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이 책 한번 잡솨봐] ‘바울에 관한 새관점들’에 관한 끝판왕 책들

청어람ARMC 가을 정기 강좌, <바울에 관한 새 관점들: 샌더스, 던, 라이트와 그 너머>를 준비하는 김선용 박사는 “바울에 관한 새 관점 논의가 이제 중년이 됐다”고 평했다. 30여 년간 새 관점은 풍성한 논의와 토론을 나누며 신약학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국내 신약학계도 새 관점 논의에 다양하게 응답했다. 신학적 성향을 막론하고 새 관점은 그것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반드시 다루고 넘어갈 주제였다. 그러나 새 관점을 공부하는데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이 복잡한 논의를 이해하는 데 필수라 할 수 있는 기초 논의, 다시 말해 새 관점을 처음 주창한 학자들의 1차 저작들이 거의 번역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새 관점에 관한 ‘관점, 해석, 비판’은 많았으나 정작 새 관점 자체를 공부할 기회를 얻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다행히도 성실한 이들의 노력으로 지난여름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40주년 기념판이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고, 새 관점 논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제임스 D. G. 던의 최초 저작 또한 번역 출간됐다. 파편화된 새 관점 논의를 그 뿌리부터 공부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비로소 마련된 것이다. 청어람에서는 <바울에 관한 새 관점들 : 샌더스, 던, 라이트와 그 너머> 강좌 시작에 즈음해 새 관점 논의에 핵심이자 근간이 되는 책을 모아봤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 종교 패턴 연구, 40주년 기념판>, E. P. 샌더스 지음, 박규태 옮김, 알맹e 펴냄(2018)

그렇다. 새 관점 논의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산이다. 시작부터 ‘끝판왕’이 등장한 셈인데, 별수 없다. 맞닥뜨려야 한다. 1977년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출간된 직후 바울 서신 해석은 혁명적 전환을 맞이했고 당대 거의 모든 신약학자가 샌더스의 논의에 응답했다. 아니,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 샌더스는 바울 시대 유대 문헌을 망라해 꼼꼼하게 살피고 비교한 후(이 책의 부제가 ‘종교 패턴 비교’이다), 루터 이래로 완벽해 보였던 1세기 유대교 이해를 바꾸어 놓았다. 여기서 존경받는 신약학자 더글라스 무가 직접 밝힌 샌더스와의 대화를 언급하는 게 좋겠다. 유대교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토론하는 자리에서 샌더스가 무에게 물었다.

“무 박사님, 박사님께서는 히브리어로 쓰인 미쉬나 문헌을 모두 읽어 보았습니까? (Have you read the entire Mishnah in Hebrew)”
“아니요. 읽지 못했습니다.”
“나는 읽었습니다. 당신이 이 토론 자리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의문이군요.”

무는 샌더스의 지적은 타당했고 자신은 어리석었으며, 많은 전문가가 샌더스의 논의를 다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비판했다고 정직하게 고백했다.

이처럼 샌더스의 압도적인 연구 이후 1세기 유대교는 율법 준수로 구원을 얻는 행위의 종교가 아닌 은혜의 종교라는 것이 밝혀졌다. 즉, 유일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해 자신의 통치 아래에 두고, 자신과 은혜의 관계를 누리게 하셨다는 것이 유대교 정체성이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율법을 따르고 지키는 것에 대한 정의 역시 커다란 전환을 맞이하는데, 이제 율법 순종이란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으로 들어가는(getting in) 수단이 아니라, 언약 안에 머무르게 하는(staying in)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에 관한 인간 편에서의 응답이 되었다. 짧은 문장으로 정리하기조차 민망한 유대교에 대한 샌더스의 새로운 이해를 가리켜 ‘언약적 율법주의 (covenantal nomism)’라 부른다.

