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책]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 – 예수를 안 이후로 나는 자주한 인간이 되었다

[글로 배운 페미니즘] (2)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싶은데 막막하신가요? 그런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당신을 페미니즘의 세게로 인도할 책을 선별하여 소개합니다. 주로 고전과 종교와 연관된 책을 다룹니다. 

“아니오! 아니오!” 견고한 성차별의 공간, 교회

지난 9월 말, 기장,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고신 등 각 교단 총회가 열렸다. 교단마다 여권신장에 관한 안건이 올라왔지만 줄줄이 부결되었다. 소위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기장도 여성 총대 참여 비율 증대, 상임위원회 · 특별위원회 여성 2명 이상 공천 할당, 여성 장로 30% 배정 등의 안건이 모두 채택되지 못했다. 예장통합도 ‘여성총대 할당제’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장내에는 “아니오” “아니오”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현재 여성에게 안수조차 주지 않고 있는 예장고신과 예장합동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예장고신은 ‘권도사’라는 자격을 신설해 신대원을 졸업한 여성들에게 목회의 길을 열어주자는 안건이 부결되었고, 예장합동은 아예 여성관련 안건이 올라오지도 않았다. 여성들이 교회 구성원의 60%를 차지한다고 하지만, 여성총대 비율은 대략 고신 8%, 예장통합 2%에 지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한 집단에서 소수가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다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최소비율, 임계질량(critical mass)을 30%라고 본다. 남성중심적 한국교회에서 여남 모두 평등한 교회로 변화하는데 필요한 수를 채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까? 갈 길이 너무나 멀다. 이것이 젊은 여성들이 빠져나가는 한국 교회의 현주소다. [관련 기사 “잠잠할지어다 교회 안에서, 너희 여성들”] 

“예수를 안 이후로 나는 자주한 인간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유교질서에 억압당하던 이 땅의 여성들에게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그 앞에 누구나 동등하다’는 기독교의 만인평등사상은 해방의 복음이었다. 기독교는 일부일처주의, 개가허용, 남녀동석의 필요성 인정 등으로 기존의 유교적 가족제도와 질서에 도전하였다. 그 당시 기독교는 여성해방의 종교요, 교회는 남녀평등의 공동체로 간주되었다.

지금 소개하려는 책,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을 보면 복음의 빛으로 변화된 여성 스물 네 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감신대에서 한국교회사를 강의하시는 이덕주 교수가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에 이어 여성인물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쓴 책이다. 1990년에 처음 출간되어 중간에 절판되었으나 2007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복음을 받아들인 처음 여성들’이다. 개화기 한국에 처음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변화되고, 복음전파와 여성해방의 기틀을 닦은 인물들이다. 둘째는 ‘민중과 교회를 위해 몸 바친 여성들’로 일제 강점기 교회발전과 사회선교에 헌신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교회 뿐 아니라 일반 사회 여성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셋째는 ‘민족과 나라를 사랑한 여성들’로 일제 강점기 민족독립운동에 헌신하여 온갖 투쟁과 수난을 감내한 분들이다.

그 중 특별히 인상 깊었던 몇몇 인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휘장세례의 주인공이었던 전삼덕이다. 양반집 부인이었던 그는 남편이 첩을 들이자 정신적 소외감에 사로잡혔던 차에 예수교에 대한 소문을 듣고 직접 가마를 타고 평양으로 찾아갔다. 그 곳에서 선교사 홀(W. J. Hall)을 만나게 되고,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후 남편과 시집 식구들의 탄압 속에서도 매주 평양 남산현교회에 참석하고, 선교사 스크랜턴(W.B. Scranton)에게 세례를 받았다. 당시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해서 남녀가 한 자리에 있는 것도 금기시했기 때문에 방 가운데 휘장을 치고 구멍을 뚫어 그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물을 떨어뜨려 세례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덕주는 휘장 사이에 난 작은 구멍을 “기나긴 세월동안 가부장적 사회인습과 체제에 매여 있던 여성들의 해방을 선언하는 거대한 혁명의 돌파구”로 높이 평가한다(27). 전삼덕은 선교사를 도와 전도부인으로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여러 교회와 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전도를 받아 교인이 된 사람이 대략 600명에 이르고, 그 중에는 교회와 사회 지도자로 성장한 사람도 많았다. 양반집 부인이 서양 종교에 미쳤다는 조롱과 비난이 들려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특별히 전삼덕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했던 고백이 마음에 남는다.

