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을 앞둔 대림절 넷째주입니다. 평화는 우리가 기대하는 곳보다 더 낮은 곳, 더 보잘것 없는 곳에 초라한 모습으로 옵니다. 예수님이 그런곳에 오시기 때문이지요. 우리 마음이 너무 높고 크고 화려해지지 않도록 늘 주님을 기다리는 기다림의 자세를 잃지 않도록 주의하며 대림절 넷째주를 맞기를 기도합니다.

본기도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약속을 지키시고자 여인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시는 하나님. 막다른 해산의 날을 우리가 기다리며 기도하오니,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맞을 수 있는 큰 희망과,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는 희망을 알아볼 수 있는 눈과 실망하지 않을 마음을 허락하소서. 차디찬 빈들에서, 낮은 말구유에서 오실 우리 주님을 기다리오니 주여 우리의 희망이 되어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어둠속에 빛을 바라네 / 곧 오소서 임마누엘
말씀
미가 5:2-5
2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당신의 백성을 원수들에게 그대로 맡겨 두실 것이다. 그 뒤에 그의 동포, 사로잡혀 가 있던 남은 백성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4 그가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그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이름이 지닌 그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의 떼를 먹일 것이다. 그러면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이를 것이므로, 그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5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앗시리아 사람이 우리 땅을 침략하여, 우리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올 때에, 우리는 일곱 목자, 여덟 장군들을 보내서, 침략자들과 싸우게 할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5-10절
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입히실 몸을 마련하셨습니다. 6 주님은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래서 내가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나를 두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8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주님은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들입니다. 9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첫 번째 것을 폐하셨습니다.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9-55절
39 그 무렵에, 마리아가 일어나, 서둘러 유대 산골에 있는 한 동네로 가서,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에, 아이가 그의 뱃속에서 뛰놀았다.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42 큰 소리로 외쳐 말하였다.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았고, 그대의 태중의 아이도 복을 받았습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그대의 인사말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에, 내 태중의 아이가 기뻐서 뛰놀았습니다. 45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여자는 행복합니다."
46 그리하여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48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49 힘센 분이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51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52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53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54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적용질문
- 읽은 말씀에서 내 마음에 가장 선명하게 새겨진 한구절은 무엇인가요? 왜 그렇게 느껴졌나요?
- 마리아를 환대하는 엘리사벳의 모습과 그 기쁜 마음을 상상해 봅시다. 이와 같은 전적인 응원과 격려가 필요한 자리는 어디일까요?
- 마리아는 과거를 기억합니다. 그 기억 덕분에 현실을 응시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소망을 위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말씀나눔
정의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대림절 넷째 주입니다. 게다가 최근 불의가 언제든 우리에게 닥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해서일까요? 이제 막 생명을 몸에 품은 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특별히 선명하게 들립니다. 마리아는 말합니다. 자신에 임한 성육신의 신비는 다름 아닌 그분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눅 1:48)이라고 말이지요. 여기서 “비천함”이라는 단어가 얼핏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표현처럼 들릴지 모릅니다. 우리의 성정을 아는 그분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고백처럼이요. 하지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같다는 성서학의 전반적인 견해를 염두에 둘 때, 사도행전에서 이 “비천함”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찾아보면, 처음 생각이 바뀔 겁니다.
마리아의 “비천함”에 해당하는 그리스 원어는 사도행전에서 에티오피아 내시의 입을 통해 그대로 등장합니다(행 8:22~23). 내시는 이사야의 종의 노래(사 53:7~8)를 읽으면서, 부당한 고난과 불의한 법정의 손에 죽임당한 종을 이야기합니다. 이때 해당 단어를 언급하는데, 우리말로는 “굴욕”이라고 번역됩니다. 달리 말해 마리아가 “비천함”이라 일컫는 자신의 처지는 개인의 소극적인 심정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말에서 사회적 상태로서 “굴욕”, 곧 마리아와 그 민중이 제국의 손에서 비하되고 착취당하는 상태를 떠올려야 하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마리아는 자신이 처한 사회적 위치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구체적으로 비판할 줄 알며, 굴욕의 현실을 고발하고 대응하는 치열한 젊은 여성입니다. 나아가 마리아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성육신의 신비를 발견합니다.
