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의 우물이 있습니다. 🏝
⛪️ 교회밖에 모르는 바보, 현철
지난주에 사무실에 온 손님과 대화하다가 그리스도교 신앙 혹은 복음주의를 설명할 때 ‘경계 지향적 접근'과 ‘중심 지향적 접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유를 들어 표현하자면, 양을 칠 때 울타리를 쳐두고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양을 칠 것이냐, 중심에 우물을 파 두고 그 우물에 모여드는 양을 칠 것이냐 하는 것이죠. 저는 태생적으로 경계를 싫어하고, 경계를 넘어보고자 하는 욕구가 늘 가득하기 때문에 ‘중심 지향적 접근'에 매우 공감이 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교회에서 특정 사안에 대한 동의와 비동의를 기준으로 신자인가 아닌가를 판별하고 배제하려는 흐름을 보며, 울타리(경계)를 기준으로 삼을 게 아니라 우물(핵심 가치와 중심이 무엇인지)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모여야 할 우물은 무엇일까요? 종교개혁자들이 샘 근원으로 돌아가자며 ‘ad fontes’를 외쳤던 것처럼, 성경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 우물이 아닐까 합니다. ‘성경이 중요하다’는 말은 너무 흔해서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도 많지만,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의 토대요, 중심이지요.
성경이 공통의 우물이 된다고 믿지만, 어떤 경우에는 성경 역시 경계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한다거나 특정한 관점으로 다른 관점을 재단하는 태도는 성경을 우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경계로 삼는 일이 되죠. 성경이 공통의 우물로 작동하려면 다양한 관점으로 다양한 방식의 읽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적 성경읽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성경을 읽는 다양한 방식과 관점이 널리 보급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삶에 적용하며 자신의 방식과 관점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적인 기독교 신앙의 모습이 아닐까요?
청어람은 이런 기대를 가지고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방식으로 성경을 꾸준히 읽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중심 성경읽기'도 필요하지만 ‘퀴어의 관점에서 성경 읽기'도 ‘여성을 위한 성경 읽기’도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의와 평화의 눈으로 본 성경, 소외된 자들의 눈으로 본 성경, 장애의 눈으로 본 성경, 동물과 비인간의 눈으로 본 성경, 기후위기의 시대에 읽는 성경 같은 다양한 관점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고정된 텍스트, 화석화된 교리, 경계를 짓고 배제하는 울타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들의 대화와 토론이 필수적입니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4주간 외경 함께 읽기 챌린지가 시작되었습니다, 5월에는 퀴어 성서주석 차근차근 읽기도 진행합니다. 월간 세속성자 북클럽에서는 <공공신학의 눈으로 본 성경>도 함께 읽습니다.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여성주의 성서해석도 5월부터 진행할 예정입니다. 여기 우리의 우물이 있습니다. 함께 모여 읽고 마십시다.
“성경은 찌푸린 눈으로 한참을 바라봐야 뭔가 보이는 ‘매직아이' 같은게 아니에요. 오히려 성경은 여러 가수들이 커버곡으로 부르고 리믹스해서 부르는 노래에 가깝습니다. 당신에게 제일 멋지게 다가오는 가수를 찾아보세요. 성경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줄겁니다.” (회고록 작가 애디 지어맨의 이야기, <다시 성경으로> 27쪽에서 재인용)
*다양한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자 할 때 함께 보면 좋을 만 한 책 두권이 떠올라 추천합니다.
📗 <다시 성경으로>,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칸앤메리 옮김, 바람이 불어오는 곳
📗 <성서의 형성>, 존 바턴 지음, 강성윤 옮김, 비아 펴냄
사무실의 '오렌지 자스민'의 꽃이 활짝 피었어요! 치자와 라일락 비슷한 향이 진하게 나는데, 처음 본 꽃이라 반갑고 신기합니다.
여기 우리의 우물이 있습니다. 🏝
⛪️ 교회밖에 모르는 바보, 현철
지난주에 사무실에 온 손님과 대화하다가 그리스도교 신앙 혹은 복음주의를 설명할 때 ‘경계 지향적 접근'과 ‘중심 지향적 접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유를 들어 표현하자면, 양을 칠 때 울타리를 쳐두고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양을 칠 것이냐, 중심에 우물을 파 두고 그 우물에 모여드는 양을 칠 것이냐 하는 것이죠. 저는 태생적으로 경계를 싫어하고, 경계를 넘어보고자 하는 욕구가 늘 가득하기 때문에 ‘중심 지향적 접근'에 매우 공감이 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교회에서 특정 사안에 대한 동의와 비동의를 기준으로 신자인가 아닌가를 판별하고 배제하려는 흐름을 보며, 울타리(경계)를 기준으로 삼을 게 아니라 우물(핵심 가치와 중심이 무엇인지)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모여야 할 우물은 무엇일까요? 종교개혁자들이 샘 근원으로 돌아가자며 ‘ad fontes’를 외쳤던 것처럼, 성경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 우물이 아닐까 합니다. ‘성경이 중요하다’는 말은 너무 흔해서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도 많지만,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의 토대요, 중심이지요.
성경이 공통의 우물이 된다고 믿지만, 어떤 경우에는 성경 역시 경계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한다거나 특정한 관점으로 다른 관점을 재단하는 태도는 성경을 우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경계로 삼는 일이 되죠. 성경이 공통의 우물로 작동하려면 다양한 관점으로 다양한 방식의 읽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적 성경읽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성경을 읽는 다양한 방식과 관점이 널리 보급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삶에 적용하며 자신의 방식과 관점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적인 기독교 신앙의 모습이 아닐까요?
청어람은 이런 기대를 가지고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방식으로 성경을 꾸준히 읽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중심 성경읽기'도 필요하지만 ‘퀴어의 관점에서 성경 읽기'도 ‘여성을 위한 성경 읽기’도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의와 평화의 눈으로 본 성경, 소외된 자들의 눈으로 본 성경, 장애의 눈으로 본 성경, 동물과 비인간의 눈으로 본 성경, 기후위기의 시대에 읽는 성경 같은 다양한 관점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고정된 텍스트, 화석화된 교리, 경계를 짓고 배제하는 울타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들의 대화와 토론이 필수적입니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4주간 외경 함께 읽기 챌린지가 시작되었습니다, 5월에는 퀴어 성서주석 차근차근 읽기도 진행합니다. 월간 세속성자 북클럽에서는 <공공신학의 눈으로 본 성경>도 함께 읽습니다.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여성주의 성서해석도 5월부터 진행할 예정입니다. 여기 우리의 우물이 있습니다. 함께 모여 읽고 마십시다.
*다양한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자 할 때 함께 보면 좋을 만 한 책 두권이 떠올라 추천합니다.
📗 <다시 성경으로>,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칸앤메리 옮김, 바람이 불어오는 곳
📗 <성서의 형성>, 존 바턴 지음, 강성윤 옮김, 비아 펴냄
사무실의 '오렌지 자스민'의 꽃이 활짝 피었어요! 치자와 라일락 비슷한 향이 진하게 나는데, 처음 본 꽃이라 반갑고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