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한번 잡솨봐] 진리의 무게만큼이나 그 존재가 무거웠던 ‘개혁자들’

청어람 매거진이 소개하는 신간 소개 ‘이 책 한번 잡솨봐’ 시즌2! 2019년에는 매주 한 권의 신간을 선정하여 책 내용뿐 아니라 책에 담긴 다양한 맥락을 소개합니다.

<개혁자들 : 자유롭고 진실하게 살았던 일곱 사람>, 야나이하라 다다오 지음, 홍순명 옮김, 포이에마 펴냄

반가운 책이 나왔다. 무교회주의 역사에서 이름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이자,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평가받는 야나이하라 다다오의 관심과 생각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내가 존경하는 인물(余の尊敬する人物)>로 이사야, 예레미야, 바울, 루터, 크롬웰, 링컨, 우치무라 간조 등 총 9명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으며 이번에 번역/출간된 <개혁자들>은 니토베 이나조와 니치렌 편을 뺀 7장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기독교 인물전’이면서 동시에 저자의 독특한 관점을 읽어낼 수 있게 서술되었다. 또한 성경의 인물과 역사적 인물을 평행적으로 기술하되, 모든 인물이 저마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란 과제를 전면적으로 씨름한 신앙인의 면모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서술되었다. 덕분에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을 관통하는 ‘무교회주의’라는 신앙 노선이 대체 어떤 것인가에 관해 질문하며 답을 찾아갈 수 있다. 한국의 개신교 독자들에게 무교회주의는 과거 일제 강점기에 존재했던 낯선 개념일 수 있지만, 최근 가속화되는 ‘가나안 성도’ 현상을 들여다보면 한 세기 전의 이 운동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긴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바가 있다. 책 말미에 무교회주의에 관한 질문과 답을 담은  강연원고  <무교회주의란 무엇인가>도 수록되어 있다.

무교회주의자가 해석한 “진리의 무게만큼이나 그 존재가 무거웠던 사람들”

그간 무교회주의는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 한국의 김교신과 함석헌 정도의 이름과 함께 알려져 있었으나, 야나이하라 다다오는 일본의 유력한 무교회주의 사상가로 늘 첫손에 꼽힐만한 존재다. 그는 1893년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고인 제일고등학교를 무시험 입학, 수석으로 졸업하며 동경대 법과대 정치학과에 진학한 일본의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고교 시절 그는 유명한 개신교 지식인이었던 교장 니토베 이나조의 가르침을 받았고,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를 만나며 인생의 큰 전환을 맞았다. 그 후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등 해외 경험을 쌓으며 당대 일본 식민정책에 관해 비판적 관점으로 발언했고, 1940년에는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을 비판한 <국가의 이상> 등의 글을 써 필화사건을 겪으며 동경대 교수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김교신과 교류하며 조선에 건너와 전국 순회강연을 하며 식민지 조선의 상황에 관한 안타까운 마음을 여러 모양으로 드러냈다. 일본 패전 후 복직되어 동경대 총장, 학술원 회장을 거치며 전후 일본 지식사회의 형성에 기여했다. 그의 인생 여정은 19세기 후반 일본의 근대화 시기에 서양문명을 접하고, 기독교 신앙을 접하며 나름의 자생적 계몽과정을 거치던 일본 지식인 사회의 내부 풍경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사료이기도 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7명의 인물에 관한 무교회주의자들의 해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7명의 인물은 개신교 종교개혁의 정신을 여러 모양으로 체현하고 있다. 성경 속 인물들조차도 종교개혁의 문제의식을 선취한 것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한결같이 집단주의와 구별되는 신앙의 개인성을 옹호하였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선다는 것(coram deo)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삶의 행보들을 보였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민족이나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두고 절절한 고민을 했던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신앙인이었다. 근대적 민주주의, 평화 사상, 제국주의와 전쟁 반대 등의 문제의식이 성경 안팎을 넘나들며 이 책에 담겨있다.

나는 지금 한국의 개신교 신앙에서 가장 결핍된 것이 이런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저자 자신의 해직과 필화, 식민지 조선에서의 신앙 강연회 등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시기에 쓰였다는 것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세속성자’를 위한 책 읽기에는 여러 갈래의 관심사들이 중첩되겠지만, 한국과 일본의 무교회주의자들이 한 세기 전에 했던 고민은 오롯이 지금에도 유효하다. 나는 우리 시대가 이들의 저작과 질문을 재발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ㅡ 양희송 (청어람ARM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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