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한번 잡솨봐]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외 5권

청어람 매거진이 소개하는 기독교 신간. 기독교 신간을 선별하여 책을 지은 마음, 책에 담긴 온기까지 독자에게 고스란히 소개한다. 책 제목을 클릭하면 구매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다.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옥성득 지음, 새물결플러스 펴냄

교회가 시작된 그곳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이상향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일견 합당한 생각이다. 그래서 ‘Ad Fontes(근원으로 돌아가자)’라거나 ‘초대교회를 회복하자/본받자’라는 말은 시대를 초월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우리가 바라는 이상을 그 시절의 선배들에게 투영시켜 ‘초대교회’라는 환상을 만들고, 오래된 것이면 무조건 ‘전통’으로 착각하는 기만에 빠지기도 한다. ‘성경적 초대교회’뿐 아니라 ‘초대 한국교회’ 역시 수많은 환상과 전설로 미화된 면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 오랜 시간 한국 기독교를 연구해온 옥성득 교수의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는 이런 점에서 매우 반가운 책이다. ‘다시 쓰는’이라는 말 역시 하나의 환상일 수 있지만, 설교시간에 한두번은 들어봤을 언더우드나 아펜젤러의 비장한 기도문들의 이면에 있는 진실, 새벽기도의 유래와 기능에 관한 차분한 분석, 정동제일교회나 남대문교회 같은 유서 깊은 교회들의 설립 시기에 관한 추적 등 내용을 보노라면 한국 교회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저자의 진심이 충분하게 보인다. 통사(通史)로 쓰기보다는 ‘다시 써야’할 필요가 있는 주제들을 골라 대중이 읽기 쉬운 형태로 책을 구성한 의도가 제목뿐 아니라 내용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니 제목에 끌리는 이라면 무턱대고 읽어도 충분한 만족을 얻을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즐겨 다니는 길에 자란 잡초와 가시를 제거하는” 작업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순교에 관한 순진한 환상이나 오래된 역사에 관한 집착을 벗어버리고 오늘 한국 교회의 맨얼굴, 한국 교회의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지금 한국교회는 드라마보다는 역사가 필요한 시간이다. -박현철 연구원

<나는 왜 세계기독교인이 되었는가>, 마크 놀 지음, 배덕만 옮김, 복있는사람 펴냄

아마 마크 놀의 책은 나올 때마다 거의 다 추천했던 것 같다. 믿고 보는 저자이니 매번 기대하게 되는데, 이번 책은 그의 학문적 자서전이나 다름없는 내용이라 매우 즐겁게 읽었다. 그는 27년간 휘튼대학교에서 미국 복음주의 역사를 가르치며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같은 저술로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2006년 가톨릭 재단인 노트르담 대학으로 옮기면서 미국 교회사와 세계교회사 전반을 능숙하게 아우르는 학계의 대표적 석학으로 인정받으며 최고 전성기를 누린 바 있다. 그런 마크 놀에게 기획자 조엘 카펜터는 ‘어떻게 기독교가 서구에서 비서구의 종교로 변모해가는지 개인사적 맥락과 더불어 서술해 달라’는 요청을 던졌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덕분에 이 책은 20세기 중후반에 두드러졌던 인식의 전환을 교회사나 선교 역사적 이론이 아니라, 마크 놀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자신의 지적 탐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 학계의 주요 인물과 사상, 사건들을 세밀하게 언급해가면서 재현해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가 대학에서 공부하고, 학자로 가르칠 때의 커리큘럼이며 강의실 풍경, <개혁주의 저널>이나 <책과문화>의 창간과 그 역할 등 미국 복음주의권의 내부 움직임을 실감 나게 언급한 대목들은 ‘복음주의’ 덕후들의 호기심을 대거 충족시켜줄 만하다.

