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한번 잡솨봐] ‘미국의 반지성주의’ 외 5권

청어람 매거진이 소개하는 기독교 신간. 기독교 신간을 선별하여 책을 지은 마음, 책에 담긴 온기까지 독자에게 고스란히 소개한다. 책 제목을 클릭하면 구매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옮김, 교유서가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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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에 퓰리처상을 탔다니 벌써 50년이 넘은 책인데, 이 분야의 고전이 이제야 소개된다. “내가 ‘반지성적’이라고 일컫는 태도나 사고에 공통되는 감정은 정신적 삶과 그것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의심이며, 또한 그러한 삶의 가치를 언제나 얕보려는 경향이다.”(25) 저자는 미국 독립전쟁 이후 타올랐던 복음주의적 부흥 운동이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를 미국인의 성정에 깊고도 깊게 새겨놓았다고 본다. 진리는 지식인들의 지적 고투를 통해서가 아니라 대중의 직관적이고 열정적인 추구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었기에 지성을 신앙의 장애물로 간주하고 부정하는 태도가 대중화되었다. ‘보통사람’의 상식과 직관을 중시하는 반지성주의적 태도는 이렇게 부흥 운동이란 종교적 기원에서 출발하여 대중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통해 구조화되었다.

실용적 측면에서 지식을 사용하는 전문가 집단과 달리 비판적 사고를 구사하고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하는 지식인들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위협으로 종종 간주되었다. 미국 사회의 문화 역시 실용성을 중시하고, 이를 확대/심화 시키는 교육제도 등을 통해 반지성주의는 미국인의 심성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 이 책의 진단이다. 즉, 미국에서 반지성주의는 일탈이 아니라 매우 미국적 특질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이번에 트럼프가 워싱턴의 권력을 힐러리 같은 잘난 엘리트들에게서 되찾아와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는 끊임없이 이런 미국 대중들에 내재한 기층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오늘날 반지성주의의 다양한 변종은 전 세계적으로 출몰하고 있다.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므로, 호프스태터를 다시 불러내어 찬찬히 이 현상의 한국적 해명을 시도해야 할 때가 아닐까? -양희송 대표

<에스더서로 고찰하는 하나님과 정치>, 요람 하조니 지음, 김구원 옮김, 홍성사 펴냄

<구약성서로 철학하기>(홍성사)에서 구약의 ‘철학적 이해’를 시도했던 요람 하조니의 후속작이 번역/출간되었다. 저자는 <구약성서로 철학하기>에서 구약 성서(정확히는 히브리 성서)는 히브리인들이 자신의 역사를 성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성적 저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신앙의 눈으로만 구약을 볼 것이 아니라 철학적, 역사적, 정치적 교훈을 담은 인문학적 저술로 구약을 보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계시’로서 신약과 구약을 믿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표현일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를 조화롭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관점이기도 하다.

하조니는 이제 <에스더서로 고찰하는 하나님과 정치>를 통해 히브리 성서가 ‘이성의 책’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더욱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혹은 ‘기적’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에스더서의 이야기가 사실은 치밀하게 계획된 정치적 노력의 결과였으며,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능동적 실천의 조화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계획과 전략에 주목하는 점이나, 하나님의 역사와 더불어 인간의 현실 정치적 노력을 강조하는 식의 포인트는 어떤 면에서는 매우 뻔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요람 하조니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매우 탄탄하고 치밀해 읽는 재미가 크다. ‘인문학적 성서읽기’라는 시도들이 흔해지면서 오히려 식상한 느낌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경험한 매우 신선하고 즐거운 독서였다. -박현철 연구원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침묵>, 디아메이드 맥클로흐 지음, 배덕만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CLC) 펴냄

영국의 교회사 학자인 디아메이드 맥클로흐는 교회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 획기적인 폭과 매력적인 깊이를 보여주는 학자다. 그의 역작인 <3천년 기독교 역사 1~3>(기독교문서선교회(CLC))는 서방기독교 중심, 유럽 사회 중심의 ‘교회사’를 넘어선 ‘기독교 역사’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침묵>은 ‘침묵’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를 역사적으로 추적한 책이다. 맥클로흐 특유의 넓이와 깊이로 ‘침묵’이라는 낯설고 신비로운 주제를 둘러싼 기독교의 다양한 결을 펼쳐 보여준다. ‘침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수도원이나 영성 전통, 신비주의 전통, 부정 신학이나 퀘이커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소개함은 물론이고, 기독교의 말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노예들, 강제 개종자들,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까지 발굴해 ‘침묵의 배후’에 있는 아픔까지 드러낸다. 말과 글이 권력인 역사를 거스르며 ‘침묵’을 통해 구원을 발견한 이들, 또한 ‘말하지 않음’으로 말을 부끄럽게 해 온 이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바르게 말하고 있는지, 또 바른 침묵을 구비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단 한 가지 사소한 아쉬움이라면 제목의 번역인데, 차라리 ‘침묵과 기독교의 역사’라고 하는 게 더 직관적으로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제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박현철 연구원

