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 바울은 ‘디아스포라’였다 (김성민)

바울은 신학적으로 읽느냐, 철학적으로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인물입니다. 그가 동시에 구현했던 급진성과 보수성은 오늘날 한국 교회에 어떤 통찰점을 줄 수 있을까요? 최근 <바울과 현대 철학>(새물결플러스)을 출간한 김성민 선생은 바울이 '동시대'에 무엇을 말하는지 연구한 학자로, 서양 현대 철학자들의 논의를 천천히 짚어가며, 바울이 지금의 한국 교회에 어떤 이야기를 던지고 있는지 질문하는 철학자입니다. 그를 만나 다양한 바울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청어람(청) : 바울은 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목회자들의 친구이자 신학자들의 오랜 파트너였습니다. 동시에 신앙이나 교회와 관계없이 철학자들 또한 바울을 주요하게 다루었습니다. 특히, 20세기에 이르러 많은 서양 철학자들이 마치 바울에게 매료된 듯 바울과 관련한 철학 담론을 왕성하게 펼쳤는데요. 현대 철학자들은 왜 바울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인가요?

김성민(김) : 정확하게 말해 현대 철학자들이 바울에게 매료된 것은 아닙니다. 철학자들에게 바울은 하나의 도구로서, 바울의 사상이나 배경, 그의 종교적 입장을 그저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현대 철학 자체가 현실의 다양한 영역을 재료로 철학을 구성합니다. 문학이나 예술, 나아가 사물들도 하나의 철학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에 관한 서양 철학자들의 관심도 바로 바울을 하나의 철학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다양한 면모 가운데, 특히 철학자들 주목하게 만든 것이 있다면 바울의 정치적 특징입니다. 바울의 정치적 맥락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하는 일이 현대 철학자들이 바울을 전유할 때 가장 관심을 둔 영역입니다. 제가 철학자들의 바울 읽기에 흥미를 갖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서양의 정치 철학자들이 바울을 새롭게 읽는 이 과정 자체가 매우 흥미롭고, 이들의 작업을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인들에게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 신학과 철학의 경계에 서다

청 : 현대 철학이 바울에게 관심 가졌던 중요한 주제가 바울의 정치 혹은 정치관이었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의 정치관 혹은 정치적 맥락이 흥미로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안에서 철학자들은 어떤 것을 발견한 것일까요?

김: 당연한 말이겠지만 바울은 상당히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오랜 기간 연구되었고, 다양한 주제가 제출되었습니다. 바울을 철학적 관점에 따라 초점을 맞추었을 때, 가장 중요한 주제가 바로 바울의 ‘주체’ 문제입니다. 바울이 주체를 어떻게 바라보고 상대했는지 살피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문제, 자유와 평등의 문제에 관해 분명하게 사유하고 있었습니다. 서구 철학자들은 바울이 주체에 관해 사유했던 것을 실마리 삼아, 그가 고심했던 교회와 국가, 종교와 국가 간의 문제, 법과 정의 문제를 철학으로 풀어냅니다. 특히, 로마서에 정의에 관한 문제가 분명하게 나오는데, 바울은 하나님의 정의와 로마의 법 사이에서 양가적 모습을 나타냅니다. 철학자들 역시 이 문제와 씨름하며 바울이 고심한 하나님의 정의와 로마의 법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하고 현대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대결합니다. 가령, 법이 우선인가? 정의가 먼저인가? 와 같은 주제가 풍성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의 주체 문제와 더불어 중요한 주제가 바울의 ‘역사’ 이해입니다. 바울은 독특한 역사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역사 철학에서는 바울이 특유의 ‘메시아사상/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바울이 현재 혹은 미래를 어떻게 보느냐는 관점인데, 유토피아라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인지? 그런 세상이 있기는 한지 묻는 것입니다. 나아가 현재를 디스토피아로 보는지, 희망이란 아예 없거나 조금은 남았는지에 관해서도 생각합니다. 신학에서도 메시아주의나 종말론이 무척 중요하듯 철학이 바울을 사유할 때도 이 주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청 : 철학의 바울과 신학, 혹은 교회의 바울이 서로 갈등하는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요? 두 분야의 작업 방식이 물론 다를 테지만, 상호 보완하는 관계가 될 수는 없을까요?

김 : 바울은 그를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의 방향이 크게 달라집니다. 한국 기독교는 성서를 오로지 경전으로 여기는 경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바울과 바울 서신을 문자 그대로 읽으려는 흐름이 강했습니다. 바울 서신 속 바울에는 분명 보수적 측면이 있습니다. 바울 당시의 문화적, 시대적, 역사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바울이 가진 여성관, 국가관, 그리고 권력에 관한 태도는 선명하지 않습니다. 당대 주류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또한 적지 않습니다. 저 역시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이른바 신학의 영역도 바울의 보수적이고 현대와 충돌하는 질문에 관해 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철학자뿐만 아니라 신학자도 당대의 보수적 바울을 독해하고 해석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진보 신학은 이 작업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에 반해 복음주의나 보수 신학 안에서는 유독 획일화된 바울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이른바 루터식 바울 해석에 국한되어 있고, 이렇다 보니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서 바울을 읽어내려는 시도가 약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바울 해석의 투쟁은 철학보다 신학이 더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단 정치철학이 던진 정치적 바울에 관한 해석을 기독교 신학이 진지하게 연구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학도 바울 해석의 난해함 앞에서 함께 씨름해야 하며, 현대의 다양한 맥락에 상호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작업에 철학과 신학의 경계는 없습니다.

