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책]종교개혁과 로마 가톨릭개혁 미술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김병규의  it  책] ① 종교개혁과 로마 가톨릭개혁 미술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 <루터와 미켈란젤로 –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II>

 ‘책 덕후’ 김병규 목사가 소개하는 책 이야기-[김병규의 ‘잇’ 책]은 주목하여 볼 책이라는 의미로 ‘it’이기도 하지만 책과 책 사이, 책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의미이기도 하다. 2-3권의 책을 연결하여 소개하며 함께 고민할 이야기를 나눈다.

2014년 4월 14일자 한겨레에 ‘20년 걸려 완성한 르네상스 미술 3부작’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이 속한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소개가 실렸다. [해당 기사 보기] 이 기사를 작성한 임종업 기자는 2014년 12월 26일자 신문에서 국내서 분야의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책으로 이 책을 다시 추천한다. [해당 기사 보기] 

사실 다른 이들이 추천한 책들과 비교할 때 미술사, 그것도 종교개혁과 그 이후 로마 가톨릭개혁의 미술을 미술사와 종교사 관점에서 살핀 이 책이 나란히 실려 있는 그 모습이 나름 안쓰러워 보였다. 좋은 책이 묻히는 게 안타까워 배려하는 모습이랄까. 하지만 이 책이 그대로 묻혔다면 내가 더 안타까웠을지 모른다. 이 책이야말로 종교개혁이 던진 물음을 로마 가톨릭 입장에서 변호하면서 미술사에 담긴 종교적 세계관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풀어내 오롯이 담아내는 수작이기 때문이다.

저자 신준형은 동양미술을 전공하려 했다. 그런 그가 단지 언어를 좋아한다는 이유 때문에 서양 미술사로 관심을 돌렸다. 어둠이 더 초월적이라 생각한 그는 남부 이탈리아 미술이 너무 밝다는 이유로 북유럽 미술사를 전공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특별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다. 기독교인이기는 커녕 외려 불교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전공하게 된 북유럽 미술사, 그 중에서도 전성기 르네상스인 16세기는 종교개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미술사였지만 종교사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사상들에 천착했고, 그 덕분에 당시의 미술을 당대의 세계관 가운데 주체적으로 읽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물 이 바로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시리즈다.

김병규의잇책-신준형의르네상스미술사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1-3권, 신준형, 사회평론 (2013)

천상의 구원을 향한 열망과 투쟁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

이 시리즈 세 권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단연 <루터와 미켈란젤로>였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목사로서 나는, 개혁해야, 아니 개혁되어야 할 교회를 생각할 때 언제나 16세기의 개혁이 하나의 모델이 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시대와 그 이후, 그 이전 시기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말하는 천상의 세계를 그리는 지상의 화가들 이야기가 단지 미술 이야기가 아니라 16-17세기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자극제가 되리라 기대했다.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아니 기대 그 이상으로 이 책은 생각할 수많은 주제들을 던져 주었다.

이 책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본 16-17세기 미술사’가 아니다. 오히려 “종교개혁의 도전 이후 가톨릭 미술이 전개되어 나간 방향과 양상, 즉 가톨릭개혁의 미술사”(5쪽)다. 저자가 이 시기를, 이런 방식으로 탐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모든 종교는 시각 체험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시각 체험은 영성에 도달하기 위한 강력한 방법론으로 흔히 사용”되며, “이러한 종교의 시각 영역이 가장 잘 표현되는 곳이 종교미술”이기 때문에 “가톨릭개혁의 미술도 사실 미술이라는 말보다는 가톨릭의 시각 체험, 시각문화라는 용어로 불러야 더 적합할 것”(같은 쪽)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가 볼 때, “16-17세기, 종교투쟁의 시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들은 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천상의 구원을 향한 열망과 투쟁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7쪽)의 반영이다. 그래서 저자의 이 책은 종교개혁이 자극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개혁운동(이를 개신교에서는 반동 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이라 부른다)의 신학과 세계관이 미술에 끼친 영향을 추적하면서, 미술을 통해 당대의 신앙적 세계관을 우리에게 실감나게 펼쳐 보인다. 그 덕분에 우리는 신학사나 종교개혁사 책에서 접하기 힘든 생생한 로마 가톨릭 영성과 당대 인간들의 투쟁을 만나게 된다.

