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157] 잃어버린 에클레시아를 찾아서

2025-03-12

잃어버린 에클레시아를 찾아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풍관


2025년 2월 청어람의 ‘여성주의 성서해석’ 모임은 ‘페미니즘 성서 비평을 향하여’란 제목으로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성서학의 대가이자 페미니즘 신학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받는 쉬슬러 피오렌자의 대표작 『그女를 기억하며』를 함께 읽는 모임이었지요. 당초 12명의 인원으로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정원을 늘려 25명이 참여했습니다.


『그女를 기억하며』에서 피오렌자는 성서학과 신학뿐 아니라, 철학, 사회학, 페미니즘 이론을 넘나들며 ‘페미니스트 비평적 해방의 해석학’을 펼칩니다. 성서의 형성 및 정경화 과정, 기존의 성서해석 모델들, 남성중심적 본문 등을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해방을 향한 여성들의 역사를 중심으로 기독교의 기원을 재구성하려 합니다. 나아가 ‘여성들의 에클레시아’ 개념을 통해 초기 기독교의 가부장적 구조를 대체할 교회론을 제시하지요. ‘여성들의 에클레시아’는 모든 형태의 가부장적 억압에 지속적으로 저항하며, 이 세계의 억압받는 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평등한 제자도를 지향합니다.


청어람 모임에서는 『그女를 기억하며』의 1부를 성서학 연구자인 오수연 튜터와 함께 읽으며 ‘페미니스트 비평적 해방의 해석학’의 필요성과 타당성에 관해 고민했습니다. 오수연 튜터가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참여자들이 질문과 대화를 주고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기존의 성서 해석 모델들에 대한 피오렌자의 평가, 20세기에 등장한 페미니스트 해석학의 역사와 맥락 등을 살피면서 피오렌자가 말한 '페미니스트 비평적 해방의 해석학’의 요체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수연 튜터의 설명은 흥미진진하고 명료했어요. 열띤 질문과 논의가 오갔고, 모임 시간뿐 아니라 단체 채팅방에서도 활발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모임 단체톡방은 각자의 고민과 나눔 등으로 여러 이야기가 이어졌다.


다채로운 대화가 있었지만 전부 소개드릴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모임을 돌아보며 세 가지 정도만 언급하고 싶어요. 첫째, 피오렌자는 가부장적인 성서를 옹호하지 않고 ‘성서 종교’를 떠나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해석학적 방법론을 모색합니다. 그는 성서의 가부장중심주의와 성차별주의를 옹호할 생각이 없습니다. 성서 내의 가부장적 요소를 정당화하거나 성서의 권위를 회복시키려는 모든 해석적 노력에 반대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탈성서주의 페미니스트들과 달리 피오렌자는 ‘성서 종교’를 떠나지 않습니다. 피오렌자가 보기에 성서에는 초기 기독교 여성들의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공고했던 가부장주의도 여성 그리스도인들의 투쟁과 협력의 역사를 완전히 삭제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처럼 성서의 역사에 남아 있는 여성들의 투쟁을 전유하여 성서 읽기가 여성의 해방에 복무하도록 만드는 것이 피오렌자가 말하는 ‘페미니스트 비평적 해방의 해석학’의 목표입니다.


둘째, 피오렌자는 성서가 계시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종속과 지배를 위한 자원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가령, 바울은 갈라디아서 3:28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모든 차별이 제거되었다고 선언하지만, 고린도전서 12:13에서는 한 발 물러선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2-16에서는 여성 예언자들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도 당시의 지배적인 관습을 따라 남성중심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 같은 성서의 양면성은 새로운 해석학적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적 사실에 천착하는 실증주의적 접근 방법이나 성서 본문과 해석자 사이의 대화에만 초점을 둔 해석학적 모델로는 여성들의 흔적을 재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셋째, 성서의 표면적인 기록과 달리 기독교의 초기 형성 과정에서 여성들은 결코 주변에 있지 않았습니다. 피오렌자는 성서의 본문과 역사 자료가 여성들을 최대한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여성들의 주변성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합니다. 일반적으로 누가-행전의 저자는 여성과 가난한 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진 저자로 알려져 있지요. 그러나 누가복음은 초기 기독교 선교의 리더십이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과부와 여성 예언자들, 선교 사역을 후원했던 부유한 여성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활동과 역할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초기 교회에서 분명히 존재했을 ‘여성의 문제’, 여성 리더십과 남성 리더십 사이의 갈등 또한 없는 셈 치고 있습니다. 피오렌자는 그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성서에서 언급되지 않은 여성들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탐구합니다. ‘그리스-로마 세계’ 속 여성에 관한 역사적 자료들을 경유하면서 초기 기독교 운동의 중심이었던 여성 리더십을 복원해냅니다.