우선 마리아는 그들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자비와 도움을 기억해 냅니다. 교만한 자들이 흩어졌으며 권력을 무기 삼아 모욕과 수탈을 일삼던 자들이 끌어져 내려왔던 일, 동시에 비천한 사람들, 굴욕과 착취당한 사람들이 높아졌던 일,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은 빈손이 되고 주렸던 사람들이 배부르게 된 일을 말입니다. 마리아는 억압과 착취의 구조가 해체된 세상, 차별과 배제가 사라진 세상, 회복이 실현되고 모두가 안전한 세상은 사실 이미 시작됐다고 일러줍니다. 그 구원의 기억이 곧 그녀 몸속 작은 생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그래서 이제 그 아기를 통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이 비칠 것이며 평화가 오리라고 선언합니다. 이렇게 마리아의 담대한 선언을 통해 구원의 기억이 현재로 이어집니다. 불의한 현실에서도 미래를 소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몸으로 모든 불의를 오롯이 체현하기에 메시아일 수 있으며, 이것이 몸으로 그리스도를 품은 마리아가 이해한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의 선언을 둘러싼 엘리사벳의 연대를 살펴봅시다. 저자는 엘리사벳이 나이가 많아 잉태할 수 없다고 했으니(눅 1:7), 엘리사벳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오십 세 전후일 것입니다. 당시 혼인 습관을 따져보면 마리아는 많아야 십 대 후반이었을 것입니다. 한 세대가 넘는 나이 차에도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극진히 대접하며 그녀의 잉태를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본문 이후 누가복음 1장 56절은 마리아가 엘리사벳 집에서 석 달을 머물고 돌아갔다고 전해줍니다. 임신 초기, 안전과 안정이 절실한 시기에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보살피고 돌본 것이죠. 또한 그녀들의 이런 든든한 연대는 곧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가 그냥 오지 않음을, 평화는 홀로 올 수 없음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그가 몸을 입고 올 이 세계에서 정의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더불어 은밀한 성범죄부터 공공연한 국가 폭력, 전쟁에 이르기까지, 불의가 멈추지 않는 현실 앞에서 성육신으로 말미암은 평화를 정의와 도무지 떨어뜨려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따라 내 몸이 체현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내가 연대해야 할 이는 누구일까요? 그분은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가 아닌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이민희, 옥바라지 선교센터)
세속성자의 기도
순수하고 참된 사랑을 구하며 - 대림절 기도 4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며 기도하오니,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기다림이 순수함과 거룩함,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주님을 찾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의 이름으로 혐오와 차별을 행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심지어 그런 이들이 기세 등등하여 기독교를 대표하는 듯 나서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허전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지요. 우리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화려한 장식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사랑이신 주님을 의지하며 사랑이 이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싸늘한 벌판과 허름한 마굿간에서 진정으로 사랑을 바라는 이들, 사랑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주님을 기다리겠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어서 오소서.
전쟁과 폭력의 위협에 노출된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 몇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났지만 어째서 세상은 아직도 전쟁중일까요? 어째서 세상은 이처럼 폭력적이고 괴로우며, 동시에 이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울까요? 모순 같은 질문을 던지며, 모순 같은 일상을 이어가며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혹 우리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을 산다면, 폭력앞에 노출되어 두렵고 괴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또 괴롭고 두려운 폭력에 노출된 이들은 세상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답을 알지도 못하고, 문제를 바꿀 힘도 없지만, 비오니 이 세상의 모든 전쟁과 폭력이 그치고 평화의 왕 아기 예수를 맞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팔레스타인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시리아에서, 미얀마에서 모든 폭력과 학살과 전쟁이 사라지고 아름다움만 남게 하소서.
대통령 탄핵 이후 정국 안정과 내란 수사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진정한 통치자 되신 주님, 혼란스러운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정의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탄핵이 되었다지만 아직 정국의 혼란은 여전하고, 경제지표는 요동을 치며 위기감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탄핵까지 이르게된 모든 과정들에 대한 수사가 바르게 진행되고 내란 모의의 전모가 제대로 밝혀져서 정국이 속히 안정되고 국민들도 안심하며 지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한국 정치가 발전하고 앞으로 나가기보다는 여전히 비슷한 길을 답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염려가 됩니다. 국민들 모두 성숙한 정치의식을 가질 뿐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이 큰 책임감과 소명의식,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마음을 갖게 하셔서 이 나라가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정의롭고 안전하며 평화로운 나라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탄핵 국면 이후 정말 새로운 체제와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오늘의 이 혼란이 헛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이끌어주소서.
