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나는 왜 ‘페미니즘, 교회를 까다’ 모임을 시작했나?

교회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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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왜 까요. XX럴.’

운영하고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을 공부하고 교회와 사회의 여성폭력문제를 고민하는 ‘페미니즘, 교회를 까다’ 책모임 홍보가 나간 후 오픈채팅방에 어떤 사람이 남긴 글이다. 그러게. 어디 감히 세상 학문이 교회를 깔 수 있겠는가? 나도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군대에서 애국가를 부를 때 ‘하느님 보우하사’ 부분을 ‘하나님이 보우하사’로 불렀다. 하나님은 유일신이니까. 선임의 ‘갈굼’은 그리스도인을 향한 핍박이라 여겼다. 청년부 회장시절에는 교회에 온 여동생이 짧은 치마를 입으면 ‘너 왜 이렇게 짧은 치마를 입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꽉 막힌 놈이 페미니즘 독서모임이라니?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두 가지 ‘질문’ 때문이다.

첫 번째는 어머니 덕분이다. 어머니는 내가 중 3때 외도를 했다. 가출 후 다시 돌아오기는 했지만, 나는 그 이후로 어머니를 불신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어머니를 사람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큰 사고를 당했다. 당시 보험회사를 다녔던 어머니의 수금가방을 강도가 빼앗으려다가 잘 되지 않자,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 보도블럭 모서리에 찧어버렸다. 어머니는 피를 흘리며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했고, 다행히 그 소리를 들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하고, 강도를 잡았다.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교회에서 주일 날 예배시간에 틀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응급실에 가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십계명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써 있는데 나는 엄마가 죽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었으니까. 그 때부터 생각했다. 엄마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아니, 할 수 밖에 없었을까?

두 번째는 청소년 친구들 덕분이다. 나는 청소년부 주일학교 교사를 6년 동안 했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는 일이다. 그중 한 명이 어느 날, 울면서 자신이 성폭력 당한 이야기를 했다. 그 사실을 교회 다니는 부모님께 했더니 돌아오는 반응은 “그러게 왜 조심하지 않았냐”는 꾸중이었다고 한다. 그 후 그 부모님은 그를 더욱 심하게 통제했고, 결국 그는 집을 나왔다. 그리고 돈이 없어 온라인 채팅으로 성매매를 했다. 그는 자신도 이해받고 싶었다고 했다. 나를 믿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그런데 나는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그 청소년의 부모라면 조금 달랐을까? 나를 믿고 이야기해준 그에게 어떻게 답해줘야 했을까?

어머니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 성폭력을 당한 청소년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두 가지 질문은 교회에서, 목사님 말씀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기도하고 말씀을 읽어도 답이 안 나왔다. 교회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외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페미니즘을 공부하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갑시다”
“일상에서 예배합시다”

그래. 말은 좋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으로 실천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다. 어떻게 실천해야하는지 구체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 페미니즘은 일상에서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보다 선명하게 보여준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의무라면, 그 의무를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구체화시켜, 실천할지 조금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다시 본 어머니의 삶은 쉽지 않았다. 어머니가 외도를 할 당시,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부모님이 어렵게 자리 잡기 시작한 치킨 집을 건물주 한 마디에 이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을 맞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부모님 모두 늦게까지 똑같이 일하고 들어오는데, 가사노동은 당연히 어머니 몫이었다. 아버지는 집 청소가 안 돼 있는 것을 트집 잡아 어머니를 몰아세울 때가 많았다. 어머니가 어떤 의견을 내면 ‘무식한 소리’, ‘쓸데없는 소리’라고 일축했고, 말다툼을 하다 감정이 고조되면 어머니에게 손찌검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는 가정에서 어떠한 존중도 받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새롭게 이해한 과거 어머니의 모습을 여동생과 나누었다. 그리고 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우리가 경험한 과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의 생각을 들어 보려고 한 것이다. 나는 ‘어머니 가출 사건’에 관해,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이해하게 된 어머니를 이야기 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당시 자신의 선택은 ‘존중’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며 그런 적 없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을 때 ‘나는 이 집에 있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단다. 그후 10여 년 동안 자신은 이 집에서 죄인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 동생에게 이해해줘서 고맙다고도 했다. 나도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했다.

