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대한민국’은 김구를 버리고 무엇을 얻었나? -상상과 현실의 ‘국가’에 대하여

KBS의 이인호 이사장이 지난 10월 22일 국정감사에 출석하여 “김구 선생을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로서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말을 하고 그 해명으로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 수반까지 지내는 등 독립 운동가로서 대단히 훌륭한 분이었지만 1948년 대한민국 (단독)독립에는 반대하셨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로서 거론하는 건 맞지 않다고 한 것”이라는 발언을 하여 논란에 휩싸였다. 이 논란은 단지 대한민국 현대사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친일 논쟁'을 넘어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국가관'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주제다. 이번 논란을 근거로 청어람R 연구 위원인 윤환철 사무 국장(미래나눔재단)이 상상으로서의 국가, 현실로서의 체제에 대한 글을 기고하였다.

 

동서고금에 수많은 사상가들이 ‘국가’와 ‘민족’을 논하기는 하지만 아직 어떤 압도적인 정의가 채택된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 ‘민족’을 긍정하면 그 배타성을 떠올려 반박당하고, 그 반박은 다시 ‘정체성’과 ‘공동체’를 앞세운 논리에 재반박당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엎치락뒤치락하는, 그럼에도 현실적으로는 어느 하나의 규정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테마는 곧 주도권(hegemonie)을 쥔 쪽이 규정하는 형국이 되기 십상이다. 이 글도 솔직하게 말하면 그 주도권 쟁탈전의 하나로 보일 수 있겠다.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인간에게 이성이 있는 한 ‘좋음’과 ‘옳음’을 향한 주도권 경쟁은 피할 수 없으며, 부디 공정하고 지성적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이런 논쟁은 기꺼이 뛰어들어 최선을 다하는 쪽이 필자의 선택이다. 내친김에 또 하나의 출발점을 밝힌다면 어느 정도 유전자 풀(gene pool)이 고정돼 온 생물학적 현실과 성경의 말한바 섭리의 단위, 창조질서의 일부로 ‘민족’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첫 근대국가

모두 ‘국가’로 번역되지만 ‘state’는 특정 체제로 성립돼 있는 정부 중심의 국가로, ‘nation’은 그 구성원인 ‘민(民)’이 강조된 개념으로 대별한다.1) 이 둘이 일치할 때 ‘nation state(민족국가)’가 되는 것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이런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일제 강점기는 ‘state’와 ‘nation’이 분기되고 불안정한 긴장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체제’는 日本의 일부로 강점되었지만2), 한반도에 사는 民은 그 ‘체제’를 아직 ‘국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상상(imagination) 속에만 존재하는 민족국가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사에서 발견되는 첫 번째 국가론은 1910년 미국 교포들이 결성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형질상 대한제국은 이미 망하였으나 정신상 민주주의 국가는 바야흐로 발흥되며…”

이는 얼마 전까지 대한제국의 신민(臣民)이었던 이들이, 황제를 부정하고 주권자를 자임하며 근대국가(공화주의)를 설계하는 발어사였다. 주권과 영토를 빼앗긴 상태는 유일무이한 ‘무형정부(無形政府)’로 표현했다. 식민지 백성의 울분 수준이 아니다. 당장 대한제국의 외부(外部)대신의 직인이 찍혀있는, 원인 무효가 돼 버린 자신들의 ‘집조(執照, 여권)’를 ‘국민회입회증서’로 갈음하고, 미국 당국의 인정을 받았다. 무형정부가 발휘한 유형의 권능이었다. 뿐만 아니라 ‘세금(인두세, 혹은 인구세)’을 거두고, ‘국채’를 발행했으며, 미국에서는 공군사관학교 격인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만주에는 육군사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만들었으며 몇몇은 이런 일에 자기 재산을 털어다 바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이 선각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무형에서 유형으로, 상상을 현실에 투영해 낸 체제(state)는 1919년 3․1운동을 거쳐 ‘임시정부’로 구체화 됐고, 훗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민족국가(nation state)가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3) 1948년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라는 주어를 명확히 하고4)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선언한 것은 그 ‘상상속의 국가’가 38년 만에 가시적 실체로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 체제에 대한 상상의 소환

이와 같은 돌아봄을 통해 ‘국가’와 ‘체제’가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끊임없이 동기화되려는 성질을 가졌다고 가정할 수 있다. 현실의 체제는 그 부조리한 정도에 따라 그 주인인 민(民)의 상상 속으로 완전히 혹은 일부 소환(召還)된다. 완전히 소환된 체제는 하직을 고하고, 상상의 일부인 역사로 편입되며, 일부 소환된 체제는 민의 상상력과 동기화 상태를 진단받게 된다. 당대를 살아가는 민의 입장은 선거와 같은 평화롭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끊임없이 동기화되는 평형상태를 선호할 것으로 추정되며, 큰 역사적 변동을 수반하는 완전 소환은 세계사적 전환점에나 일어날 일이다. 간혹 총칼을 쥔 되먹지 못한 군인들이 이걸 흉내 내지만 그것은 정당한 소환이 아니라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체제 강탈일 뿐이다.

여기까지 와서야 한반도에서 명멸했던 왕조들의 역사는 ‘국사’가 될 수 있고, 이순신 장군의 헌신을 대한민국이 ‘호국(護國)’이라 부를 수 있다. 당대 시점에서도 충무공이 조선왕조의 주인인 선조, 즉 체제와 맞섰는데도, ‘나라를 지켰다’는 것은 그가 지킨 나라가 궁극적으로는 민의 상상 속에 있는 것임을 전제로 한다. 같은 구도에서 그가 지킨 것이 ‘대한민국’이 아니었을지라도 그는 대한민국이 추앙하는 호국영령이다.

