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당신은 왜 부활을 믿습니까? – ‘부활’

<부활 : 왜 부활을 믿는가> 제임스 D. G. 던 지음, 김경민 옮김, 비아 펴냄

이 책의 부제 (원서상으로는 제목), “왜 부활을 믿는가?”는 흥미롭습니다. ‘왜 부활을 믿는가?’ 이는 독자가 해야 할 질문이지 저자나 편집자가 던질 것이 아닙니다. 저를 비롯해 그리스도교를 진지하게 믿고 따르는 이라면 누구나 묻고, 또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예수 부활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부활은 사실인가?’ 또 한 가지, ‘왜 부활을 믿는가?’ 라는 질문은 ‘우리’가 답할 수 있는 성질의 질문이 아닙니다. 이 질문엔 오로지 ‘개인’으로서 응답해야 합니다. 예컨대 ‘지구는 둥글다’라는 주장에 ‘우리’가 그렇다고 답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고 말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조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면 그뿐이지요. 지구는 여전히 둥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가?’ 라는 질문에 ‘우리’의 대답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믿어도 ‘내가’ 믿을 수 없다면 부활은 ‘나’와 아무 상관 없게 됩니다. 그러니 ‘왜 부활을 믿는가?’ 더 정확하게 ‘왜 부활을 믿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궁극적으로 독자가 던져야 할 질문이며 동시에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답해야 할 질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부활을 숙고할 때 우리는 두 가지 문제를 함께 고민합니다. 한편으로는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고 이를 실증적으로 입증할 수 있느냐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부활을 (입증의 결과가 어떤 모습이건) 받아들이겠느냐는 문제입니다. 전자의 문제, 그러니까 예수 부활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여러 신학자의 가장 중요한 작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성서학자들의 정교한 주석, 그리스도교 역사학자들의 면밀한 사료 연구, 조직 신학자 혹은 철학적 신학자들의 믿을 만한 해석을 근거로 예수 부활은 다양하게 증명됐습니다. 부활을 입증하려는 노력이 비단 학자들만의 몫은 아니었겠지요. 후자의 문제, 다시 말해 부활을 개인의 실존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려는 시도 또한 다양하게 펼쳐졌습니다. 시대를 막론한 여러 그리스도교 신비가들, 일선 목회자들, 평범한 일상의 그리스도인들 모두 각자의 체험과 응답을 근거로 예수 부활을 실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부활이 사실로서 입증 가능하고, 이를 실존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이것을 이른바 ‘역사적 부활 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저 두 가지가 잘 맞물려 작동한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한층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로서의 부활과 실존으로서의 부활이 서로를 끌어안기보다 미워할 때가 더 많다는 데 있습니다.

오로지 사실로서의 부활 증명에 매진하는 이들은 부활을 공식으로 설명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과 각 복음서 말미 부활 기록은 물론 나머지 신약성서와 구약성서 및 당대 유대/헬라 문헌과 문화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토대로 부활이 역사적으로 실재했음을 주장합니다. 이들의 작업은 마치 정교한 수학 공식을 정립하듯 역사적 문헌과 정황 증거를 토대로 틀리지 않을 정답을 도출하려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이 공식에 사용된 이른바 역사적 자료들의 역사성은 또 누가 담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따라 나옵니다. 다시 말해 부활의 역사성을 실증한다는 저 기록물들, 바울서신과 복음서는 물론 부활의 직간접적 기록에 관한 역사적 실재성을 과연 누구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성서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주장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며 이들은 부활 공식의 전제부터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얼핏 순환 오류의 굴레처럼 보이지만 오늘날 세계에서는 ‘사실’로서의 부활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생각 또한 커다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실존의 문제로 밀어붙이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도 합니다.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보기보다 나와 공동체의 실존 문제로 환원하는 것이 현대의 문제 나아가 그리스도교 미래에 더욱 긍정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 이들의 핵심입니다. 어느 학자는 부활의 역사적 연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느 학자는 부활의 역사성과 그로 말미암은 고루한 교리 논쟁은 집어치우고 탈-부활 교리로 새 미래를 맞이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일견 매력적인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옳다면 이천 년 전 그 사건 이후로 역사의 곳곳마다 세상과 반대편에 섰던 무수한 그리스도인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그리스도인들, 오늘 부활주일 아침에 눈을 떠 다시 살아보겠다고 결단하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그들이 예수가 실제로 부활했음을 믿고 여기에 자신의 삶을 던졌다는 사실, 그리스도교란 바로 이들의 삶들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왔다는 무거운 사실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부활은 역사 속에서 누군가를 움직였고 지금 여기 우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공식으로서의 부활과 실존으로서의 부활 사이에 갈등은 그 사건을 경험하고 기록한 1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눈이 밝은 독자라면 이 갈등과 대립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부활> 해설과 ‘함께 읽어볼 만한 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각 책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책의 배열 순서입니다. 눈여겨보시길 권합니다).

제임스 던의 <부활>은 멀어진 사실로서의 부활과 실존으로서의 부활 사이의 가교 구실을 합니다. 던은 부활 논의의 가장 핵심 본문인 고린도전서 15장, 네 권 복음서의 부활 보도를 동료 삼아 간결하지만, 매우 면밀하게 논의를 정리합니다. 서신과 복음서 간에 결이 다른 이유, 복음서 간에 불일치와 그 너머의 의미, 그리고 빈 무덤 전승의 역사적 의의와 의문을 담백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던의 <부활>은 비록 작은 분량의 책이지만 가장 첨예한 역사성 입증 논의를 풀어갑니다. 공식으로서의 부활을 하나하나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던은 부활의 사실 입증에만 몰두하지 않습니다. 이 예외적 사건이 그리스도교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사람, 바울을 어떻게 바꿨는지, 그가 부활을 어떻게 실존으로 받아들였는지 살핍니다. 부활을 실존으로 받아들인 이는 바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과 오백여 명의 신자들도 부활을 실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의 부활 경험은 1세기 교회를 일구고 지금도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 경험은 실존적이며 동시에 역사적입니다.

이 책은 매우 작습니다. 따라서 정교하고 상세한 논의를 통해 더욱 강력한 사실로서의 부활 증명을 기대한 독자라면 다소 밋밋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 신앙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실존적 결단을 맛볼 것이라 기대한 독자가 있다면 조금은 허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양자가 서로 대립하는 주제가 아니며,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실재로서 나타났고, 그 실재가 우리의 실존을 사로잡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의 서두에서 부활을 믿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나, 개인의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삶의 여정 어느 순간에 이르면 부활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보류할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던의 <부활>이 당신의 선택을 도울 아주 훌륭한 조언자가 되리라 믿습니다. 두 번 이상 읽으시길 권합니다. 제가 세 번쯤 이 책을 읽었을 때 성령께서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의 부활을 믿기로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당신께서도 이렇게 답하시길 기원합니다.


김형욱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목회학 석사 과정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