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한번 잡솨봐] ‘과학과 신앙’의 경계에서 읽는 책

지난 몇 년 동안 과학과 신앙을 주제로 한 책들이 꽤 많이 출간되었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는 사실 굉장히 어려운 주제 중 하나인데, 마음만 먹으면 교양서부터 전문서에 이르기까지 아주 깊게 공부할 수 있는 책들이 잘 준비된 상황이다. 이미 이 주제의 책을 묶어 추천하는 리스트도 있지만, <월간 북토크 – 경계의 미래>를 준비하면서 나름의 독서 목록을 만들어보았다. 특별히 이 리스트는 이 주제에 관한 논쟁적 이슈들을 잘 설명하고 어느 쪽이 옳은지 답을 내리는 것보다는, 과학과 신앙이라는 이슈를 대결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해의 폭을 넓히고 태도를 점검할 수 있는 책을 중심으로 골랐다.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는가>, 리처드 마우 외 지음, 안시열 옮김,  IVP 펴냄

이 글에 나열된 책의 순서는 책의 난이도나 중요성, 독자들이 책을 읽어갈 순서와는 별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혹시 순서를 정한다면 이 책을 가장 먼저 읽기를 권한다. 특히 당신이 나처럼 ‘신실한 복음주의자’이고 기독교적 언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이 책은 ‘신앙과 과학의 통합을 추구한 우리 시대 기독 지성 25인’이 ‘진화’라는 과학적 지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신앙에 적용했는지를 쓴 에세이의 모음집이다. 그러니까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진화 간증집’인 셈인데, 간증집답게 은혜로운 회심기와 흥미로운 개인사들이 읽는 재미를 북돋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켜켜이 담긴 과학과 신앙에 관한 진지한 고민, 특히 진화와 창조신앙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통합할 수 있다는 고백은 우리가 과학과 신앙을 고민하는 일이 두려운 일이나 헛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얇고 가벼운 책을 발판삼아 우리 신앙이 과학과 신앙의 경계까지, 그리고 그 너머까지 확장되기를 기대해본다.

<과학과 종교>, 토머스 딕슨 지음, 김명주 옮김, 교유서가 펴냄

위의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는가>는 기독 지성 25인의 글을 모았다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독자는 25명 저자 중에서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아야 10명 남짓일 것이다. 그리고 그 10여 명은 아마도 리처드 마우, 톰라이트, 제임스 스미스 같은 신학자나 목회자들일 것이다. 결국 독자들은 “리처드 마우도 진화를 받아들인대!”라며 안도할 텐데, 이것은 과학과 신앙이라는 주제에 관한 우리의 관심이 지나치게 신앙적 관점에 머물러 있고 도리어 과학의 발전이나 지성사와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갈릴레오 이후 과학과 신앙이 충돌하고 그 충돌이 해소되는 과정은 사실 신앙이나 종교의 문제뿐아니라 과학의 발전, 지성사적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논쟁점들을 담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오직 우리의 신앙을 ‘지키는(혹은 강화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옥스퍼드의 유명한 단행본 시리즈 ‘Very Short Introduction’ 중 한 권인 <과학과 종교>는 과학과 종교의 갈등과 해소 과정을 신앙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과학과 종교라는 주제를 생각할 때 갖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벗겨내고 한발 물러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형성해온 역사적 과정과 사회정치적 쟁점들을 조망하게 도와 준다. 같은 시리즈로 출간된 <과학 철학>(사미르 오카샤 지음, 교유서가 펴냄)을 함께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윈의 정원>, 장대익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과학과 신앙에 관한 우리 관심이 신앙적 관점에 치우쳤다고 비판했는데, 사실 오늘날 진화를 가장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 역시 기독교인들이다. 진화는 대중적으로는 이미 상식이 되어버려서, 그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외에는(심지어 어떤 경우 과학자들조차도) 생각보다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진화학자이자 과학철학자 장대익 교수는 다윈으로부터 이어진 ‘진화’의 내용과 의미를 전문적으로 또 대중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소개하는 독보적인 학자다. 그는 ‘다윈 3부작’을 써서 진화의 내용과 지성사적 흐름을 대중적으로 소개했는데, <다윈의 정원>은 3부작의 결론이자 진화를 통해 확장된 과학의 경계를 펼쳐 보여주는 책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진화’라는 개념 자체가 무신론적이고, 그래서 오늘날 신을 거부하는 모든 지적 사조들이 진화론 때문인 것처럼 ‘신앙적’ 혐의를 씌우는데 이 책을 통해 그 혐의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우리가 두려워할 일인지, 혹은 받아들이고 함께 경계를 넓혀나가며 인류와 과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일인지는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판단해도 될 것이다. 장대익 교수는 오래전부터 기독교계의 과학과 신앙 논쟁에도 참여한 바 있고, 몇 년 전에 종교학자인 김윤성 교수, 신학자인 신재익 교수와 함께 과학과 신앙에 대해 주고받은 편지를 묶어 <종교전쟁>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도 이 주제와 관련해 꼭 챙겨봐야 할 책 중 하나다.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 칼 가이버슨/프랜시스 콜린스 지음, 김정우 옮김, 새물결플러스 펴냄

