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마틴 로이드 존스’를 읽는 객관적이고 성실한 가이드 (이재근)

최근 출간한 <마틴 로이드 존스>(복있는사람)는 마틴 로이드 존스의 동역자이자, 그의 전기 집필자인 이안 머레이가 2권으로 출간한 전작을 1권으로 축약한 것입니다. 800쪽에 이르는 두꺼운 마틴 로이드 존스의 일대기와 사상을 담은 이 책을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복있는사람)의 저자이자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등에서 교회사와 선교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재근 교수가 서평을 썼습니다.

첫 만남

아마도, 학부를 신학으로 시작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교회사의 인물 한 사람을 꼽으라면, 마틴 로이드 존스일 것이다. 1993년에 ACTS(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를 입학한 이후 곧 소개받은 인물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집은 ACTS 학부 내내, 또 합동신학대학원 재학 시절 초기에 다른 어떤 저자의 책보다도 내 손에 자주 들려있었다. 부흥, 구원, 설교와 설교자, 하나님의 주권, 독서생활,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강변은 지극히 어린 한 신학생의 영적 감수성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과연 무릎을 꿇고 책을 읽는 행위를 실천하게 할 정도로 그는 내가 닮고 싶은 목회와 설교, 신학의 모델이었다.

부활한 설교자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한국 기독교 출판계에 로이드 존스 열풍이 뜨거웠다. 그의 설교집과 강연집을 출판하는 출판사가 10개 이상이었고, 같은 강연과 설교를 여러 출판사가 동시에 출간하기도 했다. 그때 나온 책들과 이후에 나온 개정판, 새로운 번역본, 연구 서적 및 전기 등의 목록을 보면, 출판사들이 로이드 존스에 대한 관심을 빠른 속도로 잃은 것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독자들의 관심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더 다양해지고, 더 복잡해진 교계 및 학계 분위기를 반영하듯, 좁고 단순한 한 길을 걸었던 설교자에 대한 이전의 고밀도 관심도 약해졌다. 이제 로이드 존스는, 그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그랬던 것과 거의 똑같이, 특정한 길, 협소한 길을 선택하며 의지를 가지고 걷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여전한 지지 속에 소비되고 활용되는 것 같다.

이안 머레이가 2013년에 새로 써낸 이 전기는 이전의 영광스러웠던 시대의 향수를 느끼고 그리워하는 지지자들에게는 외로웠지만 당당했던 그들의 영웅의 풍모를 다시 한 번 기억하고, 그의 길을 따르려는 의지를 재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전기는 로이드 존스가 간 길에 100%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유익하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성경과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토대로 확실성의 길을 찾으려 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밀하게 읽고, 존중과 공감, 또한 일정 정도의 비판을 토대로 모두가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전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정할만한) 객관적 장점

이 책은 2013년에 이안 머레이가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 Banner of Truth에서 단 권으로 발간한 새로운 로이드 존스 전기를 2016년에 복있는사람이 오현미의 번역으로 출간한 새 번역판이다. 1990년에 같은 저자가 같은 출판사에서 발간한 전기는 원서 기준으로는 두 권, 2011년에 나온 부흥과 개혁사 판 한국어 번역판 기준으로는 세 권이었다. 이 방대한 전기가 지나치게 세밀하고, 그래서 읽기에 극히 지루했다는 비판을 오래도록 인식한 저자는 일반 독자 대부분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했다. 또한 지난 30년간 나온 이 책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로이드 존스의 신학과 삶에 대한 여러 연구 성과들을 반영하여 압축적이고 변증법적인 수정판을 펴냈다.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장점은 단지 내용을 줄였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로이드 존스 사망 후 32년, 또한 첫 전기 집필 후 23년 동안 나온 모든 비판과 연구 성과들을 꼼꼼히 읽고, 그 비평들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반응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 인물이 사망한 후 한 세대, 즉 약 30년이 지나면 그 인물에 대한 더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해진다. 머레이는 로이드 존스가 남긴 1차 자료와 그에 대해 논하는 2차 자료를 포괄적으로 참고하여 요약-분석하고, 큰 그림을 그려내고, 그를 변호하고 변증하며, 때에 따라서는 다른 이들의 비판도 겸허하게 인정한다.   

