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권연경의 히브리서 산책] 2. 근본도 없는 편지

'히브리서’는 한 편의 장대한 설교와 같은 구성, 종교적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언어의 측면에서 신약의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책'으로 여기지기도 합니다. 숭실대와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권연경 교수가 히브리서와 독자 사이를 연결하는 안내자로서 '히브리서 산책'을 연재합니다.

앞글에서 우리는 히브리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히브리서에는 해석을 어렵게 만드는 실제적 난해함 말고도 다른 곤란한 사실들이 몇 가지 있다. 바로 이 글의 저자와 독자를 둘러싼 의문이다. 이 의문은 편지를 쓰게 된 상황에 관한 의문과 연결된다. 이번에는 우선 저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근본도 없는’ 편지, 히브리서

우리는 출신에 민감하다. 물론 그저 누군가의 과거에 관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출신 배경은 현재 우리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출신 배경은 생물학적 유전과 성장을 위한 사회적 환경을 제공한다. 신데렐라 류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형적 장면 중 하나는 ‘귀한’ 집에서 자란 남자의 어머니가 가난한 집안의 아가씨에게 갑질을 하는 모습이다. “어디 근본도 없는 것이…” 가난하다고 ‘근본’이 없을까마는, 자신이 가진 ‘물질적 근본’이 그녀에게는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이런 대사의 주인공들이야 대개 배경의 차이와 사람 자체의 가치를 혼동하는 ‘속물’들이다. 하지만 이런 속물적 태도와 무관하게 출신 배경이 성장과 인격형성에 중요하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누군가를 향한 관심에는 자연스레 그 사람의 출신 배경에 대한 관심이 포함된다.

히브리서는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꼬인다. 우리는 히브리서 저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야말로 ‘근본도 없는’ 문서인 셈이다. 물론 현대 학자들이야 신약성서에서 저자를 모르는 글이 한두 개냐고 대꾸하겠지만, 적어도 교회적 전승 자체가 저자를 향한 의문으로 가득한 경우는 사실상 히브리서가 유일하다. 이는 보기에 따라 매우 당혹스런 상황일 수 있다. 누가 썼든 글만 좋으면 되지 않으냐 하겠지만, 인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글이 좋아도 저자를 모르면 왠지 석연찮은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가령 나는 개혁주의 신학 전통에서 자랐지만, 지나치게 행위를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나의 발언이 자주 문제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는 발언 중에는 칼빈과 같은 원조 개혁주의자들의 발언도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야고보서의 논증도 살짝 의역하는 순간 위험한 발언으로 지목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대놓고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큰소리친 야고보는 아무도 비판하지 않는다. 정말 내 말이 틀린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야고보가 아닌 것이 문제인 것일까?

이 글의 주제에서 빗나가지만, 무언가를 향한 우리의 판단은 그만큼 대상 외적 요소에 깊이 좌우된다. 위작 논란이 뜨거운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생각해 보자. 진위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멋진 작품이지만, 사람들은 외친다. “됐고, 그래서 누가 그린 거냐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훌륭한 그림’일까, 아니면 그 그림을 그린 ‘유명한 화가’인가? 예술의 본질을 벗어난 상업주의적 갈등이라고 치부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풍경이라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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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히브리서는 어떤 상관이 있는가?

초대교회에서도 히브리서의 익명성은 큰 문제였다. 사도적 전통이 정경 여부의 결정적 판단 기준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특히 그렇다. 사도들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은 거의 치명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히브리서가 정경 속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저자와 관련된 의문들이 나름 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히브리서라는 이름 자체가, 그리고 신약 내에서 히브리서의 위치가 그 답을 말해준다. 히브리서란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뜻이다.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를 의미하는 로마서처럼, 편지의 수신자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경우다. 공동서신들의 경우 저자가 제목에 들어간다. 그 저자의 글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제일 많은 것이 요한서신이다). 반면 작품 수가 많은 바울은 받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구별하는 것이 편리하다. 그러니까 수신자를 기준으로 한 히브리서라는 이름은 이것을 바울서신으로 간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영어 흠정역(King James Version)에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비교적 최근까지 많은 영어권 신자들은 히브리서를 바울의 편지로 알고 읽었다.

