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 인문학적 성경 읽기, ‘삼성’이 필요하다 (류호준)

류호준 교수(백석대 신학대학원장)는 자신이 구약학자보다는 성경학자로 불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쉬운성경>의 시편 번역자이기도 하다. 외부 강의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교회와 세상의 경계 선상에 서 있는 이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이번 월례강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인터뷰는 청어람ARMC 양희송 대표가 류호준 교수의 연구실에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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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청) : 얼마 전 <이사야서 I> 책도 내셨고, 이번 강연의 제목이 ‘예언자의 노래’입니다. 어떤 내용을 담아내게 될까요?

류호준(류) : 청어람에서 제목을 정해주셨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김훈의 <칼의 노래>가 떠올랐어요. 저는 구약을 가르치는데 그동안 주로 시편을 많이 다뤘습니다. 시가 노래죠. 피를 부르는 노래, 치료하는 노래, 이사야 서에는 ‘고난받는 종의 노래’도 있습니다. 예언자를 말하려면 먼저 ‘예언’이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가 없죠. 예언은 ‘미리 말한다’는 뜻이 아니고, ‘말씀이 맡겨졌다’는 뜻입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맡기신 말씀을 전하는, 당대의 설교자라고 볼 수가 있지요. 그러므로 예언과 역사는 뗄 수가 없습니다. 역사의 위기 속에서 예언자를 보내신 거니까요. 당대의 상황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신탁은 시로 되어 있어요.

청 : 시와 산문의 차이는 뭘까요?

류 : 월터 브루그만도 얘기했지만, 산문은 인습적이고, 밋밋합니다. 목회도 산문일 수 있어요. 영혼이 가출한 상태에서 되뇌는 것이 될 수 있어요. 반면 시는 함축적이죠. 컴퓨터에서 압축파일(zip file)을 받으면 압축을 풀어야(unzip) 하잖아요. 해석자는 그런 작업을 해야 합니다. 시의 언어에는 협박, 천둥·번개, 읍소, 상담, 온갖 것들이 다 들어 있어요. 하나님이 온갖 방법으로 다가오신다는 것이지요.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달리 말해 하나님의 마음 읽기 아니겠어요?

청 : 성경학자의 임무가 그것일 텐데, 한국교회가 성경 읽는 방식은 흔히 큐티식이라고 해서 자신의 마음을 건드리는 구절을 중요하게 묵상하는 방식을 한동안 장려해 왔어요.

류 : 큐티란 말을 처음 듣고서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조용한 시간(Quiet Time)의 줄임말이라고 하더군요. 문제는 큐티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콰이어트’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많죠. 게다가 텍스트를 긴 호흡으로 읽을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짧고, 단문 중심입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한국교회를 향해 ‘제사장적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그분은 ‘예언자적 영성’은 소위 진보교회가 감당하고, ‘제사장적 영성’은 보수교회가 앉아서 기도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신 거지요.

예언자적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입니다. 그것은 정의와 공의의 나라이기도 하죠. 정의와 평화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 결과가 샬롬이고, 번영입니다. 성경에는 정의와 평화가 늘 같이 등장합니다. 편의적 이분법은 통용되지 않습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춘다”는 표현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정의’란 무엇이냐? 구약은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때 늘 등장하는 네 부류의 억울한 사람들이 있어요. 고아, 과부, 나그네, 가난한 자. 이들은 후견인(부모, 남편, 동족)이 없어서 학대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 쉬운 이들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이나, 성령을 보혜사라고 하는 말도 다 이런 의미로 봐야 합니다. 신약의 보혜사를 위로자(Comforter), 상담자(Counsellor)라고 번역하는데, 이때 카운셀러는 상담이란 의미가 아니라, 법정 후견인을 의미합니다.     

청 :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 말고, 평신도들이 교양으로서 신학이나 인문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는 요즘입니다.

류 : 덮어놓고 믿으면 된다는 식의 반지성주의는 곤란하죠. 왜 믿는가, 무엇을 믿는가 등의 근원적 질문은 평신도에게나 목회자에게나 비어있는 것 같아요. 지성은 신앙과 반대가 아닙니다. 성경도 하나님이 누구인지 깊은 앎이 부재해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잘 가르쳐 줍니다. 이제 우리는 정보가 부족하지는 않아요. 인포메이션(information)보다는 포메이션(formation)이 중요해요. 제가 요즘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어요. “하나님은 좌우에 신을 두고 계시다, 구글신과 네이버신이다.” 정보는 찾아보면 됩니다. 그러나 삶과 신앙의 괴리가 너무 심해요. 저는 인문학적 성경 읽기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 핵심은 제대로 읽고, 제대로 쓰고, 제대로 생각하는 것에 있다고 봐요. 포메이션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삼성’ 공화국이라고 묶어서 ‘영성(spiritual)’ ‘지성(intellectual)’ ‘덕성(virtue)’의 세 가지가 포메이션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이 되어야 제가 서있는 카이퍼리안(Kuyperian) 전통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를 모든 영역에서 운동력이 있는 것’으로 고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성경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나니아 왕국으로 들어가는 옷장 문을 통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입니다.

청 : 유머를 즐기시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원래 성격에서 비롯된 건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으신가요?

류 : 사회가 너무 각박하고 언어의 뉘앙스를 이해 못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요. 성경은 시가 많습니다. 이사야서는 본문이 거의 다 시예요. 삶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뭘까? 정형화된 공식을 따라 살려고 애를 쓰는데, 저는 유머 감각이 중요하다고 봐요. C.S.루이스, 프레데릭 뷔히너, 애니 딜라드 등의 글을 오랫동안 읽어오면서 언어의 마력, 매력, 힘이 얼마나 큰지 느껴왔어요. 성경에도 유머러스한 대목이 많아요. 늙은 할머니 사라가 임신했다는 말에 하나님과 사라가 대화하는 장면 같은 대목이 많아요. 인문학적 접근은 텍스트의 장르를 파악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한데, 책은 마치 등고선 없는 지도와 같아서 입체적으로 읽어낼 능력이 없으면 단세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죠.

“앞으로 어떤 저술출판이 예정되어 있느냐”는 질문에 류호준 교수는 “앞으로 5~6권이 줄지어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특히 15년 전에 만들었다는 시편 번역본을 한국교회 성도들과 읽고 싶어 했다. 아쉽게도 우리말 성경은 대체로 시편이 산문으로 처리되어 있기에 히브리 성경의 문학적 구조를 잘 알기 어렵다. 그는 자신이 번역한 <시편>을 들고 성경을 잘 깨우치는 이들이 많이 나오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보였다.

인터뷰/정리 : 양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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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정 : 2018. 3.23 (금) 7:30PM
  • 장소 : 지식방앗간 ‘비밀’ (명동역 3번 출구 5분 거리/서울 중구 퇴계로18길 77 나인후르츠미디어빌딩 2층) [지도보기]
  • 수강비 :  1만원 (청어람 후원자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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