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동성애,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

혐오에 대처하는 기독교인에 대한 열두 가지 질문

한채윤 –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

청어람에서 진행하고 있는 월례강좌 '혐오와 포비아' 4월 주제는 '동성애'입니다. 발제자인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가 동성애에 관한 찬/반을 넘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혐오'하는 이들을 향해 12가지 질문으로 구성된 발제문을 보내왔습니다. 총 41개의 물음표로 구성된 이 묵직한 글을 공유합니다.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

※이 발제문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구성된 질문인지라 어쩌면 어떤 분들에겐 머리가 아프고 또 어떤 분들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절대 회피해서는 안되고, 한번은 직면해야 할 질문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기독교에서는 ‘동성애는 과연 죄인가, 아닌가’ 라든지 혹은 ‘교회가 품을 것인가, 아니면 내칠 것인가’ 등 동성애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망설임과 고민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동성애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질문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보니 그동안의 논의들은 대체로 제법 진보적이고 새로운 접근이라고 해도 성경의 해석을 이렇게 하면 죄가 아니라든가, 죄이긴 하지만 교회는 죄인이라도 품어야 한다든지, 교회가 품기는 하되 이성애자가 되도록 도와야한다든지 등의 논의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갑론을박의 와중에 명쾌한 하나의 답을 내릴 수 없다보니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르자” 정도가 기독교인들 사이의 다층적인 갈등을 그나마 봉합하는 최선의 결론이 된 듯합니다.

하지만, 이제 질문을 다르게 던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기독교는 동성애 혐오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 동성애와 동성애 혐오는 명백히 다른 주제입니다. 동성애가 죄든 아니든 상관없이 동성애 ‘혐오’에 대한 입장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특히나 종교인이 신앙심을 기반으로 특정 대상을 혐오하는 것에 대해 기독교인으로서 당신의 입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것이 오늘 저의 발제의 화두입니다.

여기에 열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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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인간은 신의 창조질서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이성애자로 태어납니까? 아니면 특정하게 정해지지 않은 채 태어나서 이성애자로서 살라는 창조 질서에 따르게 되는 것입니까?

2) 기독교인으로서 ‘죄’를 미워하는 것은 괜찮습니까? 그런데 ‘죄’를 미워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3) 기독교인으로서 ‘죄인’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때의 기독교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기독교에서는 모든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고, 모두 죄인이며 자산이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기독교인은 죄인입니까? 죄인이 아닙니까? 자신도 죄인이기 때문에 사랑하겠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적어도 상대가 저지른 죄보다는 가벼운 죄를 가지고 있는 죄인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관용을 베풀겠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사랑을 받은 그 ‘죄인’은 당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해도 됩니까?

4) 성경에 정말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구절이 있습니까? 성경에는 이렇게 명확히 제시한 구절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혹자는 탈무드에 있다고 하고 또 혹자는 마하트마 간디가 자서전에 써서 유명해진 구절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성경에 있는 말은 원수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닌지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들을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이성애자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 기독교인 혹은 동성애자 비기독교인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5) 한국은 군사독재정권을 끝내는 민주화를 시민들의 힘으로 이루어냈습니다. 1987년도의 일입니다. 과거를 반성하고 청산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2000년에 만들어진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한국 정부가 국민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국제 사회에 천명하는 차원의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2003년부터 준비해 마침내 2007년 10월에 입법예고되었던 차별금지법 역시 인권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발걸음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차별금지법이 기독교라는 신앙을 내세우는 이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혀 지금까지도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반대로 인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에 대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6) 국가인권위원회법에는 차별금지사유로 ‘성적 지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적 지향 차별 금지 = 동성애 확산 = 기독교 탄압”으로 해석하는 이들은 나아가 이를 빌미로 국가인권위원회의 해체를 요구하는 실정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어느 한 종교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주장에 대해 기독교인으로서 동의하십니까? 혹은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만약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종교탄압이 아니며 성적 지향을 차별금지사유로 삼은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국가인권위 해체를 주장하는 이들의 움직임에 반대하기 위한 어떤 실천을 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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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에이즈를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이 고통 받는 질병 중의 하나를 신이 고의적으로 행하는 처벌 행위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신앙인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만약 정말 신의 처벌이라면 우리가 이 질병을 극복하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은 과연 올바른 일입니까?

