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터뷰] “기독교 신앙이 인권과 만나고 싶다면, 인권을 하나의 공유지로 생각해야 합니다” (정정훈)

대한민국 역사에 ‘인권'이란 단어가 등장한 시점을 1970년대 전태일의 분신을 기점 삼는다면, 우리 인권의 논의는 이제 반세기를 지나온 셈이다. 2019년 우리는 지난 50여년 동안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경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보았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우리의 인권사를 한 번은 갈음하고 넘어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정정훈 선생은 지난해 겨울 창간한 <인권운동>에 기고한 “한국의 2세대 인권운동, 변혁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70년대에서 오늘에 이르는 인권 운동을 세대별로 분류하고 평가했다. 특히, 90년대 이후 이른바 2세대 인권 운동의 특징과 앞으로의 과제를 섬세하게 짚어냈다. 청어람은 정정훈 선생을 모시고 90년대 이후 인권 운동의 주요한 맥락인 차별과 억압의 저항사를 듣고자 한다. 그리고 변화하고 발전하는 한국 인권 운동의 자리에 기독교의 자리가 있는지 또한 묻고자 한다.  

청어람(청) : 안녕하세요. 선생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정훈(정) : 정정훈입니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에 주로 기거하면서 연구와 강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계간 <문화과학> 편집 위원으로 있기도 하고요. 이런저런 학교에 시간 강사로 나가면서 밥벌이하고 있습니다. 주로 연구하는 분야는 맑스 주의, 정치 철학, 인권, 민주주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그만두었지만, 월간 <복음과상황>에서 편집위원으로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기독교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게 쉽지 않군요. 아, 청어람ARMC의 연구위원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 가닥이 남아있긴 하네요.

청 : “한국의 2세대 인권운동, 변혁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에서 1993년을 한국 인권 운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어떤 일들이 어느정도 벌어졌나요?

정 : 말씀하신 대로 1990년대 초부터 한국 인권 운동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납니다. 1971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돼 18년을 옥살이하고 출소한 서준식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권 운동 논의가 전개되었고, 1993년에 이를 토대로 ‘인권운동사랑방’이 출범합니다. 또, 1992년 인권변호사 김칠준과 김동균은 수원에서 법률 사무소를 개소하고, 그 산하에 노동권을 중심으로 한 인권상담소를 개설하는데, 이 단체가 훗날 ‘다산인권센터’가 됩니다. 이밖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천정연) 인권소위원회가 ‘천주교인권위원회’란 이름으로 독립하여 활동을 시작한 것도 1993년입니다. 일련의 흐름을 보면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 새로운 인권단체들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죠. 그런데 이 시기는 단지 여러 단체가 조직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인권 운동의 성격이 변화되기 시작했다는 거죠. 가장 핵심적 계기는 90년대 초반 주요 인권 운동가들이 199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 인권대회에 참가했고, 이를 계기로 ‘국제인권체제’와 국제 인권 운동과 만남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인권 운동의 방식과 인권 이해의 새로운 시각이 열린 것이지요.

청 : 이러한 변화의 불을 당긴 계기랄까, 이전의 흐름에서 대단한 전환을 맞이한 이유가 있을까요?   

정 : 2세대 인권 운동의 변화와 특징을 짚어보려면 93년도 이전의 인권 운동 성격, 다시 말해 1세대 인권 운동의 특징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70년대 전태일의 분신으로 촉발된 민중의 희생과 당대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응집되었고, 72년 10월 유신독재체제의 성립 이후 비로소 터져 나왔습니다. 1972년에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결성되었고, 1974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설립, 같은 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되었습니다. 1세대 인권운동의 경우 70년대에는 독재정권을 종결시키기 위한 민주화 운동의 부문, 80년대에는 자본주의와 분단구조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회 변혁 운동의 일환이라는 성격이 짙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양심수 문제, 국가 기관(검찰, 정보기관, 경찰, 군대 등)에 의한 폭력과 고문 등을 다뤘습니다. 모두 민주화 운동과 직접 연결됩니다.

청 : 이른바 2세대 인권 운동, 즉 93년도 이후의 운동 흐름은 반독재, 민주화라는 사회변혁 운동과 결을 달리한다는 말씀인가요?