유대교에 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니 바울에 관한 이해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했다. 샌더스는 종교 패턴 비교 연구를 통해 유대교 이해를 새로 정립하고,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2부에 이르러 바울에 대한 새로운 상(像)을 제시한다. 동시에 샌더스 이후 바울에 관한 새 관점 논쟁의 주요 전장이 되는 곳 역시 바로 이 지점이다. 언약적 율법주의에 입각해 유대교를 보면, 인간의 의로움 혹은 의롭게 됨이란 토라를 순종하고 죄를 참회하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무른다는 뜻이다. 반면, 바울에게 의로움/의롭게 됨이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들의 그룹으로 들어가게 됨(getting in)이며 (더 정확히 말해 그리스도의 의가 옮겨짐),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받은 자들의 몸으로 옮겨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샌더스는 기존 유대교의 들어감과 머무름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도식을 바울이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새롭게 이해했다’는 말에는 모호하고 복잡한 맥락이 있다. 샌더스의 바울이 기존 유대교 도식 체계를 거부했는지, 수정했는지, 확장했는지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예컨대 제임스 던과 톰 라이트가 샌더스를 비판할 때, 바로 이 지점 – 바울이 언약적 율법주의로서의 유대교를 어떻게 대하였는가 – 에서 쟁점을 이룬다.

당연하게도 몇 마디 문장으로 이 방대한 논의를 압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압도적인 분량을 자랑하지만, 이 책의 주요 목적은 놀랍게도(?) 바울과 유대교 전승과의 관계를 밝히기 위함이 아니었다. 바울과 율법, 그리고 유대교와의 관계를 보다 발전시킨 논의가 <바울, 율법, 유대교> (김진영 역, CH북스, 1995)에 있다. 역시 함께 읽기를 권한다.

<바울에 관한 새 관점>, 제임스 D. G. 던 지음, 김선용 옮김, 감은사 펴냄(2018)

‘끝판왕’을 상대했으니 이제 조무래기들이 남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만만치 않은 상대가 기다리고 있다. 사실상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을 신약 학계의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제임스 던의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82년 맨체스터 대학에 발표한 강연 제목이며, 이후 학술지를 통해 학계에 등장했다. 크게 세 단락으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샌더스의 바울 이해, 정확히는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2부에서 다룬 새로운 배울 해석에 대한 던의 응답을, 2부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대한 새로운 주석과 해석을, 3부에서는 ‘그래서 왜 샌더스의 바울 이해에 오류가 있는지에 대한 갈무리’를 담고 있다. 출판사 감은사의 노력으로 새 관점 발표 직후 나온 질문과 비판에 대한 응답을 담은 ‘추기 – additional note’가 번역되어 책 끝에 실려 있다.

중요한 것은 던은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1부, 그러니까 샌더스가 제시한 언약적 율법주의에 근거한 유대교 이해는 거의 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다만 던이 반대하는 것은 당대 유대교와 완전히 ‘절연’했다고 선언한 샌더스의 바울 이해였다. 샌더스가 정말로 유대교와 절연한 바울을 그렸는지는 논쟁적 주제다. 이 문제는 잠시 곁에 두고 ‘샌더스가 그린 바울’을 제임스 던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보자. 던은 샌더스의 바울이 율법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종하며 사는 삶이 곧 선택받은 백성의 표식이자 조건이라 말하는 언약적 율법주의 개념 자체를 비판했다고 보고, 참된 의로움이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야만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던은 샌더스의 이와 같은 해석이 바울과 당대 유대교를 완전히 단절시켜버렸다고 주장한다. 마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1부를 통해 합당하게 연결해 놓은 바울과 1세기 유대교와의 관계를 다시금 저 스스로 끊어버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던의 샌더스에 대한 평가는 올바른가? 던은 이어서 갈라디아서 2:16을 새롭게 주석함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던에 의하면 갈라디아서 2장 16절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던 본인도 밝히듯 두 부분으로 구분할만한 명확한 접속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A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B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던은 16절의 상반절 즉,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는 유대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선민의식에 근거한 표현이다. 던은 사람이 의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칭의로서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란 바로 믿음임을 나타낸다고 본다.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샌더스가 제시한 당시 유대교의 언약적 율법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고, 베드로와 바울이 공통으로 기반하고 있는 생각이다. 물론, 바울은 여기에 ‘그리스도’를 삽입하는데, 그 이유는 언약적 율법주의를 근거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자 하는 유대인들에게 호소하는 일반문이라는 점이다. 좀 더 쉬운 현대식 말로 풀자면 이렇다.