나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으며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를 안 후로 나는 자주한 인간이 되었다. (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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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휘장세례 주인공인 전삼덕과 전도부인들. 아랫줄 가운데가 전삼덕.

가부장제와 봉건사회에 짓눌려 있던 한국 여성에게 기독교 신앙은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었다. 예수를 알고 자주한 인간이 되었다는 말이 가슴을 쳤다. 교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예수를 알고 자주한 인간이 되었는가? 현재 한국 기독교는 여성들을 자주한 인간으로 만들고 있는가? 질문이 계속 든다. 복음 안에는 자신을 진정한 인간으로 세우는 자유와 해방, 평등의 메시지가 깃들여져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한 마디이다.

우리 역사 속에 살아있는 바울과 본 회퍼

2부 ‘민중과 교회를 위해 몸바친 여성들’ 중에서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 창립멤버 손메례와 성결교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손메례는 1920-30년대 금주, 금연, 공창폐지 등의 운동을 주도했던 여성 절제운동의 선구자이다. 그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금주 강연을 했는데, 남성들의 폭력과 일경들의 감시가 따르는 위험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보호자 되시는 예수’를 체험하고, <기독신보>에 “기쁨과 예수”라는 제목으로 글을 기고한다.

조선여자절제회에서 6년 동안을 시무하는 가운데, 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아니 다녀 본 곳이 없이 골고루 다니는 가운데 사람의 위험, 물의 위험, 더위의 위험, 폭탄의 위험, 모든 위험을 다 당해보았다……. 그러나 예수는 언제든지 어떠한 위험 중에서든지 자나 깨나 나의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예수의 은혜는 나에게서 잠시라도 떠나지 아니하였다. 나는 간혹 그런 위험을 당할 때마다 낙심도 되었으나 나의 유일하신 희망인 예수를 바라볼 때는 두려운 것이 없고 기쁘지 않을 때가 없었다. 예수는 나의 희망인 동시에 우리의 2천만 조선 민족 전체의 유일절대의 희망이 되신다. (162-163)

손메례의 글을 읽으면서 바울이 자신이 당한 고난을 언급하며 복음에 대한 사명을 말할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숱한 고난 속에서도 예수를 의지하고 자신의 소명을 따라가는 삶. 이것은 왜 바울이 아니란 말인가. 그런 예는 또 있다. ‘서해안 섬 교회의 어머니’라 불리는 문준경 전도사이다. 문준경 전도사는 교인이 하나도 없던 임자도와 후증도에 교회를 개척하고 헌신적으로 목회했다. 그는 섬 지방의 전도자 일뿐 아니라 의료봉사도 베푼 의사와 간호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말기에 성결교회가 강제해산을 당하고 지하에 숨어서 신앙생활을 지도했다. 해방 후 다시 교회 간판을 달고 목회를 재개하였으나 한국전쟁이 터지고 친일파에서 공산당으로 변신한 무리에 의해 체포되어 목포로 끌려가게 된다. 목포에 도착하고 보니 목포는 이미 국군이 탈환하였고 공산군은 퇴각한 상태였다. 그들을 압송하던 인민군들도 사태를 파악한 후 도망쳐 버렸다. 사태가 안정되면 돌아가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문준경 전도사는 “내가 죽을지언정 나 때문에 우리 교인 한 사람이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며 후증도로 서둘러 돌아갔고, 그 곳에서 곤봉으로 맞아 쓰러지고 총으로 확인사살까지 당하였다.  목포에 있었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교회와 교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가 죽임을 당한 그는, 미국에서 망명할 수 있는 기회를 뿌리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독일로 돌아간 본회퍼를 떠올리게 한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이것은 왜 본회퍼가 아니란 말인가. 왜 어떤 사람은 역사 속에서 길이 기억되고, 어떤 사람은 잊혀지는가. 바울과 본회퍼만큼이나 십자가와 복음의 빚진 삶을 살아낸 우리의 신앙선배들의 삶 또한 기억하고 기리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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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화를 이끌어왔고 여성해방의 종교로 알려졌던 기독교가 지금은 성차별과 여성억압의 종교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관습과 한계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된 우리의 선배들에게 당신은 어떻게 응답하려는가.