종교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루터와미켈란젤로

이 책은 개신교인인 내게,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당대의 신앙이 어떻게 관념적인 이해가 아니라 세계관으로서 모든 곳, 곧 문화와 예술 속에 녹아 있는지 보게 도와준다. ⓒ김병규

이 책 제1부는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 시기의 ‘성상 논쟁’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이론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제2부는 16세기와 17세기의 미술사를 논하면서, 당대의 예술가들, 곧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 틴토레토와 엘 그레코, 카라비조와 가울리, 루벤스 등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쟁쟁한 화가들의 작품을 다룬다. 제1부가 이론적인 내용을 다루기에 저자는 제1부가 다소 지루하다고 느끼는 독자에게 제2부부터 읽어도 좋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고 개신교인이라면, 제1부는 제2부 못지않게 흥미진진할 것이고, 제1부를 이해해야만 제2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겠다. 제1부야말로 시대를 초월해 씨름할 질문을 계속해서 쏟아내기 때문이다.

제1부에서 다루는 가장 큰 주제는 ‘성상(image, icon) 문제’다. 이 문제는 트렌트 공회(1545-1563) 때 비로소 다뤄진 문제가 아니었다. 도리어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이미 제8세기 동로마 비잔틴제국에서 일어난 성상파괴운동이 그 시초가 된다. 이에 대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샤를마뉴 대제(742-814)의 대응이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이미지 기능의 정의와 사용 범위를 정하게 한 <샤를마뉴 대제의 서>(Libri Carolini)였다. 그래서 저자는 제1장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등장하게 된 성상에 대한 부정적이고 심지어 파괴적인 움직임을 다룬 다음, 제2장에서 ‘성상 정치’라는 이름으로 교회사 속의 선례를 다룬다.

기실 ‘성상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성경 해석과 교회사, 교부 전통의 수용 여부 및 전통에 대한 정의 등 종교개혁 시대에 로마 가톨릭 교회와 다투었던 거의 모든 쟁점이 다 등장한다. 거기다 종교개혁과 로마 가톨릭개혁의 반응이 성상이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당대의 영성/경건 이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목사와 신학자들의 이해뿐만 아니라 미술과 당대의 관습을 통해 대중의 영성/경건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결국 제1부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에 있어서 그 기준을 제시한 것은 트렌트 공회로서, 트렌트 공회는 개신교 종교개혁에 반응하여 교황 중심의 교회 권위를 재확립하고, 로마 가톨릭 신앙을 평신도에게 더 강력하게 호소할 방법으로서 미술을 활용함으로써 이후 미술사의 진행방향을 가능케 했다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 강조점이 바로 이그나티우스 로욜라(1491-1556)가 세운 예수회를 통해 가장 강력하게 진행되었다는 것. 그래서 저자는 제4장의 제목을 ‘예수회, 가톨릭개혁의 전위부대’라 붙였고, 미술을 통한 예수회의 선전활동이 얼마나 활발했으며, 그것이 선교로 확장되었는지를 제1부에서는 간결한 필치로 진술하면서 제2부에서 그 실례를 들어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책은 르네상스 미술사를 미술사인 동시에 종교사로 다룬 책으로서, 미술사가로서 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의 성상과 전통 이해에 동의하는 종교인으로서 써내려간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개신교인인 내게,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당대의 신앙이 어떻게 관념적인 이해가 아니라 세계관으로서 모든 곳, 곧 문화와 예술 속에 녹아 있는지 보게 도와준다.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이 무얼 믿고, 왜 그렇게 믿었는지, 하여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니 저자의 루터 이해나 루터로부터 성상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이어 받아 파괴적으로 발전(?)시켰다고 언급되는 츠빙글리와 칼뱅에 대한 언급에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울 때조차 나는 저자의 이 수고가 얼마나 값진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성상에 대한 로마 교회의 전통적 입장을 적극 수용하며 개신교와 성상 파괴론의 입장을 비판하는 저자의 이해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이미지를 가능하게 했을지라도 그 이후에 그리스도께서 직접 남기시고 또 남기도록 이끄신 것은 성상이 아니라 말씀이지 않았던가. 루터와 칼뱅이 한 일은 ‘새로운 교리’, ‘새로운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니라 ‘교리의 회복’과 ‘갱신·개혁’ 아니었던가. 로마 교회 내의 공로 사상과 마리아 중보론은 여전히 개신교인인 내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성례전 중심의 로마 교회와 말씀 중심의 개신교회의 거리가 본질에 있어서는 가까워지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종교개혁과 로마 가톨릭개혁의 미술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들과 씨름하기

