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페미니즘’ 공부하는 교회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남성 목사인 내가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한 이유

“목사님, 저는 페미니스트란 말이 욕인 줄 알았어요.” 책모임을 시작할 때 한 청년에게 들었던 말이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청년과 생각이 비슷했다. 솔직히 말하면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관해 생각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선 내 소개를 하자면, 평생 장로교 합동 측 교회에서 자랐고, 일반 대학을 거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지금은 서울의 한 중형 교회(4-500 명 출석하는)에서 3년 째 교구와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고, 하고 있는 일들도 심방, 예배 설교, 대그룹, 소그룹 성경공부, 독서모임 등 다른 교회 목회자들과 비슷하다.

그런 내가 지난 6월 청년들과 함께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이 모임을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참 많은 질문을 받았다. “목사님은 왜…” 어쩌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냐는 질문, 왜 교회에서 이런 모임을 만들었는지에 관한 질문 말이다.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먼저는, 올 초에 읽었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책이 페미니즘에 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우리 집, 내 삶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길 바라는 남편’은 딱 내 이야기였고, ‘오빠와 여동생이 있으면 엄마는 항상 여동생에게 라면을 끓이라고 시키는’ 상황은 결혼 전에 흔히 볼 수 있던 우리 집 풍경이었다. 책이 워낙 짧고 재미있었는데 그저 잠깐 흥미를 느끼고 ‘끝’ 하면서 책장을 덮을 수가 없었다.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어디 기저귀와 라면뿐이겠는가?”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생겨났다(나중에 이 얘길 청년들한테 했더니 “목사님 그거 은혜 받은 겁니다!” 라고 하더라).

교회 안에서 페미니즘 모임을 만들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교회에 관한 고민 때문이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렇듯 세월호 참사는 나에게도 “교회는 도대체 뭐 하는 곳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고민은 청년부 예배에서 마가복음을 순서대로 설교하면서 더 깊어졌다. 특히 마가복음 8장부터 10장까지 설교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어느 시대나 ‘작은 자’였던 여성, 어린 아이, 가난한 자들과 같은 모습이 되어 그들을 섬기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가복음을 설교하던 중 ‘강남역 살인사건’을 뉴스로 접했다. 사건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이 사건에 반응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상당히 놀라웠다. 직접 찾아가 포스트잇을 붙이며 고인을 애도할 뿐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 등을 적극 표현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성들을 향하여 적극적으로(욕하거나, 조롱하며), 혹은 소극적으로(‘왜 이것이 혐오 범죄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거나, ‘서로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대응하는 남성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광화문 광장에서 금식하던 유가족들 앞에서 치킨을 먹던 사람들이 생각날 정도로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나도 무섭다”, “너무 슬프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으면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순서이고,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은데 오히려 이런 사람들을 향해 시끄럽다, 조용히 좀 하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이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페미니즘’을 통해 다시 만난 사람과 세계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고민 끝에 페미니즘 책모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광고를 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청년들의 반응이 좋았다. 주일 저녁 예배 끝나고 일곱 시에 모여야 하는 스케줄이었는데도 여섯 명이나 되는 청년들이 신청을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잘 된 것 같은데 그 여섯 명 모두 여성이었고, 나중에 추가 신청한 청년도 역시 여성이었다. 유일한 남자로서 그들과 함께 모임을 하며 듣기 민망하고, 미안할만한 일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소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모임이었지만, 기획한 내가 그 주제에 문외한이어서 무얼, 어디서부터, 어떻게 진행 해야하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여기저기 수소문 해본 끝에 <젠더와 사회>라는 책을 교재로 골랐다. 그 책을 내가 요약해서 읽어가는 방식으로 모임을 이어갔다. 그리고 한 주에 한 명씩 최근에 출간한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읽고, 느낀 점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때 읽었던 책들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대한민국은 군대다>, <남자는 여자를 가르치려 든다>, <나쁜 페미니스트>, <자기만의 방> 정도였다. 그리고 각자 읽었던 좋은 기사와 영상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단톡방’에서도 수시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 외에도 여름 수련회 때는 이란의 ‘투석형’을 다룬 <더스토닝>, 여성 참정권 투쟁의 역사를 다룬 <서프러제트> 등의 영화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이렇게 책들을 읽고, 관련 기사나 영상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나름 문제의식을 가지고 모임에 참석한 우리조차 젠더 문제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고, 개인의 일상에 깊숙하게 박혀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젠더와 사회 구조, 성폭력과 성매매, 가족과 노동, 가사와 육아, 그리고 문화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어느 주제도 젠더 문제가 비껴가는 곳이 없었다.

