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환영합니다 🔍
⛪️ 교회밖에 모르는 바보, 현철
“조심스러운데 궁금한게 있어서 문의드려요…”
지난주 청어람 카톡으로 메세지가 하나 왔습니다. 어떤 분이 개인적인 상황과 연결된 신앙적 질문을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질문이 약간 도발적이라 ‘혹시 우리의 신학적 입장을 시험하려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이어지는 질문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4-5번 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죄, 천국,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질문에 답하면서 제가 오히려 더 은혜를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말 걸어주신 이름모를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사실 신앙에 대해 이렇게 묻고 답하기를 좋아합니다(‘목사병’입니다만…). 제가 아는 바를 주장하고 가르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해 생각하면서 제 생각을 가다듬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이미 결론을 내렸다 생각하는 문제라도 질문을 받으면 놓치고 있던 것들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모든 질문이 무조건 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질문은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바를 다시 점검하게 하고 허술하던 대답을 단단하게 다져줍니다.
신앙에 대한 이런저런 북클럽, 강의, 좋은 콘텐츠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청어람 모임의 매력이라면 안전하게 질문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청어람의 모임들은 진지한 질문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환영할 뿐 아니라 질문을 전제로 합니다. 의문이 생기지 않는 주제는 청어람이 다루고 싶은 주제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치열하게 다시 물어야 할 주제들이 청어람이 도전하고 싶은 주제들이고, 그 질문을 함께 나누고 고민할 공간으로 청어람은 존재하고 싶습니다.
이번주에도 질문을 가득 담은 새로운 모임들이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속에 여성 제자들의 흔적은 어떻게 남아있는지 찾아보는 <여성주의 성서해석>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돌봄이 무엇인지, 진짜 돌봄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하는 <사이북클럽>,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는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진지하게 묻는 <세속성자 북클럽 - 그리스도교를 다시 묻다>모임이 시작됩니다.
<그리스도교를 다시 묻다>의 저자 더글라스 존 홀은 책의 서문에서 모든 종교전통이 질문과 숙고를 요구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런 질문과 숙고의 시간을 보내도 이해한 것은 거의 없을 수 있다는 것을, 겸손하고도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영향력 있는 노신학자의 고백이 우리를 치열한 질문으로 이끄는 동시에 한편으로 우리를 안심시키기도 합니다. 충분한 답은 드리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함께, 다시, 물을 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모든 심오한 종교전통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성찰하고, 공부하고, 숙고하고, 경청하고, 말하고, 침묵하기를(때로는 이를 기도라고 부르지) 요구하기 마련이야. 그 사람들이 그 종교 전통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말이지.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고독 속에서 보내야 하고, 많은 이야기를 읽고 숙고해야 하며, 아주 긴 시간 대화를 나누어야 해.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 때로는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에 빠져 곤혹스러움을 느낄 때도 찾아오고, 의심이 엄습해 불안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는 순간도 있을거야. 심지어 그렇게 여든네 해를 보내 놓고도 이해한 것은 거의 없다고, 자신의 신앙은 정말, 정말 작다고 고백하는 이 할아버지 같은 사람도 있단다.
(<그리스도교를 다시 묻다>, 더글라스 존 홀 지음, 이민희 옮김, 비아 펴냄, 서문 중에서)
질문을 환영합니다 🔍
⛪️ 교회밖에 모르는 바보, 현철
“조심스러운데 궁금한게 있어서 문의드려요…”
지난주 청어람 카톡으로 메세지가 하나 왔습니다. 어떤 분이 개인적인 상황과 연결된 신앙적 질문을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질문이 약간 도발적이라 ‘혹시 우리의 신학적 입장을 시험하려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이어지는 질문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4-5번 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죄, 천국,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질문에 답하면서 제가 오히려 더 은혜를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말 걸어주신 이름모를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사실 신앙에 대해 이렇게 묻고 답하기를 좋아합니다(‘목사병’입니다만…). 제가 아는 바를 주장하고 가르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해 생각하면서 제 생각을 가다듬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이미 결론을 내렸다 생각하는 문제라도 질문을 받으면 놓치고 있던 것들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모든 질문이 무조건 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질문은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바를 다시 점검하게 하고 허술하던 대답을 단단하게 다져줍니다.
신앙에 대한 이런저런 북클럽, 강의, 좋은 콘텐츠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청어람 모임의 매력이라면 안전하게 질문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청어람의 모임들은 진지한 질문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환영할 뿐 아니라 질문을 전제로 합니다. 의문이 생기지 않는 주제는 청어람이 다루고 싶은 주제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치열하게 다시 물어야 할 주제들이 청어람이 도전하고 싶은 주제들이고, 그 질문을 함께 나누고 고민할 공간으로 청어람은 존재하고 싶습니다.
이번주에도 질문을 가득 담은 새로운 모임들이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속에 여성 제자들의 흔적은 어떻게 남아있는지 찾아보는 <여성주의 성서해석>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돌봄이 무엇인지, 진짜 돌봄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하는 <사이북클럽>,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는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진지하게 묻는 <세속성자 북클럽 - 그리스도교를 다시 묻다>모임이 시작됩니다.
<그리스도교를 다시 묻다>의 저자 더글라스 존 홀은 책의 서문에서 모든 종교전통이 질문과 숙고를 요구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런 질문과 숙고의 시간을 보내도 이해한 것은 거의 없을 수 있다는 것을, 겸손하고도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영향력 있는 노신학자의 고백이 우리를 치열한 질문으로 이끄는 동시에 한편으로 우리를 안심시키기도 합니다. 충분한 답은 드리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함께, 다시, 물을 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