정 : 명심할 것은 2세대 인권 운동이 기존 사회 변혁 운동의 부문운동이라는 성격에서 탈피하는 것은 맞으나, 사회변혁이라는 문제의식 자체와 단절한 것 아닙니다. 즉, 단절이 아니라 승계와 전화가 일어난다고 봐야 합니다. 말씀드렸듯, 인권운동사랑방,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이 설립되면서 보다 독자적이며 구체적인 인권 운동의 흐름이 시작됩니다.

예컨대 이런 것입니다. 70년대에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서 수감된 이른바 양심수(이들은 주로 정치가, 지식인들로서 대개 엘리트 집단)에 대한 인권 문제를 주로 다뤘다면, 93년 이후 인권운동은 양심수뿐만이 아닌 일반 수형자들의 인권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아가 국가 기관에 의한 실제적 폭력뿐 아니라 불심검문이라든가 국가에 의한 과도한 개인 정보 수집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 시기에부터 촉발되기 시작합니다. 70년대 인권 운동에선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지요. 더불어 국제인권체제의 선언, 협약, 문헌들에 입각해서 인권운동이 전개되는 시기도 바로 이때입니다. 노동운동이나 통일운동 등의 사회 운동과 인권 운동의 방식이 보다 분명한 방식으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청 : 1993년을 기점으로 인권 운동의 개념과 방식이 바뀌었다는 말씀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 변화의 양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은데요. 선생께서는 인권 운동의 변화가 자유권 운동으로 나타났고, 이 자유권 안에 반-억압과 반-차별로 구체화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정 : ‘반-억압’과 ‘반-차별’은 인권 운동의 내용적 측면입니다. 우선 반억압이라는 개념은 국가가 자행하는 인권침해에 저항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권 운동이 2세대로 접어들면서 국가에 의한 폭력과 권리 침해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70~80년대, 그러니까 1세대 인권 운동에서의 반-억압은 주로 국가에 의한 특정 폭력, 예컨대 특정 민주 인사의 감금이나 그들의 구속 문제에만 대항했습니다. 반면, 90년대 이후 즉, 2세대 인권 운동에 들어서면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고 저항의 범위도 훨씬 더 확대됩니다. 1세대 운동이 양심수 등 주로 민주화운동이나 변혁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의 인권을 핵심 의제로 설정했다면 2세대는 이와 더불어 불특정 다수의 시민에 대한 인권침해를 문제시하였죠. 예를 들어 사회보호법폐지운동, 전자주민등록증반대운동, NEIS반대운동,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 등이 본격 대두된 것입니다.

반-차별 운동은 2000년대에 본격 대두되는데, 주요 문제의식은 인권 침해의 주요 당사자가 단지 국가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비국가 기구들 – 기업, 단체, 학교 등에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차별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거죠. 가령,

직장 안에서 성적 지향의 문제로 인해 상사나 동료 직원에 의해 어떤 사람이 차별을 받을 때, 이러한 차별이 인권침해라고 문제제기하면서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의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이 반차별운동이라는 것이죠. 국가에 의한 개인의 억압뿐만 아니라, 일상적 세계에서 시민과 시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차별을 인권 문제로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반-차별 운동입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이 운동이 차별금지법제정운동 형태로 전개되죠.

: 인권 논의가 2000년대로 넘어왔습니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 개정, 그리고 무산에 있겠습니다. 이 문제는 법안 자체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겠으나, 민간 차원의 인권 운동이 국가/정부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또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나올 수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 : 반차별 운동은 말씀하신 데로 차별금지법 제정 활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심화됩니다. 사실, 노무현 정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처음 마련했을 때는 각 인권 단체의 관심이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 법안이 보수개신교와 재벌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여러 조항들이 삭제되거나 변형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이 시점부터 인권 단체들이 온전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노무현 정부가 최초로 구상했던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보수 개신교 및 재벌의 저항이 있었고, 그래서 법무부의 법안이 매우 후퇴하죠. 그래서 온전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하신 국가와 인권 운동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지점이 나옵니다.

