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람 매거진

‘겨울왕국’ 읽기 – 같이 놀래?

김영수의 디즈니 읽기 – <겨울왕국Frozen> 같이 놀래?

'덕후'는 아니라 주장하지만, 사실 '덕스러운' 남자, 김영수가 쓰는 '디즈니' 이야기. 그가 조곤조곤 펼쳐낼 '디즈니 세계'를 기대하시라!

겨울왕국 포스터 (출처 : imdb.com)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언제나 즐거워.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_<뽀롱뽀롱 뽀로로> 주제곡 중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요한 하위징아가 쓴 『호모 루덴스』의 첫 문장입니다. 놀이는 문화의 부분 이전에 인류 문명의 시원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놀이하는 한에서만 온전한 인간입니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미학편지』에서 말합니다. 그에게는 놀이야말로, 본능이나 이성의 지배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신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본질적 행위였습니다.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이 말이 제일입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인류의 역사, 인생의 완성. 거창한 말없이도 누구나 압니다. 노는 것보다 좋은 건, 세상에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보다 쉬운 게 없었습니다. 삶은 늘 친구와 놀이로 가득했으니까요. 언젠가부터 삶이 매끈한 액정처럼 납작해지더니 즐거운 놀이도, 많던 친구도 그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타인은 지옥”(사르트르), “삶은 만인이 벌이는 전쟁”(홉스)과 같은 말이 오히려 익숙해진 이후, 어떻게 놀이를 다시 복원할 수 있을까. 디즈니의 53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겨울왕국>(Frozen, 2013)은 바로 그에 관한 영화입니다.

사랑은 열린 문

추운 바람 비와 만나 꽁꽁 얼어붙었네.
이 얼음 속에 캐내야 할 심장 하나 있지.
온힘을 다해 자르세.
두려움을 찾아, 사랑을 찾아.
날카롭지만 순수한 얼음.
저 얼음을 자르세.
얼어붙은 심장을 깨뜨리세.
_노래 ‘Frozen Heart’ 중

얼음 채집꾼들 (출처 : imdb.com)

북유럽 사미(Sami)족 전통복장을 한 남성들이 호수에서 얼음을 자르며 노래합니다. “더럽고도 깨끗한, 날카롭지만 순수한 얼음. 이 얼음 속에 캐내야 할 심장 하나 있지. 이 심장을 어서 자르세.”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합창단)’처럼 이들의 노래는 영화 전체를 암시합니다. 얼음 채집꾼들이 집에 돌아가고 오로라가 어두운 하늘을 어지럽히는 깊은 밤에도 왕궁의 두 공주는 노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눈과 얼음을 자유롭게 부리는 8살 엘사는 동생을 위해 궁전 안에 얼음 동산을 만듭니다. 5살 안나는 언니의 마법에 잔뜩 신이 났습니다. 하지만 얼음처럼 엘사의 힘도 양면적입니다. 엘사는 실수로 동생을 다치게 하고, 안나는 트롤 파비에게 가까스로 치료받습니다. “심장이 아니라 천만다행입니다.” 파비는 경고합니다. “공주의 마법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주 위험합니다. 능력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만 해요. 두려움은 그대의 적이 될 겁니다.”

재능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불행하게도, 왕은 두 번째 조언을 간과합니다.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문을 잠그고 안전한 곳에 숨기 마련입니다. “성문을 닫고, 일하는 사람을 줄이고, 엘사가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할 것이오. 그 아이의 능력을 숨길 것이오. 안나에게조차.” 아빠는 딸을 보호하고 싶고, 그래서 방에 가둡니다. 엘사는 더이상 안나와 대화를 나누지도, 즐겁게 뛰어놀지도 못합니다. 유년시절이 그렇게 느닷없이 끝나고, 21살의 성인이 되기까지 아이는 청소년기 전부를 좁은 방 안에서 보냅니다. 당연하게도, 엘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13년간 그 방이 키운 건 재능을 다루는 능력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대관식 날. 곧 여왕이 될 터이지만, 엘사는 여전히 세상이 무섭기만 합니다. “사람들을 들여 보내서는 안 돼. 그들이 보게 해서는 안 돼. 착한 소녀처럼 굴어야 해. 감춰야 해. 느끼지 말아야 해. 연기를 해. 한번 삐끗하면 모두가 알게 될 테니.” (노래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얼어붙은 엘사의 방(출처 : conmanatthemovies.com)

