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짧은 만남 속에 장대한 울림 – 고(故) 이승만 목사

[특별 기고] 짧은 만남 속에 장대한 울림 – 고(故) 이승만 목사
-윤환철 (미래나눔재단 사무국장/청어람 연구위원)

2015년 1월 14일 이승만 목사께서 돌아가셨다. 향년 83세였다. 국내에는 잘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故 이승만 목사는 북한 정권에 의해 순교당한 이태석 목사님의 맏아들로 남북 분단의 피해자로서 평생 남북의 화해에 앞장선 분이다. 사람들은 그를 '화해의 사도'라 불렀다. 우리는 누군가의 부재를 통해, 비로소 존재 의미를 절감해야 하는 한계를 지녔기에 뒤늦게 이승만 목사의 삶을 뒤늦게 접하며 '어른'을 잃은 슬픔을 느끼고 있다. 마침 지난 1월 19일(월)이 '마틴 루터 킹 데이'였다. 흑인 차별 철폐를 위해 싸웠던 마틴 루터 킹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었다. 故 이승만 목사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흑백 차별 철폐 운동을 했다. 우리에게는 이런 '사회적 기억'과 '인물'을 애써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 ‘역사는 진보한다’는 의미가 구체화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가 이승만 목사를 기억하며 페이스북에 쓰신 글과, 청어람 연구위원이자 미래나눔 재단의 사무국장인 윤환철 국장이 이승만 목사의 삶에 담긴 의미에 대해 특별 기고한 글을 함께 싣는다. 글을 싣도록 흔쾌히 허락하신 이만열 교수와 빠듯하게 청탁한 원고를 거절하지 않고 써주신 윤환철 국장께 감사드린다.

어설픈 식견을 가지고 남북문제에 대해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이승만 목사님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너무 익숙한 이름이 오히려 낯설었지만, ‘언젠가 마주칠 분이겠지’ 정도로 기억에 묻어둔 것은 크게 후회할 일이었다.

이승만 목사님(1931.4.25.~2015.1.14.)은 북한 정권에 의해 순교당한 이태석 목사님의 맏아들로 남북의 화해에 앞장선 분이다. 그러한 삶의 여정은 먼저 그 자신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 대한 증오를 끊고, ‘화해의 사명은 피해자에게 있다’는 자각과 전환을 겪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흑백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 일했고, 남한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일했으며, 중동과 아시아의 문제에 투신했다. 그가 평양에 남겨둔 네 여동생들의 생사를 확인한 것은 1978년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관의 문을 두드렸기에 가능했다. 북측은 동생들의 생존을 알렸을 뿐 아니라 그 부친과 교분이 있었던 부주석 강량욱 목사 명의의 초청장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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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동생들과 함흥의 어머니 산소 성묘(1985. 8) 출처 : 고 이승만 목사 홈페이지 http://syngmanrhee.webs.com/photo-gallery

그는 1978년 모스크바를 거쳐 평양으로 향할 때 아내에게도 말을 못했고, 평양에서 여동생들과 눈물의 해후를 한 뒤에도 2년 동안 한국에서 사업하는 남동생 이승규 장로에게 알리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엄혹한 시기였다. 그가 1980년에 미국 북장로교 교단잡지에 방북기를 기고할 때는 ‘친북’딱지를 각오해야 했고, 김포 공항의 안기부 요원은 방북과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관여한 사실을 빌미로,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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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환 죄수번호’를 붙이고 워싱턴에서 인권운동 시위하는 이승만 목사(설명은 자서전) 출처 : 고 이승만 목사 홈페이지 http://syngmanrhee.webs.com/photo-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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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과 함께 (1992.1) 출처 : 고 이승만 목사 홈페이지 http://syngmanrhee.webs.com/photo-gallery

2014년에야 필자는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3박4일간 이 목사님을 뵐 수 있었다. 역시 ‘화해(reconciliation)’라는 타이틀이 붙은 모임이었다. 실로 이 분의 일생 앞에서 낯선 이야기가 없을 터이고, 나의 일천한 경험들도 그의 발자취 이후의 것이었는데도 경청과 격려뿐이었다. 아마도, 당신의 공로는 잊고, 남북 관계의 현재를 함께 아파하며 아직도 매듭짓지 못한 사명만을 바라보고 계셨으리라. 진정한 겸손과, 사명에 있어 물러서지 않음이 함께 있었다. 주변에 이런 어른이 얼마나 남아계실지 꼽아보게 된다. 선한 일을 ‘곧’하라는 말씀을 경시하며 겉멋 부리는 사이에 사귀고 동역할 기회는 날아가고 사명은 멀어진다. 이 목사님은 그의 자서전 제목이 된, “기도 속에서 만나자” 하시던 모친을 ‘상주시는 이’ 앞에서 해후했으리라. 이제 그는 땅의 일을 잊고 천사를 대면하리라. 그와 같은 안식에 들기 전까지 화해를 깨뜨리려는 악마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 짧은 만남을 탄식하는 내 앞에 남아있다.

관련 글 "화해의 사도 이승만 목사를 보내며" 이만열(숙명여대 명예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이승만 목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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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환철
윤환철

청어람R 연구위원. 공의정치포럼 사무국장, 한반도평화연구원 사무국장 등을 거치며 NGO 운동가로, 실천가로 꾸준하게 활동을 해왔다. 현재 미래나눔재단 사무국장으로 탈북대학생들을 지원하는 역할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