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이 책 한번 잡솨봐] 성실하고 단단한 바울 개론서 ‘바울 – 그의 생애, 서신, 신학’

청어람 매거진이 소개하는 신간 소개 ‘이 책 한번 잡솨봐’ 시즌2! 2019년에는 매주 한 권의 신간을 선정하여 책 내용뿐 아니라 책에 담긴 다양한 맥락을 소개합니다.

은퇴를 앞둔 저명한 학자가 대학 1학년생이 수강하는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학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학생이 듣는 과목은 각 전공의 기초를 닦는 개론들인데, 주로 삶, 인간관계, 읽고 생각한다는 것에 대한 개괄적 이해와 접근을 다룬다. 마찬가지로 개론서 또한 첨예한 논쟁을 내세우거나, 아직 입증되지 않는 가설을 다투기보다, 오랜 시간 축적되었고 학계의 공리로서 인정된 지식과 결과를 그 주제로 삼는다. 평생 연구에 매진한 학자가 빚어낸 개론 강의와 개론서는 일견 단순하고 쉬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방대한 연구사를 면밀하게 정리하고, 각각의 입장과 주장을 일관된 논지로 전개하며, 독자들의 독해 편차를 넉넉히 고려한 개론과 개론서는 이제 막 하나의 전문 분야를 깨치기 시작한 신진학자가 생산하기 어려운 고난도 작업이다.

따라서 훌륭한 개론서 혹은 입문서를 읽는 다는 것은 다 아는 내용을 ‘굳이’ 한 번 더 읽는 행위일 수 없다. 개론을 읽는다는 것은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에게 공부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이정표를, 전문 연구자는 그동안 정리된 연구 분야를 다시금 살피고 연구사를 톺아보는 계기를, 그 분야에 흥미를 갖고 있는 일반 독자는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얻는다. <바울 – 그의 생애, 서신, 신학>은 위에 열거한 학생, 연구자, 일반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성실하고 단단한 바울 개론서다.

좋은 개론서는 주제 삼은 그것을 더 알고 싶게 만들 때 진가를 발휘한다. 특히, 성서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책을 읽으며 동시에 성서를 열어 읽고 싶게 만들 때 그 맡은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좋은 개론서의 길을 충실히 따른다. 저자인 브루스 W. 롱네커와 토드 D. 스틸이 밝히는바, <바울>은 ‘바울’을 깊게 고찰하게 만드는 임무를 충실히 해낸다. 바울 연구사 곳곳에 포진한 다양한 논쟁적 주제들에 바로 맞서기 보단, 그 논쟁들을 양산한 바울과 바울 서신 자체에 집중한다. <바울>의 목차가 그 예인데, 단순하면서 명료하다. 1장에서 바울의 삶과 죽음을, 2장에서 그의 서신들을, 3장에서 그가 분투했던 주제들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담았다. 다시 말해 <바울>은 오롯이 인간 바울과 그의 서신을 고찰하게끔 디자인 되었다. 서신의 순서는 정경을 따르지 않고 바울이 서신을 작성했던 역사적 순서를 따랐다. 신학에 조예가 깊은 이들이라면 데살로니가후서 혹은 에배소서가 바울의 서신 목록에 포함된 것을 보고, 학문성이 모자란 그저 그런 개론서라고 착각하기 쉬울 텐데 스스로 편협함을 드러낼 뿐이다. 롱네커와 스틸 또한 저자에 관한 논란을 회피하지 않는다. 예컨대, 에베소서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에베소서 저자와 관련해 사람들마다 나름대로 생각하는 견해가 있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에베소서와 우리가 여태까지 살펴본 다른 아홉 바울서신 사이에 확실한 차이가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다. 하지만 그 차이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가 신약성경이라고 알고 있는 스물일곱 문서를 모두 살펴보면, 그 밑바닥에 자리한 통일성과 풍부한 다양성이 공존하고 있다.” (444쪽)

역설적으로 바울서신이라 불리는 서신들 사이의 불일치가 오히려 바울 더욱 고찰하게 만드는 요소이자 배경이 되며, <바울>은 이 문제를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바울>의 유익한 특징 또 한 가지는 책의 구성에 있다. 모든 챕터의 시작 페이지에 ‘목표’ ‘개관’ ‘핵심구절’을 길잡이처럼 소개해 독자가 자칫 논점을 잃어버릴 수 있는 실수를 방지한다. 또한 모든 챕터의 마무리는 토론과 연구 질문을 남겨두었고, 신학적 고찰과 묵상을 돕는 질문을 실어 놓았다. 저자가 직접 작성한 질문이 있다는 것은 여럿이 함께 읽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법인데, 뜻있는 독자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풍성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울 연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던 저명한 신학자 E. P. 샌더스는 그의 논문 “Did Paul’s theology develop?”에서 바울과 그의 생각, 처했던 환경, 고민했던 문제를 오롯이 알기 위해 바울서신을 그가 썼던(썼다고 여겨지는) 순서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그리고 가급적 한 번에 읽기를 권했다. 샌더스 본인도 이러한 읽기를 통해 이전에 체험하고 발견하지 못했던 귀중한 통찰을 얻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바울을 알고 그의 서신도 알지만 이와 같은 읽기를 시도해 본적은 드물다. 바울을 깊이 고찰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바울>은 샌더스가 제안한 방식의 바울서신 읽기를 위한 훌륭한 참고서이자 바울을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유용한 도구이다.


김형욱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목회학 석사 과정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