8) 동성애합법화 반대, 동성애자 선도법 제정, 이슬람 할랄식품공장 설립반대 그리고 북한의 핵위협에 맞서기 위해 우리도 더 강력하게 핵무장을 하자는 기독민주당이 20대 총선에서 0.5%로 약 13만 명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기독자유당은 창당취지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세계 OECD국가 중 자살율 1위, 이혼율 2위, 청소년 흡연율 세계 2위, 교통사고율 1위, 유흥업소에 종사자 200만 이상, 양주소비량 1위, 인터넷도메인 음란 접속율 1위, 유네스코 통계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는 반항아 1위, 나라의 존재를 위협하는 저 출산율 1위, 한 사회의 악을 가늠하는 형사 소송 율이 일본의 10배, 니트족 80만 육박, 무속인 70만 명, 어린이 유괴 1년에 수천 명, 세계제일의 강성노조와 종북좌파 세력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큰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특히 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법을 합법화하려는 세력들이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그 모든 해결책은 기독자유당을 통한 기독정치 밖에는 없다는 것을 공감하고 한국교회 원로목사님들이 하나가 되어서 기독자유당 발기인대회를 갖게 되었다.” 이런 기독자유당은 지난 총선 때 2.64%로 약 62만 표를 획득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두 당의 공약은 혐오와 차별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당들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것에 대해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종교인의 정치적 활동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종교인의 정치적 활동이 교리를 앞세워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과 가치를 넘어서는 것도 가능할까요?

9) 저는 이성애자들이 단지 이성애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신의 미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도 없고, 그러길 바란 적도 없고, 신에게 제발 그러시라고 빌어본 적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하지만 그 반대의 상황은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너무 의아합니다. 어떻게 해서, 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요?

동성애는 죄이기 때문입니까? 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입니까? 정말 그것 때문에 이런 증오와 혐오, 차별이 가능합니까? 사람들은 동성애의 본질과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문제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히 말해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자신이 역시 속해있는) ‘인류’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인간이 자신과 다른, 수없이 많은, 아주 다양한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당신은 무엇에 대해, 누구를 위해, 어떤 세상을 꿈꾸며 기도를 하십니까?

10) 저는 동성애자로서 기독교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기독교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 다루는 방식의 문제, 갈등에 대처하는 태도의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반대와 찬성을 하는 주체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래서 강조하여 말씀드립니다. 동성애를 죄라고 미워하면서 죄인인 동성애자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바비를 위한 기도>라는 영화에서 바비가 내뱉은 한 마디처럼 말입니다. 이런 것이 사랑받는 느낌인가요?” 죄인을 사랑하려는 그 의도대로 동성애자들은 기독교를 통해, 기독교인들을 통해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정말 사랑입니까?

이것은 마치 하나님을 믿는 것을 죄라고 하면서 기독교인은 사랑하자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믿지 않는다고만 하면 기독교인이라고 때리거나 죽이지는 않겠다고 하는 요구와도 같습니다. 이런 식의 논리로 죄인이 되어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서 기독교인으로서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11) 종교인에게 혐오란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인간들이 서로에게 가질 수 있는 혐오를 줄이는데 효과가 있는 종교입니까? 혐오를 더욱 증폭시키는 것에 더 잘 부합하는 종교입니까? 종교와 혐오의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성경에 죄라고 적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죄임에는 틀림없다고 할수록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비기독교인에게 동성애는 죄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더욱 강조하는 꼴이 됩니다. 동성애가 교리상 죄라는 것이 곧 사회적으로 금지되야할 것이란 의미가 될까요? 기독교가 동성애를 용납할 수 없다고 앞으로도 계속 이와 같이 사회적으로 강력하게 발언하고, 온갖 혐오를 동원하면서 반대하는 것은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지금 기독교가 앞장서서 동성애가 만연해지지 않도록 한국 사회를 위험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기독교의 주장에는 어떤 장단점이 있으며, 이런 주장과 활동이 계속 될 경우에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남기게 될까요?

