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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신부가 되다 – 히말라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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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여행, 은사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이라는 완.소.녀(완전 소형 여자)가 까미노 이야기에 이어 다시 여행 썰을 풀어놓는다. 이번에는 무려 히말라야! 몸은 소형이지만 눈과 마음은 크고 깊은 그녀의 눈과 마음에 담긴 히말라야는 어떤 풍경일까?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당신은 비행기 티켓을 끊고 있을지도 모른다.

MBC에 도착하는 순간, 몸이 완전히 나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세 시간 동안 정말 어떻게 기어올랐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침에 먹었던 고산병 약효과도 서서히 나타나고, 괴롭지만 몸을 계속 움직여서 그런지 고산병이 빨리 사라진 것 같았다. MBC에 오르자 아쉬스가 긴급 제안을 했다.

“ABC 롯지에서 잔 사람들이 다들 너무 추워서 상태가 안 좋대. 지금 얼른 ABC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MBC에서 자면 어떨까?”

우리는 모두 동의했고, MBC 롯지에 짐을 풀고 간단하게 이른 점심을 먹었다. 오후 두 시부터는 해가 지기 때문에 적어도 두 시 전에는 ABC 정상을 찍고 하산해야 한다. 우리는 짧은 휴식 후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배낭 안에는 우리의 마지막 숙제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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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푸차레, 한층 더 가가워졌다. ⓒ박진희박

★드디어 정상에 오르다!

4일 전만 해도 너무나 멀게 느껴졌던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지금 내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눈앞엔 안나푸르나, 등 뒤엔 마차푸차레를 보며 걷는 느낌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마지막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은 지금까지 걸었던 길에 비하면 너무나 평탄했다. 내 허리춤까지 오던 계단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완만하지만 끝없는 길을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보이는 해발 4130m를 알리는 표지판! 그 앞에서 우리는 모두 웃으며 서로를 껴안아주었다. 산티아고 입성할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아쉬스와 록군이 아니었으면 해내지 못했을 인고의 과정이었다. 감격스럽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런 단어들 말고 뭔가 거창하고 의미 있고 근사한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눈앞에 두고도 말이다.

록군 : 기분이 어때? 몸은 좀 괜찮아?
니콜 : 좋아, 내일부턴 씻을 수 있어서 더 좋아.
록군 : 다음번엔 직선 코스 말고 라운딩 코스로 가자. 직선은 계단이 너무 많았지?
니콜 : …록군, 다음엔 너 혼자 가. 네가 간다면 언제라도 허락할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지만, 난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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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남봉 저 아래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있다. ⓒ박진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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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해발 4130미터,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꼭대기에 올라왔다. ⓒ박진희박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신부

정상에서 더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우리는 20여 분 남은 시간 동안 웨딩사진을 찍어야 했다. 해가 지기 전에 찍지 않으면 고생하면서 들고 온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는 ‘말짱도루묵’이 된다. 네팔에 오기 전 친구 새봄이가 만들어준 화관과 부케는 포카라에서부터 아예 들고 오지도 못했다. 록군은 내 목에 묶인 땀에 절은 손수건을 턱시도 행커치프로 사용했다.

그래도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웨딩촬영인데, 정말이지 세수는 하고 싶었다. 세수만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쉬스에게 부탁해 물을 조금 받았다. 아쉬스는 물을 담은 주전자를 내게 내밀었고, 나는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한 손으론 주전자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물을 받아 얼굴에 문질렀다. ‘고양이세수’를 하는 내내 크크큭 하고 혼자 미친년처럼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신부가 되겠구나!’ 싶었다.

대충 드레스를 챙겨 입고 등산화를 신은 채로 롯지 밖으로 나왔다. 오늘의 사진기사는 아쉬스. 아쉬스는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남봉을 배경으로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정상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나 우리의 꼴을 보고 다들 어리둥절하면서도 “콩그레츄레이숑” 하면서 즐거워했다. 록군과의 키 차이가 워낙 심하게 나는 터라 하이힐을 신지 못한 나는 돌 위에 올라가 찍었다. 돌도 여러 종류라서 사진마다 내 키는 커졌다, 작아졌다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몹시 즐거웠다.