둘째, 이전 전기와 마찬가지로, 이 전기는 연구 대상자인 로이드 존스의 외면과 내면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 집필했다. 따라서 일부 주관적이거나 과장된 듯한 평가를 제외하면, 역사적 사건으로 제시된 내용 대부분이 신뢰할 만하다. 머레이는 로이드 존스와 함께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동역했고, 로이드 존스가 주관한 학회와 모임 다수에 동행했으며, 그가 한 설교와 강연 대부분을 책으로 엮은 편집자였다. 책에서 머레이 자신이 자주 과시하듯, 그는 노년의 로이드 존스가 외부로 설교나 강연 여행을 떠날 때 자주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이동 중에 내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의 사역지 및 일터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그 일에 대한 생각을 집 안에서 아내나 자녀에게까지 하나하나 다 이야기하는 남성은 드물다. 또한, 노년의 로이드 존스는 스스로 자서전 쓰기를 포기하고 머레이에게 전기 집필을 위임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아마도 머레이는 로이드 존스의 아내나 자녀보다도 그를 더 많이, 더 종합적으로 알 수 있었던 독보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전기 작가로서의 머레이의 자격과 능력은 두드러진다.

셋째, 이번에 새롭게 번역된 복있는사람 판 전기는 번역과 편집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리며, 한국 기독출판계 도서 편집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이 어디까지인지를 넉넉하게 과시했다. 출판사의 ‘하나님의 사람’ 시리즈가 지난 몇 년간 C. S. 루이스, 칼 바르트, 디트리히 본회퍼, 조지 윗필드 전기를 내면서 도입한 표지 디자인과 내지 편집, 도표 및 연표 배치 등은 우선 시각적으로 탁월하다. 가독성 높은 편집, 그리고 읽은 후 서가에 꽂아 놓고 전시하는 효과 또한 탁월하다. 원서에는 없는 연표와 해설 등을 배치한 것은 원서에 들어있는 내용조차도 제대로 번역해서 넣지 않는 일부 출판사의 행태와는 대조되는 장인정신의 산물이다. 편집자의 이런 노고에 더해 특히 칭찬하고 싶은 것은 번역자의 성실하고 꼼꼼한 번역의 질이다. 번역자 오현미는 한국 기독출판계에 널리 알려진 명번역자답게, 원어의 원 의미를 잘 살렸을 뿐 아니라, 한국 독자들이 번역된 글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매끄러운 한국어 문장을 제공한다. 가장 탁월한 번역서는 원서를 찾아보지 않아도 될 만큼 문장도 매끄럽고, 번역 내용상 오류가 의심되는 부분이 거의 없어야 한다. 교회사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서평자가 보기에 이런 수준에 이른 번역서는 한국 기독교 출판계에 사실상 별로 많지 않다. 그러나 오현미의 이 번역서를 읽으며 나는 지명과 인명, 역사 및 지리 배경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인터넷과 책을 검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따로 원서를 보지 않았다. 그만큼 번역의 수준과 신뢰도가 높다.