이인호-김구발언

채널A 화면 갈무리

길을 잃은 ‘국가관’

최근 KBS이사장이 되면서 친일파의 후손임이 더욱 알려진 이인호 전 교수는 “김구 선생은 1948년 대한민국 (단독)독립에는 반대하셨기 때문”에 건국의 공로자가 아니며 임시정부는 불완전했기에 “정신사적으로만 기념한다.”는 발언을 했는데, 얼핏 들으면 국가를 현실체제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교수는 이 한 마디로 백범 뿐 아니라 단정 수립에 반대한 독립 운동가들을 ‘공로자’에서 제외한다.5) 그러나 그가 준거로 삼은 ‘대한민국’이라는 체제는 3‧1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현실 체제도 부정하고 말았다. 그의 국가관이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면, 상상속의 국가도 현실 체제도 아닌 제3의 국가관을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독립 운동가들에게는 이렇게 형식 논리를 들이대던 그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일왕을 위해 태평양전쟁에 나가 싸우다 죽으라.”고 했던 자기 조부 이명세를 두고는 “행적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당시를 살던 시대 상황이 특히 중일전쟁 이후에 한국에서 직업을 가지고 산다는 것 자체가 오역(忤逆)이었다”며 애먼 대중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에는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 4,389명만이 등재됐고 이명세는 그 중에서도 비중이 큰 인물에 속한다.

한반도의 현역 체제인 대한민국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철저하게 민의 상상력에 의해 탄생되었고 그것과 동기화해야 하는 국민국가임을 선언하고 있다. 심지어 그 스스로 어떤 부분이 동기화 돼 있지 못한지도 밝히고 있다. 그것은 분단이다. 제헌의회는 마저 합해야 할 북측의 의석을 따로 떼어놓을 정도로 그 미완에 대한 의식이 철저했다.

식민지의 세계관에 매몰된 몇몇 학자들의 주장을 보노라면 언제든 패권을 차지한 세력이 형성한 체제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진다. 그들에게 ‘애국’은 1945년까지는 일왕(日王)에 대한 것이며, 1948년까지는 그 대상을 몰랐고, ‘대한민국’은 미약한 임시정부 상태에서 벗어난 1948년 이후에야 대상이 된 것인가. 그렇다면 그 대한민국 체제 내에서 이른바 ‘성공한 쿠데타’로 만들어진 강탈 체제도 여전히 충성을 바칠 정당한 대상인가. 충성의 대상이 될 유일한 조건이 현존하는 패권이라면, 시장의 건달들이 세금을 걷는다 해도 그들을 때려눕힐 뿐 정의를 따질 수는 없으리라.

이 버거운 말들을 늘어놓는 것은 잦아든 줄 알았던 논쟁이 뒷걸음질을 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퇴행이 10년입네 했다가 요즘은 40년이란 말까지 나왔는데, 이 국가론도 그에 못지않은 퇴행과 궤변에 휩싸일 뿐 아니라 후세들에게까지 껍데기 형식논리가 전해질 것을 염려해야 할 판이다. 하여, 설익은 생각이나마 먼저 내놓고 이보다 나은 말과 생각에 밀려나기를 기다린다.

 

[주] ㅡ

1) 또한 ‘nation’은 ‘민족’으로도 옮겨지지만 ‘state’는 그렇지 않다.

2)그래서인지 이승만은 미국 체류 중이던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징집 카드(U. S. World War Ⅰ Draft Registration Cards)’문서에 자기 국적을 ‘JAPAN’이라고 친필로 적어 넣었다.

3) 강영심, 김도훈, 정혜경, ‘1910년대 국외항일운동Ⅱ-중국·미주·일본’, (천안: 독립기념관, 2009),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17권, pp. 203~226.

4) 이국운 교수의 세바시 강연, ‘헌법 제1조를 읽는 세 가지 방식’ 2011. 9. 18.

5) 고상만 전 조사관(‘대통령 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의 논지를 빌려 온 것이다.

 


윤환철
윤환철

청어람R 연구위원. 공의정치포럼 사무국장, 한반도평화연구원 사무국장 등을 거치며 NGO 운동가로, 실천가로 꾸준하게 활동을 해왔다. 현재 미래나눔재단 사무국장으로 탈북대학생들을 지원하는 역할으로 하고 있다.

  •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 윤환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윤환철

    글 쓴 뒤에 발견한 각주(제가 글 먼저 쓰고 검색해서 각주를 다는… 그런 모자람이 있어요. 그래서 제 글중 하나의 논지와 유사한 부분을 오늘 찾아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Politeia』가 고전적으로 현시하듯이, 서양 지성사에서 정치철학의 등장은 국가의 본질에 대한 탐구이자 이상적인 국가 형태에 대한 철학적 기획이다. 단순화의 위험은 있지만 간단히 말해 그것은 철학이 종교를 대체한다는 혁명적인 발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현실의 국가들이나 통치 계급의 존재 자체를 신성시하는 태도, 현실 국가들의 권력 구조나 정치 행태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것들에 대한 경험적 일반화를 정치적 지식으로 믿는 태도, 그러한 현실적 정치 질서에의 일방적 순응이나 세속적 목적 실현을 위한 이용을 실용이나 실천으로 파악하는 태도 등으로 표현되는 비철학적 정신세계에 대한 비판적 극복 노력의 산물이다(양승태, 국가 정체성 문제에 대한 정치철학적 성찰 『대한민국이란 무엇인가』,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0)p. 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