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이슈 따라잡기] ‘샤이(shy)-개신교’와 ‘강한 정체성’의 딜레마

이 글은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 중 종교 분야에 관해 청어람ARMC와 학원복음화협의회, 한국교회탐구센터가 공동으로 기획/진행한 포럼에 발표했던 자료를 수정/보완하였습니다.

1.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조사 결과는 나온 지 꽤 되었는데 종교인구 분석이 담긴 표본조사 결과가 2016년 12월에 나왔다. 2005년 인구센서스와 비교해서 가장 파격적인 결과는 불교(22.8% à 15.5%)가 대폭 감소하면서 개신교(18.2% à 19.7%)가 최대 종교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천주교(10.8% à 7.9%)도 감소로 나오는 와중에 개신교 독주가 두드러졌다. 종교인구의 비율 자체가 2005년 52.9%에서 43.9%로 대폭 감소하는 상황에서 개신교만 성장한 셈이라 그 대비는 더욱 두드러졌다.[1]

ingo

ingo2이런 결과를 놓고 전문가들 내부에서는 다양한 분석과 토론이 나오고 있다. 우선 데이터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가장 강력한 이슈는 2005년 조사가 문항 설계상의 이유로 개신교와 천주교 간 대대적인 표기 착오가 벌어졌을 가능성이다. 옥성득 교수(UCLA 한국학부)는 100만 명 정도를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이전해야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2] 개신교와 천주교 간의 이런 오류 보정 논란 외에 두드러진 이슈는 불교의 급격한 감소이다. 종교인구 감소 규모가 불교인구 감소와 같은 규모인 297만명으로 집계되었으므로, 한국사회 종교인구가 급감한 내용은 불교 인구의 감소가 압도적 원인 제공자로 꼽히게 된다. 그 외 전수조사에서 표본조사로 바꾼 것이나, 방문조사(2005)에서 표본세대에 대한 인터넷조사와 방문조사를 병행(2015)한 조사 방법론의 차이는 전체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ingo3

1995년 ‘종교’ 문항 표기 방식

ingo4

2005년 ‘종교’ 문항 표기 방식

ingo5

2015년 ‘종교’ 문항 표기 방식

 2.

이번 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개신교 약진(?)’ 상황의 함의를 몇 가지 방향으로 음미할 필요가 있겠다. 첫째, 현상적으로는 10년 사이에 120만 명이 증가했으니 ‘약진’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옥성득 교수의 보정 수치를 도입한다면, 1995년에 비해 2005년에 100만 명이 증가했었고, 2015년까지의 10년간은 불과 20만명 증가에 불과하다는 셈법이 가능하다. 1985-1995년 사이 증가가 227만 명이었던 것을 상기하면, 매 10년마다 성장 규모가 1/2-1/5수준으로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장기적 흐름이다. 또한, 각 세대의 시기별 증감현상을 추적하는 코호트(cohort) 분석에 의하면 개신교 유입인구는 20대 이하 연령대의 자연증가분에 크게 기대고 있을 뿐, 대부분 연령대에서 감소세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1995년 대비 2015년의 자연증가 추산 180만 명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며, 이를 감안하면 오히려 90만 명 감소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3]

둘째, 개신교 인구 전체는 증가하고 있다지만, 개신교계 내부의 체감현실은 완연히 감소세이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주요 교단의 교세통계에서도 확인되는 추세이다.[4] 이 둘을 포개어 놓으면, 개신교 인구가 증가하더라도 그들은 제도교회 안에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제도교회로부터의 유출현상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 개신교계 이단들의 세력이 커 보이기는 하지만, 교세가 부풀려졌고 이 정도의 인구변동을 흡수하거나 유발할 만큼의 규모로 급성장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 중론이라면, 이는 개신교권 전체의 유입량은 크지만, 제도교회로부터의 유출 역시 상당한 수준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신앙은 유지하되 제도교회 바깥에 머무르기로 선택한 ‘가나안 성도’의 증가로 일단 해석해 볼 수 있겠다.[5]