전삼덕의 하나님, 문준경의 하나님, 어윤희의 하나님

마지막으로 3부 “민족과 나라를 사랑한 여성들”은 일제 치하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독립운동에 매진한다. 3월 3일 만세시위를 이끌고 일본 경찰에 연행된 어윤회는 “당신들이 내 몸을 묶어 갈망정 내 마음은 못 묶어가리라” 하며 당당하게 따라나섰다. 남성 경찰들에게 여성 피의자들은 성희롱과 성폭력의 대상이었는데, 어윤희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내 몸에 누가 손을 대. 벌거벗은 내 몸뚱이 보기가 그렇게 소원이거든 내 손으로 직접 옷을 벗겠다”라며 훌훌 벗었다. 그러고 나서 “자, 실컷 보시오! 당신 어머니도 나 같을 게고, 당신 부인도 나 같을 거요”하고 소리를 지르니 오히려 검사가 당황하여 “어서 옷을 입히고 데리고 나가라”고 하였다. 당시 감방 안에는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끌려온 유관순도 있었는데, 어린 유관순이 모진 고문을 받고 감방으로 돌아오면 어윤희는 어머니처럼 그를 품에 안고 어루만지며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3부에는 이런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이 책을 읽으며 ‘누가 여성이 약하다고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여성들의 기개를 보면서, 서로간의 연대로 힘을 돋우는(empowerment) 모습을 보면서 나도 힘을 받는다.

어려서부터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 기도시간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며 믿음의 조상을 언급할 때 솔직히 잘 와 닿지 않았다. 시간적으로도 너무 멀고, 공간도 다르고, 성별조차 다른 나의 조상의 하나님이라니 크게 감동이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가끔 “전삼덕의 하나님, 문준경의 하나님, 어윤희의 하나님”을 불러보곤 한다. 그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도 있다. 멀지 않은 시간에 나와 같은 땅에서, 같은 여성의 몸으로 살면서, 복음으로 새로워지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그들의 삶에 감응하며 나도 오늘을 살기를 다짐하게 된다.

여성사라는 학문을 정립하며, 역사 속에 사라진 여성인물들을 발굴했던 전미여성사학자 거다 러너는 “역사란 자기 인식에 이르는 길을 안내해주고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절대적인 생명줄”이라고 말했다. 내가 믿는 기독교의 뿌리를 알기를 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받고 싶은 여성들과 남성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감리교 신학자의 연구라 그런지 감리교 인물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장로교 등 다른 교단 인물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성주의 관점을 가진 훌륭한 교회 사학자가 더 많이 배출되어 한국 교회사에 묻힌 이야기들을 발굴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고 이들이 그나마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자녀들이 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외에도 정말로 이름도 빛도 없이 복음과 나라를 위해 헌신한 여성들이 많았음을 기억해야겠다.

이처럼 한국 교회는 여성들의 수고와 눈물의 기도, 희생이라는 토대 위에 성장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기여를 인정하고,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이들이 복음의 빛 아래 자신을 새롭게 발견했던 것처럼 한국교회도 갱신해야 한다. 사회변화를 이끌어왔고 여성해방의 종교로 알려졌던 기독교가 지금은 성차별과 여성억압의 종교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관습과 한계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된 우리의 선배들에게 당신은 어떻게 응답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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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인
안정인

청어람아카데미 초대 간사로 일했고,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과정에서 공부했다. 현재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며, 교회와 여성문제, 엄마들의 삶에 대해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