페미니즘은 어머니를 내가 생각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예수님은 조건 없이 사랑을 실천하셨는데, 돌아보니 나는 어떤 조건으로 인간을 보고 있었다. 아주 가까운 어머니에게도 말이다. 페미니즘은 내게 조건 없는 사랑을 하고 싶다면, 사람을 조건없이그 자체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청소년들이 당한 성폭력 경험을 들은 계기로 ‘여성폭력’에 관해서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2007년 UN 사무총장이 발간한 보고서 <여성폭력종식 : 담론에서 행동으로>에는 여성폭력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며 오늘날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할 과제임을 명시한다. [보고서 다운받기]

나는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여성폭력 문제를 살펴보았다. 성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른 전문직 직업군 1위1가 목사지만 우리는 항상 ‘그래도 우리는 아직 괜찮아’라며 정신승리하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여성목회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청빙하지 않아 일할 기회가 없고, 심지어는 여성목회자를 성경적이지 않다는 이상한 이유로 거부하는 어느 교단의 상황을 보며 나의 일이 아니라고 방관하지 않았나.2 통계적으로 우리사회에서 남성에 비해 여성은 65% 수준의 경제적 보상과 정치적 권한을 누리지만3 그런 현실의 부당함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며 그저 ‘기도하라’고만 하지 않았나. 3일에 1번꼴로 여성이 데이트폭력을 당해 죽고,4 성폭력을 당해도 누구에게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회에서는 여전히 ‘이성교제’에 관해 말할 때 ‘혼전순결’만 강조하지 않았나. 이런 상황을 천천히 다시 돌아보니, 교회에서 ‘주 안에 우린 하나’를 외쳤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워졌다. 형제자매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공감하지는 못할망정 명백하게 외면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외면해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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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회를 까다’를 시작하다

교회와 사회의 여/성폭력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책모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시작한 책모임이 ‘페미니즘, 교회를 까다’이다. 왜 하필 ‘교회를 까다’일까? 교회사에서 교회는 조용할 날이 없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까고 까이면서 발전했다. 적어도 나에게 하나님은 지켜드려야 할 대상이 아니다. 누가 누굴 감히 지키는가? 교회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이 조금 깐다고 흔들릴 교회라면, 그동안 우리가 수호해온 교회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교회가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내기 위해 자신과 공동체를 성찰하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고 생각했다. 인종차별을 찬성했던 교회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여/성폭력을 부추기고 외면하는 교회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서울 신촌 어느 카페에서 모임을 처음 시작했다. 구성원에게 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지 질문했다. 대부분 교회에서 성차별과 성희롱 등을 경험하다가 교회를 나왔지만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구성원 모두 이 모임이 단순히 교회를 까는 모임이 아니라 교회와 사회를 걱정하고 학습하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는 모임이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인답게, 인간답게 살아가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매주 토요일, 모임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성소수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고민하시는 이도 있고, 성 노동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시작하려는 사람도 있다. 모임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다. 모임에서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신학(여성신학) 책에 관해 이야기할 뿐 아니라 각자 하고 싶은 페미니즘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서로 돕는다. 외모주의 타파를 위한 삭발세계여행을 응원하고, 신학교 안의 여성혐오와 교회개혁을 나누는 모임을 추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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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모임의 특징은 모임을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생각대로 된 것이 별로 없다. 모임 진행 방식부터 일정, 모임 후 먹을 것을 정할 때도 그랬다. 청년부 회장을 할 때, 팀 모임을 할 때 모든 것을 준비해가야 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아직도 꼰대고 허세가 많지만, 권위를 나누니 사람이 보였다. 얼마 전 구성원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아 맞다! 저는 우리 모임 나이가지고 이런 말하면 그렇지만 꼰대질 안 해서 좋아요. 막 질문해도 되서 너무나 좋음! ㅎㅎㅎ”

“저는 이 모임을 통해 성경이 결코 페미니즘과 반대되지 않음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주 모임에서는 세 가지 질문을 했다.

1. 모임에 왜 왔어요?
A : 평상시에 공기 같은 여혐(여성혐오)으로 인해 고통 받던 중이라 이런 이슈에 관해 함께 얘기하고 나눌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또 여성학도 좀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중 거의 산소호흡기 같은 존재죠. ㅋㅋㅋㅋㅋㅋ

B : 페미니즘을 알고 싶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직접 얼굴을 보며 의견을 나누고 싶어서.

C : 교회가 정말 예수님을 닮고자 한다면 그러지 않을 텐데, 그 어느 곳보다도 여성혐오에 앞선다고 생각했다. 교회를 떠났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성학에 기반을 두어 비판하는 것이 그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D : 교회의 너무나 굳건한 여성혐오적인 정서에 언제나 불편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여성혐오'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 왜 그런지 알지 못했고,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후에 ‘여성혐오’라는 것을 알게 되고, 생각하게 되면서 ‘페미니즘으로 교회를 깐다’는 문장을 들었을 때 당한 게 많이 생각나 너무나 까고 싶었다.