오현미의 번역 중 가장 의미 있는 발전은 ‘Doctor’ 번역어의 오류를 완벽히 잡아낸 것이다. 로이드 존스의 호칭으로 자주 붙는 ‘Doctor’는 목사가 되기 전 그의 직업이 의사였던 데서 연유한다. 그는 학부 의학 교육 이외에는 정규 대학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므로, 의학에서도 신학에서도 박사가 아니다. 교계에 업적을 남긴 많은 이들에게 수여되는 명예 신학박사(DD)를 받은 일도 없다. 비록 박사가 아니지만, 박사 이상의 지식과 실력을 갖추었다고 노년에 박사라고 불러준 것도 아니다. 로이드 존스는 풋내기 목사로 웨일스 애버라본 샌드필즈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Doctor’로 불렸다. 따라서 그는 처음에는 그저 ‘의사’라는 의미에서 ‘Doctor’로 불렸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껏 한국에서는, 설교집이든, 강연이든, 심지어 전기든, 로이드 존스를 소개한 거의 모든 책에 이 호칭이 ‘박사’로 번역되어 있다. 오현미는 이 오류를 바로잡으며, 읽히는 그대로 ‘독터’로 번역했다. 이는 당연히 박사는 아니고, 그렇다고 단지 의사라는 호칭이 갖는 한정된 직업적 의미 이상의 존경의 뜻이 담긴 ‘Doctor’에 가장 합당한 번역어가 ‘독터’일 것이라는 역자의 깊은 고민이 담긴 선택이었다. 또한 로이드 존스가 영국 웨일스인이라는 사실에 입각해서, 미국식으로 ‘닥터’라고 표기하지 않고, 영국식으로 ‘독터’라고 표기한 것도 역자의 세심함과 꼼꼼함을 보여주는 실례다. 또한, 로이드 존스에 대한 번역서뿐만 아니라, 번역문이든 한국인 저자가 직접 쓴 글이든, 신학과 교회사 문헌 전반에 나타나는 가장 흔한 오류중 하나로, England를 영국 내 한 지방을 의미하는 ‘잉글랜드’가 아닌, UK 혹은 GB에 해당하는 번역어인 ‘영국’으로 번역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역자는 이 또한 바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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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자가 평가하는) 주관적 단점

이런 두드러진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서평자의 입장에서 문제로 보이는 단점은 여전히 있다. 우선, 저자 이안 머레이가 이 전기에서 취한 관점은 소위 문학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 불리는 그런 관점이다. 이는 물론, 이미 언급한 장점의 이면에서 동시에 작용하는 단점이다. 전기 대상자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그 자부심과 애정이 오히려 독자가 로이드 존스를 사건과 인용문을 통해 자기 나름으로 독창적으로 파악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방해한다고 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저자의 관점을 무조건 수용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여러 경우에 저자는 독자가 대상자인 로이드 존스와 저자인 자신을 거의 한 몸으로 취급하거나, 혹은 자신과 로이드 존스가 서로의 대변인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가장 잘 쓰인 좋은 전기는 저자가 연구 대상자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가능한 객관화한 데이터를 본문과 주석을 통해 제공하고, 최종 평가는 독자 스스로 내리도록 하는 전기라는 것이 학계 전반이 동의하는 기준이다. 이 점에서 이안 머레이의 전기는, 왜곡과 과장이 난무하는 ‘성인 전기’의 범위는 확연히 벗었지만 개인감정과 관계에 기초하여 자신 진영의 영웅을 변호하고 변증하는 ‘영웅숭배적’(filiopietistic) 전기의 틀을 완벽하게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영역은 박영선의 ‘해설’이다. 박영선은 한국에서 가장 저명하고 독특한 유형의 강해설교를 개척한 설교자이며, 설교와 신앙, 목회에 대한 그의 발언은 그가 속한 교단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설교자 박영선이 자신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설교자와 목회자로 마틴 로이드 존스와 김홍전을 꼽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로이드 존스에 대한 이런 애정을 평소에도 숨기지 않은 해설자답게 박영선은 해설의 글에서 자신이 책임질 영역을 바로 알고, 그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자기 길을 걸어간 인물로 로이드 존스를 읽을 것을 권한다. 특히 이 대목은 서평자가 느끼기에, 그의 일생의 목회와 신앙의 키워드라 할 만한 ‘하나님의 열심’을 반영하는 내용이다. 연약함과 부족함이 많은 한 개인을 지나치게 영웅시하거나 지나치게 비난하는 것은, 그 인물이 특정 시대에 모든 영역을 다 책임져야 한다거나, 그가 속한 진영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잘못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약한 인간을 만들고, 그 인간이 한 영역을 책임지게 하는 것은 그의 능력이나 재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다. 서평자가 해설자 박영선의 글을 옳게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서평자는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로이드 존스를 그가 떠맡은 책임 영역 이외의 것으로 가혹하게 비난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절대적으로 떠받드는 것은 분명 오류다.

