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람 매거진

[희년 이야기 03] 희년(Jubilee), 역사는 뭐라고 말할까요?

교황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반구이(Bangui)에 있는 대성당의 문을 열어젖히는 것으로 12월 8일부터 시작되는 '자비의 특별희년(The Extraordinary Jubilee Year of Mercy)'의 개시를 알렸습니다. 원래 가톨릭교회에서는 희년(Jubilee) 혹은 성년(Holy Year)을 시작할 때,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의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아프리카 순방 중에 가난한 아프리카 교회와의 연대를 상징하며 이를 시행한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교황의 행보가 특별히 2015년 12월에서 2016년 11월까지 일 년 간 특별희년이란 이름으로 이어질 텐데, 이 기회에  '희년 정신'을 교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되새겨볼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청어람매거진에서는 로마가톨릭의 희년 역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희년'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중세종교 개혁 시대의 희년

“그것을 역사적으로 해본 적이 있었나요?” ‘희년’을 이야기하면 가장 흔히 나오는 질문입니다. 연구서들을 봐도 이 대목은 답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사회 개혁적 제도로서 시행된 흔적이 일부 있지만, 전면적으로 시행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일곱 번째 안식년의 대 속죄일을 기해 희년이 시작되었던 것을 근거로 사실상 49년째 안식년을 희년으로 지키는 수준의 절충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즉, 유대교에서는 주로 종교적 절기에 흡수되었을 여지가 크고, 간간이 희년정신에 자극받은 이들을 통해 부분적으로 사회개혁 시도로 이어지는 양상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교회사의 초기교회 시절 교부와 주교들은 종종 희년을 언급하며 당대의 부정과 부패를 비판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이 고리대금업과 거대 지주들의 결탁을 통한 부정과 부패로 유명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그와 강력한 대비를 이루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암브로시우스, 크리소스토무스, 아우구스티누스 등이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신앙과 교회는 로마제국의 삶의 현실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했습니다.

중세와 종교개혁 시기를 건너오면서 희년 논의는 한 번 더 변형됩니다. 흥미롭게도 루터는 고리대금업에 대해 문제의식이 커서 여러 번 이자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힙니다. 이자를 받지 않는 것이 제일 좋지만, 받더라도 이율을 아주 낮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헨리 조지 등이 주창한 토지단일세도 제안합니다. 토지에만 제대로 세금을 받으면 다른 모든 세금을 없애도 된다고 보았습니다. 칼뱅은 이자를 받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겼습니다. 칼뱅을 두고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 정신을 제공했다’고 평가한 것이 빈말이 아닌 셈입니다. 이후에 금융적 사고의 발달로 이어질 수 있는 이자율의 문제에 칼뱅은 우호적이었지만, 그가 관여한 ‘제네바’는 빈민을 위한 구휼원의 설립이라든지, 교회 재정은 가난한 자를 위해 써야 한다든지, 가난한 이들은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사신이라는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희년

한편, 로마 가톨릭교회는 1300년부터 현재까지 희년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1299년 연말, 전쟁과 전염병으로 피폐해진 유럽 전역에서 신자들이 로마로 찾아와 기도와 죄 용서를 청한 것을 보고 희년을 선포합니다. 이때 희년은 로마교회의 신학적 이해에 따라 신자들이 로마의 주요 교회를 순례하고, 정해진 기도와 고해성사를 거친 경우에 그들에게 평상시에 허락되지 않는 ‘잠벌(temporal punishment)’을 해소하는 대사(indulgence)의 기회였습니다(역사에 우리가 ‘면죄부’로 알고 있는 바로 그 ‘대사부(indulgence)’ 혹은 ‘면벌부’입니다). 즉, 가톨릭에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초기에는 100년 단위였다가, 곧 50년으로 바뀌었다가, 한때 33년 단위였다가 최종적으로는 25년으로 정착된) 교황이 ‘희년’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교황의 전권으로 정한 시기가 아닌 때에도 ‘특별 희년’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12월 8일부터 시행하는 ‘특별 희년’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의 규정을 찾아보면, ‘희년(Jubilee)’이라고도 부르지만 ‘성년(Holy Year)’이라고 개념을 설정해서 종교적 의례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관행은 통칭 ‘희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기에, 가톨릭의 희년 지키기가 ‘희년의 영성화’가 아니라 ‘희년의 사회화’와 이어질 수는 없을까 고민해보게 됩니다.

희년2

‘희년’ 이야기는 다른 무엇보다 우리의 ‘사회적 상상’에 새로운 차원을 불어넣고, 우리 삶의 절절한 현실과 연결하는 작업이다. 이것이 가능하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불가능하다거나, 불가피하다고 포기해두었던 현실을 바꾸어볼 엄두를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희년>, 헨리 르준(1819-1904)

희년의 영성화에서 희년의 사회화

2000년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전에 ‘주빌리 2000’이란 캠페인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선진국이 제삼 세계의 악성 부채를 탕감해주라’는 여론형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운동에는 영국의 성공회가 꽤 긴밀하게 연대했고,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나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 등과 면담을 통해 지지를 끌어내기도 했고, 버밍엄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 7만 명의 시위대를 조직해 압력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여러 유명 인사가 콘서트나 방송 등으로 캠페인에 참여했는데, 특히 세계적인 록밴드 U2의 보노(Bono)는 그 때부터 제삼 세계 부채탕감 문제에 앞장섰고, 현재도 이 문제를 일선에서 제기하고 있는 대표적 인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역사적으로 ‘희년사상’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전면에 부각하게 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영역의 노력이 중첩됩니다. 가톨릭교회를 통해 긴 시간 동안 ‘희년’은 종교적 의미를 가진 상징으로 자리매김이 되었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이 ‘희년’을 잊지 않도록 하는데 기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희년의 영성화’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흐름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이보다 훨씬 행동주의적이고, 사회경제적 변화를 촉구하는 상상력으로 ‘희년’이 사용된 여러 사례가 있습니다. 19-20세기 들어 이를 주목하게 한 세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희년정신을 사회경제적 상상력으로 불러낸 헨리 조지(Henry George),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희년정신에 따른 비폭력혁명가로 예수를 재발견한 프랑스의 성자 앙드레 트로크메(Andre Trocme), 예수의 윤리를 상징적이거나 이상적 윤리가 아닌 실천윤리라고 재천명한 기독교윤리학자 존 하워드 요더(John H. Yoder)를 꼽고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희년’을 조망해보자면,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여러 흐름이 있습니다. 종교적 이상도 있었고, 무신론적 토대 위에서 나온 것도 있었지만, 그 유토피아를 향한 다양한 구상과 시도 가운데에는 희년정신이 다루는 문제의식이 여러 모양으로 버무려져 있습니다. 저는 세상을 낫게 만들어보고자 노력했던 이들의 공과 과를 다시 살펴보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다른 무엇보다 먼저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볼 수 있는 ‘사회적 상상’이 필수적이란 점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요구할 수 없고, 실천할 수 없는 것을 놓고 노력하지 못합니다. ‘희년’ 이야기는 다른 무엇보다 우리의 ‘사회적 상상’에 새로운 차원을 불어넣고, 우리 삶의 절절한 현실과 연결하는 작업입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불가능하다거나, 불가피하다고 포기해두었던 현실을 바꾸어볼 엄두를 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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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송

청어람 대표. 복음주의 운동가. 몇권의 책을 썼지만, 좌우명은 "노는게 제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