기독교그위험한사상의역사-뱀과양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 알리스터 맥그라스, 국제제자훈련원(2009), <Serpent and the Lamb> Steven Ozment, Yale University Press(2011)

이 책을 읽는 동안 두 권의 책을 떠올렸다. 먼저 성경을 각자의 손에 들려줌으로써 진정 위험한 시도를 한 것이 종교개혁이었다고 말한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국제제자훈련원, 2009)를 떠올리며, 성상을 그 앞에 놓는 것과 성경을 그 손에 들려주는 것, 이 둘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차이가 있으며,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다음으로 하버드 대학교의 고대사 및 근대사 교수인 스티븐 오즈먼트(Steven Ozment)가 뱀 문양을 사용한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와 양 문양을 사용한 루터의 관계를 통해 종교개혁 시기의 상황과 그 둘의 관계를 전기식으로 묘사한 <The Serpent and the Lamb>(Yale University Press, 2011)을 떠올리며, 과연 뒤러의 영향이 당대에 대단해서 저자의 책과 오즈먼트의 책이 그 지점에서 만나면서도 당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점을 확연히 느끼게 되었다.

저자와 개신교 독자 간의 이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신학 논쟁과 그 논쟁이 지니는 미술사적 의의를 교부 문헌 원전과 현대 학자들의 논의를 성실히 살펴 자신의 입장을 펼친 저자의 노력과, 그저 짜깁기에 불과하거나 전공자의 교과서라고만 생각되기 쉬운 미술사를 역사 속 인간의 생생한 투쟁으로 묘사해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오게 한 저자의 업적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참고로, 이 책 <루터와 미켈란젤로>는 2007년에 출간된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 : 가톨릭 개혁의 시각문화>의 개정판이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인 <뒤러와 미켈란젤로>에서 저자를 알브레히트 뒤러를 중심으로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을 다루며, <파노프스키와 뒤러>에서는 저자에게 영향을 준 현대 해석자인 파노프스키의 해석을 가지고 뒤러와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 미술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시리즈 박스 세트에는 아틀라스가 별개로 첨부돼 있는데, 거기에 각 지역별, 시기별 인물 해설 및 저자와의 대화가 실려 있어 유익하다. 붉은색 아틀라스 표지는 그 자체로 전성기 르네상스 시기인 16-17세기의 지리와 인물 및 주요 사건을 보여주며, 르네상스 미술 및 르네상스 미술 해설과 관련해 상호 연관성을 살필 수 있도록 인물들을 배치해 놓았다.

르네상스-전권

‘지름신’을 부르는 이 아름다운 책을 보라!

 


김병규
김병규

법학과 신학을 공부하고서, 라비블 본부장과 새물결플러스 편집장으로 일했다.
책 읽기를 즐기고 책 사기를 사랑해 출판사를 떠나서도 여전히 책 언저리를 맴도는 사람, 학교도 교회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그저 책 사고 소개하는 걸 즐기는, 평범한 듯 기이한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