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 개인의 발견과 근대의 시작 – 오늘 한국 사회에서 루터의 함의

양명수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과)는 교계에 많지 않은 프랑스 유학파로 폴 리쾨르를 비롯한 유럽 대륙 전통의 철학과 신학을 꾸준히 소개해 온 학자이다. 은퇴를 몇 년 앞두고 있는 지금은 그간 자신이 관심 갖고 연구해 온 서양 현대철학과 한 국철학을 어떻게 신학자로서 정리하고 대중들과 교감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청어람 3월 월례강좌를 앞두고 그를 만나보았다.

Q. 반갑습니다, 교수님. 요즘 근황이 어떠신지요?

A. 이화여대에서 이제 20년 정도 가르친 것 같습니다. 늘 사회정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내가 신학을 하게 된 동기도 7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한국의 사회 상황과 제 대학 생활이 많이 얽혔던 때문이었어요. 학교를 늦게 졸업했고,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도 주로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하면 좀 더 정의로워질 수 있을까 관심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는 한국적인 걸 찾고 싶어서 퇴계 사상도 들여다 보고 그랬어요. 이제 은퇴할 때가 되니까 내가 신학을 평생 공부했는데 기독교가 뭔지 답하는 데에 기여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많아졌어요. 그 결과로 루터 책이 하나 나오게 됐습니다.

Q. 2017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었습니다. 여러 이벤트가 많았는데, 교수님은 500주년 맞이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A. 한국에서는 학회에서 한 번 발표한 적이 있고요. 생각보다 루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안된다 그런 느낌도 받았어요. 독일에서 안식년을 하면서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참고도서를 쭉 봤는데 종교개혁과 관련한 역사적인 추적이랄까 이런 것들이 좀 많았고요. 번역서가 많았는데 한국 사회와 관련해서 루터의 어떤 점이 중요한가 이런 분석이 별로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이 필요하겠다 그런 생각은 했습니다.

Q. 이 책을 쓰신 동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아울러 이 책이 갖는 특징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A. 젊은 시절부터 사회 정의에 관심이 많았는데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바꾸는 데는 내가 믿는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신학을 하게 된 동기고 책을 쓸 때마다 연관이 됐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책에서도 한국 사회에 가장 결핍된 것이 무엇일까, 그런 것에 기독교가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가. 이 두 개의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루터에게서 큰 하나의 해법이라고 할만한 것을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근대성의 문제’인데요, 이게 저한테는 늘 중요했습니다. 민주주의가 근대에 나왔는데, 개인의 주체성과 존엄성 문제가 핵심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에는 개인의 자기 세계가 너무 없어요. 너무 집단적으로 움직이고,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의 평가에 개인이 좌우되고, 이런 것이 여러 가지 다른 문제의 근원이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 루터에게서 근대의 시작과 그 의미를 보게 되었죠. 종교개혁에서부터 서양의 근대가 비롯됐다는 게 이런 의미구나 하는 것을 저는 책을 쓰면서, 루터의 글을 보면서 많이 정리하게 됐습니다.

Q. 말씀하신 근대의 개막은 어떻게 가능했나요? 책에서는 특히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법의 역할에 대한 영역을 자세히 다루셨는데요.

A. 우리가 ‘만인사제설’이나 ‘직업소명설’ 이런걸 많이 들어봤는데요, 이런 개념은 단순히 신학적으로 뿐 아니라 사회학적으로도 상당히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루터는 사제를 통하지 않고도 내가 직접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중간에 매개자가 필요 없고 나와 하나님이 직접 만난다고 말합니다.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나는 타자에 대해 있기 전에 나에 대해서 있다.” 이 말은 독일 관념론의 시발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하나님에 대해서 있는게 먼저라는 겁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단독자의 개념 즉 ‘나는 집단이나 군중의 하나가 아니라 독립한 존재’라는 것과도 통합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새로운 인간관을 말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루터는 신앙 문제에서 출발했으니까 ‘아무도 내게 명령할 수 없다’는 말은 하나님 외에 교회나 사제가 내게 명령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영감을 주어서, 당시 사회와 그 이후 국가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신앙 문제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로 진리 문제에 관해서는 이것은 내 소관이고, 내가 판단하지 누구도 내게 명령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립됩니다. 루터의 새로운 국가관을 근대의 사회계약론까지 연결시키는 학자들이 있어요. 그런 면들이 제가 루터에게서 중요시 했던 포인트입니다.

루터의 출발은 복음과 법을 상치시키는데서 시작합니다. 율법이라는 건 말하자면 법입니다. 법은 종교법도 있고 도덕법도 있지만 보통 법이라고 하면 국가법이지요. 루터는 ‘복음은 내게 자유를 주고 법은 구속한다, 복음은 나를 구원하지만 법은 나를 구원할 수 없다’고 보았어요. 그러면 법이 하는 역할은 뭐냐? 법은 ‘보존한다’고 했습니다. 법질서를 통해 세상을 평화롭게 보존하고, 국가는 법질서를 통해 개인이 자기세계를 확립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거죠. 그런 방식으로 국가는 간접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이바지 하는 보조자입니다. 루터의 하나님 나라 이해는 죽음 이후의 내세보다는 내 안에, 즉 내 내면에 있다는 이해가 강합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그게 하나님 나라라고 보는 거지요. 국가의 역할은 그리스도인에게 내면의 하나님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바깥을 평화롭게 해주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루터의 국가 이해가 참 독특하게 들립니다.

