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람 매거진

이웃의 고통을 종교적 자원으로 삼는 한국교회의 민낯

깡성호의 종횡무진 (2) 이웃의 고통을 종교적 자원으로 삼는 한국교회의 민낯

 

역사학도 강성호의 무기는 '자료'다.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성역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한국교회와 사회의 역사적 흑역사와 민낯을 들추는 그의 글을 기대하시라!

사실 고통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괴로운 것은 고통이 어떻게든 설명되지 않을 때이다. 이유를 알 수 없고,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그래서 그 고통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비로소 괴로움이 생겨난다. 이러한 이유로 고통을 설명하는 문화적 장치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논리와 방식은 시대와 지역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말이다.

대형 참사는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거대한 고통인 만큼,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논리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기독교는 절대적 존재인 ‘신’과 세상의 ‘거대악’이 ‘공존’하는 모순을 합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신정론(神正論)을 만들어냈다. 신정론은 기독교의 역사가 이 천년 동안 이어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신은 전능하다”와 “신은 우리를 사랑한다”라는 명제를 안고 사는 기독교인은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신앙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통의 문제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그 무엇이어야 했다. 기독교인은 고통의 문제를 정당하고 타당한 것으로 설명해야 하는 강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고통에 대해 예수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나?

성서의 인물 가운데 욥은 신정론의 주요 주제로 자주 등장한다. 풍족한 삶을 살았던 욥에게 재앙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욥은 많은 재산과 자식들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욥의 세 친구가 등장한다. 이들은 고통 가운데 괴로워하고 있는 친구를 향해 위로는커녕 섭섭한 이야기를 전한다. 너(욥)의 고통에는 무슨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네(욥)가 신에게 어떤 잘못을 저지른 죄의 결과가 아니냐 등. 욥의 친구들은 그의 고통에 위로와 희망을 나누기보다 ‘지적질’ 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고통이 돌아온다는 일종의 ‘인과응보적 신정론’을 주장하고 있다.

인과응보적 신정론은 고통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오늘날의 기독교인에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적지 않은 기독교인이 인과응보적 신정론으로 고통의 문제를 설명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2005년 1월 2일 김홍도 목사는 에스겔 9장을 근거로 서남아시아의 쓰나미 사태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설교한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그 지역은 우상 숭배로 죄악이 넘쳐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슬람포비아가 밑바탕에 깔린 김홍도 목사의 인과응보적 신정론은 엄한 아버지가 잘못을 저지른 자식에게 매혹한 벌을 내리는 모습과 흡사했다.

이웃의 고통을 종교적 자원으로 삼는 한국교회의 민낯

더욱 큰 문제는 대형 참사와 같은 고통의 문제를 자신의 종교적 자원으로 삼기 위해 인과응보적 신정론을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앞서 쓰나미 사태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설교한 김홍도 목사는 일주일 뒤(2005.1.9)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기 위해서 그만큼 투자가 있어야 한다는 요지의 설교를 했다(이것도 일종의 인과응보적 신정론이다). 이때 김홍도 목사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안 살면서 돈 많고 벼슬하고 잘 사는 것은 동남아시아에 지진과 해일이 덮친 것처럼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것입니다.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라는 경고로 설교를 마쳤다. 쓰나미 사태를 멸시의 수단으로 사용한데 이어, 물질적 헌금을 거두기 위한 협박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예는 1995년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2003년에 발생한 대구지하철 방화 사고에 대한 기독교인의 ‘기억’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천국은 확실히 있다>라는 책으로 유명한 토마스 주남(Choo Nam Thomas)을 따르는 인터넷 카페에 게재된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진짜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 하나님의 종인 목사를 괴롭혔기 때문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삼풍 기업의 회장인 이준 회장은 1970년대 초반에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지었는데, 비용 문제로 조용기 목사를 못살게 굴었기 때문에 백화점 붕괴와 같은 참변을 당했다고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94년 5월 19일 발생한 박한상 사건(아들이 부모를 칼로 찔러 살해한 패륜적 사건)의 경우 교회에 헌금을 바치지 않아 초래된 것으로도 묘사하였다.

다음카페 신정론

<천국은 확실히 있다>라는 카페에서 활동하는 한 네티즌이 삼풍백화점의 붕괴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당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최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에 대한 기억은 어떨까. 이와 관련하여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한바탕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먼저, 2003년 사고 당시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추도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우리 대구가 우상의 도시로 변질된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었다. 추도문 말미에 유족들에 대한 위로를 전했지만,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글에 들어갈 적합한 표현은 아니었다. 몇 년 후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대구 팔공산에 불교테마공원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를 반대하기 위한 동영상을 제작하였는데, ‘대구가 통일대불과 같은 우상을 세웠기 때문에 1995년 가스폭발사고와 2003년 참사를 겪게 되었다’고 표현해 심각한 종교 갈등을 일으켰다.

이웃의 고통에 온전히 공명하지 못하는 내 식대로종교

위에 열거한 예들을 통해 볼 때, 한국기독교는 타인의 죽음을 종교적 자원으로 삼는 몹쓸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행위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박한상 사고의 원인을 목사에 대한 불순종으로 설명함으로써 사제 주의를 강화시키거나 대구지하철 방화 사고를 우상숭배의 결과로 규정지음으로써 불교에 대한 특혜(?)를 봉쇄하려는 분명한 목적이 작용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과 죽음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수단화될 뿐이다. 게다가 사고의 원인과 배경을 인과응보적 신정론으로만 이해하다 보니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아니. 오히려, 피해자야말로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죄인으로 규정될 여지가 생겼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욥에게 “악을 갈아 재난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더라”고 말한 엘리바스와 같이 말이다.

대구지하철

대구지하철 방화사고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웃의 아픔을 “불신 지옥 예수 천당”으로 환원해 자신의 종교적 자원으로 삼고 있는 모습.

대형 참사를 인과응보적 신정론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이들은 과연 비합리적인 사람들일까? 오히려 이들은 합리주의의 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인과응보적 신정론은 고통의 문제를 신의 존재와 모순 없이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한 결과이다. 또한, 타인의 고통이 어떠할지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신정론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대형 참사의 원인은 돈에 대한 욕심, 규제의 완화, 어른들의 무책임 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서 큰 문제가 발생한다. 많은 기독교인은 타인의 고통을 ‘내 식대로’ 설명하기 바쁠 뿐 그 아픔을 함께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누가복음 7장을 보면, 죽은 과부의 아들을 되살리는 예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울지 말아라(13절)”고 위로한 뒤 “젊은이여 일어나라(14절)”고 외치며 이적을 행했다. 그 결과 요단강을 건널 뻔했던 아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15절에서 누가는 “예수께서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었다”고 표현하였다. 뭔가 뭉클한 구절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었다. 우리는 예수와 같이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는 재주를 가질 수는 없다. 다만, 가슴에 자식을 묻은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만행은 막을 수 있으며, 이웃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고 참여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한국기독교는 ‘망언의 종교’로 각광받았다. 부디, 올해에는 타인의 고통을 수단화하지 말고 오롯이 기억하고 함께 했으면 좋겠다.


강성호
강성호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석사과정으로 한국현대사를 공부했다. 현대 한국교회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학도. 졸업 이후 전남 순천으로 삶의 터를 옮겨 2년 차 전라도민이 되었다. 가나안 성도로 산지도 2년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