닫힌 문은 영화에서 꽤 의미심장한 상징입니다. 영화는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문을 닫으면 얼어붙습니다. 안나의 노크를 외면하고 묻을 닫자 엘사의 방은, 애써 찾아온 안나를 밖으로 내쫓자 얼음 궁전은, 한스가 죽어가는 안나를 가두자 궁전 응접실은, 한스가 엘사를 가두자 감옥 독방은, 이내 얼어버립니다. 좁은 방뿐이 아닙니다.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괴물이다. 여왕은 괴물이야!” 겁에 질린 왕국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그녀를 거부하자, 아렌델은 곧장 꽁꽁 얼어붙습니다. 얼음 채집꾼들의 노래처럼, 이 영화에서 ‘얼음’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타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닫힌 마음의 은유, 그래서 ‘얼어붙은 심장’입니다. 두려움은 타자를 거부하게 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세상을 얼려버립니다. 세상이 무서운 엘사도, 엘사가 두려운 왕국도, 모두 하얗게 얼어버립니다. 두려움은 모두의 적입니다.

사람 사이에 문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난 외로워. 그래서 자유로워.” 엘사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방, 타인에게 침해받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고독은, 그것이 자유의 터전이라 해도, 삶을 얼립니다. 영화는 아예 담을 허물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문을 열어두라고 권합니다. 열린 문을 통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자유롭게. 여전히 너와 나로 존재하면서도,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섞이는 그런. 나와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용기, 혹은 타자와 어울려 사는 공존의 기술을 가리켜 영화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Love is an open door.’ 사랑은 문을 여는 것, 타자를 받아들이고 그로 인한 변화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입니다. 얼어붙은 세상을 사는 누구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만이 녹일 수 있으니까요. “진정한 사랑의 행동만이 얼어붙은 심장을 녹일 수 있단다.”(파비)

나랑 눈사람 만들래?

문을 여는 건 어렵고 위험합니다. 타자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낯선 자’이기에, 연약한 이방인일 수도, 난폭한 괴물일 수도 있습니다. “아름답고 강력하고 위험하고 차가운 얼음! 남자 한 명, 아니 열 명, 아니 백 명보다 힘이 세다네.” (노래 ‘Frozen Heart’) “공주의 마법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주 위험합니다.”(파비)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얼음과 엘사. 그 양면성은 타자의 두 얼굴을 표현하기 위한 극적 장치입니다. 엘사는 자신의 괴물성을 자각한 타자이며, 안나는 타자를 환대하는 사람입니다. 이 영화는 엘사가 자신과 화해하는 이야기이자, 안나가 자신의 환대를 완성하는 이야기입니다. 안나는 엘사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닫힌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다섯 살 아이. “똑. 똑. 나랑 눈사람 만들래?” 저 노크 소리에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다 들어있습니다.

나랑 눈사람 만들래?
어서 나와서 놀자.
눈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어.
_노래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중

문을 두드리는 안나 (출처 : businessinsider.com)

안나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입니다. 이 연약한 소녀는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낸 것일까요? 디즈니다운 가족주의. 이건 분명 안전한 대답입니다. “어떻게 엘사를 믿을 수 있죠? 당신이 다치는 건 싫어요.” (한스) “엘사는 내 언니에요. 날 절대 해치지 않아요.” (안나) 하지만 안나는 엘사에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방금 만난 사람과 그날 약혼을 했다고요? 낯선 사람 조심하라는 말, 부모님께 들은 적 없어요?” (크리스토프) 애초에 그에겐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처음 본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낯선 남자에게 여정을 맡기고, 괴상한 눈사람과 친구가 됩니다. 엘사를 찾아간 것도 꼭 그녀가 친언니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작 엘사는 누구도 자신을 찾지 않기를 원할지도 모른다는 크리스토프의 말에 안나는 대답합니다. “아니요. 누구도 혼자 있고 싶어 하지 않아요.” 생각해보면, 안나는 대답 없는 노크를 13년간 반복했습니다. 믿었기 때문일 테죠. 혼자 있길 원하는 사람은 없어. 언니를 혼자 둬서는 안 돼.