셋째, 전반적인 제도종교의 쇠퇴 와중에 그래도 개신교가 수적으로 선방한 것을 무엇으로 해석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잘 알려져 있듯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도도 매우 하락했고, 평판을 위협하는 여러 사건·사고도 많았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3대 종교 중 유일하게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강한 정체성(strong identity)’에 호소하는 개신교의 선교전략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국사회의 주요 종교 중 개신교만큼 유별난 강도로 정체성을 묻고(전도, 설교, 교육 등), 반복적으로 확인하는(주일성수, 예배참석, 수련회 등) 종교는 없다. 부모세대의 종교를 따라 개신교로 진입하는 20세 이하 세대의 규모는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타종교에 비해서는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불교나 천주교는 제도로부터 멀어지면 그 종교에서 이탈한 것으로 여기지만, 개신교는 몸은 떠나 있어도 귀속성을 유지하며 종교적 정체성을 고백할 요소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이 대목이 개신교 내부적으로는 곰곰이 따져봐야 할 지점이다.

3.

이번 미국 대선에서 평소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다가 투표소에서는 그를 찍은 숨은 지지자들을 ‘샤이(shy) 트럼프’라고 표현했다. 한국사회에서 개신교인의 규모는 늘었으나, 그간 존재감을 잘 드러내지 않은 상황을 이에 비견할 만하다. 물론 차이는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놓기는 난감해했지만 결국은 트럼프에 동의하고 공감하는 이들이다. ‘샤이-개신교’는 개신교인이란 정체성은 가지고 있지만, 제도권에 대한 입장은 대립하거나 소원한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반증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제도교회 안팎에서 상반된 대응 양식이 등장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제도교회는 정체성을 좁게 규정하고 더욱 강화함으로써 상황을 타개하려는 ‘과잉주체화’ 드라이브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탈종교 흐름 속에서도 개신교 인구가 줄지 않았다는 것은 이들에게 자신감을 부여할 가능성이 있다. 공세적으로 전도하고, 보수적 사회 이슈(동성애, 이슬람, 북한 등)의 보루로 역할을 함으로써 일정한 결집 효과를 누리려 할 수 있다.[7] 사회 일반에서 탈종교적 분위기나 개신교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형성되는 것과 무관하게 기존의 자기 정체성을 강화하고, 가끔 이를 사회 내에서 돌출적으로 발현하는 방식을 주요 전략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개신교인이지만 제도권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은 제도교회의 그런 행태로 인해 더욱 제도권과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간 흔히 ‘100만’ 가나안 성도라고 불러왔는데, 이들이 수적으로 더 증가하거나 질적으로 자기 주관이 더 확고해질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통상 ‘강한 정체성’에 대한 추구는 진영논리로 귀결되곤 했다. 개신교권이 추구해 온 ‘강한 정체성’은 ‘자기성찰’이란 덕목을 장착하지 못하면 권위주의와도 쉽게 결합하고, 진영 내부의 선동논리에도 취약하다. 정치가 종종 최종심급으로 역할을 하는 한국사회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너무나 예측가능한 일이기에 ‘정치의 종교화’나 ‘종교의 정치화’ 현상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당분간 개신교의 ‘자기성찰’적 감수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부각될 것이다.

4.

이번 종교인구 조사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첫째, 한국사회의 탈종교적 경향에서 개신교는 타종교에 비해 잘 견뎌내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흐름을 성공적으로 맞이했다기보다는 ‘견뎌내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고령화는 더 진행될 것이고 자연적 인구증가분 외에 세대별 추이는 대부분 감소세를 보인다. 성경연구, 교리교육, 영성훈련, 선교훈련 등 각종 훈련과정이 개신교인들에 대한 일정한 지지효과를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교육과 훈련이 ‘인지적 지식의 반복 강화’라는 과거 패러다임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기에, 내용과 방법론에 있어 탈종교 시대의 문제의식을 담아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8] 교육과 훈련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이 절실하다.

