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람 매거진

당신을 그리스도인이게 하는 몇 가지 것들 –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서평] 당신을 그리스도인이게 하는 몇 가지 것들 –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의외로 책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매달 출판되는 수많은 책과의 경쟁을 뚫고, 시간의 먼지를 털어 내고 살아남는 책은 한 줌에 불과하다. 물론 그 한 줌의 목록은 전적으로 독자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간혹 강제로라도 목록에 올리고 싶은 책을 만나게 된다. 로완 윌리엄스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복 있는 사람, 2015)은 그런 책이다. 로완 윌리엄스는 품이 넓은 사람이다. 영국 성공회 소속 사제이자 신학자지만, “성공회 형태를 지닌 정교회”(도날드 알친) 신학을 한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동방 교회 전통에 밝다. 교부학, 현대 가톨릭 신학, 현대 개신교 신학에 대한 이해 역시 깊다. 그의 신학에 밝은 학자들은 다양한 신앙적, 지적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그 속에서 그리스도교 공통의 토대를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로완 윌리엄스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전통 속에, 실천을 통해,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인들은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리는 절차를 밟아 교회의 온전한 식구가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습니다. 함께 모여 떡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나사렛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19)

이 책의 원제는 Being Christian’ 이다. Christian. 그리스어 접미사 ianos[이아노스]는 어떤 말 뒤에 붙어 ‘~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을 더해준다. 가령 고대 로마에서는 황제(Kaisar)를 숭배하는 이를 가리켜 Kaisarianos[카이사리아노스]라고 불렀다. 신약성서를 보면, 초대교회 교인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으로 Christianos[크리스티아노스], 오늘의 말로 표현하자면 ‘Christian(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Being. 그리스어 on[온]은 ‘존재하다’는 뜻의 그리스어 동사 einai[에이나이]의 현재분사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 말 앞에 정관사 to[토]를 붙여 ‘존재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영어권에서 to on[토 온]은 흔히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쓴 ‘Being(존재)’으로 번역된다. 그러니까 로완 윌리엄스의 책 Being Christian그리스도인의 존재론,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라는 특별한 존재의 가능 근거를 다루는 책이다.

‘존재론’이라고 말했지만, 그 주제를 다루기 위해 로완 윌리엄스가 택한 것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교의학의 길이다. 이 책의 부제는 ‘세례, 성경, 성찬례, 기도’인데, 이는 목차의 구성순서이자 그리스도인이라는 존재를 분석하는 네 가지 틀이기도 하다. 이 책의 첫 번째 특징은 여기에 있다. 민중신학자 서남동은 자신의 신학 작업이 새로운 신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원점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새로운 신학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인접 학문과의 간학문적인 연구보다는, 성서와 초대교회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해석학적 투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로완 윌리엄스 역시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그리스도교 전통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는 초대교회로 돌아가 예배의 중심 행위인 세례, 성경, 성찬례,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렇다고 그가 과거에 얽매인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의 두 번째 특징은 로완 윌리엄스가 세례, 성경, 성찬례, 기도를 모두 ‘행위’로 이해한다는 데 있다. 그는 앞서 언급한 네 가지를 제도나 형식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네 가지는 그리스도인이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하는 실천 행위다. 그리스도인이란 지속적인 실천 속에서 그리스도를 점점 닮아가는 사람이지, 어떤 제도와 절차를 통해, 혹은 상징적 행위를 통해 일회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존재를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 보지 않고 변화하고 운동하는 생성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현대적인 사고방식이다. 즉, 로완 윌리엄스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되살려 다룬다.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지속적인 운동과 실천에서 찾고, 그 실천들을 실행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리스도인-되기’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실천을 개인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철저히 공동체와 사회를 향한 것으로 이해한다는 데 있다. 오늘날 예배란 영화와 같다. 무수히 많은 이가 한 공간에 모이지만 각각 떨어져 스크린만 응시하는 극장처럼, 우리의 예배 또한 기껏 한자리에 모여 제각각 자신의 신앙을 정비하는 개인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로완 윌리엄스는 예배란, 그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면, 반드시 우리를 공동체와 세상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세례는 하나님, 이웃과의 연대의 문을 연다. 성경은 공동체가 함께 듣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찬례는 손님들의 공동체를 창출하며, 기도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자리로, 곧 조각난 세상의 한복판으로 이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탁월한 성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좋은 이웃, 좋은 공동체원이 되는 일이다. 공공성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더해져야 하는 보조 장치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에 해당한다. 타자와 완벽히 유리된 일종의 무균실, 그리스도인은 거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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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완 윌리엄스는 예배란, 그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면, 반드시 우리를 공동체와 세상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세례는 하나님, 이웃과의 연대의 문을 연다. 성경은 공동체가 함께 듣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찬례는 손님들의 공동체를 창출하며, 기도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자리로, 곧 조각난 세상의 한복판으로 이끈다. 이미지 출처 : www.Pixabay.com

예배라는 여정

세례란 예수와 함께 “심연”에 서는 것을 뜻합니다. (…) 그 심연에서 성령은 인간의 삶을 하나님께서 원하는 모습으로 다시 창조하고 새롭게 합니다. (27)

