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 “페미니즘은 새로운 종교개혁이다” – 백소영, 페미니즘이라는 ‘지도’를 권하는 이유

사회는 ‘페미니즘 부흥기’를 맞이했지만, 교회는 길을 잃었다. 강단에서는 여성혐오적 설교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도 모자라 남성 성도 및 목회자 성범죄 소식은 지긋지긋하게 반복되고, 일부 교단은 성경을 앞세워 ‘여성 목사 안수 불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교회는 남성 가부장 중심의 견고한 체계의 강력한 수행집단이기도 하다. 교회야 말로 페미니즘이 가장 필요한 곳이 되었지만 페미니스트의 길과 신앙인의 길을 걷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의 질문과 고민은 깊어만 간다. 이 ‘어긋남’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는 과연, 페미니즘을 통해 갱신할 수 있을까? 청어람은 이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새로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백소영 교수와 함께 6주간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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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청) : 최근 몇 년 사이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페미니즘에 관한 논의가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자신의 언어를 찾기 위해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여성혐오 문제 등 다양한 성평등 이슈에 관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교수님께서는 꽤 오랫동안 페미니즘적인 문제의식을 가진 기독교사회윤리학자로서 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데 최근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고 계신 가요?

백소영(백) : 페미니즘 1기, 2기, 3기 흐름을 다 배우고 나면 재미있는 걸 발견할 텐데요. 중간에 30년씩 쉬는 시기가 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확 확산하는 시점이 찾아온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20대 혹은 30대의 젊은 여성들은 굉장히 새롭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아까 강남역 이야기도 했습니다만 ‘여성혐오’라는 이슈가 부각되면서 운동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인데 솔직히 말하면 여성혐오는 가부장제 5,000년 동안 지속되어왔고, 이전의 혐오는 더 심했죠.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여성들이 그런 걸 특별히 참지 못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전근대나 근대 중기까지의 여성들은 그 혐오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나를 혐오할지언정 감히 주체로서 ‘미러링’을 한다던가 저항을 할 수 있는 권위를 스스로에게 부여하지 못했죠. ‘걸크러쉬’라는 말도 있지만 2030세대는 후기 근대사회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남성 여성 차별 없이 똑같이 공교육을 받고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능력 뿐 아니라 장을 가져봤던 여성들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가부장적인 문화와 응시를 견뎌내기 힘든 거죠. 너무 낯설고. 부당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여성혐오가 유난히 부각됐다기보다는 그것을 여성혐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주체들이 준비되었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청 : ‘그것을 여성혐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주체들이 준비되었다’는 걸 조금 더 풀어서 말씀해 주신다면…

백 : 이론으로는 훨씬 이전에 주로 아카데미 안에서 움직였지요. 그런데 그게 대중화를 못 했죠.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1977년에 이화여대에 여성학과가 생기고 페미니즘이 하나의 이론이 되면서 ‘학교 안의  학문’으로 자리 잡으면서 말들이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학술적 용어가 많아지고 그래서 아카데미 안에서의 활동으로 규정되다 보니 대중화에 실패하게 된 요인이 하나 있고요. 두 번째는 모든 혁명이나 개혁은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많을 때 일어나는 것 같아요. 적어도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페미니즘적인 사고를 요구한 여성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이죠. 이제는 대중 안에서. 상황이 바뀐 것이고 다른 세대보다는 주체가 많아져서 ‘리부트’ 즉,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청 : 이런 맥락은 기독교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저는 교회를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 언니들을 만나지 못했거든요. 저도 요즘 이런 사회적 흐름이 당혹스러우면서도 신선하고, 한편으로 “나는 왜 교회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듣지 못했을까?” 아쉬워요.

백 : 그런 이야기를 했던 교회 언니들이 스스로 나갔거나 쫓겨났기 때문이겠죠. 신앙을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한 선배들이 많았어요. 2000년이 넘는 기독교 역사에 군데군데 있었어요. 페미니즘이라는 운동성을 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지점에서도, 제가 대학생활을 시작한 1987년 무렵에도 많은 크리스천 대학생들이 교회 안에서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신앙을 풀어내는 걸 시도해보기도 했어요. 그러나 말 그대로 수가 적었고, 권위를 부여받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굉장히 많이 불신앙-반신앙의 길로 들어선 것이죠. 연령도 어렸고 힘도 약했기에 결과적으로는 싸우기보다는 나가는 결정을 한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강의하면서 소개하겠지만 메리 데일리(Mary Daly)라는 여성 신학자는 <교회와 제2의 성>이라는 책을 쓸 때 초판을 쓸 때만 해도 가부장적인 기독교 전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살아있는 신앙. 이 두 가지를 분리해보려고 노력했는데 결국은 굉장히 강한 시스템에 부딪히다 보니 3판 쓸 때쯤에는 이런 이야기를 써요. “나는 이제 초월한다.” 그러면서 떠나는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많았어요. 제가 직접 본 것도 있었고요. 아니면 저처럼 아예 ‘교회언니’로 남는 경우에는 “아직 때가 이르구나.” 생각하면서 조용히 입을 다문 경우였죠.

