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너머 이슈포럼 ‘젠더’ 온라인 참여 후기
최유미
“한국에서 여성으로,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도 고통스러울 때가 점점 더 많아지는데 굳이 한국사회 성불평등과 성소수자 차별, 가부장제 및 남성중심주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코어인 한국교회에 가서 더 큰 고통을 자처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늘 제 안을 갑갑하게 맴돌고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부목사로 목회하던 교회를 다니는 둥 마는 둥 출석하다가 불합리하며 성차별적인 이유로 어머니가 그곳을 사임을 한 뒤부터는 4년째 조용히 모 교회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삼십 대 비혼 여성입니다.
이십 대 후반에 서른이 되면 선데이 크리스천으로만 교회를 다니겠다 결심을 했습니다. 교회 사람들과 엮이지도 교회 일을 하지도 않겠다 마음을 먹었고 삼십 대가 되자마자 바로 자유를 쟁취했습니다. 고통스럽던 주말이 그야말로 꿀맛 같은 시간으로 변했지요. 그리고 교회와 멀어 질수록 세상이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존재였는 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2016년, 페미니즘을 만났습니다. 이 사건이야 말로 개신교인의 회심보다 더 큰 충격과 파장으로 저를 덮쳤습니다. 그 당시의 저에게 페미니즘이 구원이었고 복음이었습니다. 설명되지 않던 것들이 설명되었고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절로 이해됐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에서 성평등 그리고 페미니즘을 수용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 또한 자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성평등은커녕 교회가 주장하는 양성평등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곳,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곳이 교회인데 내가 왜 이곳에 있어야 하나, 교회는 여성을 구별한다 하지만 차별하는 곳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게다가 그때 제 나이는 삼십 대 초반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유령처럼 사라져 버리는 나이 많은 교회언니 포지션이었죠. 그제야 저는 왜 결혼을 하지 않은 삼십 대 여성청년들이 교회에서 사라지는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정상가족 프레임에 속하지 않은 애매한 위치, 교회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란 것을요. 아, 이곳은 내 준거집단이 될 수 없는 곳이구나! 이러한 깨달음이 자연스레 들었습니다.
성차별,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 차별, 가부장제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성불평등한 교회 조직 시스템과 문화, 여성 목사 안수 문제와 여성 교역자 차별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차별과 혐오의 온상지인 한국개신교와 기성 한국교회 판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헛된 희망일수도 있는 “복음주의와 페미니즘”을 함께 논하는 청어람ARMC의 모습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애틋하며 새로웠습니다.
이번에 로잔너머 포럼을 한다기에 온라인으로 참여를 했습니다. 발제자분들의 발제를 듣고 과연 심도 깊은 토론이 나올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가운데 오프라인 참석자 분의 첫 번째 질문부터 속이 갑갑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가 이래서 교회를 나왔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과연 저분들은 발제를 제대로 들으신 걸까 아니면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러 참여를 한 건가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토론이 끝난 뒤 이게 현재 한국교회의 수준이라는 걸 다시금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채송희 목사님의 에큐메니칼 진영에서의 분투와 김은선 활동가님이 이야기해 주신 믿는 페미 활동이 더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 속에 나오는 황폐하고 메마른 땅과 마을에 상수리나무 열매를 심은 이가 바로 이분들의 모습이 아닌가, 청어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한국교회에서 성차별과 성불평등으로 고통을 입은 그리고 교회를 떠난 여성들의 말하기대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토론 시간에 어느 분께서 여성들이 소극적이고 참여가 저조하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입을 여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과연 정말 말한 사람이 없었을까...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상하는 아시아 배우를 지나친 1세계 백인 배우의 눈처럼 그저 그분의 눈에도 안 보인 게 아닌가 하는 물증 없는 심증적인 추리를 할 뿐입니다.
여성끼리만 모여서 뭘 하지 말고 같이 하자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정말 진심으로 같이 하면 좋겠습니다. 주도권과 스피커는 여성에게 제발 넘겨주시고요. 비여성 분들은 먼저 들을 귀를 열고 닫힌 마음을 열고 굳어진 머리를 유연하게 바꾼 다음 그저 가만히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남성들의 생각과 언어, 자아를 십자가에 더 공고히 못 박아 죽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천 년 동안 지금까지도 개신교판과 교회의 기득권은 온전히 남성에게 있지 않았습니까.