환대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문을 연다는 건 주체가 수동성에 빠지는 것을, 타자에게 ‘상처받기 쉬운 상태’(vulnérabilité)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나 역시 다치고 배신당합니다. 엘사 때문에 심장이 얼고 한스의 배신으로 차가운 방에 갇힌 뒤, 안나는 후회합니다. “내가 틀렸나 봐.” 안나가 모든 걸 포기하는 순간, 올라프와 크리스토프, 스벤이 안나에게 달려옵니다. 그리고 이 소녀가 자신의 환대를 완성하도록 돕습니다. 어쩌면 환대란 개인에겐 너무 무거운, 공동체의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안나는 친구들에게 아이처럼 의지하며 힘든 여정을 견뎠습니다. 아렌델에서 엘사의 성으로, 트롤의 집으로, 다시 아렌델 궁전으로, 크리스토프는 긴 여정 내내 안나를 인도하고 보호합니다. 올라프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줍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자신보다 우선하는 거에요.” 안나를 위해 왕국을 떠난 크리스토프처럼, 안나를 위해서는 녹아도 상관없다던 올라프처럼, 안나도 엘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그 희생이 얼어붙은 모든 걸 녹입니다.

그래서 우린 서로가 필요한거야.
더 성숙해지고 완성되려면.
어쩔 수 없이 누구나 조금씩은 부족해.
정말 어려운 상황이 되면,
그걸 고치는 건 진정한 사랑 뿐이지.
_노래 ‘Fixer-Upper’ 중

안나와 친구들 (출처 : imdb.com)

옳음, 이상의 즐거움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故 장영희 교수는 ‘오프라 윈프리 쇼’의 한 장면을 소개합니다. 윈프리는 탐 설리번이라는 시각장애인 사업가와 인터뷰를 합니다. 외로움과 좌절감에 시름 하던 어린 설리번을 구원한 건, 옆집 아이가 건넨 말 한마디였습니다. “같이 놀래? (Want to play)” 마침 그 쇼에 출연한 아동 문학가 마리아 슈라이버는 “같이 놀래?”, 그러니까 “모든 아이가 서로 ‘다름’을 극복하고 함께 하나가 되어 ‘같이 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쓴 모든 작품의 목표였다고 고백합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비단 슈라이버뿐만 아니라 어쩌면 동서고금을 통해 씌어진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들의 기본적 주제는 ‘같이 놀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형색색으로 다르게 생긴 수십억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자리싸움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인간적 보편성을 찾아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화합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과업이기 때문이다.”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비단 문학뿐일까요? 음악, 미술, 연극 등. 어쩌면 위대한 예술은 모두 ‘함께 노는 삶’, ‘어울려 사는 삶’의 탁월한 연습인지도 모릅니다. 디즈니 역시 그렇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 아직 성문이 닫히기 전, 엘사는 왕궁 거실을 얼음 동산으로 만듭니다. 마지막 장면. 드디어 성문이 열린 뒤, 엘사는 한여름 왕궁 뜰을 아이스링크로 바꿉니다. 영화는 놀이에서 시작해 놀이로 끝납니다. 집에 돌아온 오디세우스처럼 엘사는 잃어버린 놀이를 되찾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면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영화는 유용성 따위에는 관심 없습니다. 영화는 속삭입니다. 뭐 하고 있어. 그 능력으로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아야지. 타자를 환대하라! <겨울왕국>은 이 지당하고 딱딱한 윤리에 덧붙입니다. 용기를 내 타자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면,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롭고 즐거워질 것이라고. 환대와 사랑은 세상을 더욱 정의로울 뿐 아니라 훨씬 즐거운 곳으로 바꿉니다. “놀이하는 한에서만 온전한 인간”이라고 했던가요? 더 즐겁고 완전한 삶을 원한다면 우린 말해야 합니다. 나랑 같이 놀래?

엘사와 안나 (출처 : 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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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타고난 천재. 다만 어릴 때 크게 아픈 뒤로 천천히 회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