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이슈 따라잡기] 목회자 성범죄, 역사는 반복된다

지난 8월 2일 뉴스앤조이를 통해 보도 된 라이즈업무브먼트 이동현 대표의 성범죄에 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어람 매거진은 이런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건 보도 이후 함께 고민해야 할 관점을 제시하며 담론의 지형을 넓히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발행한 글은 이 사건 통해견고한 젠더 불평등, 교육과 제도의 부재를 주목하자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로는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과 공유하는 대중이 이 사건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분석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한국교회가 그동안 '목회자 성범죄'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조망하여 본 강성호 님의 글을 싣습니다. 이와 관련한 또 다른 관점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편집자 주

또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는 청소년 사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라이즈업무브먼트의 대표, 이동현 목사의 성범죄 사실이 밝혀졌다. 아직 전병욱 목사 성범죄 사건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청소년 사역 단체의 대표가 당시 고등학생이던 피해자에게 수차례 성관계를 강요했던 정황이 폭로되어 그 충격은 몇 배에 달한 것 같다. 이동현 목사는 앞으로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평생을 사죄하며 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목회자로서의 권력을 이용하여 성관계를 강요했던 범죄가 단순하게 사과로 마무리될 수 있는지는 무척 회의적이다.

필자는 약 3개월 전 <한국기독교 흑역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12가지 스캔들’을 통해 한국기독교의 어두운 역사를 살펴보는 내용이었다. 자극적인 소재를 다뤘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분들의 관심을 받았다. 과분하게도 말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기독교의 병리적 현상이 어떠한 연유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추적하였다. 필자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기독교 흑역사>를 집필할 때, 다루고 싶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책에 싣지 못한 내용이 있었다. 근대 시기에 유행했던 사회진화론의 수용 문제라든가 군사 정권 시절의 교회새마을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이와 함께 1920년대 후반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에 큰 충격을 주었던 ‘박승명 목사 사건’을 다루고 싶었다. 이 사건은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성 스캔들이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 이전에 성 스캔들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교계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황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기독교 흑역사>(짓다) 최근 출간되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박승명 목사 성범죄 사건’을 아시나요?

박승명 목사는 1919년 3·1 운동 시기 평양신학교의 학생 신분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렀고, 출옥 이후에는 ‘국민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다시 투옥된 경력을 가진 기독청년이었다.1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1920년대 중반에 <종교변론>이라는 책을 저술할 정도로 탁월한 지적 작업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책은 최병헌의 <만종일련>과 함께 1920년대 한국기독교 지성사를 대표하는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최병헌의 <만종일련>이 기독교를 보편종교로 하는 ‘종교’ 개념의 정착에 일조했다면,2 박승명의 《종교변론》은 기독교 변증서의 성격을 지닌 신학서적이었다.

문제는 박승명 목사가 마산의 문창교회에 부임하고 나서 발생했다. 1925년 1월 9일 부임했는데 1926년 11월 교인인 윤덕이와 이옥동이 박승명 목사의 간음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녀들에 의하면, 박승명 목사는 이악이(李岳伊)라는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으며, 여전도사 윤덕이가 밤에 예배당에서 홀로 기도하고 있는 걸 보고 성관계를 강요했다고 한다.3 다른 자료에 의하면, 박승명 목사는 마산문창교회에 부임하기 전 안성 서리교회에서 ‘악마의 작희(作戱)로 기괴한 사건’을 일으킨 적이 있다고 한다.4 이 사건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다수 연구자들은 성범죄 사건일 것이라 추론하고 있다.5

마산 문창교회는 목사의 추문을 공포하여 교회를 혼란에 빠트렸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한 윤덕이와 이옥동에게 죄를 물었다. 교회의 결정에 굴복하지 않은 이 두 여성은 이 사건을 경남노회에 알리고 박승명 목사를 고소했다. 이 사실은 순식간에 교계의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진주의 김도식이라는 목사는 성 추행범을 감싼 마산 문창교회가 하나님에게 큰 벌을 받을 것이라는 요지의 설교를 하기도 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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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명 목사의 성범죄를 보도하고 있다. (출처 : 1926년 12월 3일자 동아일보)

그렇다면 윤덕이와 이옥동의 고소장을 접수한 경남노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1927년 1월 4일 경남노회는 박승명 목사의 범죄사실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나 목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의 인책사임을 결정했다.7 결과적으로는 가해자의 처벌이 결정되었으나 이 사건을 ‘성범죄 사건’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경남노회는 윤덕이와 이옥동이 제기한 고소 건을 마산 문창교회에 반려했다. 박승명 목사의 사임을 얘기하면서도 그의 성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경남노회의 태도는 마산 문창교회의 분규로 이어졌다. 박승명 목사의 결백을 주장하는 그룹과 그의 성범죄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룹 간의 갈등은 당연했다. 심지어는 두 그룹 간에 난투극이 벌어져 경관이 출동하여 제지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1920년대 후반에 말이다.

