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독서 여정에서 시몬 베유의 존재감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다른 이들의 글과 소리에서, 점으로 시작해 흐릿한 윤곽이 잡히고 음영이 더해지면서. 그러다 어느새 또렷한 얼굴이 되어 나타났다. 『중력과 은총』을 먼저 알았는데 선뜻 손에 쥐지 못했다. 뉴턴으로 충분히 피곤한 중력에 은총까지 붙어 유체이탈의 방황을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책 읽는 닝겐들은 공감하지 않나.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읽게 될, 혹은 읽고 말 책이 있다는 것!
『신을 기다리며』(복있는사람, 2025)를 읽는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이 뜨거웠다(?). 한병철의 책을 추천하거나 시몬 베유에 대한 저마다의 이야기를 짧게! 토해내는 이들이 있었다. 막상 책을 읽으면서는 길게는 못 했겠다는 걸 알았다. 시몬 베유의 화법과 어조, 시야와 깊이에는 언어화하기 힘든 영역이 있었다. 읽고 나면 글자들이 금세 흩어져, 차근차근 곱씹으며 맛과 향을 음미하기 어려웠다. 책 모임에 참여하면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깔린 멍석 위에서조차 차마, 미처 토해내지 못하는 말들이 속으로 쌓여 갔기 때문이다. 고작 몇 페이지 분량 안에도 너무 많은 생각과 이미지들이 떠올라, 그걸 다 나누었다가는 내 존재가 모임에 해가 될 것 같았다.
시몬 베유의 언어와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단어에 관한 기존의 정의나 이미지를 깨는 작업이 필요했다. 시몬 베유를 전면적으로 다룬 『신에 관하여』 (김영사, 2025)에서 한병철이 시몬 베유가 자주 언급하는 단어를 자기 식으로 풀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 같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청어람 책 모임 중에 한병철의 책도 틈틈이 봤지만, 시몬 베유의 감각을 한병철의 언어로 제한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나에겐 대표적인 단어가 ‘불행’이었다.
시몬 베유에게 있어서 불행은 일반적인 고통과 다르다. 고통이 아픔, 슬픔, 괴로움을 뜻한다면, 불행(malheur)은 영혼의 뿌리까지 침투해서 인격 자체를 파괴하는 상태를 뜻한다. 고통을 느낀다고 모두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 고통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피한다. 누구나 불행한 이들을 어느 정도 경멸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 불행이 자신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시몬 베유가 말하는 ‘불행’은 평소 언어생활에서 거의 만나 본 적 없는 단어였다. 특히 시몬 베유가 그리스도를 고통받는 신이 아닌, ‘불행한 신’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에게 오해, 회피, 핍박, 조롱을 당했을뿐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께도 외면당했다. ‘불행’을 겪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불행을 비껴가기를 호소했으며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믿었다(『신을 기다리며』,복있는 사람, p132).
이 같은 시몬 베유의 ‘불행’ 개념은 내 생각에 큰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일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과 해석의 근본 틀에 지금까지는 한 번도 적용해 본 적 없는 기준을 세워 주었다. 신은 사랑에 의해, 사랑을 위해 세상을 창조했고, 우리도 우리 자신이 신을 닮은 형상으로서, (신처럼) 사랑에 의해 사랑을 위해 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가 경험한 십자가로부터 조금 더 지나왔을 뿐이다. 우리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불행’은 언제고 우연처럼 나타나 우리를 옭아매며, 우리를 다시 십자가 아래로 끌고 갈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시몬 베유의 해석을 나의 언어로 풀어 본 것이다. 이처럼 ‘불행’에 관한 시몬 베유의 정의는 내가 그동안 ‘신비’란 단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다르게 보게 해 주었다.
책을 읽을 때 저자가 하는 말을 경청하는 자세로 읽는다. ‘저기, 이해가 안 되는 데 다시 설명해주시겠어요?’ 라고 되묻듯 책장을 앞으로 넘기는 거다. 시몬 베유는 친절하지 않다. 같은 말을 반복해 들어도 그런 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 혼자 읽었으면 ‘ㅆ, 관둬. 안 듣고 말지!’ 해버렸을지도 모른다. 휴우. 문득 책을 다 읽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든다. 완독 후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을 눈에 잘 띄는 자리로 옮겨 두었다. 이번 책 모임으로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시몬 베유가 불친절(?) 하다는 걸 알았으니, 처음보다는 빠르게 시몬 베유의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복있는 사람에서 출간한 ‘신을 기다리며’ 표지에 박힌 시몬 베유 얼굴이 묘하게 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쌓일 존재감이 남았다는 거겠지? 청어람에서 시몬 베유의 다른 책을 읽는다고 해도 당분간은 신청 안 할 거다. 책을 읽고 난 뒤에 이렇게 짙은 여운은 오랜만이다. 좋은 책을 만났다.