그리스도인은 전통 속에, 예배를 통해, 세상을 향해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로완 윌리엄스를 따라 그리스도교의 네 가지 전통적 실천 행위를 살펴보자. 세례는 그저 “사람들을 공식적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행위”(23)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사역”(25)이다. 세례를 받고 우린 걷는다. 목적지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뒤 들었던 음성, 곧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정. 이는 그리스도와 연합해야만 가능한 일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성이 가장 극명하게 파괴된 곳으로 내려가셨기에, 우리 역시 세계의 음지로 내려가야만 한다. 아래로 더 아래로, 세례 이후 우리는 낮고 슬픈 곳으로 줄곧 내리막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 세계의 심연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자매들과의 연대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 사랑과 연대 속에서 우린 비로소 옛사람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그리고 서로에게 “이 이야기에서 어떻게 우리의 모습을 알 수 있을까? 이 성경 읽기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함께 새로워질 수 있을까”라고 묻습니다. (68-69)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응답이 담겨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때로 말씀을 오해하고 멋대로 응답했다. 로완 윌리엄스는 인종청소, 노예제, 여성 학대 등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된 여러 폭력의 원인을 말씀을 오해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응답한 인간에게서 찾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잘못된 응답에 대한 결정적인 교정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 첨가는 작성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응답이 참으로 흠 없고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따라서 그런 응답을 불러내신 하나님의 행위를 온전히 이해하게 됩니다.”(63) 성서는 다양한 장르로 여러 주제를 다루지만,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준거점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해 우린 성서 안에서 그리스도적인 것과 그렇지 못한 응답을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해석 작업은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실존적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많은 인물과 그들의 응답을 통해 보건대, 우린 누구이며, 또 누구여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에게 성찬례에 참여하는 일은 자신이 언제나 손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73)

타자, 곧 가난한 과부와 고아를 조건 없이 환대하고, 그들과 공동체를 이루라. 익숙한, 그럼에도 여전히 가치 있는 요청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누구인지 모르는 낯선, 혹 도둑이나 강도일지도 모르는 타자를 조건 없이 환대할 수 있는 넓은 품과 능력을 지닌 이는 과연 누구인가? 로완 윌리엄스에 의하면, 환대 행위와 공동체 형성의 근거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환대하신다. 성찬례는 그 사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을 떡과 포도주 안에 담아 나누어주는 하나님의 환대 안에서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는 손님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아가 그리스도를, 이웃을, 자연을, 결국 이 세상 전부를 환대하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결과 성찬례는 하나의 공동체를, 그리스도 외에는 누구도 주체가 아니며, 그래서 누구도 ‘자기’를 내세울 수 없고 은혜와 감사만을 나눌 뿐인 손님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 로완 윌리엄스는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님으로 그분의 식탁 둘레에 모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교회는 본래의 모습을 회복합니다.”(92)

그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 기도가 자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적 인간성이 무르익는 것입니다.  (97)

세례와 성경, 성찬례는, 그 목적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기에 결국 기도로 수렴된다. 기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거나 삶을 의도하는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특별한 영적 기술”이 아니다(97). 엄밀히 말하면,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하는 것도 아니다. 로완 윌리엄스는 오리게네스를 빌려 말한다. 기도는 “예수께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예수 안에 있”는 것이다(103). 기도의 주체는 그리스도이며, 그래서 진실한 기도는 우리의 존재와 삶의 주도권을 그리스도께 맡기도록 이끈다. 예수의 기도를 배우고, 나의 욕심과 이상을 버리고, 그 빈자리를 예수의 뜻으로 채우고, 예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결국 하나님의 목적에 우리의 전부를 쏟아붓는 것,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의 본질이다. 기도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살게 하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한다. 로완 윌리엄스는 결론적으로 말한다. “기도란 여러분을 위해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위해 여러분도 거기 있겠다는 약속이자 맹세입니다.”(121) 그렇다. “결국은 기도다.”(120)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목적지에 다다른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태복음 6:9)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흔히 성공회를 두고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하는 교단이라고 말한다. 로완 윌리엄스가 왜 성공회를 대표하는 신학자인지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다시 가톨릭과 개신교 등으로 분열된 교회의 현실 속에서, 여러 신앙 전통을 편견없이 받아들여 공통의 토대를 구축하려 하는 로완 윌리엄스의 노력은 매우 인상적이다. 수백 개의 교단으로 갈라진 채, 일치를 위한 노력을 펴기는커녕 서로를 이단시하는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물론 제아무리 품이 넓다 하더라도, 로완 윌리엄스가 한국과 아시아, 아프리카와 남미의 신앙 경험까지 모두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이란 이미 서구 교회의 역사 안에서 완성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우리 역시 적어 보태야 한다. 새로운 눈으로 해석한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그리스도인 됨에 관한 고백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 쉽지 않은 일을 시작할 때 옆에 두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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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타고난 천재. 다만 어릴 때 크게 아픈 뒤로 천천히 회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