이 와중에 경남노회가 서북 교역자를 배척한다는 박승명 목사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경남노회가 성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고사직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박승명 목사는 자신에 대한 노회의 치리가 지역감정에 의한 배척이라고 주장하며 총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1927년 장로교 총회는 노회의 결정을 기각하고 다시 재판에 부칠 것을 결정했다. 여기에는 총회가 지정한 조사위원과 함께 이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결정도 포함되었다.

총회가 지정한 조사위원들은 경남노회의 결정을 옹호하는 보고서를 만들어 총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1928년 장로교 총회는 이 보고서를 기각하고 위원을 교체한 다음, 다시 조사할 것을 결정했다. 철저하게 박승명 목사를 옹호하는 결정이었다.

목회자 성범죄, 불의한 ‘숨바꼭질’의 역사

‘박승명 사건’은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성 스캔들이 본격화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박승명 사건’을 다루는 남성 교역자들은 이 사건이 성 스캔들로 비화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던 것 같다. 박승명 목사의 사임을 결정하면서도 그의 성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경남노회의 행보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이 사건은 ‘전병욱 성범죄 사건’처럼 일종의 ‘숨바꼭질’이라 할 수가 있다. 가해자는 목사라는 권위와 교회라는 조직 뒤에 숨어버리고, 피해자들은 술래를 찾으려고 했으나 정작 주변의 손가락질에 자신을 숨겨버려야 했던 상황이 말이다.8 피해자들은 박승명 목사의 성범죄 사실을 교회에 알렸으나 오히려 교회로부터 배척을 당했고, 이에 경남노회에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사건은 결국 지역갈등의 수단으로만 전락했을 뿐이다. 이 사건을 집중 보도한 동아일보는 시종일관 교회 분규 사건으로만 다루었을 뿐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장로교회 분열에 큰 발판을 제공하였다. 한 원로목사의 회고에 의하면, 박승명 목사를 옹호했던 1928년 장로교 총회는 교회 분열의 시초를 열었다고 한다.9 확실한 증거가 있는 범죄자를 총회가 서북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호하며 지역 갈등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역이 장로교회의 교권을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 서북 출신의 박승명 목사를 과잉보호한 것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장로교회의 분열은 성범죄 사건을 둘러싼 지역갈등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승명 사건(1928.10.13.동아)

박승명 사건은 경남 지역과 서북 지역의 갈등을 유발시킨 계기가 되었다. (출처: 1928년 10월 13일자 동아일보)

교회 내 성범죄는 한국기독교에 내재된 남성지배문화를 잘 보여주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는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에 형성된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한다. 혹자는 ‘한국교회가 여성 중심적’이라고 얘기하는 모양인데 주요 결정 권한이 누구한테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기독교의 역사는 가부장제 역사로서 여성을 향한 폭력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감없이 가해온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10 이러한 명제에 불편함을 느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사례만 놓고 봐도 위의 이야기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못하리라 생각한다. 1969년 서울 금호동 제일교회의 전종무 목사가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있는 여고생을 강간하여 임신/낙태시킨 일이 있었다. 검찰에 의하면, 그는 2년 전부터 피해자에게 성관계를 강요했다고 한다.11 심지어 낙태한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성관계를 강요했다고 한다. 1970년에는 청주 서문교회의 권OO 목사가 이발소에서 근무하던 여학생을 강간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가해자인 권OO 목사가 피해자 아버지의 고발 때문에 구속이 되자 교회 사람들은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데모를 일으켰다.12 1982년 9월 청주의 손영환 목사는 교회 여성 집사와 불륜을 맺다 그 집사의 딸에게 들키자 입을 막기 위해 딸을 지하실로 유인하여 협박하고 폭행했다. 이 같은 사실은 여성 집사의 딸이 불륜현장을 목격한 뒤 고민하다가 폭행까지 당하자 아버지에게 알리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고 한다.13

