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람 매거진

열정페이? 헌신페이도 있다!

[삐딱황의 바른생활] ① 열정페이? 헌신페이도 있다!

 '황구라'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그가 '삐딱'하게 돌아와 '바른' 이야기를 한다. 국/내외에서 이슈가 되는 사건이나, 함께 고민해야 할 주제들을 '삐닥황'만의 시선으로 관찰-해석-적용할 예정이다.

 열정페이? 한 번에 느낌이 안 오더라

“열정페이? 그게 뭐야?” 그래도 캠퍼스 사역 한답시고 학생들 기저귀1) 갈아주면서 10년 넘게 캠퍼스를 지켰는데 감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바로 ‘구글링’을 시도했다. 이상봉 디자이너실 인턴들의 월급과 소셜 커머스 웹사이트 위메프 ‘갑질 해고’에 대한 내용이 첫 화면에 떴다.

열정페이계산법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열정 페이 계산법’

그런데 이상봉 디자이너실 인턴 월급이 10만원이더라. 10만원. 사실 ‘페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미안한 액수가 아닐까? ‘열정차비’ 정도가 적당하시겠다. 너무 냉정한 평가인가? 그 액수로는 ‘열정식대’도 간당간당하다. 물론 한 달 내내 맥도날드 런치 세트만 먹으면 가능하다. 강제된 1일 1식이다. ‘열정페이’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간단히 정의를 내려 보자. ‘열정을 빌미로 한 초(超) 저임금 노동’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저임금이라는 말 앞에 초(超)라는 말을 굳이 붙인 이유가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에 육박하지만 최저임금이 5,580원인 이상한 대한민국에서 웬만한 저임금으로는 주목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쨌든 ‘열정페이’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매체에서 많이들 얘기 하니까 [열정페이에 대해 알아보자] 오늘의 주제 ‘헌신페이’로 바로 들어가 보자.

‘벌’어먹어야 하는데 ‘빌’어먹어서

헌신페이? 역시 ‘구글링’을 해보니 아직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청어람 매거진]에서 처음 언급하는 것이다. 간단히 정의 내려 보자. 앞에서 언급한 ‘열정페이’에 대한 정의를 활용해 볼 수 있겠다. ‘헌신페이’란, ‘개신교 영역에서 헌신을 빌미로 이뤄지는 초(超) 저임금 노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임의로 ‘개신교 영역’이라고 설정하고 크게 3가지 영역으로 구분해보자. 지역교회, 선교단체(캠퍼스 선교단체와 해외 파송 선교단체를 포함), 개신교 시민단체로 나눌 수 있겠다. 짧은 글에서 하나하나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오늘은 내가 여전히 속해 있는 캠퍼스 선교단체의 맥락에서 시작해 보고, 향후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바로 접을지 다른 영역으로 확대해 갈지 결정할 것이다. 슬슬 시작해보자.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로 12년째에 접어들었다. 30년씩 사역 한 분들도 있으니 연수를 자랑 할 건 아니겠다. 문득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단체 간사로 살겠다고 부모님께 말씀 드리던 때가 기억이 난다. 부모님은 대뜸 “그래 그러면 앞으로 뭐 먹고 살거니?”라고 물어보셨다. “후원자들의 후원으로 살 예정”이라고 말씀 드렸다. 말 끝나자마자 바로 답이 날아왔다. “선관아. 네가 뭐가 부족해서 남들에게 빌어먹는 일을 하니?”