E : 저는 모태기독교신자이고 페미니스트이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 모임이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간극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들어왔습니다. 저는 평소에 '한국교회는 왜 가부장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작은 자(약자)들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켜본 바, 한국교회는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약자이며,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성에 관한 관념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은 ‘아내가 될 사람’이라고 전제하고 아내로서의 덕목을 특정하는 설교말씀, 여성이 지닌 주체성과 자주성을 무시한 채 ‘남편을 내조하며 순종하라’고 가르치는 기독교 서적들을 보며 혼란스러웠습니다. 저는 이 모임을 통해 성경이 결코 페미니즘과 반대되지 않음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F :  교회 안의 페미니즘이라는 게 신선했고, 페미니즘이 어떻게 교회에 적용시키는지 알고 싶어서. 또 그런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2. 모임에 어떤 마음으로 참여하세요?
A :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경험을 나누고 해결방안을 찾고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들려는 작은 의지로 참여합니다. 또 분명 존재하는 차별이지만 아직 그 범주로 묶이지 못한 것들을 호명하고 남성들의 관점이나 견해도 이해하고 듣자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B : 여성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성소수자로서 내가 가진 생각을 나눠보고 싶어서.

C : 많이 공유하고 많이 배우자.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니까.

D : 대부분 늦게 오게 되는 경우가 많아 죄송한 마음 뿐… 8ㅅ8

E : 시작은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관계였으나, 실제 모임은 일상 속 여성혐오 문제와 이슈들에 관한 토론이 주가 됩니다. 그래서 이슈들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공유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도 답을 찾고자 합니다.

F :  여성혐오적 일상으로 부터의 해방감. 눈치 보지 않고 교회와 페미니즘에 대해서 질문해도 된다는 안도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연대감.

3. 모임을 올 때 마다 어떤 생각을 하나요?
A : 연인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살려주세요ㅠㅠ 이런 건 꼭 함께 알아야해! 뒤풀이 때 뭐 먹지? 등. 떠오르는 에피소드라면 저번 주에 이로움 님이 삭발 진행하신 후기를 들려주셨는데, 빡빡머리가 돼서도 ‘대머리성애자’들에게 성적대상화 당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충격이었습니다(※책모임 구성원 중 한 명인 이로움 님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일침을 가하고자, 어떤 모습이든 나 자신은 소중하고 자유로울 권리가 있음을 외치는 프로젝트인 ‘대머리 세계방랑’을 진행하고 있다. 삭발을 하고 세계여행을 하는 프로젝트다). 또 돌봄 노동에 관한 이야기, 여성의 가슴이나 엉덩이, 혹은 남성의 팔뚝이나 복근이 대표적으로 ‘섹스어필’ 되는 것은 일정기호에 반응하게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젠더라는 장치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서로 나눴던 기억이 나네요.

B : 더 많은 사람들끼리 이런 모임을 가지고 페미니즘이 많이 공론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C : 페미(페미니즘) 전사가 되고 싶어도 우선은 정신건강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팔짱끼고 이해시켜보라는 사람을 내가 설득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우리는 논리를 기반으로 한 언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모임을 하면서 꾸준히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만들면 좋겠다.

D : 3주 정도 일정이 생겨 못나갔었는데 저번 주 모임을 갔는데 분위기가 굉장히 화목해진 것을 느꼈다‥! 갈 때 마다 분위기가 화목해지는 것 같다!

E : 첫째, 페미니즘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한다는 점이 좋습니다. 둘째, 저의 시각이 구체화되고 확장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모임 이후 무심코 제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여겼었던 부분들에 대해 재고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 페미니즘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서 이 모임이 감사합니다.

F : 기대하는 마음? 여기서 좀 더 배우는 것들에 대한 기대. 좀 더 발전해가는 나를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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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28/표준새번역)

나는 교회와 사회의 여/성폭력종식을 고민하는 이 페미니즘 독서모임이 세상의 소금이 되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몸부림이자, 시대적 요청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대단한 사명감이 아니더라도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나 스스로가 사회와 나 자신이 규정해온 굴레에서 많이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나와 타인을 있는 모습 그대로로 보는 걸음마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교회에서 또는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하는  페미니즘 모임들이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관련 글 보기]
-‘페미니즘’ 공부하는 교회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주-

  1. 성범죄 가장 많은 전문직은 성직자, 허핑턴 포스트, 2014년 03월 27일. http://www.huffingtonpost.kr/2014/03/27/story_n_5039374.html
  2.  교회 내 여성 목회자 차별 이 정도일 줄이야!, 뉴스앤넷, 2014.04.01. http://www.newsn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1800
  3.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오찬호, 동양북스, p.43
  4.  ‘데이트 폭력’ 3일에 한 명꼴로 사망…대책은?, 포커스뉴스, 2015-10-12 . http://www.focus.kr/view.php?key=2015101200173414501
  5.  ‘교회 성폭력의 현실과 과제’ 포럼 자료집, 교회개혁실천연대. http://www.protest2002.org/home/cr_documents/125023

개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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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개저씨입니다. 대단한 꼰대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