“자, 베드로! 당신도 알고 나도 알듯이 사람이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건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바로 그 진리(언약적 율법주의)와 같은 원리가 아닌가?”

이제 문제는 16절 하반절이다. 하반절의 핵심은 “율법의 행위”이다. 바울이 공격한 율법의 행위란, 기존 유대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언약적 행위들 – 할례, 정결법, 음식법 등 – 이다. 던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율법의 행위들이 유대인들의 정체성 표지로 기능했다고 본다. 즉, 누가 보아도 ‘저들이 유대인구나’ 하고 믿게 만드는 표지들이 바로 율법의 행위인 셈이다. 바울은 언약 안에 머무르기 위해 혹은 언약 안에 머무르며 유대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 보이고 강화하는 행위들 없이도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16절 상반절과 달리 하반절에 이르러서는 ‘행위로 의롭게 됨’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 완전히 대조된다. 바울이 16절을 통해 비판하는 대상이 바로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으면서도 과거의 관습에 사로잡힌 사람들, 자신이 믿음 있고 의롭다는 것을 강조하고 위해 행위로서 의로움을 강화하고 더욱더 신실한 유대인처럼 행동하는 모든 자다.

던은 샌더스가 ‘제한된 율법의 행위들’을 ‘율법을 행하는 것’ 자체로 등치 시켰고, 결국 1세기 유대교와 완전히 갈라서버린 바울을 그려냈다고 비판한다. 던이 가한 샌더스에 대한 비판은 올바른가? 나아가 던의 바울 해석은 타당한가? 중요한 주제이며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천천히 이들의 책을 곱씹어 읽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던의 새 관점 논의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 에클레시아북스에 나온 <바울에 관한 새 관점 : 어디로부터, 무엇을, 어디로> (최현만 역, 에클레시아북스, 2012)를 권한다.

<바울 논쟁>, 톰 라이트 지음, 최현만 옮김, 에클레시아북스 펴냄(2015)

거대한 산맥 두 개를 넘었다. 그러나 다시 광대한 산맥이 펼쳐진다. 어쩌면 지난 두 논의 보다 더욱 치열하고 살벌한 논쟁이며 국내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 톰 라이트와 그의 바울이다. 톰 라이트는 최근 그의 네 번째 역서,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박문재 역, CH북스, 2015)을 출간했다. 앞서 소개하는 <바울 논쟁 : 사도 바울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질문들>은 먼저 언급한 책에 관한 간략한 안내서이자 출간 직후 여러 학자가 제기한 질문과 의문에 관한 짧은 대답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새 관점 논의 하나만을 다루고 있지 않지만, 책 곳곳에서 샌더스가 제시한 유대교 이해와 바울 이해에 대한 응답과 비판, 제임스 던을 비롯해 최근 신약학계가 주도하고 있는 바울 이해에 대한 본인 나름의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톰 라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저작과 사상 안에 흐르는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라이트는 마치 연역법을 구사하는 것처럼 하나의 신학적 전제를 세운 후 자신의 논의를 그 전제 아래 세분화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이유로 신랄히 비판받는다). 바울 논의도 예외가 아닌데, 라이트의 바울 논쟁 핵심에는 예수가 본래부터 메시아였으며, 그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왔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부활했다는 일련의 신학적 흐름이 놓여있다. 얼핏 당연하고 익숙해 보이는 이 명제가 라이트의 신학에 운전대 역할을 한다. 메시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직후의 세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고 바울의 사상도 이 사건을 중심으로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 라이트의 바울 논의의 중심이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제 매사에 메시아처럼 생각하기를 바랐고, 이는 단지 민족적 개념의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지속하여 언급하는 ‘언약’ 개념은 단지 어느 한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지엽적인 구원 이야기가 아니다. 바울이 언급하는 하나님의 언약이란, 인간이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 이후 완전히 새로워진 창조세계에 속하게 되고, 더는 죄(Sin :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치고 어두운 힘)의 권세 아래 있지 않다는 선언이며, 동시에 다시는 죄(sin : 개인적인 악행과 그런 악행들의 총합)짓지 않겠다는 하나님과 인간의 약속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이 약속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라이트는 바울에 관한 옛 관점과 새 관점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각각의 논쟁점과 한계를 지적한다. 흥미로운 것은 E. P. 샌더스조차 옛 관점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샌더스의 바울은 유대교도 기독교도 아닌 “제3의 종류”라고 평한다(92). 라이트의 바울은 단지 인식의 어느 한 부분이 변화한 자가 아니다. 나사렛 예수가 바울 자신이 그토록 고대했던 이스라엘의 메시아였고, 그가 죽고 부활함으로 자신의 인식을 물론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모든 체계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의 의로움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인간 편에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부활하신 메시아 예수만이 답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메시아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이방인 누구라도 부활하신 메시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라는 라이트의 주장은 타당한가? 어쩌면 라이트가 그리는 바울은 율법의 행위가 무엇이냐는 협소한 논의에서 벗어나 바울을 비롯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사고 체계를 뒤바꿔 놓았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급진적일 수 있다. 톰 라이트의 칭의 논쟁에 대한 더욱 상세한 논의는 <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 (최현만 역, 에클레시아북스, 2016)에 담겨있다.