한발 물러서서 과학과 신앙 논쟁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신앙인으로서 과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진화를 이해하고 진화라는 과학의 산물을 신앙 안에 안전하게 통합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계속되어왔는데, 이런 시도에 대중적으로, 전문적으로 가장 크게 이바지한 곳은 미국의 바이오로고스 재단이다. 사실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도 바이오로고스의 프로젝트 중 하나인데, 위 책이 개인의 경험에 기반을 둔 에세이라면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는 다윈, 진화, 지구의 나이, 성경해석, 신 존재 등 과학과 신앙에 관해 자주 나오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이 단 하나의 대답을 준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과학자이자 신앙인인 저자들이 최선을 다해 정리한 모범답안이니 참고하며 생각을 정리하기에 충분하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지음, 바틀비 펴냄

마지막으로 권하는 책은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이다. 사실 이 책은 과학과 신앙의 고민을 전면에 다루는 책도 아니고 전문적인 과학 지식을 풀어쓰는 책도 아닌, 그냥 평범한(사실 평범하다기에는 제법 재미있는) 대중 에세이집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리스트에 올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 책이 저명한 과학자가 일상 속에서 느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고 둘째, 이 책이 ‘과학적 삶의 태도’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정모 관장은 과학이란 단순히 지식의 양이나 그 쓸모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라고 이야기한다. 과학과 신앙이라는 주제도 지식이나 논리의 대결, 그러니까 ‘쓸모’로서가 아니라 삶의 태도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앙인이 과학과 신앙의 경계를 더듬어봐야 복을 받거나 기도 응답을 잘 받는 것도 아니고, 딱히 큐티할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과학자 입장에서도 이 문제는 딱히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는 주제도 아니며, 연구비를 탈 수 있는 주제는 더더욱 아니니 정말 별 쓸모없는 주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과 신앙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태도라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므로 어렵고, 별 쓸모 없다 하더라도 모른 체 할 수 없는 것이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을 읽으며 저자가 말하는 과학적 삶의 태도(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고 이치를 따져보는 그런 삶의 방식이랄까)가 기독교적 삶의 태도, 신앙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과학과 신앙의 경계를 더듬는 이 진지하고도 어려운 질문이 삶의 태도 중 하나로서 일상 속으로 더 가까이 들어올 수 있다면 좋겠다.

글 : 박현철

 

[월간 북토크] 경계의 미래

  • 일시: 2019년 6월 14일(금), 저녁 19:30
  • 장소: 낙원상가 청어람홀
  • 함께 읽고 이야기할 책: 진화는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는가(IVP), 과학과 종교(토머스 딕슨, 교유서가)
  • 행사안내/신청하기: http://ichungeoram.com/14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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