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간식이 담긴 바구니가 테이블에 놓여 있습니다. 카페인 음료나 탄산음료, 알콜 음료(?)도 있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요.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라면부터 즉석밥까지 없는 것이 없는 이곳은 이종환 후원자님이 근무하시는 한 대학교의 연구실입니다. 서울시립대학교의 사랑방을 자처하는 이곳은 학생부터 교수까지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며, 모두가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열려있는 공간입니다. 어쩐지 청어람과 닮아있는 이곳에서 이종환 후원자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

- 청어람(청) : 오늘 하루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종환(이) : 아침에 저희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대학교로 출근을 합니다. 오전에 수업을 하나 했고 점심에 청어람 스텝들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네요. 저녁에는 대학원생들과 공부하는 모임이 있는데, 강독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 청 :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생들로 꽉 채워진 하루네요. 학생들과 아주 애틋한 관계를 형성해가는 것 같아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학문 추구의 동반자'라고 표현하신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함께 추구하고 싶은 학문은 어떤 것인가요?
이 : 제가 철학과에 속해있는데요. 철학이라는 학문이 독특한 면이 있어요. 다른 학문은 영어로 -logy라고 하잖아요? 원리나 진리를 뜻하는 logos에서 나온 말이거든요. 하지만 철학은 지혜를 뜻하는 philos와 사랑을 뜻하는 sophia가 합쳐진 말이에요.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저희 학문의 이름이에요. 그러니까 보통 대학에서 어떤 이론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철학과에서는 근본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일을 같이 하자는 의미가 강해요. 물론 철학과 내에서도 다양한 철학자들의 이론을 가르치기는 해요. 1차적으로 철학과 관련된 정보를 전달해 주는 일도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그건 일종의 수단인 것이고요. 근본적으로 철학이라는 것은 지혜를 찾는 과정, 그리고 지혜를 사랑하는 과정, 더 많이 알고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요구하는 지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지혜들을 사랑하고 알아가는 것이죠. 그런데 그걸 사랑한다는 얘기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잖아요. 저도 학생들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 같이 알아가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학문 추구의 동반자'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아요.
- 청 : 학생들을 위해서 많은 간식들을 구비해두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요즘 이종환 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겨울 간식은 무엇인가요?
이 : 겨울 간식은 아니지만 저희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비건 빵집이 있어요. 한국외국어대학교 앞쪽에 있는 빵집이거든요. 거기에 비건 빵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종류도 많고 맛있는 빵이 진짜 많아요. 여기서 도보로 왕복 3km 정도 거리인데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운동 겸 자주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건 브리오슈예요. 곰돌이 머리처럼 생긴 빵인데 뇌 부분에 크림도 들어있거든요. 그걸 먹는 재미가 요즘 제게 아주 큽니다.
제가 비건이기 때문에 겨울간식보다 비건 빵집에 더 무게를 두고 답변을 드렸네요. 최근에 겨울 간식으로 군고구마를 개시했어요. 어제 처음으로 냄비에 군고구마를 구워 먹었습니다.
- 청 : 비건 철학 교수님이라니, 익숙하지 않은 단어의 조합이네요. 어쩌다가 비건 철학 교수님이 되신 건가요?
이 : 다른 거는 제가 별로 잘 못하더라고요. 잘 하는 게 없어서 그래요. 지식을 사랑하는 일은 다른 일보다 조금 수월하더라고요. 대단한 건 아니고요. 비건은 사실 종교적인 이유나 동물들의 권리, 기후 위기 문제로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저는 그런 종류의 가치관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공개하는 것이 부끄럽네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저 자신에게 일종의 ‘핸디캡’을 주려고 시작한 것이 커요. 저는 교수라는 직업이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살아갈 때 원하든 원치 않든 사회적으로 기득권에 들어가는 경우들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살다 보면 제가 정신을 못 차리고 살겠다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정신을 차리려고 선택한 것이 채식이었어요. 이것도 대단한 일은 아니고요. 더 많은 부분에서 소수자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는 시도 정도밖에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청 : 실제로 해보시니 어떠셨나요? 의도하신 바와 같이 경각심을 가지게 되는 효과가 있었나요?
이 : 정신 차리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었죠. 조금 조심스러운 건 요즘 비건이 일종의 트렌드처럼 자리를 잡아서 제가 처음 비건을 시작했을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제가 10년 넘게 비건으로 살고 있는데, 처음에는 비건이라고 하면 무시당했거든요. ‘같이 먹어야지, 고기 먹어야지’ 그런 분위기였는데 요즘에는 좀 바뀐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완벽한 비건으로 살려고 많이 따져서 저를 귀찮게 하고 있어요. 필요하다면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서 또 다른 불편을 찾아 선택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 청 : 청어람과 인연은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합니다.