<바울과 선물>, 존 M. G. 바클레이 지음, 새물결플러스 펴냄 (근간)

존 M. G. 바클레이의 주목할 만한 저작 <바울과 선물>은 2015년에 출간됐고, 10월경 우리말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아직 나오지 않은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바울 신학 논의에서 빠질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연구물이며, 동시에 30여 년이 지난 새 관점 논의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클레이도 샌더스, 던, 라이트와 같이 루터파 바울 해석의 한계를 지적한다. 옛 관점으로 대표되는 루터파 해석을 따르자면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아무런 값없이 또한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리는 은혜로운 선물이다. 바클레이는 값없이 주는 은혜/선물이라는 개념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그에 따르면 ‘순수한 선물’이란 근대에 이르러 등장한 이미지일 뿐이며, 고대 그레코-로마 시대에는 적어도 여섯 가지의 선물 개념들이 존재했다.

  • 잉여성 (superabundance) : 마치 누군가에서 선물을 쏟아 붇듯 차고 넘치게 주는 선물.
  • 단일성 (singularity) : 다른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선물 그 자체로의 선물.
  • 우선성 (priority) : 선물을 주었을 때 예상 가능한 반응을 기대하기 이전의 선물로서 마치 부모가 아이의 배고픔을 미리 알고 주는 음식과 같은 역할.
  • 부조화성 (incongurity) : 선물 받는 자의 지위고하를 막론하는 선물.
  • 효험성 (efficacy) :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선물로 부모가 자식에게 생명이란 선물을 준 것과 같은 의미.
  • 비순환성 (non-circurity) :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선물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

바클레이는 여섯 가지로 정리한 고대 선물 개념을 근거로 바울이 언급한 하나님의 은혜와 은혜로 의롭게 된다는 신학 개념을 다각도로 연구한다. 더럼 대학교에서 바클레이의 지도로 신약학을 연구 중인 김형태 선생의 코멘트를 보자.

“은혜는 모든 곳에 있다. 하지만, 은혜가 모든 곳에서 다 같은 뜻은 아니다” 바클레이가 샌더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저자)를 비판하면서 쓴 이 문구는,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표현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은혜의 개념은 제 2성전기 유대교문헌들의 모든 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이 문헌들에서 각각 강조되고 있는 은혜의 의미는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바클레이는 바로 이점을 이용해서 제 2성전기 유대교를 획일적으로 “언약적 율법주의”로 묘사하고 있는 샌더스를 비판하고 있는데, 이 표현은 이미 바울학계에서 일종의 경구가 된 것처럼 보인다.