‘철학의 바울’에 조금 더 말을 보태자면, 철학자들은 신학자들과 달리 바울의 종교성에 국한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바울 안에는 급진성과 보수성이 뒤섞여 있는데, 철학자들은 바울의 급진적 모습을 포착해냈습니다. 이들은 동시대가 가진 문제의식과 바울의 급진적 모습을 접목해 그를 해석 합니다. 우리가 지금 사는 현대의 시대적 흐름, 조건, 상황 속에서 혁명의 주제, 해방의 주체, 변혁의 주제를 바울에게서 도출하고자 그의 서신을 독해 합니다. 즉, 1세기 바울의 역사성에 집중하기보다(이것이 신학자들의 몫이라면), 바울에게서 동시대성을 보는 게 철학자의 일입니다. 저는 현대 정치 철학자들이 바울과 동시대적 담론을 연결하는 작업과 그들의 사유 과정을 탐색한다면, 그리스도인은 물론이고 교회 공동체는 이를 통해 분명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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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다

청 : 현대 철학자들이 빚어낸 바울을 통해 현재 한국 교회가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지점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철학자들의 바울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김 : 저는 바울의 ‘디아스포라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습니다. 바울의 다층적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디아스포라 바울’은 역사적 신학적 그리고 사회적 맥락이 교차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층적이고 교차적인 바울의 정체성은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이슈를 풀어내는데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대표적 이슈라 할 수 있는 페미니즘, 성 소수자, 그리고 난민 문제에 하나의 해답을 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먼저 바울 자신에 관해 생각해 봅시다. 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제국의 시민이자 동시에 정통파 유대인의 맥락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가령, 바울은 매우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했습니다. 후대의 기록에 의하면 소아시아 지역, 팔레스타인 바깥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지역은 모두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한곳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길게는 3년, 짧게는 6개월 정도만 머물렀습니다. 이를 가리켜 ‘노마드’라고 하는데, 바울의 삶은 그렇게 낭만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각 지역이 가지고 있던 매우 현실적인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데 집중합니다. 매우 현실 투쟁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가지는 매우 독특한 부분은 바울이 현실적인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하나님 나라 시민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로마 시민 의식과 또 다릅니다. 로마 시민이라는 말만으로도 상당한 보편성과 특수성이 서로 뒤섞이는데(제국의 시민이라는 보편성을 갖는 동시에 아프리카계 로마시민, 지중해 로마시민, 팔레스타인계 로마시민이라는 특수성을 동시에 갖는), 바울은 우주적 맥락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 사람입니다.

이렇듯 구체성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나라 시민의식을 놓치지 않고 그 긴장 속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런 면이 디아스포라 정체성이 가지는 역동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가 나그네에 관해 말은 하면서도, 사실상 낯선 자/낯선 것들을 포용하지 않고, 오히려 이질적 타자에 대해 배타적인 모습을 자주 봅니다. 저는 바울의 디아스포라성에 대해 연구해보면, 교회의 배타성 문제에 어느 정도 답할 수 있고 그것에 관한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데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 오늘의 기독교에 질문을 던지다

청 : 이번 강좌를 통해 수강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김 : 이번 강좌에서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바울의 정치적 주체성이 상당히 역동적이고, 복수(複數)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울 안에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는 것만 알고 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동시대 가운데서 기독교의 역할을 조금 더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90년대 초반만 해도 사회참여를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그것도 물론 유효하지만, 저는 바울이 단지 사회 책임을 넘어서 사유(생각의 방식)의 패러다임에 관해 도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기독교는 기독교인의 사유방식이 동시대 속에서 동시대의 문제와 관계 맺는 방식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다소 철학적 표현이지만, 저는 ‘경계 위의 기독교’를 고민하면 어떨까요. 기독교와 사회를 가르는 경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지만, 그 경계를 구별 짓기식 정체성 논의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와의 역동적인 관계를 실험하는 ‘경계 흐리기’ 실험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사회 일원으로 살아갈 때 다양한 주제와 이슈를 만납니다. 어떤 이슈는 인식조차 못 하고 지나가는 예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이슈와 갈등 국면에서 기독교 정체성이 강조되면 매우 배타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일상의 공간에서는 성 소수자 문제에 애써 반감을 드러내지 않다가도, 기독교인의 정체성으로 그 문제를 만나면 매우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집단적 정체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어떤 이슈와 삶의 방식에 관한 태도와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저는 우리가 사회 구성원이자 동시에 기독교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관계와 맥락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기독교 정체성의 성격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읽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제 강좌가 그 질문의 첫걸음이 되길 바랍니다.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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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안내

강의 : 김성민 / 현대 철학 연구가이자 인문교육 운동가로서 ‘짓다 철학학교’와 ‘도서출판 짓다’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현재 여러 곳에서 철학사와 철학 강독 모임을 진행하고 있으며, “타자성과 소수자의 철학”, “이케다 사건에 대한 철학적 해석”, “독서 철학”, 등 다양한 주제로 집필중에 있습니다.

토론 : 김동규 / 철학 연구가이자 번역가이며 여러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옮긴 책으로는 피에르 테브나즈의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탈출에 관해서>, 앤서니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개론>, 리처드 마우의 <칼빈주의 라스베가스 공항을 가다>,<톱밥향기>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프랑스 철학의 위대한 시절> (공저), <선물과 신비: 장-뤽 마리옹의 신-담론> 등이 있습니다.

행사 안내

  • 일시 : 2018년 11월 9일 (금) 7:30PM
  • 장소 : 지식방앗간 ‘B밀’ (명동역 3번 출구 5분 거리/서울 중구 퇴계로18길 77 나인후르츠미디어빌딩 2층) [지도보기]
  • 참가비: 1만원(청어람 후원자 무료)
  • 신청 : 온라인 신청 → 송금 → 신청완료
  • 계좌 : 기업은행 148-073630-01-011 (청어람아카데미)
  • 문의 : 청어람ARMC 02-31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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