청 : 지금 제 주변에는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자매들이 많은 것 같아요. 페미니즘을 받아들여 페미니스트로 살겠다고 정체화하지만 앞선 세대 언니들처럼 교회를 떠나기는 싫고 뭐라도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럼에도 교회는 굉장히 닫힌 구조고 깨인 여성들과 달리 교회는 문제의식을 공유할 공간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서해석 등 페미니즘과 신앙이 대치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오해도 있고 페미니스트의 길과 그리스도의 길 사이에서 고민하는 자매들이 많은데 페미니즘과 신앙,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

백 : 공존이라. 예수님도 그분이 자라오신 유대교라는 틀이 다 담을 수 없는 해방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이야기하시다가 틀 밖으로 터져 나오는 힘을 우리에게 전해주신 거잖아요. 그게 기독교라는 종교에 담긴 거고.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만 루터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평신도들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아마 그 이전의 가톨릭 신앙을 가진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을 거예요.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계급이나, 특정 인종, 특정 성별로 제한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유한성이 그런 것을 제한해 왔던 것이잖아요. 그것을 넘어서는 운동이 기독교 안에도 계속 있었던 것인데. (페미니즘을) 일종의 새로운 종교개혁, 새로운 기독교개혁으로 보면 될 것 같아요.

500년 전 종교개혁은 목회자뿐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사제의 권위를 부여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죠. 이제는 성경이 남성 지도자들에 의해서 쓰였다는 건 인문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다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동시에 그게 반드시 자기만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도 인정하게 되죠. 신앙인의 경우 ‘계시’라는 말을 씁니다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받은 말씀이 있다는 것이죠. 그 받은 말씀이 성경에 들어있거든요. 다만 그것만 들어있는 것은 아닌 거죠. 제가 이 주제를 이야기할 때 ‘씨줄 날줄’이라는 표현을 씁니다만, 성경이라는 텍스트(씨줄)에 관해 받아 적는 남성 신학자들도 미처 몰랐고, 그걸 해석하는 사람들도 본인의 경험 안에서 제한하고 놓쳤던 부분들, 묻혀있던 부분들을 여성의 경험과 시각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날줄)고 봐요. 그게 페미니스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죠.

한 여성 신학자는 그것을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이야기했어요. ‘열 드라크마의 비유’를 보면 하나 잃어버린 것 찾으려고 한 여인이 샅샅이 방을 뒤지잖아요. 그런 시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시선이 바로 그런 시선이라고 해석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로서) 우리가 생각하는 일이 불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가려져 있거나 제약 때문에 터져 나오지 못한 진리의 말씀 혹은 생명의 빛, 해방의 역동성을 성서 안에서 찾아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충분히 용감해져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청 : 용감해져도 된다는 말이 힘이 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막막하기도 한 것 같아요. 어떻게 용감해지지? 뭘 해야 하지? 앞선 세대 언니들을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고 또 지금은 일반 영역에서 페미니즘을 많이 접하지만, 신앙 영역에서는 뭘 읽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교회에서는 어떻게 대화를 시도해야 할지… 다양한 방법이나 실천과제들을 잘 몰라서 막연해하기도 하는데 선배 언니로서 다양한 실천 방법을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백 : 우선 청어람에서 하는 훌륭한 페미니즘 강좌를 듣는 것. 지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그 안에서 내가 어떤 부분을 더 깊게 이해할 것인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많이 공부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용기만 가지고 내 맘대로 아무런 기초지식 없이 성경을 읽어내는 게 지적인 면에서는 위험할 수 있는 면이 있으니 공부를 해야죠. 청어람 강좌와 같은 대중 강좌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두 번째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 혼자 싸우거나 큰 교회 안에서 몇 명이 새로운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고 자꾸 소외되죠. 물론 그런 작업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투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자매들의 공동체, 자매들의 모임이 지속 가능할 정도로 유지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한 교회 안에서 되어도 좋고 지역교회 안에서 특별하게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자매들끼리 근처에 있는 카페에 모이든 한 달에 한 번 모이든. 처음에는 생산적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번에 교회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어”같이 하다못해 서로에게 이르는 모임도 괜찮은 것이죠. 혼자서 (그 목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게 맞나?’ 생각하는 것이랑 서로 같이 이야기하면서 ‘옳지 않다’는 것을 공유하는 것은 되게 다르거든요. 자매들의 연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서로 덜 힘들어할 수 있는 부분이 될 것 같고요.