바클레이는 이처럼 다양한 양상으로 강조되어 나타나는 은혜의 개념을 중심으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새롭게 읽어서, 바울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과 새 관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의 독특한 바울읽기를 시도한다. 그의 이 같은 바울읽기는 중도(via media)를 추구했던 과거 영국의 종교개혁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바클레이는 이 같은 입장이 두 진영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을 새롭게 교정하는 것이며 (“어거스틴-루터란 전통의 재상황화-re contextualization” 혹은 “새 관점에 대한 재구성-reconfiguration”), 현재의 잘못된 이분법적인 구도를 초월한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은, 이 책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찬사들 —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를 대체한 분석” (프란시스 왓슨), “지난 20년 동안 나온 바울신학에 대한 책들 중 가장 뛰어난 책들 중의 하나” (더글라스 무), “바울학계에서 샌더스 이후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책” (마커스 복뮬) 등— 로부터 확인된다. 신약학 전문서적으로서의 학문적 가치뿐만 아니라 이 책은 (조직, 역사)신학적, 목회적으로도 유용한 통찰 들을 여럿 제공해준다. 예를 들어 은혜의 비순환성 (non-circularity)—수여자가 수신자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일방적으로 선물을 줌 — 이 고대에는 없는 개념이고, 바울서신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값싼 은혜” 가 만연한 한국교회의 현실에 신선한 충격을 주리라 생각한다. 일독을 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특히 당신이 바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여러 번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바클레이의 연구가 바울 신학에 있어 많은 주목을 받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샌더스를 위시한 지난 시대의 학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단선적으로 묘사했고, 바울 또한 근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바클레이의 바울 이해를 먼저 맛보고 싶다면 최근 번역 출간된 <단숨에 읽는 바울> (김도현, 새물결플러스, 2018)을 권한다. *책이 우리말로 출간되지 않았지만, 북미 아마존닷컴에서 상당량을 미리 볼 수 있고, 더글라스 무의 상세한 서평이 공개되어(http://bit.ly/2ML0pCI) 많은 부분 참고했음을 밝힌다.

이로써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을 돌파하기 위한 기초(?) 문헌들을 살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끝판왕의 연속이다. 40여 년을 쌓아온 논의를 단박에 깨우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천천히 곱씹으며 새 관점이란 산맥을 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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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큘럼

  • 1주(09/20) 바울 해석의 대전환: 초기 유대교에 관한 새로운 관점으로부터
    초기 유대교 이해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샌더스(E. P. Sanders)의 이론을 살피고, 그의 이론이 바울 이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핍니다.
  • 2주(09/27) 바울에 관한 새 관점과 논쟁의 시작
    샌더스가 제시한 초기 유대교의 새 관점을 토대로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을 본격 개시한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의 이론을 살피고, 그의 바울 이해와 샌더스의 바울 이해가 어떻게 그리고 왜 다른지 주목합니다.
  • 3주(10/04) 바울에 관한 새 관점’들’
    제임스 던 이후 더욱 다양해진 새 관점 이론들을 살피며, 특히 톰 라이트(N. T. Wright)의 바울 해석과 그의 새 관점 이론을 살펴봅니다.
  • 4주(10/11) 새 관점은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을 넘어서려는 오늘날의 시도를 살피며, 그 선두에 있는 존 바클레이(John M. G. Barclay), 프란시스 왓슨(Francis Watson), 미하엘 볼터(Michael Wolter)의 주장과 이론을 살펴봅니다.
  • 5주(10.18) 바울 해석의 쟁점들 (공개포럼)
    숭실대 권연경 교수님과 함께 현대 바울 해석의 주요 쟁점들을 짚어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강사

김선용 ㅡ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시카고대학 신학부(University of Chicago Divinity School)에서 성서학 박사(Ph.D. in Biblical Studies)를 받았다. 신약성서 전반과 초기 기독교 문헌을 전공했으며 헬레니즘시대의 철학, 그리스-로마 시대의 종교, 그리고 고전 수사학을 연구하고 있다. 박사논문은 독일 Mohr Siebeck 출판사의 WUNT II 시리즈에 출판 예정이며, 연구물이 신약학 학술지인 New Testament Studies(NTS), Novum Testamentum(NovT),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JSNT)에 게재되었다.

 

*2018년 12월 31일까지 온라인 강좌로 수강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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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목회학 석사 과정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