12)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2010년에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 동성애자가 되고 에이즈에 걸려 죽는다는 광고가 여러 일간지의 전면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이에 성적소수자 인권단체들이 동성애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가하자 광고를 낸 <바른성문화을위한국민연합>은 ‘우리는 결코 동성애자를 혐오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자신들은 이 땅의 청소년들을 위해서 동성애자차별금지법을 막고 동성애 확산을 막으려고 하는 것일 뿐이며 이는 상식에 기반을 둔 행동으로, 결코 혐오가 아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명의 연인이 서로 사랑할 것을 맹세하는 장면이 왜 동성애를 ‘미화’한 것이 될까요? 동성애자가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장면이 왜 동성애를 ‘권장’하는 것이 될까요? 더군다나 드라마 한 편을 보고 ‘갑자기’ 동성애자가 된다는 주장이 어떻게 상식적 판단이 될까요? 이 모든 것의 전제에 “동성애는 나쁜 것이며 모두를 타락시킨다”라는 혐오가 깔려있지 않고 과연 가능할까요? 그런데 더 의아한 것은 왜 혐오발언을 하면서도 혐오가 있다는 것은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인가, 입니다.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혐오(嫌惡)의 뜻은 ‘싫어하고 미워함’입니다. 즉 혐오는 감정입니다. 감정이기 때문에 극히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생겨나기도 하고, 앞뒤 맥락 없이 비합리적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혐오는 인간의 생존에 어느 정도 필수불가결한 것이기도 합니다. 가령 배설물 등의 더러운 것을 피하려는 혐오는 (정작 본인은 세균이 무엇인지 모른다할지라도) 세균으로부터의 감염을 막는 위생관념의 발달과 연결되죠.

그렇다면 혐오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비록 혐오가 비합리적이고 자칫 증오가 되기 쉬우며 좋은 감정이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그래도 혐오가 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혐오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직시하지 않을 때 생깁니다. 보통 상대를 혐오하고 그것을 드러낼 때 사람들이 느끼는 우월감이 있습니다. 이것을 ‘혐오를 통한 자기 위로’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월적 지위를 계속 누리고 싶거나, 이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이 생길 때 혐오는 더욱 더 강화됩니다. 그래서 일면 타인을 향한 혐오에는 자기혐오나 열등감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혐오와 열등감을 감추고 싶어질수록 혐오는 더욱 폭력적이고 과격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도 이런 차원에서 논의를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사회 대부분 사람들은 동성애에 대해 정확한 지식이 없으며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기 때문에) 또한 많은 동성애자를 만나 본 경험 역시 거의 없습니다. 이는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확히 바로 이 점을 무시합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혐오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막연한 혐오의 뿌리를 캐고 정체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대신에, 그럴싸한 근거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근거들을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이 (비합리적인) 혐오일 리가 없음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편견과 혐오, 그리고 차별이 만들어지는 구조에 대한 관심 없이 자신이 동성애자보다는 우월한 이성애자로서 어떻게 동성애를 ‘다룰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지면 겉으론 우아하지만 속으로 호모포비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질문합니다. 기독교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것이 사실입니까? 만약 사실이라면 왜 혐오를 하는 것일까요? 기독교는 혐오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키려는 것일 뿐입니까? 정말 성경에 죄라고 되어있다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의 전부입니까? 다른 이유는 전혀 없습니까? 대형교회의 목사님이 동성애에 대해 ‘척결’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반대하는 이유와 교회를 다니는 평신도가 동성애는 죄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신앙적인 면에서 동일합니까? 한국의 기독교는 혹시… 동성애 혐오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닌가요?


청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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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사회의 다음세대를 위한 인재발전소, 청어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