인권 운동에 대해 흔히 하는 오해가 국가나 권력 기관은 결코 인권 운동과 협력할 수 없다는 착각입니다. 명심할 것은 인권은 근대의 발명품입니다.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17~18세기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789년 8월 프랑스에서 ‘인간과 시민에 관한 선언’이 제정되는데요. 우리가 알고 있듯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입니다. 이 선언의 핵심은 인권이 국가의 목적이자 국가 권력의 운영 원리라는 점에 있습니다. 인권은 국가라는 질서 속에 확고한 규범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또, 아까 말씀드린 국제 인권 조항들이 유엔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어런 맥락이죠. 유엔은 세계 국가들의 협의기구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세계 인권의 스탠다드가 설정됩니다. 인권은 국가 안에서 반드시 제도화되어야 하며, 인권 운동은 국가 기관들이 잘 만들어 놓은 인권 기준을 왜 실행하지 않느냐고 묻고, 그럼에도 지켜지지 않을 경우 비로소 국가 권력과 투쟁하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 안에 제도화된 인권이 완벽한 형태로 존재할 수는 없지만, 제도화되지 않은 인권 또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청 : 국가 기관에 의한 인권의 제도화가 왜 중요한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법과 제도로 규정된 인권은 또 다른 인권과의 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예컨대, 인권 vs 인권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는 제도에 의한 또 다른 피해자의 발생, 그로 인한 피해자 서사화의 경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요?

정 : 인권이 제도화되면 어느 지점에서 인권 간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권리들’이 서로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하고 명쾌하게 해결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먼저 인권은 중요한 규범이지만, 그것이 완벽하게 모든 문제를 한칼에 정리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즉, 인권은 초월적 도덕이 아닙니다. 저는 권리들 간의 충돌은 결국 정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단지 정치적으로 타협하자는 것은 아니고, 권리들이 충돌할 때 중요한 기준을 중심으로 조정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기준이 충돌하는 권리들이 보편성을 어느정도 지향하는가라고 봅니다.

이번 강의가 청어람에서 기획되었으니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 소수자들이 동성 결혼의 합법화를 주장할 때는 자기결정권과 같은 당사자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기독교인들은 동성 결혼을 격렬히 반대하며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리곤 그들도 말하지요. ‘반대를 말하는 것도 표현과 양심의 자유와 같은 우리의 인권이며 권리’라고요. 일단은 성소수자들의 성적 지향이나 가족구성의 자유와 보수 기독교인들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가 대립하고 충돌하는 형국입니다.

저는 이 권리간의 충돌이 손쉬운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되면 안된다고 봅니다. 정치적 논쟁을 거쳐야 하는 거죠. 이때 논쟁을 위한 기준이 보편성이라는 것입니다. 동성 간에 결혼하는 것은 이성애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오로지 동성간의 결혼만을 합법화해 한다고 주장하지 않죠. 그러니까 보수 개신교인들은 동성결혼 합법화로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거나 권리를 제한 당거나 침해당하지 않는데도 성 소수자들을 공격하고 혐오합니다. 이러한 공격과 혐오를 표현과 양심의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보편성의 차원에서 성 소수자들의 인권과 기독교인들의 인권 가운데 어디에 손을 들어야 할까요? 타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박탈하는 것에 기초한 저들의 인권주장이 보편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청 : 자연스럽게 기독교 이야기가 나왔네요. 짧게 묻겠습니다. 한국 인권 운동사에서 기독교는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정 : 1세대 인권 운동에서 개신교, 그러니까 신앙에 기초한 운동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역할을 제외하고 초기 인권 운동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2세대 인권 운동에 접어들면서 개신교의 역할이 급격히 사라집니다. 산발적인 참여와 기여가 있었지만, 괄목할만한 영향은 거의 사라졌지요. 90년대 중반 이후 인권 운동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인권운동에서 종교 인권단체의 영향력이 전반적으로 축소되죠.

청 : 왜 그랬을까요?