이 : 청어람이 시작될 때 저도 기독교 동아리, 기독인 모임 같은 활동들을 했었어요. 그때 인연이 있던 분들이 청어람 사역을 하고 계셨고요. 제가 기독교와 관계없는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청어람의 사역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청어람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어요. 세속성자를 위한 강의 시리즈로 인문/고전 관련한 기획을 하셨었거든요. <세속성자 고전 읽기>라는 이름으로 플라톤 강의를 했었네요. 그 이후로도 청어람에서 진행하는 강좌나 모임들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고, 쫓아가고 있었습니다.
- 청 : 청어람에 도움이 되고 싶다니, 어째서 청어람을 그렇게 좋아해 주시는 건가요?
이 : 사실 저도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저는 사람을 믿는다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가에 더 마음을 두는 편인데요. 청어람은 조금 예외적인 면이 있어요. 스스로가 신기하다고 생각이 들 만큼요. 청어람이 다양한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중인데, 그 방향에 대해서 거부감이 들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청어람이 가는 방향이니까 기다리고 쫓아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여전히 왜 그런지를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지만 일종의 기대가 아닐까 싶어요. 한국교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도전이나 고민들을 던질 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놀 수 있는 공간이면서 편하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장소로 청어람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보는 청어람이 그렇더라고요. 무엇을 지향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그런 공간이 되어주기 때문에 더 다양한 지향성들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시도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이고요.
제 사무 공간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가고, 밥도 먹고, 술도 먹고, 힘도 얻는 공간이거든요. 인문대 교수님들도 여기를 사랑방이라고 말씀하시고, 실제로 지나가다가 그냥 들르시는 경우가 많아요. 청어람도 그래서 참 좋은 것 같아요. 사람들이 안전한 공간이라고 믿는 거거든요. 그런 공간들이 정말 필요하잖아요. 판단 받기 이전에 내가 어떤 고민과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나눌 수 있는 장이 정말 중요한데, 청어람이 그런 역할들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청어람이 뭘 하는지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거죠.
- 청 : 이종환 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요? 청어람이 그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 제가 꿈꾸는 세상이라…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대단한 그림을 저로서는 잘 그리지도 못하겠고요. 그저 사람들이 서로서로 잘 지낼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일이 없고, 차별받지 않는 그런 곳이요. 피상적이고 포괄적인 답변이라는 건 알지만, 저는 오히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순간 거기서 차별의 기재가 작동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되는 마음에요. 그럴 수 있도록 청어람이 장을 계속 마련해 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예전부터 ‘기독’을 떼면 안 되냐고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어떤 면에서는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사실 ‘기독’이라거나 ‘복음주의’라는 말도 장을 좁히는 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청 : 후원을 망설이시는 분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
이 : 사람들이 청어람이라는 단체가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청어람은 장소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곳이거든요. 우리는 보통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생각하지만, 청어람에 후원하는 경우는 조금 달리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다양한 가능성들이 개발될 수 있는 그런 장을 만드는 마음으로, 당장에 어떤 기대되는 결과나 답이 도출되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농부들이 씨를 뿌릴 때 바로 싹이 날 것을 기대하지 않고 1년을 바라보고 준비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후원에 함께해 주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 청 : 이종환 님에게 청어람은 어떤 곳인가요?
이 : 나에게 청어람은, ‘잘 모르겠’다.
- 청 : 청어람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쭉 표현해 주시고 결론이 잘 모르겠다니, 너무하신데요.
이 : 잘 모르겠는 곳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을 포괄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우리가 너무 결과 지향적으로 살아가잖아요. 철학도 결과 지향적이지는 않거든요. 세상에서 철학을 보고 맨날 뭐라고 하는 줄 아시죠? ‘그거 해가지고 뭐 취직은 되냐?’ 이게 아주 오래된 질문이에요. 서양 철학의 시초가 탈레스거든요. 기원전 6세기에 탈레스한테 사람들이 물어봤어요. ‘철학 하면 뭐해요? 어디다 써먹어요?’ 진짜 예전부터 어디다 써먹는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받아온 거죠. 하지만 철학은 결과로 존재 증명을 하지는 않아요. 괄목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는 학문들은 생겨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철학은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잖아요. 어떤 결과를 낳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더 가치 있는 것은 그냥 그 존재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일 수 있거든요. 저는 청어람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청어람과 함께 하는 이종환 님의 인터뷰가 어떠셨나요? 여러분도 청어람과 느슨하면서도 단단한 연대를 이어가실 수 있습니다. 청어람 후원 캠페인과 함께 해 주세요!