* 매월 2,4주 주일 오후에 이 자료로 함께하는 예배 모임이 있습니다. _ 소박하지만 따뜻한 찬양과 말씀 나눔, 성찬이 있습니다.
미리 신청해주시면 안내드립니다: https://armc.cc/sun
본기도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약속을 지키시고자 여인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시는 하나님. 막다른 해산의 날을 우리가 기다리며 기도하오니,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맞을 수 있는 큰 희망과,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는 희망을 알아볼 수 있는 눈과 실망하지 않을 마음을 허락하소서. 차디찬 빈들에서, 낮은 말구유에서 오실 우리 주님을 기다리오니 주여 우리의 희망이 되어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어둠속에 빛을 바라네 / 곧 오소서 임마누엘
말씀
미가 5:2-5
2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당신의 백성을 원수들에게 그대로 맡겨 두실 것이다. 그 뒤에 그의 동포, 사로잡혀 가 있던 남은 백성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4 그가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그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이름이 지닌 그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의 떼를 먹일 것이다. 그러면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이를 것이므로, 그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5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앗시리아 사람이 우리 땅을 침략하여, 우리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올 때에, 우리는 일곱 목자, 여덟 장군들을 보내서, 침략자들과 싸우게 할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5-10절
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입히실 몸을 마련하셨습니다. 6 주님은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래서 내가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나를 두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8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주님은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들입니다. 9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첫 번째 것을 폐하셨습니다.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9-55절
39 그 무렵에, 마리아가 일어나, 서둘러 유대 산골에 있는 한 동네로 가서,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에, 아이가 그의 뱃속에서 뛰놀았다.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42 큰 소리로 외쳐 말하였다.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았고, 그대의 태중의 아이도 복을 받았습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그대의 인사말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에, 내 태중의 아이가 기뻐서 뛰놀았습니다. 45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여자는 행복합니다." 46 그리하여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48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49 힘센 분이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51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52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53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54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적용질문
말씀나눔
정의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대림절 넷째 주입니다. 게다가 최근 불의가 언제든 우리에게 닥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해서일까요? 이제 막 생명을 몸에 품은 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특별히 선명하게 들립니다. 마리아는 말합니다. 자신에 임한 성육신의 신비는 다름 아닌 그분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눅 1:48)이라고 말이지요. 여기서 “비천함”이라는 단어가 얼핏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표현처럼 들릴지 모릅니다. 우리의 성정을 아는 그분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고백처럼이요. 하지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같다는 성서학의 전반적인 견해를 염두에 둘 때, 사도행전에서 이 “비천함”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찾아보면, 처음 생각이 바뀔 겁니다.
마리아의 “비천함”에 해당하는 그리스 원어는 사도행전에서 에티오피아 내시의 입을 통해 그대로 등장합니다(행 8:22~23). 내시는 이사야의 종의 노래(사 53:7~8)를 읽으면서, 부당한 고난과 불의한 법정의 손에 죽임당한 종을 이야기합니다. 이때 해당 단어를 언급하는데, 우리말로는 “굴욕”이라고 번역됩니다. 달리 말해 마리아가 “비천함”이라 일컫는 자신의 처지는 개인의 소극적인 심정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말에서 사회적 상태로서 “굴욕”, 곧 마리아와 그 민중이 제국의 손에서 비하되고 착취당하는 상태를 떠올려야 하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마리아는 자신이 처한 사회적 위치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구체적으로 비판할 줄 알며, 굴욕의 현실을 고발하고 대응하는 치열한 젊은 여성입니다. 나아가 마리아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성육신의 신비를 발견합니다.