히브리서의 저자를 바울로 특정한 최초 증거 중 하나는 200년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P46이라는 파피루스 사본이다. 특히 바울서신 영역에서 중요한 이 사본에는 히브리서가 로마서 바로 다음에 등장한다. 이 사본의 저자에게는 히브리서가 바울의 편지였다는 뜻이다. <교회사>의 저자인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P46과 거의 동시대 교부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사도교부인 로마의 클레멘트와는 다른 인물)는 역시 이 편지가 바울의 편지라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바울이 자신의 이름이 등장할 편지의 시작 부분을 아예 건너뛴 것은 (히브리서의 핵심 주제인) 유대교 관련 논쟁 때문에 사태가 지나치게 위험해질 것을 염려한 탓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문체에 관한 설명이다. 사실 신약성경에서 가장 고전적이고 유려한 문체를 자랑하는 히브리서는 바울서신의 문체와 사뭇 다르다. 클레멘트에 의하면, 이는 바울이 애초에 히브리어로 기록한 글을 누가가 헬라어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히브리서는 구약성경을 지속해서 인용하거나 암시하지만, 그가 활용하는 성경은 히브리어 본문이 아니라 (구약의 헬라어 번역인) 칠십인 역(Septuagint, LXX)이다. 가령 히브리서 10장 5-10절에서 저자는 시편 40편 7-9절을 인용하며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는 칠십인 역을 인용한 것으로, 시편 히브리어 본문에는 “나를 위하여 한 귀를 파셨다”고 되어 있다 (개역개정은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로 의역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저자의 논증은 시편의 히브리어 본문으로는 불가능하다. 원래 히브리어로 작성된 글을 나중에 헬라어로 번역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이야기다.

바울은 히브리서를 쓰지 않았다?

물론 문체에 관한 이 논증 하나가 오류라고 해서 히브리서가 바울서신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히브리서가 바울과 관련이 있다는 흔적도 존재한다. 제일 인상적인 것은 편지 끝에 저자가 감옥에서 막 풀려난 “우리 형제 디모데”와 함께 독자들을 방문하겠다고 언급하는 대목이다(13:23). 바울의 영적 아들이요, 동반자였던 디모데에 관한 언급은 이 편지의 저자가 바울은 아니더라도 바울 공동체와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물론 “우리 형제”라는 표현 및 디모데의 투옥 사실은 이 편지가 다른 바울서신들보다 더 늦은 시기에 쓰였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또한 모종의 신학적 유사성을 찾아낼 수도 있다. 가령 그리스도의 탁월하심과 새 언약의 유효성에 관한 신념은 분명 바울의 사상과 통한다. 광야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삼은 목회적 경고 역시 마찬가지다(고전 10:1-13). 그리스도의 사역을 성령의 능력과 연결하는 모습 역시 바울과 비슷한 면이 있다(히 7:16; 9:14). 하나님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분’으로 부르는 방식도 바울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히 13:20; 갈 1:1; 롬 8:11; 고후 4:14). 정도가 훨씬 심하기는 하지만, 구약을 인용하며 논증을 펴는 방식도 바울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본문을 자세히 뒤질수록 이런 유사성의 목록은 더 길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사성이 바울 특유의 신학적 입장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지만, 초대교회가 공유한 보편적 신념에 속한 것일 수도 있다. 신학적 유사성을 찾는다고 해서 그것이 바울 저작설에 큰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히브리서를 바울서신으로 간주한 클레멘트에게서도 감지되지만, 사실 히브리서를 바울서신으로 간주하는 데는 장애물이 많다. 우선 자신에 관해 말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가령 2장 3절에 의하면, 구원의 복음은 “들었던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하여 준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자신을 복음을 최초로 “들었던” 목격자들과 구별하고, 자신을 비롯한 “우리”는 그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물론 바울이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바울은 자기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이지 결코 사람에게 받거나 배운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기 때문이다(갈 1:1, 11-12).   

본문의 문체 역시 바울의 글과 다르다. 히브리서의 헬라어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고전적이고 유려한 것으로 간주한다. 바울의 헬라어 역시 유창하고 자연스럽지만, 그의 문체는 당시의 전형적인 코이네 헬라어에 속한다. 반면 히브리서는 고전 헬라어의 분위기가 훨씬 더 강하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히브리서의 어순은 통상적인 바울서신보다 좀 더 긴 호흡을 요구하거나 논리적으로 복잡해서 번역하기가 훨씬 더 까다롭다. [가령 2장 9절 앞부분을 원문의 순서에 따라 영어로 풀어보자면, “그(정관사) 잠시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신 (분), 우리가 봅니다, 예수를, 죽음의 수난을 통해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보통 붙어서 나올 정관사와 예수의 이름 사이에 긴 수식이 나오고, 그 속에 아예 “우리가 봅니다”라는 주동사까지 들어있다. 바울서신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은 현상이다]

신학적 관점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가령 히브리서의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는 ‘대제사장 그리스도’는 바울서신에서 발견되지 않는 발상이다. 오히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제사장적 역할을 맡은 자로 묘사한다(롬 15:16). 선구자로서의 그리스도 역시 바울의 기독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히 2:10; 12:2). 반면 바울신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이신칭의 사상은 히브리서에서 찾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율법에 관한 부정적 논증의 상당 부분은 히브리서에서 구약과 율법을 활용하는 방식과 다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학적 중심을 차지하는 바울과는 달리,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부활보다는 그의 높아지심에 더 많은 의의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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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히브리서는 누가 썼을까?