이렇게 알게 된 문제들 중에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였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다보니 요약한 내용을 읽고, 책을 읽고 느낀 점들을 말할 때마다 서로의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항상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으로 높은 여성 비정규직 비율, 35세를 전후로 해서 급격하게 낮아지는 여성 노동자의 평균 급여, 너무 낮은 (여성/남성의) 육아휴직 비율 등은 모임에 참석한 청년들을 매우 슬프게 했다. 준비 되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사랑의 과정이 아니라 강간의 과정이라 일갈한 저자의 말에 다들 폭풍 공감했고, 외모를 두고 지적 질 할 뿐 아니라 이것저것 가르치려 드는 남성들이 주변에 굉장히 많다는 사실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정말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이야’ 라고 생각하며 가장 놀랐던 부분은 외모에 대한 평가가 너무 많으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성적인 폭행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현실이었다. 청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의 경험이나, 일상에서 당하는 어려움들을 엄청나게 쏟아낼 때는 내가 그 모임의 유일한 남성이라는 이유로 미안하다는 말을 쉬지 않고 해야 할 정도였다. 초등학생 때 외모 때문에 왕따를 당한 이야기,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남자 대학 선배에게 다이어트 할 것을 진지하게 권고 받은 이야기, 지하철에서 수시로 몸을 ‘터치’ 당하고, 음흉한 시선으로 추행당하는 이야기, 학교에서 수업 중에 노골적으로 성적인 농담을 들어야 하거나, 논문 심사와 같은 일들을 앞두고 벌어지는 퇴폐적인 술자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 등 이렇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나누며 나와 청년들은 함께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깊이 생각하기도 했다.

‘페미니즘’ 전도하는 목사가 되다

이런 대화를 매주 이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년 예배와 청년부 예배 때 연속해서 관련된 설교를 했다. 그리고 모임을 갖는 청년들과 함께 일상에서 겪는 성차별을 미니 드라마로 만들어 저녁 예배 때 공연을 했다. 강단에서는 목사가 페미니즘을 설교하고, 조용하던 청년들이 여기저기서 ‘페미니즘’이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교회 안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반응들이 일어났다. 평소 설교했을 때는 “은혜로웠습니다“, “목사님 설교 고맙습니다” 정도의 인사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특별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평소 인사도 잘 못했던 분들이 굳이 찾아와 설교에 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히 페미니즘 관련 설교를 한 어느 주일, 한 주가 지난 뒤에 한 성도가 찾아와 ‘지난주에 해주셨던 설교가 너무 좋았습니다’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아마도 그 주간에 나와 인사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되지 못해서 한 주나 뒤에 찾아온 눈치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분이 남편과 아이들 때문에 겪은 아픔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강단에서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은지, 지나치게 이슈 따라잡기 설교가 아닌지 불만이 들려왔다. 물론 설교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도 없고, 그러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 번 만큼 설교에 관한 평가가 많고, 이렇게 호불호가 갈린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은 단지 설교에 그치지 않았다. 책모임을 하던 청년들이 이 모임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다른 청년들과 말다툼을 하는 일도 생겼다. 아마도 ‘페미니즘을 공부한다’고 하니 몇몇 청년이 질문을 던졌고,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에 함께 공부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커졌던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인식하지도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그냥 넘어갔을 일들을, 참지 않고 쏟아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이런 상황을 경험하며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정말 많이 고민했다. 잘 지내고 있던 청년들을 분열시키는 건 아닌지, 평소에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성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래도 참 다행스러운 것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에 관해 색안경을 끼고 무조건 비판하기 보다는 ‘혹시 내가 모르는 건 아닐까?’, ‘나도 알고 싶고 배우고 싶다’는 분위기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내가 처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을 때처럼 말이다.

교회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

페미니즘이 뭔지도 모르면서 이 모임이 어떻게 흘러갈지 감조차 없이 시작했었는데, 모이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이 모임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를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에 페미니즘 수업도 듣고, 책까지 스스로 찾아보던 청년들은 교회 안에 관심자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고, 관련 주제를 처음 접하며 공부한 청년들은 마치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된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함께 더 공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2기에 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청년부에서는 봄 학기, 가을 학기 나누어서 5-6개 정도의 과목을 개설하여 성경공부를 진행하는데, 여기에 페미니즘 모임을 정식으로 등록을 했다. 그리고 무려 세 명이나 되는 ‘오빠’들이 이 모임에 등록했고, 1기 청년들을 포함하여 총 13명의 청년들이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워낙 재밌게 공부했고, 신나게 이야기했기에 1기에 참여했던 청년들이 직접 강사가 되어서 2기 청년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2기를 마칠 때쯤엔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다른 교회나 학교, 단체와 연합하여 모임도 가져보자고 했다.

이제 명절도 지나고 다시 이 모임을 시작해야 하는데 엄청 부담이 된다. 물론 1기 때처럼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악한 사회 구조와 문화를 직시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필요를 알게 될 것을 생각하면 더욱 기대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책모임을 하다가 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었다. “목사님이 작년에 자꾸 세월호 이야기 하는 게 이해가지 않았는데, 이 공부를 하면서 기독교인들이 약자를 위해 말하고,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다음 모임 때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만 있다면 나름 성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연수
나연수

성덕중앙교회 교구 및 청년부 목사. 이재현의 남편이자, 세 아들의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