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 글 쓰는 여자의 프라이드 – 자신의 힘을 믿고, 타인을 존중하고, 세상을 향해 질문하는 것

영화평론가 최은 선생은 영화 이론을 전공한 학자이기도 하지만 영화 '덕후' 입니다. 그리고 제인 오스틴 연구자이자 '덕후'이기도 합니다. 지난 겨울 제인 오스틴의 행적을 따라 영국 여행을 다녀 온 최은 선생을 통해 만나는 '제인 오스틴'은 어떤 모습일까요? 영화 <비커밍 제인>과 <오만과 편견>을 통해 여성, 글쓰기, 프라이드에 관해 이야기하는 최은 선생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청어람(청) :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최은(최) : 안녕하세요. 글 쓰는 여자 최은입니다. 대학원에서 영화 이론을 전공했고, 영화평론가라는 말을 듣는 것을 조금 쑥스러워 하지만 아주 즐거워합니다.

청 : 이번에 청어람에서 하는 강좌 <글 쓰는 여자의 Pride>에서 주로 다룰 제인 오스틴에 관해 다룰 예정인데요. 제인 오스틴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나요?

최 : 가끔 제인 에어와 헷갈리시는 분을 만나기도 하는데요. (웃음) 제인 오스틴은 18세기와 19세기에 글을 썼던 영국의 여성 작가입니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으로 가장 유명하고요. 생전에 6편의 장편과 1편의 중편을 남겼어요. 그리고 습작으로 썼던 작품들이 있고, 미완성 단편들이 있습니다. 평생 비혼으로 살았는데요. 주야장천 결혼으로 끝나는 이야기만 썼어요. 그것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저는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인데요. 제인 오스틴이 저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제인 오스틴의 전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 점 때문이에요. 굉장히 드문 작가죠. 옛날의 작가고, 200년 이상 된 작품들인데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개작되고 현대의 언어로 만들어진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청 : 지난겨울에 제인 오스틴의 행적을 따라 영국 여행을 하고 돌아오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 : 남들이 잘 안 가는 런던 이남의 남부 지역을 다녀왔는데요. 햄프셔 지방의 초턴이라는 곳과 윈체스터 – 라임 레지스 – 바스 그리고 런던을 다녀왔어요. 원래 햄프셔의 스티븐턴(1775-1801)이라는 곳이 제인 오스틴의 고향인데, 제인 오스틴이 생전에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존되어 있지 않아요.

초턴(1809-1817)이라는 곳이 제인 오스틴의 생가처럼 운영이 되고 있고, ‘제인 오스틴 하우스 뮤지엄’이 있는 곳이에요. 이곳에서 제인 오스틴은 생의 마지막 8년을 살았어요. 이 시기에 전 작품이 책으로 나와요. 그래서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시작으로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엠마>까지 이곳에서 모두 출간이 되고, 유작으로 출간된 <설득>이라는 작품이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거의 모든 작품이 이곳에서 나왔고 제인 오스틴의 엄마와 언니가 묻혀 있기도 하고요. 오빠가 초턴의 집을 선물해 준 건데 오빠가 살던 ‘초턴 하우스’가 이곳에 있어요. 제인 오스틴 관련해서는 생가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가면 윈체스터(1817.5-1817.7)인데요. 초턴에는8년을 살다가 병을 고치러 윈체스터로 갔는데 두 달 동안 돌아오지 못하고 여기서 생을 마감해요. 유명하지도 않았고 연고지가 없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제인 오스틴은 윈체스터 대성당에 묻히게 됩니다. 굉장히 드문 일이죠. 제인 오스틴의 무덤이 있는 곳이에요.

라임 레지스(1803, 1084) 원래 쥐라기 시대의 화석으로 유명하고 해수욕으로 유명한 곳인데 제인 오스틴이 제일 좋아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설득>이라는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영화 <설득>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제인 오스틴이 좋아했던 곳이고, 워낙 한적한 곳이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고요.

바스(1797, 1799/1801-1806)라는 곳은 교구 목사였던 제인 오스틴의 아버지가 스티븐턴(1775-1801)에서 은퇴를 하거든요. 은퇴해서 4년 동안 살던 곳이에요. 여기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하고 제인 오스틴은 사실 이곳을 별로 안 좋아했대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는 제인 오스틴 덕을 가장 많이 보고 있는 도시입니다. 제인 오스틴 센터가 있고 해마다 제인 오스틴 축제를 곳이기도 해요. 제인 오스틴의 흔적이 굉장히 많이 보존된 곳이고요.

마지막으로 런던을 다녀왔는데요. 런던에 있는 국립초상화미술관에는 제인 오스틴의 언니가 그렸던 제인 오스틴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유일한 초상화죠. 제인 오스틴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어요.