당연히 히브리서가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는 오랜 전통이 존재한다. 주 후 96년 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에 보낸 <클레멘트 1서>는 바울서신과 더불어 히브리서 역시 인용하지만, 히브리서의 저자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또한, 2세기 말경 로마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 무라토리안 정경(Muratorian Canon)에는 히브리서가 빠져 있다. 비슷한 시기의 교부인 리용의 이레니우스 역시 히브리서를 인용하면서도 이를 바울과 연결하지 않는다. 3세기 초 카르타고의 주교 터툴리안은 특별히 히브리서 6:4-8절을 인용하면서 바울이 아닌 바나바를 히브리서의 저자로 제안했다. 그리고 4세기에 이르기까지는 바울 저작설에 대한 이런 부정적 견해가 서방교회의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4세기경부터 히브리서가 서방교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데는 아타나시우스가 중대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340년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지위에서 쫓겨나 로마에서 여러 해를 보내는데, 이때 로마의 감독 율리우스 1세를 비롯한 로마의 신자들과 친분을 쌓으며 히브리서를 바울 저작으로 수용하도록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신약성경 27권의 목록을 확정한 3차 카르타고 공회의(397년)는 히브리서를 14번째의 바울서신으로 포함시켰다. 획일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때부터는 서방교회에서도 히브리서가 바울서신의 하나로 간주하기 시작했고, 종교개혁 무렵 본격적인 성서비평이 시작되기까지 전체 교회의 일치된 견해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히브리서의 독특함은 쉽게 무시되기 어렵다. 따라서 바울 저작설 역시 늘 질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히브리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오리겐의 진술이 자주 인용된다. 그는 히브리서의 표현이나 문장의 구조는 다른 사람의 것이지만, 그 내용은 바울 사도의 다른 확인된 저술들과 같다고 생각했다. 곧 히브리서는 누군가 바울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이를 기억하고 이에 관한 자신의 해석을 기록한 것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고대교회가 이 책을 바울 서신으로 간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히브리서의 저자와 관련하여 오리겐이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이것이다. “그 서신을 누가 기록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교회사 6.25).   

오랜 교회의 전통과는 달리, 오늘날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설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편지가 저자 미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고대 서방교회의 입장이 정설이 된 셈이다. 하지만 바울 저작설을 부정한다고 해서 히브리서의 정경 지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4세기 후반의 히에로니무스(제롬)는 동방교회가 요한계시록을 배척했던 사실과 서방교회가 히브리서에 대해 유보적이었던 사실을 언급하며 둘 다 정경으로 수용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히브리서는 교회에 속한 사람의 저작이고 교회에서 공적으로 이루어지는 매일의 낭독에서 인정을 받기 때문에 저자가 누구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종교개혁 시대에도 이런 입장이 대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베자(Beza)처럼 바울 저작설을 굳게 믿은 사람도 있지만, 에라스무스나 칼빈과 같은 이들은 바울 저작설을 부정하는 쪽에 무게를 두면서도 히브리서의 정경적 권위와 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치 않았다. 신약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던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말하자면,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설은 광범위하게 부정됐지만 그 정경성은 오히려 더 분명하게 인정됐다. 사실, 히브리서가 정경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절대적인 요구 조건은 넓은 의미에서의 ‘사도성(apostolicity)‘이었지, 좁은 의미에서의 바울저작(Pauline authorship) 여부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 서신을 누가 기록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히브리서가 바울의 편지가 아니라면, 진짜 저자는 과연 누구일까? 고대로부터 바울 저작이 의심되었던 만큼, 이 흥미로운 편지의 저자에 관한 추측 역시 드물지 않았다. 물론 충족해야 할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자재로 구약성경을 폭넓게 인용하고 암시할 수 있을 만큼 성경에 해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저자는 유대 기독교인이었을 것이다. 또 플라톤주의와 같은 당시의 사상적 흐름에도 익숙한 것을 보면, 아마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누가 후보가 될 수 있을까?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터툴리안은 바나바가 히브리서의 저자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바나바는 “사도 중 한 특정한 동료, 곧 하나님께 온전히 신임을 얻은 자로서 절제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일에 있어서 바울이 자기 자신 바로 다음에 두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에 개진한 사상을 사도들로부터 배웠을 뿐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가르치기도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바나바를 생각한 것은 사도교부 문서의 하나로 여겨지는 바나바 서신(Epistle of Barnabas)의 구약 활용 방식이 히브리서와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바나바는 레위지파 출신인 데다, 교회에서 ‘위로/권면의 아들’이라 불렸던 사람이다. 이를 생각하면, 구약성경을 널리 활용하는 권면과 위로의 편지인 히브리서의 저자로 최적의 후보인 셈이다. 또 유세비우스의 보고에 의하면, 오리겐은 로마의 감독 클레멘트 아니면 누가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히브리서의 저자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레니우스가 (바울이 쓴) 히브리서의 헬라어 번역자로 간주했던 누가가 오리겐에게는 저자가 된 셈이다.