우선 마리아는 그들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자비와 도움을 기억해 냅니다. 교만한 자들이 흩어졌으며 권력을 무기 삼아 모욕과 수탈을 일삼던 자들이 끌어져 내려왔던 일, 동시에 비천한 사람들, 굴욕과 착취당한 사람들이 높아졌던 일,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은 빈손이 되고 주렸던 사람들이 배부르게 된 일을 말입니다. 마리아는 억압과 착취의 구조가 해체된 세상, 차별과 배제가 사라진 세상, 회복이 실현되고 모두가 안전한 세상은 사실 이미 시작됐다고 일러줍니다. 그 구원의 기억이 곧 그녀 몸속 작은 생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그래서 이제 그 아기를 통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이 비칠 것이며 평화가 오리라고 선언합니다. 이렇게 마리아의 담대한 선언을 통해 구원의 기억이 현재로 이어집니다. 불의한 현실에서도 미래를 소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몸으로 모든 불의를 오롯이 체현하기에 메시아일 수 있으며, 이것이 몸으로 그리스도를 품은 마리아가 이해한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의 선언을 둘러싼 엘리사벳의 연대를 살펴봅시다. 저자는 엘리사벳이 나이가 많아 잉태할 수 없다고 했으니(눅 1:7), 엘리사벳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오십 세 전후일 것입니다. 당시 혼인 습관을 따져보면 마리아는 많아야 십 대 후반이었을 것입니다. 한 세대가 넘는 나이 차에도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극진히 대접하며 그녀의 잉태를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본문 이후 누가복음 1장 56절은 마리아가 엘리사벳 집에서 석 달을 머물고 돌아갔다고 전해줍니다. 임신 초기, 안전과 안정이 절실한 시기에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보살피고 돌본 것이죠. 또한 그녀들의 이런 든든한 연대는 곧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가 그냥 오지 않음을, 평화는 홀로 올 수 없음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그가 몸을 입고 올 이 세계에서 정의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더불어 은밀한 성범죄부터 공공연한 국가 폭력, 전쟁에 이르기까지, 불의가 멈추지 않는 현실 앞에서 성육신으로 말미암은 평화를 정의와 도무지 떨어뜨려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따라 내 몸이 체현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내가 연대해야 할 이는 누구일까요? 그분은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가 아닌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이민희, 옥바라지 선교센터)
세속성자의 기도
순수하고 참된 사랑을 구하며 - 대림절 기도 4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며 기도하오니,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기다림이 순수함과 거룩함,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주님을 찾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의 이름으로 혐오와 차별을 행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심지어 그런 이들이 기세 등등하여 기독교를 대표하는 듯 나서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허전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지요. 우리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화려한 장식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사랑이신 주님을 의지하며 사랑이 이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싸늘한 벌판과 허름한 마굿간에서 진정으로 사랑을 바라는 이들, 사랑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주님을 기다리겠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어서 오소서.
전쟁과 폭력의 위협에 노출된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 몇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났지만 어째서 세상은 아직도 전쟁중일까요? 어째서 세상은 이처럼 폭력적이고 괴로우며, 동시에 이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울까요? 모순 같은 질문을 던지며, 모순 같은 일상을 이어가며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혹 우리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을 산다면, 폭력앞에 노출되어 두렵고 괴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또 괴롭고 두려운 폭력에 노출된 이들은 세상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답을 알지도 못하고, 문제를 바꿀 힘도 없지만, 비오니 이 세상의 모든 전쟁과 폭력이 그치고 평화의 왕 아기 예수를 맞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팔레스타인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시리아에서, 미얀마에서 모든 폭력과 학살과 전쟁이 사라지고 아름다움만 남게 하소서.
대통령 탄핵 이후 정국 안정과 내란 수사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진정한 통치자 되신 주님, 혼란스러운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정의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탄핵이 되었다지만 아직 정국의 혼란은 여전하고, 경제지표는 요동을 치며 위기감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탄핵까지 이르게된 모든 과정들에 대한 수사가 바르게 진행되고 내란 모의의 전모가 제대로 밝혀져서 정국이 속히 안정되고 국민들도 안심하며 지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한국 정치가 발전하고 앞으로 나가기보다는 여전히 비슷한 길을 답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염려가 됩니다. 국민들 모두 성숙한 정치의식을 가질 뿐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이 큰 책임감과 소명의식,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마음을 갖게 하셔서 이 나라가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정의롭고 안전하며 평화로운 나라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탄핵 국면 이후 정말 새로운 체제와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오늘의 이 혼란이 헛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이끌어주소서.
* 매월 2,4주 주일 오후에 이 자료로 함께하는 예배 모임이 있습니다. _ 소박하지만 따뜻한 찬양과 말씀 나눔, 성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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