본질을 바로 보고, 근절해야

위의 사례들은 교회 내에서 남성 목회자들이 여성들에게 가한 폭력의 역사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교회 내 성범죄는 그저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에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초기 기독교 역사와 함께 꾸준하게 지속되고 있다. 기독교여성상담소의 통계에 의하면, 1998년 7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발생된 교회 내 성범죄는 108건으로 강간 61건, 성추행 38건, 성희롱을 포함한 기타 사건이 7건을 차지했다고 한다.14 10년 전의 통계 자료이긴 하지만. 한국기독교의 참담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교회 내 성범죄는 교회의 분파 싸움에 휩쓸려 피해자의 인권이 실종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15 우리가 함께 살펴본 ‘박승명 사건’ 역시 피해자의 인권이 철저히 무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010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주최한 <목회자 성윤리,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한 발표자는 교회 내 성범죄는 여러 면에서 근친상간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 내 성범죄에는 항상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피해자가 저항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교회를 떠나지 않고서는 가해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것은 자녀를 성폭행한 아버지에 대해서 자녀가 저항하고 방지하도록 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둘째, 목회자의 성폭력은 근친강간과 마찬가지로 가해 목회자와 피해자 사이에 가장 가깝고 자주 접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셋째, 피해자는 그 교회를 떠나기 전까지 가해자를 목회자로 부르고 대우해야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도 근친강간과 비슷하다. 넷째, 근친강간은 문제가 폭로될 때 성폭행이 중단되지만 어머니로부터도 미움이나 보복을 당할 수 있는 것처럼,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도 교회공동체로부터 지지를 받기보다 교회에서 추방을 당하거나 개인적인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16 따라서 교회 내 성범죄는 앞으로 근친상간을 다루는 수준에서 다뤄져야 한다.

아버지에게 9년 동안 성폭행을 당한 어느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교회수련회 마지막 날 밤에 자신의 경험을 용기 있게 나누었다. 수련회 참가자들에게서는 큰 울음소리와 비명이 터져 나왔고, 마음을 모아 기도해줬다고 한다. 그녀는 교회로 다시 돌아온 뒤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 일로 소문이 돌지 않았고, 교회 친구들은 부담스럽지 않은 애정과 관심을 보여줘서 여전히 그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라는 책을 통해 담담하게 서술했다.17 어쩌면 그녀의 경험이 교회 내에서 발생하지 않은 성범죄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수 있겠으나 교회 공동체가 성범죄 피해자(생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교회 내 성범죄는 목회자의 권력남용에서 비롯된 범죄라는 사실을 남성 목회자들이 아주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회의 구성원들은 성범죄를 성‘관계’가 아니라 인권을 침해한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 제도적인 차원에서 성범죄 피해자(증언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교회법이 제정되어야 하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신앙이라는 미명 하에 가해지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존재를 향한 관심이 요청되는 때이다.

[함께 읽을 글]
이슈 따라잡기 - 목회자 성범죄, 폭로 너머 생각하기 / 오수경
이슈 따라잡기 - ‘목회자 성범죄’ 보도, 무엇을 놓치고 있나 / 박현철

주-

  1. 이진구, 「한국 근대 개신교에 나타난 종교론 – 박승명의 《종교변론》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식』제75호, 2006, 21쪽.
  2. 이행훈, 「최병헌의 ‘종교’ 개념 수용과 유교 인식」, 『한국 철학논집』46, 2015, 205쪽.
  3. 「교회재판정이 권투의 수라장」, 『동아일보』1926년 12월 3일. 
  4.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상. 
  5. 대표적으로 민경배 교수를 들 수 있다(민경배, 『교회와 민족』, 대한기독교출판사, 1981, 363쪽).
  6. 「공동처리회 개최하고 책임자처벌을 토의」, 『동아일보』1926년 12월 10일.
  7. 「노회판결로 목사사직권고」, 『동아일보』1927년 1월 10일.
  8. 이진오 외, 『숨바꼭질: 스타목사 전병욱 목사의 불편한 진실』, 대장간, 2014, 21-22쪽.
  9. 전필순, 『승리의 길』, 선명문화사, 1963, 322쪽.
  10.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편, 『성폭력과 기독교』, 여성신학사, 1995, 88쪽.
  11. 「목사를 구속 여학생간음」, 『경향신문』1969년 4월 11일. 
  12. 「파문던진 목사의 스캔들」, 『기독신보』1971년 6월 19일.
  13. 「목사가 여집사와 불륜」, 『경향신문』1982년 9월 27일. 
  14. 윤귀남, 「교회내의 성폭력」, 『한국여성신학』제64호, 2006, 9쪽.
  15. 윤귀남, 위의 논문, 13쪽.
  16. 박성자, “교회 내 성폭력의 실태와 대책”, 『목회자 性윤리, 어떻게 할 것인가?』자료집, 2010, 11쪽.  전문은 http://trusti.tistory.com/658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17. 은수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이매진, 2012, 185-186쪽.

강성호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석사과정으로 한국현대사를 공부했다. 현대 한국교회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학도. 졸업 이후 전남 순천으로 삶의 터를 옮겨 2년 차 전라도민이 되었다. 가나안 성도로 산지도 2년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