이번 포럼에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어 여러모로 유익했습니다. 제 개인의 신앙생활 여정과 기성교회에 대한 생각이 다시 한번 정리가 되면서 한국 개신교의 현황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제 목소리를 풀어내니 답답했던 속이 후련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 운동 표어로 이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모로 갑갑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이 포럼을 준비하고 진행한 청어람ARMC의 모든 분들과 퀄리티 있는 자료로 발제해 주신 채송희 목사님과 김은선 활동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로잔너머 이슈포럼 ‘젠더’ 온라인 참여 후기
최유미
“한국에서 여성으로,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도 고통스러울 때가 점점 더 많아지는데 굳이 한국사회 성불평등과 성소수자 차별, 가부장제 및 남성중심주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코어인 한국교회에 가서 더 큰 고통을 자처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늘 제 안을 갑갑하게 맴돌고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부목사로 목회하던 교회를 다니는 둥 마는 둥 출석하다가 불합리하며 성차별적인 이유로 어머니가 그곳을 사임을 한 뒤부터는 4년째 조용히 모 교회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삼십 대 비혼 여성입니다.
이십 대 후반에 서른이 되면 선데이 크리스천으로만 교회를 다니겠다 결심을 했습니다. 교회 사람들과 엮이지도 교회 일을 하지도 않겠다 마음을 먹었고 삼십 대가 되자마자 바로 자유를 쟁취했습니다. 고통스럽던 주말이 그야말로 꿀맛 같은 시간으로 변했지요. 그리고 교회와 멀어 질수록 세상이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존재였는 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2016년, 페미니즘을 만났습니다. 이 사건이야 말로 개신교인의 회심보다 더 큰 충격과 파장으로 저를 덮쳤습니다. 그 당시의 저에게 페미니즘이 구원이었고 복음이었습니다. 설명되지 않던 것들이 설명되었고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절로 이해됐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에서 성평등 그리고 페미니즘을 수용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 또한 자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성평등은커녕 교회가 주장하는 양성평등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곳,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곳이 교회인데 내가 왜 이곳에 있어야 하나, 교회는 여성을 구별한다 하지만 차별하는 곳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게다가 그때 제 나이는 삼십 대 초반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유령처럼 사라져 버리는 나이 많은 교회언니 포지션이었죠. 그제야 저는 왜 결혼을 하지 않은 삼십 대 여성청년들이 교회에서 사라지는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정상가족 프레임에 속하지 않은 애매한 위치, 교회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란 것을요. 아, 이곳은 내 준거집단이 될 수 없는 곳이구나! 이러한 깨달음이 자연스레 들었습니다.
성차별,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 차별, 가부장제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성불평등한 교회 조직 시스템과 문화, 여성 목사 안수 문제와 여성 교역자 차별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차별과 혐오의 온상지인 한국개신교와 기성 한국교회 판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헛된 희망일수도 있는 “복음주의와 페미니즘”을 함께 논하는 청어람ARMC의 모습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애틋하며 새로웠습니다.
이번에 로잔너머 포럼을 한다기에 온라인으로 참여를 했습니다. 발제자분들의 발제를 듣고 과연 심도 깊은 토론이 나올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가운데 오프라인 참석자 분의 첫 번째 질문부터 속이 갑갑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가 이래서 교회를 나왔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과연 저분들은 발제를 제대로 들으신 걸까 아니면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러 참여를 한 건가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토론이 끝난 뒤 이게 현재 한국교회의 수준이라는 걸 다시금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채송희 목사님의 에큐메니칼 진영에서의 분투와 김은선 활동가님이 이야기해 주신 믿는 페미 활동이 더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 속에 나오는 황폐하고 메마른 땅과 마을에 상수리나무 열매를 심은 이가 바로 이분들의 모습이 아닌가, 청어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한국교회에서 성차별과 성불평등으로 고통을 입은 그리고 교회를 떠난 여성들의 말하기대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토론 시간에 어느 분께서 여성들이 소극적이고 참여가 저조하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입을 여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과연 정말 말한 사람이 없었을까...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상하는 아시아 배우를 지나친 1세계 백인 배우의 눈처럼 그저 그분의 눈에도 안 보인 게 아닌가 하는 물증 없는 심증적인 추리를 할 뿐입니다.
여성끼리만 모여서 뭘 하지 말고 같이 하자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정말 진심으로 같이 하면 좋겠습니다. 주도권과 스피커는 여성에게 제발 넘겨주시고요. 비여성 분들은 먼저 들을 귀를 열고 닫힌 마음을 열고 굳어진 머리를 유연하게 바꾼 다음 그저 가만히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남성들의 생각과 언어, 자아를 십자가에 더 공고히 못 박아 죽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천 년 동안 지금까지도 개신교판과 교회의 기득권은 온전히 남성에게 있지 않았습니까.
이번 포럼에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어 여러모로 유익했습니다. 제 개인의 신앙생활 여정과 기성교회에 대한 생각이 다시 한번 정리가 되면서 한국 개신교의 현황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제 목소리를 풀어내니 답답했던 속이 후련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 운동 표어로 이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모로 갑갑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이 포럼을 준비하고 진행한 청어람ARMC의 모든 분들과 퀄리티 있는 자료로 발제해 주신 채송희 목사님과 김은선 활동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