쉬운 신분세탁은 그를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모든 걸 악화시키죠.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자유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인 한, 허위의 가면을 쓴 채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이 진정한 자유를 얻을 리 없으니까요.

영화 초반 쟈스민은 수많은 왕자의 청혼을 거절합니다. 하나같이 유치하고 보잘것없다는 이유였죠. 쟈스민 눈에 그들은 혈통이 왕족이었을 뿐, 진정으로 왕자답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알라딘은 결국 자파에게 램프를 빼앗기고 거지로 돌아가지만, 그제야 쟈스민이 원하던 사람이 됩니다. 위기에 빠진 왕국을 구하려 하는 책임감, 마법사 자파에 맨몸으로 맞서는 용기, 자신을 솔직하게 밝히는 정직함, 자파를 속여 함정에 빠뜨리는 지혜, 지니를 위해 꿈을 포기하는 희생까지. 자파와의 싸움을 통해 알라딘은 ‘왕자다운’ 사람이 됩니다. 그 결과 비로소 자유로워지죠. 알라딘의 모습에 감동한 왕은 법을 개정해 쟈스민이 그와 결혼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영화는 말합니다. 왕국의 통치자로 적합한 것은 왕자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왕자다운 사람이라고. 알라딘은 알려줍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싸움이 불가피하다면, 그 싸움은 반드시 성장의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을.

3 출처 www.sweetyhigh.com

출처 : www.sweetyhigh.com

너에게 자유를 선물할게!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램프가 숨겨진 신비의 동굴을 지키는 사자는 말합니다. “이 동굴에 들어올 수 있는 자는 단 하나다. 그 가치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자. 진흙 속의 보석 같은 자.” 그 말이 끝나자 바로 알라딘이 등장하죠. (디즈니가 즐겨 사용하는 연출법입니다. <미녀와 야수>에서도 영화가 시작되면 “누가 야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내레이션이 나오고 곧장 벨이 노래를 부르며 등장합니다. 누가 야수를 사랑하게 될 것인지는 전혀 비밀이 아닙니다. 디즈니 영화는 ‘누가’ 주인공인지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주인공다운 사람이 되는지에 집중합니다) 화면은 알라딘이 목숨을 걸고 빵을 훔치는 모습, 그 빵을 굶주린 거지 남매에게 통째로 양보하는 장면을 순서대로 쫓더니 (교묘하게도!) 선행을 베푼 직후 알라딘이 이웃 나라 왕자에게 모욕당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렁뱅이 놈. 거지로 태어나서 거지로 죽겠지. 그래 봤자 벼룩이나 슬퍼하겠지만.” 영화의 의도는 명백합니다. 진짜 보물은 사막 어딘가에 묻힌 램프가 아니라 진흙과 같은 일상을 사는 알라딘입니다. 다만 아직 누구도 그걸 알아봐 주지 않고,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뿐입니다.

당신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마법을 얻은 셈이에요.
램프를 문지르기만 하면 되죠.
나 같은 친구를 둬 본 것이 있나요?
당신 친구들이 나처럼 할 수 있나요?
알라딘 주인님, 하나, 둘, 세 가지 소원을 말해보세요.
정말 나 같은 친구는 없어
_노래 ‘Friend like me’ 중

동굴에서 죽게 된 알라딘이 마법 양탄자와 지니의 도움을 받아 하늘 높이 날아 탈출하는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입니다. 알라딘은 혼자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잔뜩 쌓인 진흙을 털어 알라딘이 빛날 수 있도록 도운 친구들이 있었죠. 그들이 아니었다면, 알라딘은 아마도 평생 거지로 살았을 테죠. 지니와 쟈스민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은 알라딘 덕분에 자유를 얻습니다. 알라딘은 자신을 희생해가며 지니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자파와 목숨을 걸고 싸워 쟈스민이 악법에서 벗어나도록 돕습니다. (평생을 갇혀 산 쟈스민과 지니에게 여행은 자유의 은유입니다. 알라딘은 둘에게 여행을 선물합니다. 알라딘은 궁전에 갇혀 산 쟈스민을 마법 양탄자에 태워 그리스에서 중국까지 세계여행을 시켜줍니다. 지니 역시 알라딘 덕에 램프에서 벗어나자마자 곧장 여행을 떠납니다. “내가 자유라고? 여행을 떠나야지! 세계 일주를 해버릴 거라고!”) 이 영화에서는 누구도 홀로 자유로워지지 않습니다. 모두 친구에게 자유를 선물로 받습니다. 말하자면, 자유란 우정의 선물입니다.

