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당신의 슬픔이 내 안에서 쉼을 얻을 때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김형욱의 서가 정분] ① 당신의 슬픔이 내 안에서 쉼을 얻을 때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책을 좋아하는 서점 직원인 김형욱이 쓰는 '북 에세이' 사람과 사람, 책과 사람이 '정분'나는 이야기

1.

얼마만의 늦잠인가. 시스템 교체 작업을 앞두고 느닷없이 날려버린 데이터 복구로 2주가 넘도록 야근을 했으니 보름 만이다. 잠결에서부터 의식이 미세하게 돌아오고 있을 때쯤 책상 위 스마트폰이 두 차례 울렸다. 데이터에 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슬쩍 짜증이 난 민수는 오른 눈을 감고 왼쪽 눈을 겨우 뜬 채 화면을 켰다.

– 정진희 입니다. 오늘이죠?
– 참, 1시던가요?

정진희. 1시.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던 의식이 두꺼워지자 보름 전 데이터를 날리고 대책 회의 중 받았던 전화가 생각났다.

“어쩜 연락 한 번 없니? 바쁘니?”
“바빠요. 왜요?”
“미안하다. 저기… 늬 아버지 납품하는 청우 식당 있잖니. 거기 사장님 아는 분 딸이 있단다.”

민수는 마른 숨을 짧게 뱉고 미간을 찌푸렸다.

“또 거래처에요?”
“참하단다. 서울서 회사 다니는 데 너 일하는 곳이랑도 가까워.”

어머니는 힘겹게 말을 이었는데 모양새가 마치 사과하는 것 같았다. 지난해 민수가 파혼한 후 그 책임이 자기 탓인 양 어떻게든 혼사를 열어보려 했다.

“그래서 할 거니?”
“그러세요. 나 지금 들어가야 해요.”
“그럼 번호 남겨두마”

그 뒤 어머니로부터 몇 차례 확인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민수는 진희에게 연락하지 않았을 거다. 세 번째 전화를 받고서야 민수는 진희와 약속을 잡았다.

– 안녕하세요. 소개받기로 한 김민수입니다. 연락이 늦어 죄송합니다.
– 안녕하세요. 바쁘셨나 보네요.

민수는 회사에 일이 생겼었다는 말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지만 쓰지 않았다. 회사가 바쁘다는 말처럼 하나 마나 한 말이 또 있을까. 그렇게 돌아오는 토요일 약속을 잡았다.

2.

민수는 서둘러 나왔다. 가방에 노트북을 뺐다는 것을 제외하곤 출근할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복장이었다.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광화문으로 나와 K문고에 들렀다. 민수에겐 독특한 버릇이 있다. 선 자리에 나온 여자에게는 항상 책을 선물했다. 책은 때마다 달랐는데, 어느 날은 소설을, 또 다른 날은 시집을, 종교 서적을 줄 때도 있었고, 가끔 만화책이나 잡지를 주기도 했다. 처음엔 물론 말문을 트기 위함이었다. 책을 선물 받은 맞선 녀들은 대체로 민수를 흥미로워했고, 덕분인지 두세 번 만남은 이어지곤 했다. 아쉽게도 세 번째 만나고 두 번째 책을 선물할 즈음 그녀들은 민수에게 ‘저흰 조금 다른 것 같네요.’ 에둘러 말하며 인연을 정리했다.

주말 K문고는 책만큼 사람도 가득했다. 또래의 젊은 사람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 소설가 J의 사인을 받기 위해 늘어선 인파가 줄을 이었다. 민수는 김상봉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를 골랐다. 그리스라니, 비극이라니, 민수는 오늘은 첫 번에 퇴짜를 맞겠다고 생각했다.

카페 A는 광화문 공식 맞선 장소다. 주말이면 어색하게 15도쯤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눈 후 긴장 가득한 미소를 짓고 맥락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남녀가 절반을 넘는다. 노출 콘크리트 인테리어에 계통 없는 테이블과 의자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대화를 나누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다. 맞선이 잘 풀리면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 주교좌성당을 따라 덕수궁 돌담길을 걸을 수도 있다. 민수는 30분 전쯤 도착해 카페 안쪽에 앉았다. 약속 시각 10분을 남기고 진희에게 전화가 왔다.