에라스무스나 칼빈은 바울 저작설은 부인했지만, 진짜 저자에 관해서는 아무런 제안을 내놓지 않았다. 반면 루터는 달랐다. 그는 히브리서의 저자가 사도에게서 배웠던 제자로서 “(구약)성경을 잘 알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며 아볼로가 저자일 것으로 추측했다(행  18:24-25 참고). 히브리서의 구약 활용 방식이나 수사적 기교를 고려할 때 매우 탁월한 추측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래도 추측은 추측일 뿐이지만 말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히브리서에 관한 루터의 냉담한 태도다. 그는 야고보서, 유다서 및 요한계시록과 더불어 히브리서를 신약의 다른 문서들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겼다.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던 그는 이 네 작품을 신약성경의 목록에서 빼고, 신약의 제일 마지막에 배치했다. 히브리서의 구약 사용이 탁월하고, 또 그 속에 많은 훌륭한 가르침들이 있다. 그러나 신앙의 기초인 이신칭의 교리가 빠져 있어 복음을 충분히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히브리서를 사도의 서신들과 절대적으로 같은 위치에 놓지 않는다.” 루터의 이런 입장은 신약 정경론의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지만, 우리가 자세하게 따질 사안은 아니다(이 부분이 궁금하다면 히브리서의 주석들을 참고할 수 있다).

낙엽

그 외에도 다양한 후보들이 거론되었다. 바울 선교의 한 사람이었고, 히브리서의 문체가 베드로전서와 다소 유사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실라(실루아노)가 후보에 오르기도 하고(벧전 5:12 참고), 골로새서와 유사한 주제들이 등장한다는 근거로 골로새 교회와 관련이 있는 에바브라(에바드로디도)가 거론되기도 한다(골 1:7; 4:12-13). 특이하게도 19세기 말의 유명한 교회사가 하르낙(Adolf von Harnack)은 브리스길라가 히브리서의 저자일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녀는 아볼로를 가르칠 정도로 성경과 복음에 탁월한 사람이었다. 물론 당시 여자가 쓴 글은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히브리서가 익명으로 남았다는 사실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저자가 자신을 문법적 남성으로 묘사한 것 역시 같은 근거로 설명할 수 있다(11:32, “이야기하자면”이라는 뜻의 남성 단수 분사가 사용되었다). 브리스길라가 자신이 여성임을 드러낼 만큼 멍청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외에도 사도행전에 나오는 일곱 지도자 중 하나인 빌립이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저자로 제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 학자 중 이런 상상력 넘치는 제안들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은 없다. 한 주석가의 판단처럼 히브리서 저자와 관련된 물음은 “역사적 지식의 영역을 벗어난다”(Schreiner, 5). 그렇다면 지금도 여전히 시대를 호령하고 있는 것은 오래전 오리겐의 판단인 셈이다. “그러나 그 서신을 누가 기록하였는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신다.”

논란이 되는 것은 저자 문제뿐 아니다. 사실 “히브리인들에게”라는 제목 속에 나타난 독자의 정체 역시 마찬가지다. 이 편지가 히브리인들 곧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편지라는 생각 역시 심각한 도전과 활발한 논쟁의 주제다. “누가 봐도 유대인을 위한 편지”라는 주장이 대세지만, “반드시 유대 그리스도인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논증의 해석과 직접 얽힌다는 점에서 독자 문제는 저자에 관한 논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슈라 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이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이 흥미진진한 편지는 과연 어떤 사람들을 염두에 둔 글일까? 이런 물음과 더불어 우리는 히브리서의 본문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권연경의 히브리서 산책]
1.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히브리서

권연경
권연경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풀러 신학교(M.Div.)와 예일 대학교 신학부(S.T.M.)를 거쳐 런던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이자,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와 바른교회 아카데미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로마서 산책』(복 있는 사람), 『행위 없는 구원』『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SFC), 『갈라디아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성서유니온선교회)가 있고, 『IVP 성경신학사전』『예수의 정치학』(IVP, 공역), 『기독교와 문학』(크리스챤다이제스트)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