정 : 이 문제는 종교계에서 좀 더 다룰 문제 이긴 하는데요. 제가 보기엔 종교계, 특히 개신교의 인권 운동이 약해진 주요 원인은 이들의 운동이 지나치게 목사 중심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목사 중심의 운동이다 보니 운동의 재생산이 되기 어려웠죠. 운동의 세대교체가 잘 이뤄지지 않았고, 다변화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리더 역할을 하던 목회자들이 연로해짐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또 진보진영의 여러 목회자가 정부나 산하기관으로 들어간 것도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들어서 여러 진보 기독교 인사들이 정부의 관료나 정부기관의 주요 인사가 되어버렸죠.

아, 중요한 언급을 하나 해야겠군요. 제가 말한 기독교, 그러니까 개신교는 보수 기독교나 이른바 복음주의 기독교를 말하지 않습니다. 진보 기독교를 말합니다. 저는 인권 연구자로서 보수 개신교와 복음주의 기독교는 주요한 세력으로서 한국 사회 인권 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KNCC인권위는 7,80년대 한국 인권운동에서 아주 중요한 세력으로 활동했죠. 복음주의를 포함하여 보수 기독교에서 인권 운동의 지분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청 : 방심하고 있다가 뼈를 맞은 기분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과 인권운동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요? 일각에서는 현대 인권운동이 세속주의이고 인본주의란 비판도 있고, 역사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고백이 인권에 대한 각성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점도 일깨워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인권 논의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정 : 인권 운동이 세속주의, 인본주의라는 비판이 있다면,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인권은 세속주의 맞습니다. 물론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인권이 기독교의 신을 전제하지 않고 인간의 권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보면 인본주의가 맞지요. 거기에 별다른 이견을 달고 싶지는 않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에 기초한 인권 운동 또한 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역사 속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이 종교적 신념을 갖고 인권 운동을 해왔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권의 최초 근거가 기독교 신앙이라거나 진정한 인권은 오로지 기독교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은 일종의 자아도취라는 거죠. 인권의 기원은 하나가 아닙니다.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도 인권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치는 얼마든지 있고, 또 현실에서도 어쨌든 종교인권운동은 펼쳐지고 있거든요.

저는 인권 운동이란 고통 받는 인간이 있음을 알고, 그 고통을 제거하고, 모든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기 위해 저항하고, 제도를 만들고, 활동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활동하는 순간 각각의 종교, 나아가 무신론의 인권 운동가들이 모두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의 기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중요한 거지요. 기독교 신앙이 인권 운동을 만나러 온다면, 그리고 제대로 왔다면, 그곳에서 불교 인권, 이슬람 인권, 무신론 인권을 모두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당신이 말하는 인권의 기원과 근거가 무엇이냐를 따지며 거기에 집착하는 순간 기독교와 인권과 만날 수 없습니다. 인권의 기원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수 기독교 신앙이 인권운동과 만나고 싶다면, 인권을 하나의 공유지로 생각해야 합니다.

청 : 때린 뼈를 또 때리시는군요. 

정 : 저는 지금의 보수적/복음주의적 기독교의 교회나 단체들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인권이 향상되고 신장되는 일에 조직적으로 어떠한 기여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신앙인 개인입니다. 전 인권운동이 기독교가 조직적으로 해야하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도 한국의 보수 기독교, 복음주의 기독교가 일관된 인권의 관점을 가지기는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개인은 다르죠. 개인이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한국사회의 인권향상에 참여하는 활동을 하길 원한다면 교회나 기독교 단체를 통하지 말고 지금 열심히 활동하는 인권 단체로 들어가시라고 말입니다.

청 : 마지막으로 강의를 들으러 오시는 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정 : 제 강의의 핵심은 90년대 이후 인권 운동의 특징을, 사회권, 자유권, 그리고 인권의 제도화에 대해 풀어서 설명할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에선 질의응답에서 더 풍성하게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제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이 인권 이해의 폭을 조금이라도 넓히실 수 있길 바랍니다.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김형욱

[월례강좌] ‘억압’과 ‘차별’에 저항한다, 어떻게? : 90년대 이후 한국 인권운동 새겨보기, 그리고 기독교의 자리 (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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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시 : 2019년 5월 24일(금) 7:30PM
  • 장소 : 낙원상가 5층 청어람홀(520호) [위치보기]
  • 참가비 : 10,000원
  • 신청 : 온라인 신청 → 송금 → 신청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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