4 출처 disney.co.kr

출처 : www.disney.co.kr

자유가 선물이라는 건 악당 자파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물론 그는 여러 면에서 알라딘과 대립합니다. 처음에는 그가 알라딘을, 나중에는 알라딘이 그를 속입니다. 알라딘은 지니를 친구로 대하지만, 자파에게 지니는 소원을 들어주는 노예일 뿐입니다. 알라딘이 끝내 자기를 실현하는 반면, 자파는 결국 자기를 상실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서로 같습니다. 알라딘처럼 자파도 시종일관 자유를 갈망했습니다. 자유에 대한 이해가 달랐을 뿐이죠. 알라딘과 달리 자파는 홀로 자유로워지려 합니다. 그에게 자유는 단수입니다. 자유란 만인 위에 군림하는 것이며, 가장 강한 한 사람만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자파는 눈에 보이는 모두를 노예화합니다. 지니의 주인이 되고, 왕과 쟈스민을 종으로 삼고, 왕국의 왕이 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때문에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합니다. 흔히 주인은 자유롭고, 노예는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상황은 그보다 복잡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인은 노예의 노동에 의지하게 되고 노예가 없이는 (주인으로)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이죠.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인은 ‘노예의 노예’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노예는 ‘주인의 주인’이 되지만 그렇다고 그가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주종관계에서는 진정한 자유가 출현할 수 없습니다) 알라딘은 자파에게 이를 인식시킵니다. “자파! 지니가 없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언젠가 지니가 네 힘을 빼앗을 수도 있겠지. 넌 어차피 2등이야.” 자파는 어리석게도 (동시에 가장 강한 자가 되길 원하는 그로서는 당연하게도) 스스로 지니가 됩니다. 새로운 지니가 되어 지하 동굴에 갇힌 자파는 자유의 본질을 비극적으로 증명합니다. 자유는 홀로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관계 안에서만 주어지는 은총 같은 것입니다. 역사의 목적은 자유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그만큼만 우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난 당신에게 세계를 보여줄 수 있어요.
난 당신이 눈을 뜨게 도울 수 있어요.
완전히 새로운 세상
환상적일 정도로 새로운 광경
그게 아니야! 저리로 가야 해! 넌 꿈을 꾸는 것일 뿐이야!
이제 누구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에요.
_노래 ‘A whole new world’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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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 읽기(1) – please에 응답하기, welcome이라고 말하기
<미녀와 야수> 읽기(2) – 그대, 나를 모두 가지세요
<인사이드 아웃> 읽기 – 당신의 빙봉은 언제 사라졌나요?
<인어공주> 읽기 – 요조숙녀, 악녀, 말괄량이
<라푼젤> 읽기 - 꼰대/권력에 대항하는 한 가지 방법
<라따뚜이> 읽기 - '흙수저' 레미는 어떻게 음식을 훔쳐 먹지 않게 되었나
<백설공주> 읽기 - 거울아 거울아, 지금 뭐라고 했니?
<빅 히어로> 읽기 - 지키는 삶에 관하여
<겨울왕국> 읽기 - 같이 놀래?

 

주-

  1.  현재까지 뮤지컬화 된 디즈니 영화는 이렇습니다. <미녀와 야수>, <라이언 킹>, <노틀담의 곱추>, <타잔>, <인어공주>, <알라딘>

김영수

타고난 천재. 다만 어릴 때 크게 아픈 뒤로 천천히 회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