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교회사, 낭만과 반성사이 –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

[서평]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 최종원 지음, 홍성사 펴냄, 2018.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가?

‘다시 읽기’는 너무 낡은 주제 아닌가? 암담한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해 과거 어떤 것, 어떤 시대 혹은 어떤 사람을 다시 읽는 시도는 전혀 낯설지 않다. 적절히 과거를 반추하는 작업은 일정 부분 유익하다. 그러나 ‘다시 읽기’는 자주 지나간 호시절을 그리워하는 데 그치고, 당면한 문제에서 고개를 돌리게 한다. 적지 않은 ‘다시 읽기’들이 대개 게으른 작업이 되고 마는 이유다. 서양사 학자이자 교회사 연구가인 최종원이 ‘다시 읽기’를 자신의 책 제목으로 들고 나왔을 때, 그 역시 과거를 낭만화하는 함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종원의 집필 변(辯)을 보자.

주변의 아픔과 고통을 보지 못하고, 공감하는데 둔감해지다 보니 점차 자신들만의 게토를 형성하게 된다. 교회의 역사에서 이럴 때마다 자각 있는 목소리들이 등장하여 외쳤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모두 다 현재의 모습이 바른 모습은 아니라는 문제의식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돌아가야 할 초대 교회는 무엇이며 어떠한 모습인가? 이에 대해서는 합의된 바가 없다. 좀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레토릭으로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존재하지만, 그 실체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 8).

최종원은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구호는 대개 선언만 남고 목표나 방향, 그리고 어떻게 돌아가자는 방법이 결여된 공허한 메아리였다고 진단한다. 교회 역사(교회사)를 돌아보며 ‘다시 잘 해보자’는 구호가 텅 빈 외침이 된 가장 큰 이유를 최종원은 한국 개신교인들이 교회사를 지나치게 텍스트 중심으로 읽고 있다는 점, 나아가 그 텍스트를 서구 역사와 사상에 의존해 해석하고 조합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11). 초대교회에서 중세교회로, 종교개혁을 거쳐 근, 현대 교회로, 즉 교회 역사를 하나의 통일된 흐름으로 보는 것은 교회사를 읽는 가장 손쉬운 방식이지만, 매우 서구 중심의 작위적 설정이란 사실을 간과하지 말 것을 최종원은 촉구한다(11-12). 서구 신학이 설정하고 해석한 교회사의 흐름은 그 역사 기술의 엄밀성 혹은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필연적으로 언어, 인종, 문화의 한계에 직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 중심 교회사를 넘어서 우리 현실, 구체적으로 한국 교회의 암담한 오늘을 끌어안고, 반성하자는 것이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의 목표이다.

초대 교회사의 세가지 맥락

서구 신학적, 인종적, 문화적 인식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그리고 당면한 우리 교회 현실을 반성하기 위해 최종원은 익숙한 방식의 연대기적 서술 방식(교회 발전사 혹은 교리 및 사상사 발전 단계를 시간에 따라 서술하는)을 택하기보다, 사건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배경을 살피고 교회가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했는지 크게 세 가지 맥락으로 설명한다.

첫째, 초대 교회 원형을 탐구하고 모든 것이 불리한 맥락에서 – 변두리 낮은 자들의 종교 운동이자 박해받는 공동체 –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제국을 정복한 승리의 종교가 되었는지 살핀다. 물론 성령의 역사가 복음 전파와 교회 확산을 견인한 대단히 중요한 이유였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나 최종원은 그리스도교가 세계화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과 역사적 맥락이 있었다고 서술한다. 이를테면 로마법과 헬라 철학이 없었다면 당대 복음은 더욱 정교하게 설명될 수 없었을 것이다 (62-63). 그러나 사건이 출현하게 된 토대는 어디까지나 토대일 뿐 사건을 일으키는 주체는 분명 사람이다. 간헐적 박해에서 대규모 박해로 이어진 300여년의 시간동안 로마 제국 내 그리스도교인들은 어떻게 신앙을 지키고 교회 공동체를 지킬 수 있었는가? 최종원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인종주의를 넘어서는 담대한 선택을 주목한다. 유대교의 역사 필연적 인종주의와 헬라의 문화적 인종주의를 극복해 인종, 계급, 문화, 성별의 벽을 넘어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환대한 초대 교회의 선택은 가난과 박해로 얼룩진 사람들에게 대안적 세계관을 갖게 했다 (83). 이렇게 건강한 토양을 갖춘 그리스도교는 동, 서 교회가 서로의 전통을 존중하며 눈부신 신학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게 됐다.