이 책은 성서와 전통의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충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성서를 읽으며 억압을 경험했던 여성들이라면 생경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흥분과 설렘을 줄 것입니다. 이번 청어람 모임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서의 가부장적 권위를 전방위로 해체하는 피오렌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수의 참여자들은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했습니다. 여전히 성서의 권위에 기대어 작동중인 교회의 가부장주의에 분노했고,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기독 여성들의 역사를 상상하며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가부장제를 넘어 우리가 진정으로 믿고 싶은, 아니 믿어야 할 기독교의 비전을 마음껏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피오렌자가 이 책의 결론에서 언급한 ‘여성들의 에클레시아’를 잠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성서의 권위가 무너지고 전통이 해체되면 그것을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는가?’ 이 같은 질문 앞에 설 때마다 저는 마가의 다락방을 떠올립니다. 이방인과 함께 식사할 수 없다고 여긴 유대-그리스도인들을 강력하게 꾸짖으며 너희는 복음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한 바울을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을 경험하며 자신들이 목숨처럼 지켜왔던 유대 전통을 훌쩍 뛰어넘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용기를 상상해봅니다. 예수를 믿는 이들이 모여 예배하고 식사하던 자리를,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임을 고백하며 떡과 잔을 나누던 성만찬의 순간을요. 그런데 어째서!! 그 멋진 일들의 기록자는 죄다 남성으로 채워져 있을까요? 교회를 위해 자신의 집과 재산을 내어주었던 여성들, 가장 앞장 서서 예수를 따르고 전했던 여성 제자들의 이야기는 왜 정경에 속하지 못했을까요? ‘페미니즘 성서비평을 향하여’는 이와 같은 질문 앞으로 저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저는 가부장제가 가려버린 이야기가, 아니 우리가 잃어버린 기독교의 역사가 너무너무 궁금해지고 말았습니다. 저 역시 피오렌자를 따라 그 역사를 되찾으러 가야겠어요. 

마지막 줌모임에서 찍은 단체사진 (그림: 어람씨(@eoram_c))



💫청어람에서는 지금?!

[진행 중] [성서일과 원정대] 3월 사순절은 23명의 원정단과 함께 개정공동성서일과(RCL)에 맞춰 성경 읽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진행 중] 하루 한 끼 채식을 실천하고, 생태와 신앙에 대해 고민하는 40일의 2025 사순절 채식 순례는 19명의 순례자와 함께 매일의 인증을 이어갑니다.

[진행 중] [포럼 청어람] 거대하고 기괴한 거룩 - 한국 개신교가 지키는 것의 첫 번째 포럼은 45명의 참여자와 함께하며 서명삼 교수의 발제와 최승현 기자의 토론을 살폈습니다.  

[진행 중] [세속성자 북클럽] 레이첼과 함께하는 여정은 3월 12일에 모여 <온 마음 다하여>에 대하여 나눔을 합니다.

[온라인 강의 즉시 수강] 드라마로 사회읽기, 현대신학의 줄기와 잎새들, 갈라디아서 - 온라인 신약학 클래스, 독서학교, 여성주의 영성 - 새로운 담론을 찾아서 등의 다양한 강좌를 바로 수강하실 수 있습니다.

[재정보고] 청어람 재정/후원내역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마음을 모아주시는 후원자 여러분께 언제나 감사를 드립니다.



[읽는 신학교] 기독교의 역사: 걸음들

기독교는 단지 종교적 신앙일 뿐 아니라 서양 문명의 형성과 발전에 가장 깊이 영향을 미친 역사적, 문화적 현상이기 때문이죠. 현대에 들어와서는 서구 뿐 아니라 아시아와 남반구 전체, 곧 세계 전체와 영향을 주고 받고 있고요. 이번 읽는 신학교에서는 수많은 기독교 역사 책 중에서도 세계사의 관점에서, 그리고 사회와 교회가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형성되어 온 관점에서 역사를 살피는 책 세 권을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기간: 각 세션 기간별 매일 온라인 챌린지(밴드 활용)
온라인미팅: 각 세션 첫째날과 마지막날에 온라인 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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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청어람] 거대하고 기괴한 거룩 - 한국 개신교가 지키는 것

극우화의 핵심은 개신교입니다. 극우/보수 개신교가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사회 공론장을 망가뜨리는 행위는 ‘개신교’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적인 문제가 된 지 오래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흐름을 “개신교 반지성주의”로 분석하기도 하고 이런 흐름이 지속된다면 교회뿐 아니라 사회도 “공멸”할 것이라 진단하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왜, 어떻게 개신교는 한국 사회 극우화를 선도하게 되었을까요? 분석과 성찰, 혼란의 대안 사이에서 질문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청어람에서 포럼을 준비했습니다.

Chapter1(3/7) : 믿음이 망상과 폭력이 되어 - 한국 개신교 극우화의 맥락들
발제 : 서명삼(서강대 종교학과), 토론 : 최승현(뉴스앤조이)

Chapter2(3/14) : ‘반젠더’ 키워드로 살펴본 한국 주류 개신교의 내면들
발제 : 김한나(하와이대 정치외교학과 박사수료), 토론 : 몽(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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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날 기념: 페미니즘 강좌 큐레이션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 루트커스 광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외쳤던 이 구호는 오늘날까지도 울림을 줍니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의미했지요. 이 운동은 세계로 확산되었고, 한국에서도 1985년부터 ‘한국여성대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어람도 그 흐름에 동참하며,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페미니즘 강좌를 다시 소개합니다. 신앙과 페미니즘, 교회와 젠더 정의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이 강좌들을 통해, 더 넓고 깊은 대화를 이어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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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성자 주일모임

세속성자 주일모임은 탈교회 시대 성도들의 필요에 대한 응답이자, 탈교회 이후의 교회와 예배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실험입니다. 교회 바깥에서 새로운 예배의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임시적 예배의 공간을 제공하고, 대안적인 예배를 모색하고자 합니다.

모임: 2주, 4주 일요일 오후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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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은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꼭 검토해야 할 주제가 무엇인지 제안하고, 통과해야 할 토론을 외면하지 않도록 꾸준하게 모임, 챌린지, 세미나 등을 기획하며 담론의 장을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청어람의 정기후원자가 되셔서 다양한 주제의 활동을 살펴보시고, 30% 할인된 가격으로 모임과 강좌를 이용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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