카페

민수가 선물하는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는 진희에게 어떤 의미로 읽힐까!

3.

“저 왔는데, 어디 계세요?”
“예, 문 앞에 보이시네요. 지금 서 있는 사람이 접니다.”

민수와 진희는 15도쯤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눈 후, 긴장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진희가 먼저 말을 열었다.

“전 여기 처음인데, 문이 굉장히 특이하네요.”
“주인이 암스테르담 어디에선가 갖고 온 거라고 합니다. 100년이 넘었다더군요.”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두세 번 쯤이요. 문은 주인에게 물어봤습니다.”
“아직, 식사 전이시겠지만 차 한 잔 하시죠.”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김상봉, 한길사 (2003년)

조심스런 대화가 이어지다 책상 위에 놓은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를 발견한 진희가 민수에게 물었다.

“책 보고 계셨나 봐요.”
“아, 이 책 진희씨 겁니다. 아까 잠깐 서점에 들렀거든요.”

“네? 저희 오늘 초면인데요. 게다가 이 자리는…” 진희의 미소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진희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비극에 대한 편지라니, 조금 우울한 책인 것 같은데요?”

“흔히 비극이라고 하면 그렇게 생각하기 쉽죠. 슬픈 이야기라고요. 누군가 죽거나 복수심에 불타오르다 절망적인 최후를 맞이할 것 같은 이야기가 비극이라고 생각하지만, 김상봉 선생이 말하는 비극은 그보다 조금 더 넓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 비극은 슬픔이라기 보단 어떤 카타르시스 같은 거예요. 주인공이 감당 불가능의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최초에 좌절을 겪고 그 좌절이 전율을 만들어내죠. 그런데 좌절은 일종의 해방감을 만들어냅니다. 자신의 불가능성을 인정했을 때 열리는 더 넓은 세계 같은 거죠. 그래서 비극을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 부를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결국 좌절 이야기 아닌가요? 좌절은 낙담한 마음이고 또 실제 그런 상태일 거고요. 좌절이 해방감을 준다라… 선뜻 이해하기 어렵네요.”

“맞습니다. 저도 그래요. 다만, 김상봉 선생은 비극이란 ‘슬픔의 자기반성’이라고 말합니다. 슬픔을 절망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는 것, 나아가 지독히 괴롭지만, 철저히 자기반성 하는 것을 가리켜 비극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그리스 비극의 영웅들이 위대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우주적 비극을 맞이한 자, 예를 들면 모든 진실을 알아버린 오이디푸스 같은 경우 자기 눈을 빼버린 후 방랑합니다. 겉으로 보면 그는 패배자요 실패자이지만 철저히 자기 슬픔을 지고 간다는 점에서 위대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비극은 그렇게 슬픔이 정신을 만나 꽃을 피워 만들어낸 것이죠.”

“그렇군요. 자기반성 앞에 비극이 있다라…”

“그리고 누군가의 비극을 진심으로 공감할 때 그와 나 사이에 만남의 자리가 생기고 상대방을 진정으로 알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누군가를 이해한 것이, 다시 말해 제가 진희씨를 이해한다는 것을 다만 진희씨는 어깨 바로 위까지 머리를 길렀고,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디서 일하고, 연봉이 얼마인지만을 파악한다면 그것은 제가 당신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해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나 속에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 그를 내 안에 머물게 하고 쉴 수 있게 하는 것, 그래서 나와 너 사이에 경계가 없어지는 것 아닐까요? 언제 이런 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당신의 슬픔이 내 안에 들어와 쉼을 가질 때뿐일 것입니다. 내 속에서 타인의 슬픔이 고요히 자리 잡을 때, 마찬가지로 내 슬픔이 당신 안에 잠잠히 쉼을 얻을 때 우리는 서로 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리스 비극은 바로 그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민수가 말을 멈췄다. 말이 너무 많으면 실수를 하고, 너무 적으면 오해를 한다. 민수는 실수했다고 느꼈다.

“말이 많았습니다. 실례했군요.”
“아니에요. 재밌네요. 조금 더 듣고 싶은데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식사하러 가시죠.”

민수와 진희는 암스테르담에서 온, 100년 넘은 문을 지나 광화문으로 향했다. 민수는 진희를 몇 번쯤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김형욱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목회학 석사 과정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