‘복음주의 운동’ 전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필독서로 권하겠다. 선교학이나 현대교회사 관심자도 미국의 학문적 흐름과 연구 분위기가 어떠한지를 실감 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이런 내용에 해당하는 한국판의 등장이 간절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우리의 현재진행형 역사를 어떻게 기술해야 할지, 어떤 영역이 과잉이며, 어디가 결핍인지를 역사적 안목으로 정리해나가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다 역사의 한 부분이다. 기독교는 이제 ‘세계 기독교(world/global Christianity)’라고 불러야 마땅한 상황에 도달했다. 이런 상황 인식마저도 서구학자의 학문적 일생이란 거울에 비춰야 반추할 수 있는 아이러니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이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책을 덮으며 ‘우리는 어떻게 세계기독교인이 될 것인가’를 질문하게 된다면, 아마 당신은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겠다. -양희송 대표

<DOCAT 무엇을 해야 합니까?>, YOUCAT재단 지음, 김선태 옮김, 가톨릭출판사 펴냄

<DOCAT>은 제목만으로는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기 힘들지만, 펴보는 순간 무릎을 탁 칠 수 있을 만큼 간명한 목적과 내용을 가진 책이다.  ‘DO+CATechism’의 약자를 제목으로 삼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레오 13세 교황 이후부터 가톨릭의 중요한 문헌에 나타난 ‘사회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주제별로 재구성한 핸드북이다. 사랑, 교회와 사회, 인간의 가치, 노동, 가정, 환경, 정치, 전쟁과 평화 등 12가지 주제에 관해 젊은이들이 궁금해할만 한 질문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가톨릭의 가르침을 정리했다. 각 내용마다 관련 성경구절, 가톨릭 주요 문서, 교황의 주요 문서(회칙, 권고, 강론 등), 신학자들의 언급 등을 깨알같은 참고자료로 담아 이 한권만으로 신앙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교양서로 기능하도록 구성한 것이 매우 돋보인다. 개신교 입장에서 가톨릭과 교리차이가 분명히 있겠지만, ‘사회교리’에 있어서 개신교가 거부감을 느낄만한 내용은 거의 없어 보이며, 특히 전쟁과 평화 부분에서는 기존의 통념과 달리 ‘정의로운 전쟁’을 상당부분 제한하고 비폭력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내용이 가톨릭을 바라보는 우리 시각을 일정부분 교정하게까지 해 준다.

개신교 교단들도 신앙과 사회에 관해 오랜 논의를 해 왔고, 많은 선언이나 문서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내용이 일선 교회나 고민하는 성도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교단차원에서 가톨릭처럼 ‘사회교리’의 형태를 띤 공식 문서 혹은 신앙고백을 가진 경우는 감리교의 ‘사회신경’이 유일한 것으로 안다. 이렇게 잘 정리된 핸드북 한권 정도는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박현철 연구원

<의화단과 한국 기독교>, 이혜원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역사 교과서에서 보던 사건이 사실은 기독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왠지 반가운 마음이 생긴다. 게다가 그것이 지금의 기독교를 형성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면 더더욱 흥미가 생길 것이다. 청나라 말기의 민족주의적 외세배척 민란이었다고 배웠던(혹은 영화 <황비홍2>의 배경이었던) 의화단 운동이 본질적으로는 거대한 반기독교 운동이었으며, 그 여파가 한국에까지 미쳐 한국 초기 기독교 박해에도 영향을 끼쳤고, 나아가 선교사들의 선교정책에 까지 영향을 끼쳤다면 어떨까? 소장 역사학자 이혜원 박사의 <의화단과 한국 기독교>는 의화단 운동을 중심으로 1900년 중국과 한국의 기독교 박해사건의 성격과, 선교 정책 변화를 살피며 한-중 기독교 관계사를 서술한 책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한 책이지만 전혀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이 책의 독보적 매력은 중국과 한국의 기독교 관계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거의 유일한 책이라는 점이다. 한-중-일 기독교는 서로 긴밀한 관계하에 전래되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 관계에 관해서는 그간 대중적 관심도 적었고, 참고할만한 책도 적었다. 특히 우리보다 역사도 훨씬 오래되었고, 규모 면에서도 이미 압도적인 중국 기독교에 관해서는 선교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라는 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매년 ‘동아시아 기독청년대회’를 진행할 때마다 한・중・일 삼국 사이에 ’동아시아 기독교 공통의 유산’을 발굴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관련된 학자들과 연구가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 -박현철 연구원