<교회 – 왜 교회에 가야 하는가?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존 프리처드 지음, 한문덕 옮김, 비아 펴냄

책을 보는 순간 부제를 제목으로 삼았으면 더 잘 팔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번뜩 들었다. 정도의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저 질문이야말로 요즘 많은 성도가 정말 궁금해하는 질문이 아닐까? 그간 교회에 관해 진지하고도 방대한 수많은 책을 쓴 저자들은 교회에 관한 질문이 이렇게 단순해질 줄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교회>는 무척 사려 깊으면서도 영리하게 교회에 관한 질문에 응답하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존 프리처드는 전작 <기도>에서도 현대인들의 영적 필요에 눈높이를 맞추어 편안하게 ‘기도’라는 주제를 설명한 바 있는데, 이번 <교회>에서도 현대인들이 교회에 느끼는 어려움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교회에 가지게 되는 기대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그래도 교회가 필요함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교회를 주제로 한 완결된 신학적 통찰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책이고, 교회의 본질이니 개혁과제니 하는 것들을 찾는 열혈 독자들(?)에게도 썩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여전히 교회에 다니기는 하는데 내가 왜 다니고 있는지 길을 잃었다고 느끼거나, 교회에 한번 가볼까 하는 고민하는 마음이 많이 열린 비신자들(?)에게 딱 적합하고 친절한 책이다. -박현철 연구원

<현명한 피>,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허명수 옮김, IVP 펴냄

플래너리 오코너의 <현명한 피>는 기묘한 소설이다. 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로서는 이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고, 그녀가 대표한다는 남부 고딕 양식이라든지, 그로테스크한 문체 같은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첫 몇 장을 넘기면서 이내 이 작품이 가진 기묘한 매력에 사로잡혔다. 평범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이야기의 모든 것이 묘하게 어긋나 있는 느낌이랄까.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기독교의 언어들이 때로는 살짝, 때로는 극단적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면서 거기서 오는 묘한 불편함이 나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게 했다. ‘그리스도 없는 교회’를 전하는 목사. ‘맹인이 보지 못하고 절름발이가 걷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죽은 채 있는’ 그의 교회. 그의 교회는 거기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지금 여기에도 존재하는 것일까? 솔직히 재미있고 술술 읽히는 소설은 아니고 따뜻하고 교훈적인 ‘신앙소설’을 생각하면서 책을 집으면 당황스럽다 못해 불쾌할 수도 있는 책이지만, 신과 인간, 종교의 의미, 구원과 죄의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은 더 고민하며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박현철 연구원

<중동선교의 시작과 끝을 묻다: 도발적인 이슬람 선교 읽기>, 김동문 지음, 대장간 펴냄

이 책은 한국교회의 주목을 요한다. 중동선교 영역에서 종종 접하는 공격적 이슬람포비아에 일관되게 교정 작업을 수행해온 김동문 선교사가 주로 중동문화를 소개하였던 이전의 책들과 달리 이번에는 ‘중동 선교’를 직격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와 선교 헌신자들이 궁금해하는 실제적 이야기가 한가득 들어있다. ‘믿음선교와 무대책은 다르다’, ‘비전트립, 땅이라도 제대로 밟는 땅밟기 하자’, ‘지금 이 자리가 빠진, 세계 선교를 다시 생각하자’, ‘이슬람권에서 사역하면 이슬람 전문가?’, ‘백 투 예루살렘? 복음의 서진은 오해이다’ 등의 질문에 답하는가 하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임을 당한 김선일 형제 사건 등에 대한 소회도 포함하고 있다. 책의 중반 이후에는 중동 문화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실제적 팁들을 소개하고, 국내의 이슬람 현황을 꼼꼼히 짚어주며 오해와 왜곡을 피하도록 돕는다.

그의 책은 당위론 가득한 이론서가 아니고, 배낭여행 나갈 때 현지에서 바로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가이드북 같이 ‘중동선교’에 대한 실제적 이해와 정보를 꼼꼼히 담고 있다. 이런 실사구시적 선교 서적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와 언어를 섭렵하고, 게다가 저널리스트의 감각까지 갖춘 ‘선교사’는 자주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드문 조합의 책을 이번에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양희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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