둘째,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했다. 동으로는 예루살렘 안디옥을 넘어 콘스탄티노플까지, 서로는 로마를 넘어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지역에 이르기까지 교세를 확장했다. 이렇게 커다란 성장은 더욱 가혹한 박해로 이어졌고, 제국은 여러모로 그리스도교를 억압했다. 그러나 로마제국은 더는 교회와 그리스도교를 박해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었고 이윽고 그리스도교는 공인된 종교 나아가 국교의 지위를 얻었다. 최종원이 서술하는 초대교회의 두 번째 맥락은 교회의 국가화/제도화다. 당대 세속 권력의 정점이었던 제국의 황제는 박해하는 자에서 교인으로 변모했다. 초대교회 입장에선 대단한 승리였으나, 교회는 이를 계기로 급속도로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된다. 교회는 신학적 판단은 물론 정치적 판단까지 당대 권력에게 위임했다. 세계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결정들이 당대 황제의 신학적 정치적 입장에 따라 결정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스도교의 국가화/제도화는 세계 종교로서의 기틀이 되었으나 그로 인해 기나긴 논쟁의 시대가 시작됐고 결국 분열로 이어졌다.

셋째,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를 통해 본 초대교회 세 번째 맥락은 분열과 세속화다. 인종을 넘고 모든 벽을 허물고자 했던 초대교회 정신이 어떻게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를 분리하게 된 신학이 되었으며,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무기가 되었는가? 신분과 인종에 상관없이 서로를 주님의 몸으로 여겼던 보편성과 평등의 정신이 어떻게 한 인간에게 모든 교권을 허락하고 교황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게 되었는가? 자신의 소유를 아무 조건 없이 나누는 것을 아름다운 공동체의 미덕으로 여기던 초대교회가 어떻게 권력과 결탁하고 드높은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었는가? 최종원은 교회 분열과 세속화 시기가 어느 특정한 시점에 발생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분열과 세속화의 씨앗은 신약 성서 시대부터 심겨 있었고, 교회가 눈부시게 발전하던 바로 그때에도 분열과 세속화는 진행되고 있었다고 본다. 이어 동, 서 교회 배경과 신학적 견해차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삼위일체와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교리적 충돌, 그로 인한 분열 과정을 살핀다. 분열과 세속화는 다시 갱신과 개혁 운동으로 이어지는데 교회 타락이 심해질 때마다 등장한 수도원 운동은 현대 교회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중요한 영적 유산이라고 최종원은 평가한다.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는 좋았던 시절을 되돌아보는 추억의 앨범이 아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얼마 남지 않은 지도이다.

그리고 한국교회

최종원은 초대교회의 공과를 평가하며 한국 교회를 돌아보고 반성한다. 역사학자로서의 역할과 역사 기술 방식의 학문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교회사 굴곡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투영해 통찰하는 시도는 대단한 용기다. 저자 본인도 “이러한 시도가 교회 역사를 되짚어 보며 오늘을 바라보는 통찰을 제시할지 어쭙잖은 문제의식에 머물지”는 자신의 판단 너머에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15). 저자의 조심스런 고백과 같이 초대교회사 맥락을 통해 한국교회가 당면한 비극을 들추는 시도가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성실한 역사학자이자 인문주의자의 한국 교회를 향한 예리한 통찰은 교회가 느긋하게 눈감았던 현실을 드러내는 소중한 기회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그 태동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실수와 잘못을 되풀이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라지지 않고 버티고 버티며 지금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교회가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나아가 이제 한국 교회가 완전히 그 존재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떨리는 심정으로 자각해야 한다.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는 좋았던 시절 되돌아보는 추억의 앨범이 아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일러주는 얼마 남지 않은 지도이다.

 


김형욱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목회학 석사 과정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