여자에겐 ‘웨딩샷’이 ‘인생샷’이나 마찬가지고 삶에서 유일하게 연예인처럼 예쁠 기회라는데, 나는 그 기회를 이렇게 날렸다. 하지만 하나도 후회되지 않았다. 포토샵이 내 키를 20cm나 늘여주고 내 얼굴을 김태희로 만들어준다 해도, 실제 내 키는 150cm 언저리에 있고, 나는 김태희보다 김미화를 더 닮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화장은커녕 나흘째 못 감은 떡진 머리의 나와, 네팔 현지인처럼 찍힌 록군(이 사진을 보고 ‘진희박 국제결혼 하냐’는 소리를 제법 들었다)의 이 사진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생샷’이 되었다. 히말라야의 땅을 누빈, 내 짧은 다리 때문에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던 10만 원짜리 이 드레스도 훗날 내 결혼식에 다시 꺼내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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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에서의 웨딩촬영. ⓒ박진희박

★특별했던 그날의 청혼

미션을 클리어하고 우리는 다시 MBC로 내려갔다. 이번엔 눈앞에 마차푸차레가 있었고, 등 뒤론 안나푸르나 남봉이 점차 멀어져갔다. 기력이 완전히 회복된 내가 앞장을 섰다. 한 번씩 뒤돌아서서 서로 대화하며 내려오고 있는 두 남자를 지켜보는 것이 참, 행복했다.

길고도 힘들고, 또 꿈같이 즐거운 하루였다. 저녁을 먹고 일찍 잠들기 위해 침낭으로 들어갔다. 내일은 씻을 수 있다는 기쁨에 얼른 내일을 맞고 싶었다. 한참 밖에서 서성이던 록군이 들어오더니 제 침대로 가지 않고 애벌레가 된 내 옆에 누웠다.

“내가 니를 평생토록 행복하게 해줄게, 이런 약속을 못 하겠다.”

부산사투리로 시작되는 첫 마디에 나는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지금 이 남자, 프러포즈하려는 것이다. 나흘간 씻지 않은 몸으로, 수염은 겁나 길어서 산적 같은 몰골로, 연두색 깔깔이를 입은 채.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어디 계속 해봐”

“좋은 집이나 비싼 선물도 약속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소박한 삶 속에서 니한테 평생 최선을 다할 자신은 있다. 내랑 결혼하자.”

프러포즈의 정석은 장미꽃 길, 남자가 직접 만든 현수막이나 동영상, 리액션을 담당해주는 방청객, 반짝이는 반지, 그리고 그걸 받는 여자의 눈물 정도가 될 건데, 그 어느 것 하나 맞는 게 없었다. 여자의 눈물도 없었다. 추워서 침낭에서 나오지도 않고 청혼을 받던 떡진 머리의 여자는 누워서 호탕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아까 웨딩촬영까지 했는데, 안 된다고 할 수 있나?”

그런 말로 록군의 짧은 프러포즈는 끝이 났다. 반지도 없고, 꽃길도 없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들이 있었고, 변함없이 나를 배려하던 그의 진심이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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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이 만들어준 화관과 부케를 등반할 때 가지고 올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하산한 뒤 포카라에서 다시 한번 찍었다. 화장 하고 ㅋ ⓒ박진희박

처음 그와 서울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던 날, 우리는 낙산공원에 올라갔었다. 워낙 꼼꼼한 성격의 그는 일기예보를 참고해 부산에서부터 우산을 준비해 가방에 끼워 넣고 왔었다. 사실 그 날은 비가 올 분위기는 아니었다. 밤 여덟 시, 아홉 시쯤 되었나? 우리가 오른 낙산공원 한복판에서 한 남자의 프러포즈가 진행되고 있었다. 촛불 길에 미니오케스트라까지 준비되어 있었고, 대형스크린엔 남자가 만든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잠시 구경하고 있던 내게 록군이 물었다.

“너도 저렇게 프러포즈 받으면 좋을 것 같아?”
“아니! 내 남자가 저렇게 프러포즈하면 헤어질 거야. 저런 공개적인 이벤트 난 너무 부끄러워.”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비가 쏟아졌다. 촛불은 다 꺼졌고, 바이올린이며 첼로며 악기들이 모두 젖는 바람에 연주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전부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다. 이제 막 여자의 눈에서 감동의 눈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할 찰나였는데, 남자가 우산은 미처 준비를 못 한 모양이었다. 온종일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인 사람 중엔 아무도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때 록군이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촤악 펼치더니 내게 씌워주었다. 눈앞에서는 어떤 이의 프러포즈가 망해가고 있는데, 나는 이 우산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차가 없으면 어때, 집이 없으면 어때, 남들 다 비 맞을 때 나는 안 맞게 해주는데.

까미노에서 만나 안나푸르나를 함께 다녀온 록군과 나는 성향은 무척 달라도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채 살아온 것 같다. 이후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큰 싸움 없이 여러 중대한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록군은 프러포즈의 약속대로 ‘소박한 삶’ 가운데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나는 그런 록군에게 변함없는 믿음과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 [계속]

완.소.녀의 히말라야 이야기 전체 보기  
1. 그래, 안나푸르나를 가야겠어! 
2. 발뒤꿈치를 의지하며 허리를 숙여 걷다
3. 안나야, 부디 나를 받아주렴

박진희
박진희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3대 은사의 소유자.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아프리카 여행기 [그대 나의 봄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