제인 오스틴과 영국. 사진 제공 : 최은

청 : 제인 오스틴을 비롯하여 <자기만의 방>을 쓴 버지니아 울프나 우리나라의 나혜석 등 글 쓰는 여성에게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최 :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했죠. ‘여성이 글을 써서 먹고 살려면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제인 오스틴은 둘 다 없었거든요. 일정한 수입도 없었고, 자기만의 공간도 없었고요. 조카들의 증언에 의하면 제인 오스틴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실에서 티테이블 같은 조그만 탁자를 놓고 글을 쓰다가 사람이 오는 인기척이 나면 얼른 덮어서 감추고 글을 썼대요. 버지니아 울프가 제인 오스틴에 관해 평가하기를, 귀족이나 상류층 여자가 자기만의 사색의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중산층의 여자가 시나 일기나 편지가 아니라 소설을 썼다는 것은, 당시로써는 거의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실제로 그랬을 것 같아요. 제가 초턴에 간 이유는 그 집에 있는 그 책상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글 쓰는 여자’를 탄생시킨 조그만 테이블 같은 책상. 새로운 느낌이 들었어요.

제인 오스틴 테이블. 사진 제공 : 최은

청 : 그런 공간뿐 아니라 ‘시대’도 중요한 키워드 같아요.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도 많이 나오지만, 당시 여성들은 적절한 나이가 되면 사교계에 진출하여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생존 방식이었는데요. 제인 오스틴은 비혼 작가로서, 어찌 보면 당시 관습을 거슬렀던 여성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소심한 저항’이라고 표현하셨죠. 강좌 제목대로 한다면, 프라이드를 지키는 삶이려나요? 저항으로서의 여성의 존재 방식이 제인 오스틴과 그의 작품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다고 보셨어요?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요?

최 : 제인 오스틴의 문체에서 나타나는 풍자와 아이러니는 ‘소심한 저항’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되게 마음에 안 들어서 마음껏 비웃어주는 거죠. 욕하지는 못하고 굉장히 소심하게… 이것은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의 대사이기도 해요. 게다가 당시에 풍자와 위트, 유머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고요. 남성 중에서도 천박하다고 느끼게 하는 그런 수사법이었어요. 제인 오스틴은 이걸 위트있고, 우아하게 구사한다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그런 평가를 받았어요.

하지만 만약 비꼬고 비웃고 풍자하는 데서 멈췄으면 허탈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인 오스틴은 당시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면서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 특별히 여성들을 비난이나 비판을 하지 않아요. ‘무지해서 그렇다’고 욕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은 분명한 주관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안을 줄 알았다는 점이 제인 오스틴의 가장 큰 장점이고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한계 안에서 최대치를 할 수 있었던 그런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마음에 안 들지만 적어도 상상의 세계 속에서는 ‘왜 이건 안되죠’라고 굉장히 날카롭게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조금씩 시도했던 것이죠. 그렇게 질문을 던지는 일을 했다는 생각해요.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자주 비난받는 해피엔딩 방식의 이야기도 사실은 당대의 그런 삶을 살지 못한 여성들, 혹은 자신처럼 비장하게 혼자 살기로 결심하거나 저항하지 못한 여성들에 대한 위로이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바로 상상이 하는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제도권에 조금 발 걸쳐 있는 여성으로서 제가 생각할 때 느끼는 한계와 부딪히는 점들을 생각할 때도 제인 오스틴에게 배우는 바가 많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청 : 선생님이 말씀하신 제인 오스틴의 방식이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샬롯과의 관계로 연결되기도 하네요.

흥미로운 것은 샬롯의 업그레이드 버전들이 다른 나머지 작품에서도 계속 등장해요. <오만과 편견>에는 샬롯처럼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도 있고, 엘리자베스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여성도 등장하죠. 엘리자베스는 말하자면 중산층 계급으로서 남성 중심의 결혼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죠. 엘리자베스의 지성이라는 것은 단순한 생존 능력이나 본능에 의한 잔머리와는 굉장히 다른 결이에요. 그것이야말로 지성이고,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 프라이드죠. 그런 자존감은 다른 사람을 깔아뭉개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가진 자질에 대한 충분한 자각과 자부심이라고 드러나는 예들이 그의 작품에는 매우 많아요. 그게 매력적이고. 배운 여자로서의 지성뿐 아니라 자신을 제대로 알고 타인도 존중할 줄 하는 자부심이 진짜구나 싶어요.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오수경

4월 글 쓰는 여자의 Pride : ‘비커밍 제인’과 ‘오만과 편견’으로 만나는 제인 오스틴

  • 일시 : 2019년 3월 29일(금) 7:30PM
  • 장소 : 낙원상가 5층 낙원홀(520호)  [위치보기]

강의 상세보기

 


청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