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한번 잡솨봐] ‘루터의 재발견’ 외 5권

청어람 매거진이 소개하는 기독교 신간. 기독교 신간을 선별하여 책을 지은 마음, 책에 담긴 온기까지 독자에게 고스란히 소개한다. 책 제목을 클릭하면 구매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다.

<루터의 재발견>, 최주훈 지음, 복있는사람 펴냄

‘한국교회’의 질문을 가지고 루터와 500년 전 상황을 파고드는 시도는 올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다들 기념할 뿐, 계승이나 재현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그럴 줄은 알았지만 확인하고 보니 실망스럽다. 부질없는 황사들 흩날리는 사이로 루터 책 하나가 독보적으로 등장했다. 2016년 가을 청어람에서 ‘루터의 재발견’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5주간 진행했다. 나는 그 강좌를 기획하며 쓴 글 ‘우리가 루터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이유’ 에서 “첫째는 칼뱅파만 넘치고 루터파는 거의 없기 때문, 둘째는 루터의 저작을 읽을 기회가 극히 드물기 때문, 셋째는 루터 읽기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공백은 이 책으로 상당 정도 메워질 것으로 기대한다.

루터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루터교 목사가 한국교회를 염두에 두고 최근까지의 성과를 섭렵해서 강연으로 풀어내었다. 책은 강연 내용을 더욱 정연하게 다듬었고, 사진과 참고자료가 보강되어 만듦새가 단단하다. 그렇기에 감히 “우리의 루터 이해는 여기가 최전선이다”라고 추천사에 쓸 수 있었다. 우리가 그간 루터도 모르고, 종교개혁도 잘 모르고 있었다면 올해 500주년은 무엇하자는 것이 될까 심히 궁금하다. -양희송 대표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 김승철 지음, 비아토르 펴냄

아마 엔도 슈사쿠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테지만, 안다 하더라도 (영화 때문에 더 유명해진) <침묵>만 읽어본(혹은 들어본)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침묵>이 우리에게 주는 묵직한 느낌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엔도 슈사쿠를 위대한 문학가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평생 50여 편의 작품을 통해 탄탄하게 구축한 엔도의 작품세계를 생각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많은 번역과 연구, 관심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나도 <침묵>에 겨우 <깊은 강> 한권을 더 읽었을 뿐인데, 끈질기게 신과 구원의 문제를 천착하는 엔도 슈사쿠의 다른 작품에 대한 동경이 늘 마음 한편에 있다.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은 저자 김승철 교수가 평생 읽고 탐구해온 엔도 슈사쿠의 문학 세계를 집대성한 책이다. 물론 작가와 작품에 ‘관한’ 책이 작가의 작품 자체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거장의 문학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작가의 문학세계 전체를 그려주는 책이기에 내용이 꽤 방대하고, 술술 읽히는 책도 아니다. 하지만 읽을수록 엔도 슈사쿠의 소설을 읽어보아야겠다는 마음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책이니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엔도 슈사쿠를 읽어나가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박현철 연구원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 기타모리 가조 지음, 이원재 옮김, 새물결플러스 펴냄

20세기 중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신학계는 ‘하나님의 아픔’에 대해 주목하여 논하기 시작했다. 이런 논의는 일차적으로 세계에 존재하는 고통과 악에 관한 질문들을 향한 하나의 응답이 되었고, 근본적으로는 신론 자체를 재고하게 하는 신학적 전회가 되었다. 나는 위르겐 몰트만과 도로테 죌레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아픔’에 관해 소개받았는데, 그들에게 중요하게 인용되는 일본인 신학자 기타모리 가조의 이름과 그의 책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기타모리 가조는 이 책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아픔으로 우리 인간의 아픔을 해결하여 주는 하나님이시다’는 명제를 전통 신학과의 대화 속에서, 일본 사상과 일본인들의 현실과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성서와의 대화 속에서 치밀하게 풀어낸다. 40년대에 처음 발간된 책이고 이미 이 책의 내용은 여러 신학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기에 지금 와서는 내용이 크게 신선하다거나 새로운 통찰을 준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대의 고전으로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또한, 패전과 종전의 경계에서 ‘아픔’에만 집중한 이 책은 오늘의 시각으로 비판적으로 읽어볼 여지도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내용과 신학적 의미뿐 아니라 꼼꼼한 번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책의 본문뿐 아니라 거듭 발간된 6개 판의 서문을 모두 실었고, 저자 자신의 해설과 역자의 꼼꼼한 해제까지 실어 완성도를 크게 높였다. 특히 역자의 해제는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뿐 아니라 일본 신학자로서 기타모리 가조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주어 매우 유용하다. -박현철 연구원