2024 청어람 후원 캠페인과 함께 해 주세요!
- 청어람(청) : 오늘 하루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종환(이) : 아침에 저희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대학교로 출근을 합니다. 오전에 수업을 하나 했고 점심에 청어람 스텝들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네요. 저녁에는 대학원생들과 공부하는 모임이 있는데, 강독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 청 :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생들로 꽉 채워진 하루네요. 학생들과 아주 애틋한 관계를 형성해가는 것 같아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학문 추구의 동반자'라고 표현하신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함께 추구하고 싶은 학문은 어떤 것인가요?
이 : 제가 철학과에 속해있는데요. 철학이라는 학문이 독특한 면이 있어요. 다른 학문은 영어로 -logy라고 하잖아요? 원리나 진리를 뜻하는 logos에서 나온 말이거든요. 하지만 철학은 지혜를 뜻하는 philos와 사랑을 뜻하는 sophia가 합쳐진 말이에요.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저희 학문의 이름이에요. 그러니까 보통 대학에서 어떤 이론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철학과에서는 근본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일을 같이 하자는 의미가 강해요. 물론 철학과 내에서도 다양한 철학자들의 이론을 가르치기는 해요. 1차적으로 철학과 관련된 정보를 전달해 주는 일도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그건 일종의 수단인 것이고요. 근본적으로 철학이라는 것은 지혜를 찾는 과정, 그리고 지혜를 사랑하는 과정, 더 많이 알고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요구하는 지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지혜들을 사랑하고 알아가는 것이죠. 그런데 그걸 사랑한다는 얘기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잖아요. 저도 학생들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 같이 알아가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학문 추구의 동반자'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아요.
- 청 : 학생들을 위해서 많은 간식들을 구비해두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요즘 이종환 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겨울 간식은 무엇인가요?
이 : 겨울 간식은 아니지만 저희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비건 빵집이 있어요. 한국외국어대학교 앞쪽에 있는 빵집이거든요. 거기에 비건 빵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종류도 많고 맛있는 빵이 진짜 많아요. 여기서 도보로 왕복 3km 정도 거리인데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운동 겸 자주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건 브리오슈예요. 곰돌이 머리처럼 생긴 빵인데 뇌 부분에 크림도 들어있거든요. 그걸 먹는 재미가 요즘 제게 아주 큽니다.
제가 비건이기 때문에 겨울간식보다 비건 빵집에 더 무게를 두고 답변을 드렸네요. 최근에 겨울 간식으로 군고구마를 개시했어요. 어제 처음으로 냄비에 군고구마를 구워 먹었습니다.
- 청 : 비건 철학 교수님이라니, 익숙하지 않은 단어의 조합이네요. 어쩌다가 비건 철학 교수님이 되신 건가요?
이 : 다른 거는 제가 별로 잘 못하더라고요. 잘 하는 게 없어서 그래요. 지식을 사랑하는 일은 다른 일보다 조금 수월하더라고요. 대단한 건 아니고요. 비건은 사실 종교적인 이유나 동물들의 권리, 기후 위기 문제로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저는 그런 종류의 가치관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공개하는 것이 부끄럽네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저 자신에게 일종의 ‘핸디캡’을 주려고 시작한 것이 커요. 저는 교수라는 직업이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살아갈 때 원하든 원치 않든 사회적으로 기득권에 들어가는 경우들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살다 보면 제가 정신을 못 차리고 살겠다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정신을 차리려고 선택한 것이 채식이었어요. 이것도 대단한 일은 아니고요. 더 많은 부분에서 소수자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는 시도 정도밖에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청 : 실제로 해보시니 어떠셨나요? 의도하신 바와 같이 경각심을 가지게 되는 효과가 있었나요?
이 : 정신 차리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었죠. 조금 조심스러운 건 요즘 비건이 일종의 트렌드처럼 자리를 잡아서 제가 처음 비건을 시작했을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제가 10년 넘게 비건으로 살고 있는데, 처음에는 비건이라고 하면 무시당했거든요. ‘같이 먹어야지, 고기 먹어야지’ 그런 분위기였는데 요즘에는 좀 바뀐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완벽한 비건으로 살려고 많이 따져서 저를 귀찮게 하고 있어요. 필요하다면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서 또 다른 불편을 찾아 선택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 청 : 청어람과 인연은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합니다.