둘째, 종교인구의 감소현상은 사회 내의 ‘무신론’ 대두 현상과 동반되고 있다. ‘공격적 선교’와 ‘전투적 무신론’이 격돌하는 구도를 계속 연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양측이 좀 더 온건하게 만날 수 있는 장이 요즘 회자되는 ‘인문학’이란 공간이다. 대화, 성찰, 탐구 등의 방식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격려될 필요가 있다. 개신교권의 정서와 담론이 자기정체성의 극단적 강화로 치닫는 현상을 우려스럽게 보는 이유이다. 이보다는 ‘공적 신앙’ 논의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고, ‘선교적 교회’ 등의 담론이 섬세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공공선’에 대한 헌신이 되새겨질 필요가 있다. 종교와 무신론이 상대의 최악의 사례들을 놓고 공격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최선의 것으로 선의의 경쟁과 사회적 기여를 다투는 것이 사회적 선순환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셋째, 제도 바깥의 신앙 생활에 대한 인정과 본격적 모색이 필요한 시절이다. ‘가나안 성도’ 현상이 좀더 심도 있게 다루어지고 실험적 시도들이 나올 뿐 아니라, 대안적 교회 시도들도 더 확산될 필요가 있다. 개신교 ‘지식 생태계’가 형성되기 위한 인프라, 혹은 플랫폼이 어떤 식으로든 가시화되기를 기대한다. 불교인구의 급격한 하락에도 불구하고 법륜 스님의 정토회나 몇몇 도심 사찰의 대대적인 약진은 도심형 불교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종교서적 분야에서 불교계의 소수 저자들이 점유하고 있는 지분은 대단한 수준이다. 개신교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양상을 역설적으로 법당 바깥에 사회와 느슨한 형태로 연계하면서 길을 모색한 불교의 사례에서 참고할 수도 있겠다. 청어람에서 시행하고 있는 ‘세속성자 수요모임’은 상하반기 12주간 모이는 수요예배인데, 아마 이런 방식으로 강한 연결(strong tie)이 아닌 약한 연결(weak tie)을 통해 개인의 선택과 자발성을 보장하는 방식의 모임들이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

종교인구의 변동은 한국사회의 거시적 변화 추이를 살피는 작업이다. 그 전반적 흐름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경향성을 읽어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잘 새겨서 적절한 방식의 대안과 실천전략의 근거로 삼는 일이다. 개신교의 행보에 관심을 두고 곱씹어 보았던 많은 이들의 판단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ㅡ주

[1] 양희송, <다시 프로테스탄트> (복있는사람, 2012)에서 2005년 조사의 의미를 새겼는데, 2015년 조사결과는 많은 부분에서 파격적인 반전이다.
[2] 옥성득 “2015년 종교통계 해석” http://1000oaks.blog.me/220890512897
[3] Cf. 임영빈 “개신교 인구 증가, 어떻게 봐야할까?”(2016.12.26)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7932 , “개신교 인구는 감소했다”(2017.01.02)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8019
[4] 구권효 “[2015 결산5] 교인17만 명 감소, 13만이 예장합동: 한국교회 주요 6개 교단 교세통계… 목사, 교회는 조금씩 증가” (2015.12.31) “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1196 , 이용필, “목사가 차고 넘치는 시대: 예장통합 목사 27년 전보다 4.7배 증가… 2023년까지 꾸준하게 증가 예상” (2016.09.26)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6052
[5] ‘가나안 성도’ 현상은 양희송,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포이에마, 2014), 정재영, <교회 안나가는 그리스도인>(IVP, 2015)를 참고하라.
[6] 기독교윤리실천운동 “201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발표 세미나후기 및 자료집“ (2014.02.05) http://trusti.tistory.com/938
[7] 양희송, “주님의 이름으로 혐오하십니까?” (2016.04.19) http://ichungeoram.com/10363
[8] 한국교회탐구센터, <한국교회 제자훈련 미래 전망 보고서> (IVP, 2016).


양희송
양희송

청어람 대표. 복음주의 운동가. 몇권의 책을 썼지만, 좌우명은 "노는게 제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