<마가복음 정치적으로 읽기>, 박원일 지음, 한국기독교연구소 펴냄

이 책은 ‘마가복음’을 ‘정치적으로 읽는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웠다. 성서에 관한 ‘사회학적 독해’나 ‘이데올로기적 해석’이라고 하면, 성서의 권위와 의미를 충실히 인정하기보다는 해석자의 주관을 과도하게 본문에 주입하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시도들은 학자들의 잉여적 관심의 발로쯤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학계에서 이런 논의가 수십 년간 진행되면서 이제 이런 다양한 관심과 관점의 질문은 본문의 해석을 풍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통찰이고, 본문의 의미를 밝히는 데 필수라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 잡았다. 본문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무시하는 독해야말로 무책임한 것이고, 계급-성별-인종-종교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질문과 대답의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는 작업 없이는 본문이 펼쳐 보이는 해석의 스펙트럼을 제대로 음미하기 힘들다는 점은 상식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학자들 간의 논의를 십분 참고하여 적절한 수위로 일관되게 해석한 결과물을 대중적으로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의 장점은 그런 점에서 뚜렷하다. 저자는 성서학자로 신학생들과 마가복음을 헬라어로 독해하는 작업을 거쳤고, 교회 성도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상당 기간 가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책의 본문은 헬라어 해석을 비롯한 주석적 기능과 학술적 논의가 과도하다는 인상이 들지 않는 수준에서 적절히 활용되었고, 성도들의 실제적 관심사에 부합하는 질문에 대답하고자 정중한 노력을 기울였다. ‘정치적 독해’라고 명명하였으나 (비록 어떤 구절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대목이 있을지라도) 내용이 그리 급진적이거나 과도한 수사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저자는 왜 ‘하느님’인가를 3쪽을 할애해서 설명한다)‘ 운동이 로마제국과의 대결의식 가운데 기술되고 있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학자들을 통해 어느 정도는 낯을 익힌 내용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고민하는 성도들이 어깨너머로 접했을 다양한 성서학 논의들을 제대로 엮어 마가복음 한 권을 통째로 읽도록 잘 직조해서 보여주었다.

이 책은 출판과정에서 난관을 좀 겪었는데, 전 출판사의 과도한 편집행위에 저자가 반발하면서 한참 후에 새로운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비교해보니 챕터 구분이 달라져서 총 22장에서 총 24장이 되었고, 토론을 위한 질문이 장마다 수록되었고, ‘하느님’ 명칭을 사용한 저자의 뜻이 잘 반영되었다. ‘정치적’ 관점에서 마가복음의 메시지를 음미해 보고 싶은 개인이나 소그룹이 사용하기 좋겠고, 교재로서도 적절하게 구성되었다. 질문 많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본문공부와 더불어 풍성한 대화를 끌어낼 책으로 권할 만하다. 나는 첫 출판 때 추천사를 썼는데, 재출판에 그 내용이 그대로 들어갔다. 여전히 같은 바람이다. “자기의 머리로 사고하고, 자신의 언어로 성경을 되새기고자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복있을진저.” -양희송 대표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 이길용 지음, 꽃자리 펴냄

종교는 구성원들의 의식과 문화의 가장 심층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체계이다. 한 종교가 사회에 적응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사회 현상들의 기저에서 종교가 미치고 있는 영향을 확인하는 것은 사회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방법이다.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길용 교수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는 바로 이런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통찰하는 에세이집이다. 종교를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또 사회를 통해 종교를 이해하는 종교학자의 예리한 시선이 담겨있다. 꽃자리 출판사가 운영하는 웹진에 연재한 내용을 묶어 펴낸 책이기에 깊이 있는 논의보다는 짧은 에세이 모음 형태라 조금 감질나는 맛이 있긴 하지만 한국 사회와 종교, 특히 그 속의 기독교를 돌아보는 데 필요한 주제가 비교적 빠짐없이 담겨 있다. 특히 한국 종교의 특징들과 현황에 대한 분석, 갑질 문화나 수능, 사교육 열풍 등 병폐 현상 아래 있는 종교의 영향, 한국 개신교의 집단주의적 성향 등을 언급하는 글들에서는 새겨볼 만한 통찰이 적지 않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적 가르침으로 세상을 읽는데 능하다. 능하다 못해 거의 강박적이고 습관적이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한국 사회의 여러 종교 중 하나로 기독교를 바라보고 읽어보면 어떨까?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를 읽으며 한국 사회와 종교로 기독교를 다시 읽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박현철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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