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082] 어느 기획자의 심경 고백 📝

2023-06-07

어느 기획자의 심경 고백 📝

🧘‍♀️까칠한 오지라퍼, 수경


요즘 비영리 단체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한숨으로 시작해 한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1차적으로는 불황과 맞물린 재정적 어려움이 가속화되기 때문이고, 2차적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함께 나눠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청어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꽤 오래 ‘기획자'의 눈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팬데믹, 불황, 기후위기 등이 만들어 낸 풍경과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막막해 기획을 하다가 멈칫거릴 때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더더욱 신앙에 관해 생각하곤 합니다. 


얼마 전 책모임을 할 때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더랬습니다. 신앙이라는 걸, 예전에는 ‘활동’으로 생각했는데... 점점 ‘수행’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무엇을 더 할까, 어떤 걸 주장할까 생각하기보다는… 무엇을 덜어낼 수 있을까, 어떤 걸 하지 말아야 할까, 누구의 이웃이 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아마 요즘 ‘템플스테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이유도 이렇게 생각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그간 부산하게 펼쳐놨던 것들 중 더 집중해야 할 것을 분별하고, 가던 길을 섣불리 가기보다는 멈춰 서서 '새로운'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 용기와 역량을 모아야 하겠다는 의미의 ‘수행' 말입니다.


이런 제 고민을 아셨는지 지난주에 진행한 <수도회, 길을 묻다> 북토크에서 저자이신 최종원 교수님이 마침 이런 말을 하셨네요. “우리는 뭔가를 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신앙이라는 건 존재이지 활동을 통해 드러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개신교도 비로소 멈춰서 보게 된 거죠. 코로나가 지난 지금도 유효한 말이라고 느낍니다. 종교,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돌아보고 수행하는 거죠. 이것이 개신교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조용히 침잠하는 마리아의 영성이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가치가 아닐까 싶어요.” (헛… 찌찌뽕 😊)


최종원 교수님의 그 말은 현실 세계와 분리되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들이 속한 사회 집단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해 왔는지" 찬찬히 들여다보며 "세계가 하나의 자본과 문화로 엮여 팍스 로마나처럼 거대한 제국이 된 21세기에, 그 제국의 가치에 대항하며, 오로지 그 너머의 삶이 있는가"를 깊이 헤아려 보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의 변화가  그 시대의 반영과 전망의 결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종교가, 우리의 신앙이 누군가에게는 절망의 언어나 혐오의 구실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계가 무너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아가도록 추동하는 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교인이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음' 혹은 '무엇도 될 수 없음'을 뚫고 무언가를 만들고, 누군가의 곁에 서고, 세계에 기여하도록 애써야 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청어람의 모든 활동에서 이런 언어와 통찰이 발견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요즘 같이 막막한 시절이야 말로 함께 모여 서로를 보듬으며 생각을 나누고, 읽고 쓰는 모임이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주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청어람이 이런 일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더라도, 고민하고 서성이면서 질문하는 이들을 위한 피난처, 자조모임, 운동으로서 말이죠.


그런 역할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해 그간 청어람이 쌓은 질문과 문제의식을 보다 폭넓게 공유할 수 있는 작은 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부자들, 스텝들의 열심만으로는 확실히 한계가 있네요. 이것도 사람의 일인지라 자원이 필요합니다. 청어람이 크고 위대한 일을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존재들, 어느 세계의 한 부분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기반으로 존재하도록 여러분과 이 일을 함께 도모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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