A.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라는 이 두 개의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 이후로 기독교에서 정치철학을 형성하는 중요한 개념인데요.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 나라의 모델로 교회를 말했지만, 루터의 경우는 하나님 나라를 교회가 아니라 개인 내면으로 본 거에요. 그래서 교회를 ‘하나님 나라를 내면에 가진 개인들의 모임’으로 보죠. 개인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세상 나라는 정치권력자가 통치하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한다. 하나님이 나의 내면에서 말씀으로 나를 통치한다, 내 영혼을 통치한다. 그게 하나님 나라가 이루는 평화입니다.

Q. 루터가 견지한 입장에 비추어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교회와 국가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실 수 있을까요?

A. 한국 교회는 한편으로는 종교는 완전히 정치와는 다른 세계인 것처럼 분리하는 태도를 보이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너무 정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치나 국가에 너무 큰 비중을 두고 사는 모습이 있습니다. 시민사회도 선거 때 보면 정치에 모든 것을 거는 모습을 보이고, 한국교회도 굉장히 권력지향적 정치지향적 모습을 보입니다. 근데 루터는 정치에 너무 큰 것을 기대하면 안된다고 말할 것 같아요. 정치 질서를 따르고 존중해야하는 이유는 악이 처벌을 받고, 질서가 잡히는 보조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보는 것이지요.

Q. 루터가 자기 시대의 교회에 대해 비판한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오늘날 어떤 함의를 가질까요?

A. 루터는 우선 교회 부패에 상당한 환멸감을 표했습니다. 교회가 너무 비대해지고 재산을 많이 갖게 되고 일종의 권력기관이 된 것에 대해서 루터는 ‘교회는 권력기관이 되면 안된다, 교회는 봉사기관이다’라고 명확하게 말했구요. 교회의 위계질서, 즉 사제와 평신도의 계급화는 제대로된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앞서 이야기한 개인의 발견과 통하는데요, 하나님 앞에서 개인이 단독자로 서듯이 교회에는 매개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평등한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것은 오늘날의 교회에도 비슷하게 적용될겁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아직 중세적이죠. 루터가 종교개혁할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Q. 지금 한국사회는 소위 ‘87년 체제’를 넘어서서 새로운 사회를 구상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구사회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대에 종교개혁을 통해 기여한 루터를 우리가 참고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A.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개인의 자기 세계’라고 봅니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게 됩니다. 르네 지라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모방 욕망’이 세계에서 가장 큰 사회가 아닌가 싶어요. 근대가 시작되면서 신분질서가 없어졌죠. 그런데 신분질서가 없어진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위험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신분제도 때문에 경쟁이 의미 없었는데, 신분질서가 무너지면서 누구나 다 똑같은 걸 욕망하고 경쟁하게 되거든요. 이렇게 모방욕망이 극대화되어 무한 경쟁이 시작되고 엄청난 갈등이 반복되는게 근대의 부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책을 쓰면서 발견한건, 서양의 경우에는 종교개혁이 상당부분 이것을 막아주었다는 것입니다. 소위 자기세계가 확립이 되면 자기 스스로 결정한 고유한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고유한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것도 인정해주고요. 내가 남을 해치지 않는 한 내가 살아가는 방식도 존중을 받습니다. 소위 개인의 자율성과 인격에 대한 존중을 통해 관용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는 이런 개인의 발견이 충분치 않아서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모방 욕망만 강하게 작동하고 그것을 막아주고 개인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장치가 없습니다. 그런 각도에서 루터에게 배울 것이 많다고 봅니다.

Q: 책을 읽으시는 분이나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우리나라도 사실 굉장히 종교적인 사회거든요. 세속적으로 살고 있지만 알고보면 종교인 숫자가 상당히 많고, 아직 멘탈리티가 합리적이기보다는 종교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이 사회가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될까 생각하고,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가 대체 어떤 종교이며,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건 의미있다고 봅니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서 그리스도인이 자기 세계를 갖고 사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루터의 종교개혁을 살펴보는건 오늘 우리의 교회나 시민사회가 건강해지는데 하나의 화두나 실마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 책과 강의를 통해 토론의 장이 마련되고 새로운 방향, 어떤 흐름이 형성되면 좋겠다는 바램을 갖고 있습니다.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양희송

청어람 3월 월례강좌 – 아무도 내게 명령할 수 없다 – 마르틴 루터, 근대, 민주주의

  • 일시 : 2019년 3월 29일(금) 7:30PM
  • 장소 : 낙원상가 5층 낙원홀(520호)  [위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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