이 : 청어람이 시작될 때 저도 기독교 동아리, 기독인 모임 같은 활동들을 했었어요. 그때 인연이 있던 분들이 청어람 사역을 하고 계셨고요. 제가 기독교와 관계없는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청어람의 사역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청어람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어요. 세속성자를 위한 강의 시리즈로 인문/고전 관련한 기획을 하셨었거든요. <세속성자 고전 읽기>라는 이름으로 플라톤 강의를 했었네요. 그 이후로도 청어람에서 진행하는 강좌나 모임들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고, 쫓아가고 있었습니다.
- 청 : 청어람에 도움이 되고 싶다니, 어째서 청어람을 그렇게 좋아해 주시는 건가요?
이 : 사실 저도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저는 사람을 믿는다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가에 더 마음을 두는 편인데요. 청어람은 조금 예외적인 면이 있어요. 스스로가 신기하다고 생각이 들 만큼요. 청어람이 다양한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중인데, 그 방향에 대해서 거부감이 들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청어람이 가는 방향이니까 기다리고 쫓아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여전히 왜 그런지를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지만 일종의 기대가 아닐까 싶어요. 한국교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도전이나 고민들을 던질 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놀 수 있는 공간이면서 편하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장소로 청어람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보는 청어람이 그렇더라고요. 무엇을 지향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그런 공간이 되어주기 때문에 더 다양한 지향성들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시도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이고요.
제 사무 공간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가고, 밥도 먹고, 술도 먹고, 힘도 얻는 공간이거든요. 인문대 교수님들도 여기를 사랑방이라고 말씀하시고, 실제로 지나가다가 그냥 들르시는 경우가 많아요. 청어람도 그래서 참 좋은 것 같아요. 사람들이 안전한 공간이라고 믿는 거거든요. 그런 공간들이 정말 필요하잖아요. 판단 받기 이전에 내가 어떤 고민과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나눌 수 있는 장이 정말 중요한데, 청어람이 그런 역할들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청어람이 뭘 하는지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거죠.
- 청 : 이종환 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요? 청어람이 그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 제가 꿈꾸는 세상이라…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대단한 그림을 저로서는 잘 그리지도 못하겠고요. 그저 사람들이 서로서로 잘 지낼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일이 없고, 차별받지 않는 그런 곳이요. 피상적이고 포괄적인 답변이라는 건 알지만, 저는 오히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순간 거기서 차별의 기재가 작동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되는 마음에요. 그럴 수 있도록 청어람이 장을 계속 마련해 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예전부터 ‘기독’을 떼면 안 되냐고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어떤 면에서는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사실 ‘기독’이라거나 ‘복음주의’라는 말도 장을 좁히는 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청 : 후원을 망설이시는 분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
이 : 사람들이 청어람이라는 단체가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청어람은 장소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곳이거든요. 우리는 보통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생각하지만, 청어람에 후원하는 경우는 조금 달리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다양한 가능성들이 개발될 수 있는 그런 장을 만드는 마음으로, 당장에 어떤 기대되는 결과나 답이 도출되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농부들이 씨를 뿌릴 때 바로 싹이 날 것을 기대하지 않고 1년을 바라보고 준비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후원에 함께해 주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 청 : 이종환 님에게 청어람은 어떤 곳인가요?
이 : 나에게 청어람은, ‘잘 모르겠’다.
- 청 : 청어람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쭉 표현해 주시고 결론이 잘 모르겠다니, 너무하신데요.
이 : 잘 모르겠는 곳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을 포괄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우리가 너무 결과 지향적으로 살아가잖아요. 철학도 결과 지향적이지는 않거든요. 세상에서 철학을 보고 맨날 뭐라고 하는 줄 아시죠? ‘그거 해가지고 뭐 취직은 되냐?’ 이게 아주 오래된 질문이에요. 서양 철학의 시초가 탈레스거든요. 기원전 6세기에 탈레스한테 사람들이 물어봤어요. ‘철학 하면 뭐해요? 어디다 써먹어요?’ 진짜 예전부터 어디다 써먹는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받아온 거죠. 하지만 철학은 결과로 존재 증명을 하지는 않아요. 괄목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는 학문들은 생겨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철학은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잖아요. 어떤 결과를 낳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더 가치 있는 것은 그냥 그 존재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일 수 있거든요. 저는 청어람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청어람과 함께 하는 이종환 님의 인터뷰가 어떠셨나요? 여러분도 청어람과 느슨하면서도 단단한 연대를 이어가실 수 있습니다. 청어람 후원 캠페인과 함께 해 주세요!
2024 청어람 후원 캠페인과 함께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