그리고 특히 너무 ‘선생님 같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페미니즘 관점의 성경 읽기를 시도해보라고 초청하고 싶어요. 본인들끼리 하기 어려우면. 요즘에는 교재도 많이 있고 혹은 전공했던 분들을 모셔도 좋고요. 페미니스트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다른 어떤 것이 보이는지 경험하게 되면 굉장히 재밌어요. 마치 보물찾기처럼. 그런 방식으로 작은 움직임들을 해나가다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Photo

청 : ‘자매님’들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형제님’들이나 교회 구조에서는…

백 : 저는 페미니즘은 여자만 해방시키는 게 아니라 남자도 해방시킨다고 생각해요. 그 의미를 잘 모를 때는 ‘말이 되는 소리냐’ 하면서 반항하기도 할 테지만 저는 페미니즘을 이렇게 정의해요. “페미니즘이란 아직 이 땅의 테이블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사람들, 자기 삶의 의미를 한 번도 공적 담론으로 이야기해보지 못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경험과 시각을 반영하자는 주의다.”

어떤 면에서 지금 교회 남성뿐 아니라 요즘 후기 근대사회에서는 세대 불문, 성별 불문 삶의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죠. 점점 존재의 가장자리를 향해서 벼랑 끝으로 몰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미 있는 기존 시스템에서 그런 식으로 삶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걸 만드는 데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거든요. 그런 게 페미니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남성들조차.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이 시스템의 피해자예요. 왜냐하면 ‘남자답다’ 혹은 ‘남성성’도 ‘여성성’만큼 되게 획일적으로 정해져 있잖아요.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혹은 그런 방식으로 사는 게 본인에게 좋지 않은 남성들도 얼마든지 많거든요. 이런 것을 같이 공부하고 공유해나가면서 획일적인 여성, 남성 보다는 하나님이 지어주신 개개인의 매력적인 장점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 그걸  공유하게 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걸 저는 페미니즘이라고 보거든요. 하나님이 창조해놓으신 창조질서 그대로의 삶을 고무시키는 그런 ‘-이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성들도 두려워할 문제가 아니고요. (페미니즘을) 배우고 함께 참여하다 보면 자기 자신도 들여다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페미니즘을 창조하시지는 않았지만, 페미니즘이 굳이 만들어지지 않아도 될 만큼의 자유롭고 굉장히 열려있는, 서로를 향해 제한이 없는 사회를 만드셨는데, 그 사회와 특정 인간들이 ‘우리’라는 자기만의 그룹을 확장하기 위해 이상한 틀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그 틀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모아서 시선을 다시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 저는 그게 페미니즘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본다면 기독교는, 하나님은 그런 시각(페미니즘)을 계속 지지하고 있지 않나 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청 : 이번 강좌에서는 주로 ‘페미니즘’의 어느 맥락을 다루실 예정인가요?

백 : 개괄되는 강좌이기 때문에 깊이보다는 (구슬 꿰듯) 꿸 수 있는 강의를 준비해봤어요. 페미니즘이 하나의 운동이면서 이론화되는 작업 속에서 어떻게 흘러왔나… 대충 1기, 2기, 3기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패러다임 면에서도 자유주의, 사회주의, 래디컬 진보적인 페미니즘, 요즘에는 사이보그, 과학과 페미니즘이 연결된 그런 흐름도 있는데요. 전반적인 흐름을 패러다임별로, 시기별로 한번 훑어보는 게 1-2강이 될 것 같고요.

그리고 3강, 4강, 5강에서는 기독교 안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전개됐는지를 공부하고 싶어요. (페미니즘이) 하나의 이론으로 등장한 건 1960년대 이후거든요. 저는 이전 역사, 즉 전사부터 다루고 싶어요. 왜냐하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 안에서 하나의 영혼으로서 주장했던 여성들이 있었거든요. 그분들의 입장을 소개하고 싶고 그런 운동과 이론으로 나타나는 60년대 말 이후의 운동을 소개하면서 기독교 페미니즘을 소개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들이 해석하는 여성의 입장, 경험에서, 여성이 주체로 읽을 때 남성이 쓴 성서는 어떻게 재해석 될 수 있나. 혹은 기독교의 전통은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나. 주제를 살펴보는 강의가 될 것 같아요. 이걸 듣다 보면 어떤 면에서는 서로 부딪히는 부분이 있겠죠. 그런 것 때문에 서로 흔들리긴 하겠지만 그러면서 자란다는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난 후 마지막 6강에서는 요즘 페미니즘이 여러 각도에서 ‘물 들어오는 시기’인데, 크리스천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21세기 소위 ‘교회 언니’들이 어떻게 신앙과 페미니즘을 함께 잡고 오늘날의 숙제를 해나갈 수 있을까 사회윤리학 전공자의 시각에서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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