빌어먹는 일. 욕처럼 들렸지만 나는 후원을 받는 일이 빌어먹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벌써 그만뒀어야 했다. 나는 여전히 캠퍼스 사역이 가치 있고, 누군가 꼭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캠퍼스 사역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누군가 대표선수로 캠퍼스에 남아서 사역을 이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로 나간 동문들은 그 대표선수들이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그런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들이 받는 후원금이 ‘빌어먹는’ 수준에서 머무른다는 ‘현실’이다2).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들의 후원금에 대한 통계를 찾아보고 싶었다. 당연히 이런 ‘고급정보’는 온라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캠퍼스 선교단체들은 정보 공유에 상당히 폐쇄적이다. 오프라인의 인맥을 동원했지만 어느 단체도 후원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도 간사 3년차까지 월 후원금 30만원을 넘은 달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지방에서 혼자 올라와 자취를 하는 입장에서 30만원은 입금되자마자 통장을 스쳐지나 온라인에서 소멸되는 돈이었다. (ATM 출금이 가능한) 통장 잔고 만원을 만들기 위해 9천 500원 남은 통장에 천원을 입금했다가 수수료 700원 때문에 결국 돈을 못 뽑고 돌아선 기억도 생생하다. 친한 친구 결혼식에 갔는데 축의금 낼 돈이 없어서 그냥 식권만 받아서 밥 먹고 ‘그래 축가 불러줬으니까 밥값은 했다’며 스스로 위로했던 기억도 또렷하다. 왜 아픈 기억은 선명하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까?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들에게 이런 경험은 아주 일상적이다. 명절 때마다 부모님 뵙는 게 면구스러워서 고향에 내려가는 게 감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추억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재정 훈련을 ‘빡세게’ 시키셨다고 받아 들일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단지 추억으로 포장되는 걸 거부한다. 내게는 ‘과거’지만 후배들에게는 ‘지금’ 당면한 처절한 아픔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혁명은 피를 먹고 산다’ 했다. 의미 있는 변화는 두려움을 잊고 뛰어드는 자들에 의해 일어난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될 때는 누군가의 조건 없는 헌신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내지 선교를 떠나면서 후원자 모집 다 해놓고도 후원자에 의존하지 않고 사역을 시작했다. 역사의 변곡점에서는 맨 땅에 헤딩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얘기하기에 한국의 캠퍼스 선교단체는 ‘맨 땅에 헤딩’ 시절을 넘어 꽤 오랜 세월을 축적했다.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50년까지 역사를 지닌 단체들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기 전에, 단체 안에 여전한 초(超) 저임금 노동, 즉 ‘헌신페이’에 대한 문제 의식과 반성은 존재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헌신’은 필요하지만 ‘당연’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헌신페이’가 고발하는 또 다른 측면들

캠퍼스 선교단체 안의 ‘헌신페이’ 문제는 여러 층위에서 존재한다. 일단 단체 안에서도 계층이 나뉜다. 동문 학사 그룹이 잘 조직된 캠퍼스와 그렇지 않은 개척 캠퍼스 사이의 격차가 상당하다. 그 중에서도 여성 사역자이면서 개척 캠퍼스 출신 사역자들이 가장 힘들게 사역을 한다. 남성 사역자들이야 몇 년 현장에서 사역하다가 신학을 하고, 교회 사역과 병행하면서 나름의 살길을 찾아간다. 그런데 여성 사역자들은 연차가 올라갈수록 위치가 애매해진다. 비단 재정의 문제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대개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사임을 한다. 그러면 대학을 갓 졸업한 새로운 여성 사역자가 그 자리를 채운다. 상위 리더십은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여성들만 건전지 갈아 끼우듯 바꾸는 셈이다. 결국 여성들은 결혼이라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5~6년의 시간을 ‘빌어먹는’ 혹은 ‘봉사 활동’이라는 주변이나 사회적 편견 속에 경력 단절 기간으로 보내다가 사회에 내던져진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본다고 비판 할 수 도 있겠다. 물론 가난하다는 게 불편하고 꽤나 힘든 일이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 할 여지는 상당히 넓어진다.

사역사진

캠퍼스 사역은 수많은 ‘엘리야의 까마귀’를 경험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형식의 특별 은총을 미담으로 후배들에게 전하며 여전한 현실을 가리고 싶지는 않다. ⓒ황선관

