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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그리워하고, 기도하다-히말라야 이야기(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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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8개월 동안 연재되었던 ‘완소녀’의 여행이야기는 히말라야 이야기를 끝으로 ‘당분간’ 중단합니다. 제주도에서 곧 태어날 ‘단디’를 기다리고 있는 ‘완소녀’의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여행’이길,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의 모든 순간이 그러하길 정성스레 응원합니다. 머지않아 ‘완소녀’의 이야기를 청어람매거진에서 다시 볼 날을 기대합니다.

★드디어 하산하다

히말라야에 있는 동안 내내 해뜨기 전에 깼다. 몇 시인지도 모른 채 침낭 속에서 식어가는 물통을 안고 발가락만 꼼지락대면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언제 어디서고 캄캄해지면 자고, 날이 밝으면 눈을 번쩍 뜨는, 최고의 수면 축복을 받은 나로선 낯설고도 기이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매번 생각이란 걸 하기도 전에 잠들어버렸기에 ‘해뜨기 전 시간’에 걸어온 길과 밀렸던 생각과 삶을 정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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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시누와에서 하산의 첫날밤을 보내다. 다음날은 굽이굽이 산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박진희박

만년설로 덮인 마차푸차레가 금빛 옷으로 갈아입는 짧은 순간이 있다. 바로 해 뜨는 시간이다. 일출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ABC로 다시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MBC에서 황금 마차푸차레를 감상하며 커피를 마셨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하산’뿐임을 만끽하면서.

나흘 만에 ABC에 도착했고, 하산할 때는 그 길을 사흘로 쪼개어 내려가야 했다. 첫날은 촘롱가기 전인 다운시누와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MBC에서 데우랄리, 히말라야, 뱀부, 도반, 시누와… 오를 때와 같은 길이기에 하산하며 복기하는 과정이 신선했다. 특히 고산증세로 힘들었던 MBC-데우랄리 구간은 ‘내가 정말 이 길을 올라갔단 말이야? 내 정신력이 보통이 아니었구나’ 스스로 감탄하게 하였다. 길고 길었던 하산의 첫날, 다운시누와에 짐을 풀었다. 정확하게 닷새 만에 ‘핫샤워’의 기쁨을 누렸고, 아쉬스가 직접 끓여준 라면을 먹었다. 또 롯지 주인이 직접 담근 김치도 먹을 수 있었다. 한국인이 이곳에 얼마나 중요한 고객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날 먹었던 라면에 김치는 지금도 생각하면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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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마차푸차레. @ⓒ박진희박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더라

다시 촘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히말라야 등반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ABC 구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아마 촘롱일 것이다. 수천 개의 계단을 오르고 내려갔다가 또다시 올라야 하는 악마의 구간. 처음 오를 당시, 헥헥거리면서 올라간 만큼 다시 내리막길이 펼쳐지는 것을 보며 ‘하산할 땐 이곳이 오르막이 되겠지. 그러니 절대 일희일비하지 말자’ 굳게 다짐했었다. 다시 그 길과 마주한 것이다.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내려갈 때 마냥 즐거워하지도, 올라갈 때 마냥 짜증 내지도 않으며 천천히 계단을 밟았다.

ABC 구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언가가 깔려있다. 그건 바로 거대한 소똥. 시골길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간혹 이 촘롱 구간에서 소똥으로 장난을 치는 트레커들을 볼 수 있다. 끝도 없이 깔린 계단을 오르느라 허리를 숙이고 걷는데, 나뭇잎으로 잔뜩 치장한 똥이 보였다. 이렇게 힘든 구간에 누구든 한번 웃기를 바라는, 이름 모를 트레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런 위트는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다. 나도 삶의 험난한 가운데, 누군가를 웃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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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고행길을 대변하는 촘롱의 계단. ⓒ박진희박

★친구와 함께 걷기 위해 뛰는 촘롱 아이들

스틱을 붙잡고 부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내 옆으로 무언가가 휙 지나갔다. 순간 일지매인가 싶었다. 벌써 저만큼 ‘달려’ 내려가고 있는 이는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쓰레빠’를 신은 초등학생. 등교 시간은 10시까지라던데, 급할 것도 없는데 아이는 정말 빠른 속도로 뛰어갔다. 한참 만에 계단을 내려와 다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을 즈음, 나는 그 아이와 다시 마주쳤다. 옆 동네 아이들과 재잘거리며 천천히 학교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친구들이랑 같이 가려고 저렇게 뛰어 내려갔구나. 그래, 힘든 오르막은 함께 걸어야 좋지.