'[세속성자 북클럽] 교회의 문턱에서 시몬 베유 읽기' - 『신을 기다리며』를 읽은 소리꽃 님의 후기
나의 독서 여정에서 시몬 베유의 존재감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다른 이들의 글과 소리에서, 점으로 시작해 흐릿한 윤곽이 잡히고 음영이 더해지면서. 그러다 어느새 또렷한 얼굴이 되어 나타났다. 『중력과 은총』을 먼저 알았는데 선뜻 손에 쥐지 못했다. 뉴턴으로 충분히 피곤한 중력에 은총까지 붙어 유체이탈의 방황을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책 읽는 닝겐들은 공감하지 않나.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읽게 될, 혹은 읽고 말 책이 있다는 것!
『신을 기다리며』(복있는사람, 2025)를 읽는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이 뜨거웠다(?). 한병철의 책을 추천하거나 시몬 베유에 대한 저마다의 이야기를 짧게! 토해내는 이들이 있었다. 막상 책을 읽으면서는 길게는 못 했겠다는 걸 알았다. 시몬 베유의 화법과 어조, 시야와 깊이에는 언어화하기 힘든 영역이 있었다. 읽고 나면 글자들이 금세 흩어져, 차근차근 곱씹으며 맛과 향을 음미하기 어려웠다. 책 모임에 참여하면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깔린 멍석 위에서조차 차마, 미처 토해내지 못하는 말들이 속으로 쌓여 갔기 때문이다. 고작 몇 페이지 분량 안에도 너무 많은 생각과 이미지들이 떠올라, 그걸 다 나누었다가는 내 존재가 모임에 해가 될 것 같았다.
시몬 베유의 언어와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단어에 관한 기존의 정의나 이미지를 깨는 작업이 필요했다. 시몬 베유를 전면적으로 다룬 『신에 관하여』 (김영사, 2025)에서 한병철이 시몬 베유가 자주 언급하는 단어를 자기 식으로 풀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 같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청어람 책 모임 중에 한병철의 책도 틈틈이 봤지만, 시몬 베유의 감각을 한병철의 언어로 제한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나에겐 대표적인 단어가 ‘불행’이었다.
시몬 베유에게 있어서 불행은 일반적인 고통과 다르다. 고통이 아픔, 슬픔, 괴로움을 뜻한다면, 불행(malheur)은 영혼의 뿌리까지 침투해서 인격 자체를 파괴하는 상태를 뜻한다. 고통을 느낀다고 모두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 고통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피한다. 누구나 불행한 이들을 어느 정도 경멸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 불행이 자신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시몬 베유가 말하는 ‘불행’은 평소 언어생활에서 거의 만나 본 적 없는 단어였다. 특히 시몬 베유가 그리스도를 고통받는 신이 아닌, ‘불행한 신’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에게 오해, 회피, 핍박, 조롱을 당했을뿐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께도 외면당했다. ‘불행’을 겪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불행을 비껴가기를 호소했으며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믿었다(『신을 기다리며』,복있는 사람, p132).
이 같은 시몬 베유의 ‘불행’ 개념은 내 생각에 큰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일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과 해석의 근본 틀에 지금까지는 한 번도 적용해 본 적 없는 기준을 세워 주었다. 신은 사랑에 의해, 사랑을 위해 세상을 창조했고, 우리도 우리 자신이 신을 닮은 형상으로서, (신처럼) 사랑에 의해 사랑을 위해 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가 경험한 십자가로부터 조금 더 지나왔을 뿐이다. 우리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불행’은 언제고 우연처럼 나타나 우리를 옭아매며, 우리를 다시 십자가 아래로 끌고 갈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시몬 베유의 해석을 나의 언어로 풀어 본 것이다. 이처럼 ‘불행’에 관한 시몬 베유의 정의는 내가 그동안 ‘신비’란 단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다르게 보게 해 주었다.
책을 읽을 때 저자가 하는 말을 경청하는 자세로 읽는다. ‘저기, 이해가 안 되는 데 다시 설명해주시겠어요?’ 라고 되묻듯 책장을 앞으로 넘기는 거다. 시몬 베유는 친절하지 않다. 같은 말을 반복해 들어도 그런 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 혼자 읽었으면 ‘ㅆ, 관둬. 안 듣고 말지!’ 해버렸을지도 모른다. 휴우. 문득 책을 다 읽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든다. 완독 후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을 눈에 잘 띄는 자리로 옮겨 두었다. 이번 책 모임으로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시몬 베유가 불친절(?) 하다는 걸 알았으니, 처음보다는 빠르게 시몬 베유의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복있는 사람에서 출간한 ‘신을 기다리며’ 표지에 박힌 시몬 베유 얼굴이 묘하게 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쌓일 존재감이 남았다는 거겠지? 청어람에서 시몬 베유의 다른 책을 읽는다고 해도 당분간은 신청 안 할 거다. 책을 읽고 난 뒤에 이렇게 짙은 여운은 오랜만이다. 좋은 책을 만났다.
'[세속성자 북클럽] 교회의 문턱에서 시몬 베유 읽기' - 『신을 기다리며』를 읽은 소리꽃 님의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