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오라는 남자는 안 오고, 멘붕만 자꾸 찾아왔던 날 – 까미노 이야기(1)

완소녀(완전소형여자) 박진희박의 까미노 이야기 ① 

그녀는 '완소녀(완전소형여자)'다. 배낭이 몸의 2/3쯤 된다. 그녀의 취미는 '여행'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3대 은사를 가졌기에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나곤 한다. 그렇게 떠난 길 위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만난 이야기는 늘 따뜻하고 반짝거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몸은 '소형'이지만 눈과 마음은 크고 깊은 그녀, 박진희박이 전하는 까미노 이야기! 단언컨대 독자는,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팬'이 될 것이다.

★ 먹어도 먹어도 끝나지 않던 하루

2013년 9월 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나는 아주 요상한 복장을 한 채 인천공항으로 가는 전철 안에 있었다. 헐벗은 몸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오리털 점퍼를 걸치고 머플러를 두르고, 히피 치마 밑에 발목까지 올라오는 가죽 등산화를 신고, 나만 한 배낭을 멘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앞으로 두 달간 메고 다닐 배낭에 다 넣지 못한 옷가지는 몸에 모조리 걸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쉬 볼 수 없는 복장이라, 전철 안 사람들은 모두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어서 나는 최대한 ‘미친 애는 아니에요’로 통했으면 하는 미소를 띠고 있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받은 휴직 덕에 계획에 없던 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주위에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내가 가게 될 줄은 몰랐던 길.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걸었던 길, 프랑스를 넘어 스페인 땅 끝까지 800km를 걸어가는 길. 산티아고 순례(Camino de Santiago)의 여정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 티켓만 끊었을 뿐, 전날까지 일하느라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유럽 땅을 밟는 것은 난생 처음이었고, 그렇게 장시간 혼자 여행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게다가 800km를 걷는다니! 150cm를 겨우 넘는 나는 160cm 언저리에 닿기 위해 그야말로 몸부림치며 살아왔다. 매일같이 굽 높은 신발을 신고 휘청거리며 살아온 내게 걷는 일은 괴로운 일 중 하나였다. 신발에서 내려오는 일조차도 쉽지 않았던 내게 산티아고는 크나큰 모험이었다.

아침을 먹고 왔지만, 공항에 도착하니 왠지 마지막 한식을 즐겨야 할 것 같아 땀을 뻘뻘 흘리며 국밥 한 그릇을 먹었다. 모험을 앞둔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잘 먹는 것 외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비행기에 오른 10시간 동안 기내식이 두 번이 나왔다.

그렇게 네 끼를 먹었는데,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하니 아직도 해가 쨍쨍했다. 공항에서 부랴부랴 예약한 한인 민박집까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걸어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니 인자하게 생긴 주인아저씨가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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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트레이드 마크. 조개껍질이 달린 낡은 배낭, 지팡이, 등산화. ⓒ박진희박

 

“어, 생장 가는 아가씨구먼!”

생장 가는 아가씨, 그 말이 나를 어찌나 평안하게 하던지. 이상한 행색 때문에 내 조국에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길고 긴 하루였다. 그런데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단 한마디로 알아준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주인아저씨가 차려준 저녁밥상, 내겐 다섯 번째 끼니를 먹고서야 하루가 끝이 났다.

★ 시작이 이렇게 스펙터클하다니!

생장 피에 드 포르. 프랑스 끝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순례자들은 모두 이곳에서 까미노를 시작한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선이 되어준 거대한 산맥, 피레네를 넘어 걸어서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것이 순례자들의 첫 코스이다.

“그래, 생장 가는 떼제베는 예약했나요?”
“아니오? 에헤헤”

약간 백치 같기도 한, 준비성 없는 노처녀를 위해 주인아저씨는 예매를 도와주셨고, 다음날 아침 문밖까지 배웅해주셨다. 10kg 남짓한 배낭에 휘둘려 휘청대는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시며 “완주하면 여기 들러요. 밥 한 끼 사줄 테니까.” 응원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파리까지 와서 에펠탑도, 몽마르트 언덕도, 오르셰 미술관도 모두 패스한 채 생장 가는 기차를 탔다.