여긴 거대한 산봉우리 세 개가 붙어 있다. 그중 가운데 껴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에 세워진 마을이 촘롱이다. 아이들의 학교는 이 촘롱에만 한군데 있다. 나머지 옆 봉우리에 사는 아이들은 날마다 이 산을 오르내리는 등교를 해야 한다. 그나마 옆 봉우리 마을은 꽤 가까운 편이란다. 그 외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가 너무 멀어서 다니질 못한다고 아쉬스가 말했다.

등교하는 아이들은 수많은 가이드와 포터 중에 유독 아쉬스를 좋아했다. 7년 동안 이곳을 수백 번씩 다니며 히말라야 마을 사람 모두와 친해진 것이다. 아쉬스도 아이들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트레커들이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선물을 그가 대신 전해주기도 했다. 히말라야의 우편배달부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아쉬스와 친구가 된 것이 새삼 또 기뻤다. 트레커들이 가끔 아이들의 연필이나 공책을 사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산 후 우리도 포카라의 문방구에 들러 아이들의 학용품을 샀고, 아쉬스에게 배달부 역할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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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롱의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아쉬스는, 히말라야의 우편배달부. ⓒ박진희박

★이 고행을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사흘 동안의 여정을 끝내고 땅으로 내려왔다. 시와이에서 지프를 타고 포카라로 가서 아쉬스를 우리에게 소개해주었던 사장님과 해후했고, 아쉬스와는 마지막 만찬을 함께했다. 한국인들을 상대로 팀스(TIMS)와 퍼밋(Permit)을 발행해주는 한인 식당이라 비슷한 시기에 이곳에 온 한국인과도 어울려 함께 식사했다. 우리의 웨딩촬영 사진은 이곳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일주일의 고행을 무사히 마친 기념으로 우리는 포카라에서 유명한 피쉬테일 호텔(드라마 <나인>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에서 스파를 즐기며 하루를 묵었다. 하지만 누적된 피로는 결국 얼굴로 나타났다. 마감 때마다 달고 다녔던 입술 포진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참 즐거웠다. 일주일의 시간을 매끈한 입술과 바꾸고 싶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은 단체 승객으로 가득 찼다. 나와 록군 주변으론 한국 사람이 보이질 않았고, 전부 네팔리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으로 일하러 가는 어리고 똑똑한 친구들이었다. 네팔판 워킹홀리데이라고 해야 하나. 단체복을 입고 빨간 모자를 쓴 청년들은 대부분 네팔에서 대학까지 나온,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인재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지금 우리나라의 고추밭이나 부품공장, 어선 안에서 고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눈은 반짝였고, 그런 이들의 미래를 어렴풋이 아는 나는 마음이 좀 무거워졌다. 부디, 이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상처받지 않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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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스, 일주일 동안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어 고마워요. 하산하고 찍은 마지막 단체사진. ⓒ박진희박

★글을 마치며 : 그렇게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기도하다

내가 지금 사는 제주는, 다녀왔던 산티아고 길과 안나푸르나를 자주 떠올리게 한다. 뜨거운 태양, 큰 하늘, 크고 밝은 별들, 아무렇게나 자란 풀과 나무, 사람의 기척보다 더 자주 듣는 새 소리 들이 그렇다. 산티아고의 기억도 멀어지고, 네팔에 큰 아픔이 있었을 때 아쉬스와 다시 연락한 것 외엔 소식도 뜸해졌지만, 제주에서 가끔 그 기억들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와 마주하면,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으로 그리움을 대신하는 습관이 생겼다. 불과 2년 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제주의 삶은, 아마도 청어람에서 연재했던 두 여행이 만들어준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게 그리워하라고, 그렇게 기억하고 기도하라고.

-완.소.녀의 히말라야 이야기 
1. 그래, 안나푸르나를 가야겠어!  
2. 발뒤꿈치를 의지하며 허리를 숙여 걷다 
3. 안나야, 부디 나를 받아주렴
4.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신부가 되다

-완.소.녀의 까미노 이야기 전체 보기

박진희
박진희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3대 은사의 소유자.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아프리카 여행기 [그대 나의 봄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