그러나 해설의 글의 서론과 결론에 해당하는 이 내용과는 달리 중간부에 해당하는 내용, 즉 마틴 로이드 존스와 그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 설정된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와의 관계에 대한 해설자의 해석 및 평가는 사실관계와 주장, 목적이 분명하지 못한 것 같다. 예컨대, 스토트와 패커가 에큐메니컬 운동에 무조건 긍정한 것으로 설명하거나, 이 운동에 대한 그들의 동조가 마치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열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 등은 영국 복음주의 전반, 혹은 잉글랜드 성공회 복음주의자의 복잡한 내부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오해일 수 있다. ‘보편성’과 ‘사도성’을 교회의 표지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는 성공회 전통에서는 보수적 복음주의자라 하더라도, 로이드 존스를 비롯한 ‘비국교도’ 소속의 복음주의자와는 다른 교회론적 강조점이 있다. 이런 요소는 종교개혁 이후 영미 교회사 전반을 폭넓게 공부해야만 이해할 수 있고, 정당한 평가도 가능하다.

이 점에서 이 해설의 글은 전기 전체를 읽는데 필요한 가이드라인이 되기에는 조금 아쉽다. 박영선의 글은 책의 서두에서 독서의 방향을 인도하는 가이드의 해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책을 읽은 후에 읽어야 할 독서 후기, 서평에 더 가깝다. 물론 박영선의 설교와 강연에서 자주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도인적 풍모와 매력을 풍성히 담고 있는 그만의 글이라는 점에서, 이 해설문은 하나의 작품으로 즐거이 읽힐 수 있다.

마지막 단점은 장점에 비하면 지극히 사소하다 할 수 있는 번역상(혹은 편집상) 오류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의 번역은 정말로 탁월하고 만족스럽다. 그러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예컨대, 저자 이안 머레이의 이름 표기법이다. ‘Murray’에 해당하는 영어사전의 발음기호는 [mʌ́ri]다. 즉 ‘머레이’가 아니라 ‘머리’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테니스 스타 앤디 머리는 여러 언론에서 ‘머레이’로 표기되기도 하고 ‘머리’로 나오기도 한다. 표기법을 제대로 따르는 언론은 ‘머리’, 댓글에서의 조롱 등을 의식하는 기자는 ‘머레이’로 표기한다. 그러나 비록 본 전기를 출간한 출판사가 이전에 낸 같은 저자의 다른 작품에서 저자명을 ‘머레이’로 표기했기에 일관성을 유지하려 했다는 점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출판사는 오류가 발견되면 이를 수정하며 바른 표기법을 유통하는 데 일조해야 한다. 같은 저자의 더 두꺼운 세 권짜리 한국어 번역판을 낸 다른 출판사가 저자를 ‘머리’로 표기한 적이 있었다는 것도 고려의 대상이다. ‘독터’를 영국식으로 읽어내고 표기하는 데 성공한 역자와 편집자가, 스코틀랜드인 ‘존 녹스’를, 영국식 존과 미국식 낙스를 섞어 ‘존 낙스’로 표기한 것도 작은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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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읽을 것인가 : 독서를 위한 가이드

이 글에 책임을 져야 하는 서평자가 역사가이기에, 교회사가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고자 한다.