아홉 시간 반 만에 마을에 도착했다. 순례자 사무소에 가서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을 받아 첫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로 가는 것이 오늘의 마지막 할 일이었다. 사무소 주변 알베르게는 이미 순례자들로 가득 찼고, 나는 순례자사무소에서 지정해주는 알베르게로 갔다. 여기서 내 생애 최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알베르게는 5-10유로씩을 주고 묵는 순례자들의 도미토리다. 공간에 크기에 따라 한 방에 적게는 4명, 많게는 180명까지도 수용한다. 또 특별히 정해주는 침대가 없고, 접수를 하면 선착순으로 침대를 골라서 짐을 풀면 된다. 그래서 배낭이나 침낭으로 자기 침대를 표시해놓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걸 몰랐던 나는 ‘음 이게 내 침대겠군’ 하고선, 짐도 안 풀고 기차에서 친구가 된 프랑스 청년과 저녁 먹으러 나간 것이다. 돌아왔더니, 어떤 아저씨가 내 침대(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자고 있었다. 주위에 모든 침대에 순례자들이 누워 자고 있었다.

첫 번째 멘붕이 찾아왔다. 멀리서 한국 여자가 보여 나는 무턱대고 달려가 그녀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 착한 친구는 내게 “그럼 언니, 침낭 있죠? 내 침대에서 같이 자요” 했다.

고마운 마음에 그제야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려고 가방을 들었는데… 아뿔싸, 굳게 잠긴 자물쇠의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침대 뺏긴 것보다 열 배 정도 더 큰 멘붕이 내게로 찾아왔다. 오라는 남자는 안 오고 멘붕만 찾아와서 “하나님, 나한테 왜 이러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세 자리 숫자도 기억 못하는 ㅂㅅ 같은 상황에, 다른 사람들이야, 밤새며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열쇠를 풀었을지 몰라도, 나는 그 와중에도 배낭 푸는 것보다 수학이 싫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침대에 자고 있던 아저씨는 알베르게 빈 침대를 돌아다니며 노숙을 하는 사람으로 판명이 났고, 나는 침낭은 없어도 그나마 침대는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얇은 치마 하나를 덮고 맨몸으로 이층침대에 올라가 누웠으나… 잠이 오면 정말 나는 성인군자의 성품을 지닌 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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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자물쇠 비밀번호를 잊었던 사건 때문에,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날 겸 마을에서 하루 더 쉬었다. 다음날 아침 혼자 산책을 하며 철철 울고 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와서 위로해주었다. ⓒ박진희박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생장 마을 성당에서 들리는 종소리로 지금은 새벽 두 시구나, 새벽 세 시구나 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세상에서 가장 늦게 흘러가는 시간을 경험했지만, 아직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일의 문턱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날 내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첫째, 사랑도 명예도 돈도 다 필요 없고 지금으로선 그저 침낭 하나면 족하겠다는 것. 둘째, 내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상관없이 지금의 나는 숫자 세 개도 못 외우는 머저리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 물론 지금이야 내 47일간의 순례 여정 중에 맨몸으로 자던 그 시간이 없었으면 쉬 완주하지 못했을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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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장 피에 드 포르. 프랑스 끝자락에 있는 아주 작고도 예쁜 마을이다. 여기서 순례자의 길이 시작되어, 멀리 보이는 산을 넘고 넘고 또 넘어야 한다. ⓒ박진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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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에 있는 성당에 들어가,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 작은 불을 하나 밝혔다. ⓒ박진희박

 

 


박진희
박진희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3대 은사의 소유자.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아프리카 여행기 [그대 나의 봄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