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기고] 이랜드에서 받았던 후원금을 청년들에게 돌려주려 합니다

'기독교 기업' 이랜드파크(이랜드)가 아르바이트 노동자 4만4360명에 대한 83억7200만 원의 임금을 체납하여 사회적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뒤늦게서야 이랜드는 공식 사과하며 대표를 해임했지만 분노한 소비자들은 계열사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임금을 체납 당한 당사자들은 고용노동부에 집단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기독교 기업'을 표방하는 이랜드의 이런 상습적 기만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 사태를 지켜보던 대학생 선교단체 간사가 '운동'을 전개하고 싶다며 청어람 매거진에 기고를 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지향하는 동시대 그리스도인이 함께 고민하면 좋으리라 판단하여 싣습니다. -편집자 주

저는 한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는 황선관이라고 합니다. 저는 대학생 선교단체 간사로 사역하며 지난 3년 간 이랜드 그룹 산하 단체 ‘아시아미션’을 통해 매월 20만 원씩 총 720만 원의 후원금을 받았습니다(현재는 신학 연수 중입니다). 비영리단체인 ‘아시아미션’은 이랜드 그룹에서 발생한 수익의 일정 부분을 주로 해외 선교사들에게 후원했고, 몇 년 전부터는 기독청년연합 단체인 학원복음화협의회 소속 대학생 선교단체 간사들에게까지 후원 범위를 확대했습니다. 즉, 개별 단체에서 ‘아시아미션’에 후원 요청을 해서 이뤄진 게 아니라, ‘아시아미션’이 주도적으로 대학생 선교단체 간사들을 지원해온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중 한 명으로 혜택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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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alinasofia/4375318035

저는 이 후원금을 진짜 주인들에게 돌려주려 합니다.

최근 뉴스를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된 것처럼 이랜드 파크 외식 사업부(에슐리, 피자몰, 자연별곡, 로운샤브 등)에서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 마땅히 지급해야 할 연차수당, 휴업수당, 연장수당, 야간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근무시간을 15분 단위로 기록하는 이른바 ‘임금꺾기’로 이랜드파크 노동자 4만4360명에 대한 83억7200만 원의 임금을 체납했습니다. 결국 제가 ‘선교비’ 명목으로 후원받았던 돈은 본래 이랜드 파크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몫이었습니다.

2017년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대부분 처절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부모 잘 만나는 능력을 갖춰서 말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청년도 있지만, 또 다른 이는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현장에서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얼마 전, 제가 속한 선교단체에도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안타깝게 사고를 당해서 우리 곁을 떠난 친구가 있었습니다. 비참한 뉴스가 어느새 바로 내 주변의 끔찍한 현실이 되는 세상이고, 우리는 주변의 누군가를 갑자기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늘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시대에 소위 ‘청년 사역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면서 청년들을 쥐어짜서 만들어진 돈을 제 지갑에 넣고 다닐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결심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괜한 공명심이 아닐까?’ 저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처럼 조용히 후원금을 반납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후원 잘 받고 있던 사역자들이 피해 보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다 오늘 읽은 책의 한 부분을 보며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하여”가 되어야 한다. 그 예배와 섬김의 첫번째 요소로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은 바로 창조세계를 돌보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라이트, <하나님 백성의 선교> 61p

저는 선교가 복음의 메시지를 말과 글로만 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책의 내용처럼 예배와 선교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돌보는 총체적인 사역입니다. 그 창조세계를 돌보기 위한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저는 이랜드에서 받았던 후원금을 부당하게 착취당했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과 비슷한 세대의 청년들에게 돌려주고자 합니다. 제가 받았던 후원금은 제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동 계약 시간 이상을 저당 잡혀가며 살아내야 했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과 우리 시대 청년들의 몫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이랜드에서 받았던 후원금을 앞으로 6년 동안 매월 10만원씩 민달팽이 유니온이라는 청년주거권 보장 운동 단체에 후원할 생각입니다. 민달팽이 유니온은 새롭게 주거 취약계층으로 떠오르는 청년들의 당사자 연대모임입니다. 주로 청년들의 주거권을 위한 정책을 계발하고, 민달팽이 협동조합 등을 통해 청년들 스스로 주거 불평등을 줄여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2011년에 시작되어 이제 만 5년이 된 신생단체지만 의미 있는 정책들과 운동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저와 같은 마음을 품게 된다면 각자의 방식대로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학비 마련이 시급한 학생들이 있다면 그들을 후원하셔도 좋고, 연령 제한으로 인해 공공보육 시설에서 나와야 하는 18세 청년들을 지원해도 좋을 듯합니다. 보육 시설에서 나올 때 그 청년들은 국가로부터 500만 원의 보조금만 받고 사회로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18세 청년이 부모의 도움 없이 500만 원을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살아남는 건, 마냥 고통을 견디는 시간일 겁니다. 외딴 골목의 어두운 곳에서 힘겹게 버티는 청년들과 함께 고통을 나눠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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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brian_einarsen/2684930046

저는 이랜드라는 기업집단을 증오하기 위해서 이런 운동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 운동을 고민했을 때 주변에 한 지인은 그동안 받았던 후원금을 10원짜리 동전으로 바꿔서 이랜드에 반납해보라고 제안했었습니다. 일종의 ‘모욕’을 선물하자는 취지였죠. 저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시아미션’ 실무자들이 가진 선교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여전히 믿습니다. 그러나 동기와 목적의 순수함이 불의한 과정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랜드라는 기업을 조준해서 제 안에 쌓인 분노를 푸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에는 명암이 있듯이 이랜드가 한국 사회에 보여준 순기능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선교에 위배되는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선교비를 여전히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여기는 게 옳을까?”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 유난스럽다고 여기실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랜드의 한 계열사에 벌어진 일을 이랜드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조차도 그런 생각을 했으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좀 유난스럽게 살아야 할 때가 아닐까요? 더불어 이랜드에게도 유난스럽게 요구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그래야 세상이 한 뼘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요? 최근 대한민국이 겪는 혼란은 유난스럽게 원칙을 지켜야 할 문제를 효율성이나 관행의 영역으로 치부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닐까요?

지난 몇 달을 “이게 도대체 나라냐?”고 한탄하면서 지냈습니다. 일상이 무력해지고, 문득문득 무릎에 힘이 빠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땅이 무너져 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그리스도인들이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멋진 말의 소비자로서만 수동적으로 존재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성령의 역사는 교회 안에서만 일어날 것입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불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개혁된 교회의 마땅한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저는 왜곡된 호의를 거절하고, 부당한 경로를 거쳐 받았던 것이 있다면 되돌려주면서 주변을 정돈해보려 합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곳들을 열심히 쓸고 닦다 보면 세상은 조금 더 맑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또 하루하루를 살아보려 합니다.


황선관
황선관

죠이 선교회 간사. 현재는 아내 김은형, 아들 황도하와 함께 캐나다 밴쿠버에서 신학 연수 중이다. 한 가지를 꾸준히 잘 못하는 성격인데, 간사는 성격에 비해 오래 하고 있다.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고 주장하며 ‘대충의 힘’을 설파하며 살고 있다. 두어 개의 잡지에 연재를 했었고, 책을 한 권 내려다가 출판사에 까이고 와신상담 재기를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