1. 18세기 복음주의 부흥과 ‘신생’

로이드 존스는 자신을 18세기 초반, 즉 1730-40년대에 영국과 북미 식민지에서 발흥한 18세기 부흥운동의 후계자로 자처했다. 특히 그는 흔히 1차대각성이라 불리는 이 운동의 칼뱅주의 라인의 후계자다. 18세기 1차대각성의 주역인 웨슬리 형제와 조지 윗필드와 조나단 에드워즈, 테넌트 가문 등은 그 시대 목회자와 신자들이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교인’이라는 것과 진짜 ‘신자’인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 주장했다. 그렇게 탄생한 ‘회심,’ 혹은 당대의 표현대로, ‘신생(new birth)’은 모든 교인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개인적 사건이었다. 특히 이 경험이 인간의 자발적 선택, 인위적인 개입이나 조작, 혹은 정교하고 조직된 프로그램으로 조장된다고 믿지 않았다는 점에서, 로이드 존스는 웨슬리 형제의 아르미니우스주의와는 달리, 윗필드와 에드워즈로 대변되는 칼뱅주의적 부흥주의를 따른다. 로이드 존스의 원소속 교단인 칼뱅주의 감리교, 혹은 웨일스 장로교가 바로 이 전통에서 탄생했다. 당대의 다른 설교자들과는 달리, 로이드 존스가 설교할 때마다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신자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거의 모든 설교를 전도설교로 활용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그가 일생동안 그토록 강렬하게 사모하고 주창했던 부흥은 이 18세기 복음주의 운동에 대한 그의 관심에서 비롯되며, 그의 성령론이 17세기 정통개혁주의 전통의 소위 성령은사 및 성령세례 중단론과는 다른 구도를 따른 것도 이 운동의 유산이다. 이 점에서 그는 18세기 유형의 신파 칼뱅주의 전통을 따랐지만, 이 전통은 감정주의 및 행동주의로 연결될 수 있는 거의 모든 신앙 경험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17세기 유형의 ‘구파 정통주의(Old School Orthodox)’와는 결이 다르다.

2. 웨일스 정체성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늘날 ‘영국(UK, GB)’이라는 나라는 지난 수 세기 역사 속에서 강대국 잉글랜드가 주변의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아일랜드와 맺은 군사적 합병, 혹은 정치적 통합의 결과다. 현재의 영국은 아일랜드 섬 남쪽의 아일랜드 공화국을 제외한 네 나라가 통합된 국가로, 영국 왕이라는 단일 군주를 국가 수장으로 두고 있다. 따라서 통합과 연합의 역사가 비교적 길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 네 지역은 각각 다른 언어와 신앙, 문화, 의복, 민족성의 전통을 이런저런 행태로 유지하며 살아왔다. 특히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관계는 다른 지역 관계보다 더 긴장의 강도가 강해서, 얼마 전 2014년에 스코틀랜드는 독립투표를 시도하며 거의 독립에 성공할 뻔한 경험도 있다. 웨일스의 경우는, 스코틀랜드만큼은 독립 의지가 강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잉글랜드와 거리가 너무 가깝고, 상대적으로 힘이 너무 약했기에, 스코틀랜드처럼 독립의지를 불태우기보다는 잉글랜드에 의존하는 정도가 더 강했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와는 달리, 독립된 의회도, 독립된 국교도, 경쟁력 있는 명문대학도, 독립적 사상 및 문화체계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웨일스 축구의 전설 라이언 긱스가 단일 영국 올림픽 축구팀(Team UK)의 일원으로 출전하면서도, 영국 국가를 부르기를 거부한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웨일스인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잉글랜드와는 철저히 다르게 인식한다.