아들을 키우며 겨울 점퍼가 필요했었다. 집 근처 마트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5만 원짜리 점퍼를 발견했다. 선뜻 살수 없었다. 들었다 놨다,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큰마음 먹고 구입해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커다란 택배 상자가 도착해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맨 위에는 우리가 산 점퍼와 같은 치수의 점퍼가 들어 있었다. 동문 선배 한 분이 보내 주신 ‘엘리야의 까마귀’였다. 재작년에 유학을 준비하는데 토플 학원비 100만원이 필요했었다. 그때가 간사 한지 10년 되던 해였지만 그런 돈이 우리 통장에 있을리 없었다. 어떻게 토플 학원비를 마련해야 할까 아내와 고민하다가 그저 몇 마디 기도를 나누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어느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큐티를 하는데 갑자기 네 생각이 났다’며 얼마 안 되는 데 송금하겠단다. 잠시 후 확인해 보니 정확히 100만원이었다. 비슷한 일은 꽤 많았다. 하나님은 절대 미리 주지 않으시고 턱 밑까지 찼을 때, 인내를 거듭하다 거의 성불(成佛)하기 직전에 지갑을 채워주셨다.

그러나 이런 형식의 특별 은총을 미담으로 후배들에게 전하며 여전한 현실을 가리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안정된 급여의 일반은총을 경험하고 싶다. 누군가는 이런 접근이 불편할 것이다. 영적인 눈으로 봐야 한다는 분도 있을 것이다. ‘각오하고 시작한 일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들은 중세 시대에 살던 수도사들이 아니다. 최소한의 필요를 채워주지도 못하면서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다. 단체의 성장을 추구해야겠지만 구성원들의 영양 상태를 먼저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헌신과 책임 사이

자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이렇게 생각해보자. 캠퍼스 선교단체 혹은 개신교 단체들의 활동에 관심 있거나 빚진 마음이 있는 분들이라면 ‘열정페이’를 생각할 때 ‘헌신페이’를 받고 있는 간사/활동가들을 떠올려주었으면 한다. 자신을 대신한 대표 선수들의 유니폼이 찢어지지는 않았는지, 영양실조에 걸려서 제대로 경기를 못 뛰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캠퍼스 선교단체의 리더십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책임’의 문제를 무겁게 받아들이자. 제발 책임 질 수 있을 만큼만 사람을 뽑자. ‘하나님이 다 채워주신다’ 라는 말은 ‘우리는 책임 질 수 없다’는 말의 친구일 뿐이다. 특히 사람을 뽑을 때 우리 선배들이 ‘현재 이 정도 액수의 후원금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고지하고, 그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역사가 오래 됐는데도 여전히 취약한 재정구조를 가졌다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졸업생들이나 (잠재적) 후원자들이 그 단체 사역을 위해 후원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건 단순히 재정의 문제를 떠나서 ‘단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심각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현재 사역하고 있는 간사들에게도 부탁하고 싶다. 자신의 후원액수가 오랜 기간 피해의식의 이유가 된다면, 사역을 중단하고 모금에만 집중하든지 아니면 사역을 중단하시길 권하고 싶다. 잠재되어 있는 피해의식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법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밥 한번 먹자며 호텔 같은 곳에서 밥 사주는 목사님들이 계신다. 물론 고맙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그냥 이걸 돈으로 주시지’ 싶다. 밥 한번 기분 좋게 먹으면 기분은 좋아지겠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접근 할 문제를 정서적으로 위로해서 해결 할 수는 없다. 호텔에서 나왔는데 차비가 없어서 걸어가는 간사가 있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3).

주-

1) 대학생 사역의 소소한 단면을 보여주는 표현. 부드럽게 쓰면 ‘뒤를 봐준다’, 거칠게 쓰면 ‘밑을 닦아 준다’ 정도로 쓸 수 있다. 간사들끼리는 종종 사용하는 은어이다.

2) 물론 메이저 단체와 중소 규모의 단체 사이에 격차가 있고, 개인별로 편차는 존재한다.

3) 필자의 실제 사례이다.

 


황선관

죠이 선교회 간사. 현재는 아내 김은형, 아들 황도하와 함께 캐나다 밴쿠버에서 신학 연수 중이다. 한 가지를 꾸준히 잘 못하는 성격인데, 간사는 성격에 비해 오래 하고 있다.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고 주장하며 ‘대충의 힘’을 설파하며 살고 있다. 두어 개의 잡지에 연재를 했었고, 책을 한 권 내려다가 출판사에 까이고 와신상담 재기를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