<로마서>, 칼 바르트 지음, 손성현 옮김, 복있는사람 펴냄

““잘 들어. 20세기 초반에 스위스에 칼 바르트라고 있어. 칼, 바르트. 이 분 내공이 절정고수야. 이름부터 ‘칼’이잖아. 날카롭거든. 당대 유명한 신학자들에게 다 배웠거든. 20대 때부터 퐉 날렸어. 똑똑하다고. 근데 이 양반이 목회하면서 세상을 보니까 이게 아닌 거야. 빡친거지. 자기 스승들이 국가 권력 주변을 맴돌다 나중에 보면 다 히틀러 ‘따까리’를 하게 되거든. 신학자가 하나님 이야기하다가 권력자 앞에서 굽실거린다? 그건 용납이 안 되지. 심지어는 독일교회가 똥오줌을 못 가리는 걸 몰라. 신학으로 정당화를 하고 있어. 입으로 똥을 싸는 거지. 바르트 성질이 대단해. 이것들이 다 미쳤나, 이런 생각을 한 거야. 성경을 막 뒤져. 일단 신약에서 막 뒤져. 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책이 뭐야? 독일은 종교개혁 한 나라잖아. 그러니까 바울. 그중에서도 제일 양도 많고, 내용도 어려운 거, 로마서. 그걸로 승부를 봐야 하거든. 딴 거 다 필요 없어. 제일 쎈 걸로 붙어야 해. 그게 결정적 한 방이거든. 그런데 바르트 근성이 장난 아니거든. 초판 쓰고 나서 2판을 완전히 새로 쓰는데 이걸 11개월간 ‘술 취한 사람처럼’ 썼다잖아. 이후에 자기 스승들을 개박살을 내지. 저것들이 예수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른다고. 아돌프 폰 하르낙! 똭 잡고. ‘자유주의’ 뽝. 히틀러 똘마니나 하고! 뽝. 교회가 그게 교회냐! 뽝. 아주 지랄들을 한다! 뽝!!!””

한국교회가 ‘신학 깡패’ 바르트를 오래도록 피해 다녔는데, 막다른 골목에서 만났다, 줄초상이라고 본다. 바르트 읽기 딱 좋은 시절이다. 1,100쪽에 60,000원이다(출판사, 책을 이리 두껍고 비싸게 만들면 못 사 읽을 줄 알았나?). -양희송 대표

<사막 교부들의 금언>, 베네딕다 지음, 허성식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사막 교부들의 금언>은 3세기 이집트 북부의 사막에서 오직 기도에 전념하며 모든 것 중에 가장 귀한 하나님만을 추구한 은수자들의 기도와 수행의 결과물이다. 기독교 영성의 큰 줄기 중 하나라 할 수 있지만, 체계적 저술을 거의 남기지 않았던 이들의 금언집(sayings)은 오랫동안 영적 독서의 교본으로 널리 읽혀왔다. 독서는 이성적 행위이기도 하지만 감성적 행위이고 또한 영적 행위이다. 특히 신앙/신학 서적의 독서는 그 자체로 기도가 되고, 영성 훈련이 되는 일종의 수행이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 ‘독서’라는 행위가 가진 오랜 속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이것을 놓치고 머리의 일로서만 독서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 책에서 만난 한두 마디의 문장이 화두가 되어 신앙을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키거나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경험이 좀 더 보편적 독서 경험이 되면 좋겠다. 이 가을 <사막 교부들의 금언>과 함께 영적 독서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로 사막 교부들의 금언에 대해서는 아주 초기에 저술된 두 권의 금언집이 있었는데, 하나는 주제별로 구분한 금언집이고, 또 다른 하나는 헬라어 알파벳 순으로 구분한 금언집이다. 이번에 출간된 <사막 교부들의 금언>은 알파벳 순 금언집이고, 한국어로도 몇 권의 번역본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가장 완성도 높고 믿을만한 번역본이다. -박현철 연구원

<그들은 휴머니스트였다>, 하희정 지음, 꽃자리 펴냄

근대 한국 사회에 서구 선교사들의 발자취가 짙게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고, 기독교는 특히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그 자랑스러움이 한국 사회의 보편적 진보와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명예와 자부심으로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축복을 끼쳤다는 일종의 승리주의로 새겨진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보편적 역사의 진보와 공공선에 대한 기여보다 호교론에만 집중한다면 기독교는 보편종교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복음의 통전성과 공공성도 훼손되기 십상이다. 하희정 박사의 <그들은 휴머니스트였다>는 한국 근대에 이바지한 선교사들의 업적들을 ‘휴머니즘’이라는 보편적 키워드로 재해석하고, 그 보편적 가치 덕분에 복음의 사역이 ‘조선의 역사’로 수용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재해석의 과정을 통해 오늘 한국 기독교가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은 어떠해야 하며 그렇게 입에 달고 있는 ‘세상을 섬기는’ 일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에둘러가지 않고 직격으로 묻는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하는 책이다. -박현철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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