웨일스인인 로이드 존스가 자신의 웨일스 칼뱅주의 감리교 유산에 일생 집착하고, 모든 휴가를 웨일스로 가고, 웨일스어를 여전히 가정과 일부 교회에서 사용하고,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 후에도 설교 및 강연 여행을 웨일스를 중심으로 다닌 것도 이런 그의 웨일스인 정체성을 반영한 것이다. 서평자가 보기에 이런 비주류, 분리주의, 독립적 민족주의적 웨일스 정신은 그가 런던에서 목회하면서, 영국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복음주의 단체인 IVF와 관계를 맺는 대목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영국 기독교 역사에서 IVF는 복음주의를 대표하지만, 한편으로는 잉글랜드와 성공회 중심으로 조직된 기관이었고, 반면 SCM은 진보적인 자유주의 학생·청년 조직이지만, 주로 국교인 성공회가 아닌 비국교도를 중심으로 조직된 운동이었다. 로이드존스는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복음주의에 속한 인물이었지만, IVF의 복음주의 운동이 잉글랜드인 성공회 복음주의자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에 불편해했다. 물론 표면적으로 그가 내세운 이유는 더 철저하게 ‘성경의 무오성’을 주창하지 않는 IVF의 신학입장에 대한 불만이었지만, 웨일스인 특유의 비주류 저항정신과 그의 IVF 활동 중지와 깊은 관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3. 20세기 현대주의-근본주의 논쟁 유산

18세기 대각성 유산과 웨일스 정체성이 20세기 초 근본주의 유산과 만난 것이 로이드 존스의 교회론을 결정지은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로이드 존스는 1899년에 태어나 1981년에 사망했다. 20세기 거의 전체를 살았던 로이드 존스 시대에 세계 기독교의 지형도를 결정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890년대에 태동해서 1920년대에 정점에 이르렀다가,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을 진하게 드리우고 있는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이다. 실제로 이 시기 이후 전 세계 개신교회는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어, 이따금 상호 교감하는 경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이원화된 분열의 길을 걷고 있다. 로이드 존스가 설교, 강연, 글에서 하는 주장 대부분이 내용상으로 역사적 개신교 유산을 대체로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성향과 태도가 대체로 전투적이거나 분리주의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 근본주의 유산 때문이다. 웨일스인으로서의 비주류 유산에 더하여, 정규 신학교 교육 대신 독학으로 자기 신학을 형성한 경험도 중요했다. 같은 보수신학을 하더라도, 체계적인 정규 신학교육을 통해 틀을 형성하는 것과 독학으로 선택적 취식만 한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비록 그를 미국에서 특히 강했던 반지성적이고, 반사회적인 전형적 근본주의자로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로이드 존스가 영국 내에서 자기 확신적 고립주의 유산이 형성되기에 가장 적합한 여러 배경을 통합적으로 지녔다는 점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4. 설교자 정체성

그러나 로이드 존스에게 이런 모든 정체성보단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설교자로서의 유산이다. 로이드 존스는 구약 예언자의 비관적이고 종말론적인 유산과 신약 사도의 교리 강론 유산을 잘 조화시킨 가장 이상적인 설교자였다. 그는 종교개혁 시대 이래 지속해서 몰락하고 있던 설교의 위치를 제 위치로 회복시키려는 노력에 일조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 중 하나로 평가받아야 한다. 목회자로서, 신학자로서, 복음주의 운동가로서의 그도 위대했지만, 그 스스로가 주장했듯, 모든 개신교 목회자의 가장 큰 영광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설교자가 되는 것이었다. 박영선의 표현을 빌자면, “복음의 본질을 흔드는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일관되게 하나님을 편들어 온 그의 설교”야말로, 그가 책임지고 인내한 그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을 형성한 유산이었다.   

이재근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학과B.Th.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받았다. 이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신학석사(Th.M.), 미국 보스턴 대학(Boston University)에서 신학석사(S.T.M.)를 거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The University of Edinburgh)에서 세계기독교연구소장(Centre for the Study of World Christianity) 브라이언 스탠리(Brian Stanley)를 사사하여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한국 기독교의 발자취, 한국 기독교 역사와 세계 기독교 역사와의 관계, 세계 기독교 지형 내에서의 한국 기독교의 위치 등이 주 연구분야다. 
현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회사와 선교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광교산울교회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다.

청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